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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사이
백색 형제단의 신성한 경전: 신의 목소리 1편 (불가리아어)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 『신의 목소리- 1부』는 불가리아어로 진행되며 자막은 아랍어 어울락(베트남)어 불가리아어 중국어 체코슬로바키아어 영어 불어 독어 힌디어 헝가리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말레이어 몽골어 페르시아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펀자브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태국어입니다

우주 백색 형제단의 종교적 근원은 1900년 불가리아의 베인사 도우너 스승으로 알려진 페테르 콘스탄티노프 되노프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겸손과 순종 정직,선함,지성 고결함이 영적수행에 있어 선행되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사랑,지혜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주 백색 형제단은 신이 돌이나 식물,물,공기 동물,빛 등 모든 것 속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불살생 혹은 비폭력의 원칙을 따르며 도우너 스승은 동물성분이 없는 채식을 실천하고 권장했습니다

오늘은 도우너 스승의 강연에서 발췌한 『신의 목소리』 라는 제목의 우주 백색 형제단의 신성한 가르침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를 즐겁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이어 수프림 마스터 TV 주목할 뉴스에 이어 사랑스런 삶의 터전 지구가 방송되니 계속 시청해 주십시오 신의 축복을 빌며 작별인사 드립니다

신의 목소리

인간의 길을 정의하는 인생의 내면 철학은 존재한다 이 철학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닦는 의식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은 왜 무슨 목적으로 지구에 왔냐고 물어 온다면 그건 당신을 창조하고 당신의 앞날을 아는 신만이 아신다고 당신은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주장으로 생각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지구에 온 이유와 사명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소,새, 물고기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그들의 발달 정도에 따라 각자 대답할 것이다 소는 자신의 임무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며 새는 자신의 목적이 나는 것이고 물고기는 헤엄치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럼 인간은 이 질문에 뭐라 대답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자라면 자신에게 만족스런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고 있는 자는 내면의 평화와 평안을 얻은 행복한 자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는 바른 진화의 결과로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안정됨과 열린 시야로 자신의 길을 걷게 된다 인생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는 고로 그들은 앞으로 부닥치게 될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도 쉽게 해결한다 병자도 자신의 시야를 열어두고 있으나 그것은 오직 건강을 되찾기 위해 의지하는 약과 음식에만 그럴 뿐이다 그들은 약과 음식을 섭취하자 마자 눈을 감고 다시 신음하기 시작한다 왜 신음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힘든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병자가 신음하는 건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감내해야 할 것을 보고는 그것을 잊기 위해 눈을 감는다 병자는 겁이 많다 건강한 이가 걸을 땐 눈을 뜨고 걷는다 왜인가? 그것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아름답고 수월하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는 한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려움을 만나자 마자 그는 눈을 감고 신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이해한 현명한 자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없이 눈을 뜨고 간다

모든 이는 지구에 배우러 왔다 인생의 제자로서 우리는 심오한 내적 평화를 가져오는 긍정적인 지혜를 갈망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우리 자신을 알고 남을 알아 자기 자신과 먼저 일한 다음 남과 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의 진보는 자신의 힘과 가능성 안에 있지 않다 누군가가 모든 이의 영양을 돌볼 수 있을까? 누가 죽음이 일어나고 죽은 다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누가 태어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는가? 생명이 가져온 것은 죽음도 가져온다 죽음과 같이 생명은 동시에 인간에게 축복과 불행을 가져온다 어떤 이에게 죽음은 행복이요 어떤 이에겐 불행이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인생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다 만일 의식적으로 살고 신의 법을 따른다면 인생은 길어질 것이다 신의 법을 어기면 인생은 짧고 불행할 것이다

사는 동안 인간은 인생을 하나의 큰 축복으로 보게 돼 있다 이 축복을 최상으로 누리기 위해선 우린 신의 의지를 실현해야 한다 신의 의지를 실현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신은 우리에게서 인생의 좋은 것을 뺏지 않는다 신은 인류에게 풍부한 물과 공기 빛과 음식을 주지만 많은 이는 병들고 기아와 빈곤에 괴로워한다 누가 이것에 비난 받아야 하겠는가? 어떤 이의 주전자가 망가져 무엇을 부어도 새어 나올 때 그걸 누구에게 원망할 것인가? 그 주전자를 누가 부셨는가? 도공이거나 누구든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 첫 번째나 두 번째 경우 다 그 사람을 구하진 못한다 중요한 건 주전자가 깨졌고 그것을 갈아야 한다는 것이다 깨진 주전자를 온전한 것과 바꿀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그러니 누가 자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걸 들을 때,당신은 그의 주전자가 깨졌음을 알 것이다 무얼 붓든 새어 나오니까 만일 깨진 주전자에 물을 붓는다면 그 손실은 크지 않다 왜냐면 자연에는 물이 충분이 있기 때문인데 다른 한 쪽에서 빠져 나갈 때 한쪽에서 부어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장미유일 땐 경우가 다르다 최저의 손실이라도 자신과 가족 전체에 나쁘게 반향한다

인간의 몸은 다름아닌 일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옹기인 것이다 이 옹기는 오래 동안 값진 향유를 간직하기 위해 튼튼해야만 한다 인간의 몸에 부어진 소중한 향유는 삶 자체를 대변한다 옹기가 깨져 향유가 빠져나갈 때,우린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일단,생명이 빠져 나가기 시작할 때 몸은 불편해 지고 다리에 힘이 없다 어지럽다,가슴이 아프다,센스있게 생각할 수 없다 눈이 나빠졌다 등의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지성적 자연에 대한 바른 자세를 잃었다는 걸 보여주는 시기상조의 노화를 표시한다 이런 경우에 우린 무얼 해야 할까? 지성적 자연에 대해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활력을 되찾기 시작해야 한다 정의롭든 사악하든 우리 모두는 지성적 자연과의 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지만 다시 회복할 수도 있다 정의로운 자는 영적인 세계와의 관계를 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 그리고 바른 행실로 다시 영적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자연스런 것이다 죄인이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면 그는 건강해질 것이다 올바른 이가 오염된 공기를 호흡하면 그는 병이 들 것이다 그러나 첫 번이나 두 번째 경우 모두 일시적일 수 있고 영원할 수도 있다 올바르게 사는 올바른 이가 더러운 분위기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인이 죄를 지으며 늘 깨끗한 공기를 쓴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올바른 이가 근심 속에서 살면 건강을 잃을 것이다 죄인이 근심 없이 내면의 평화를 유지한다면 그는 늘 건강할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마음을 주어 생각하게 했고 근심하지 않게 했다

신과 인간의 영혼 사이에는 늘 알아볼 수 있는 연결이 있으며 그것을 막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연결이 없다면 신에 대한 관념이나 자신에 대한 관념을 형성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과 자신을 보지만 인간이 뜻하는 것이 뭔지를 모른다 그는 인간이 보는 눈과 듣는 귀와 냄새 맡는 코와 말할 입을 가졌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의 몸에 있는 각각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손과 발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손과 발의 내적이며 외적인 기능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손의 목적이 그들이 하는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발의 목적이 오직 걷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부분은 모두 내적이며 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예수가 장님의 눈에 진흙을 바르자 그가 보기 시작했다 당시 학자들이 예수의 주위에 모여 그에게 질문을 하며 어떻게 장님이 다시 보게 됐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장님이 원래 장님이었는지 그렇다면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죄를 지은 이유가 뭔지 아니면 부모가 죄를 지었는지 물었다 당시의 견해로서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가 장님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답하기를 『그나 부모 모두 죄를 짓지 않았지만 신의 행위가 드러난 것 뿐이다』고 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가 그들에게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현대인들도 이해를 못한다 어떤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에게 물어본 뒤 사람들은 왜 장님을 눈을 뜨게 했는지 또 물었다 누군가가 어떤 이의 눈을 뺐다면 이유를 물을 수 있겠지만 예수에게 왜 장님의 눈을 고쳤냐고 물은 것은 말이 안 되는 질문이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제거돼야 할 장애일 뿐이다 예수가 장님을 만났고 그의 눈을 뜨게 했다 이보다 더 자연스런 행위가 있겠는가? 당시 이스라엘에는 많은 장님들이 있었지만 예수는 모두가 아니고 단 한 사람의 눈만 뜨게 했다,왜일까? 그가 그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의 눈이 보이게 된 뒤 장님은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는 내적 외적으로 장님이 된 이들을 돕기 위해 지구에 왔고 동시에 신의 의지를 실현하려고 온 것이다 신의 의지를 실현할 준비가 안 된 이들은 듣고 보지만 아무 것도 보고 듣지 못 할 것이다

이제 여러분의 영적 삶에 눈을 뜨는 것에 대해 알리고 여러분에게도 눈의 장애가 있는 게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언제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인가? 깊은 영혼 속에서 신에게 봉사하고 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다시 눈을 뜨고자 하는 갈망이 있을 때가 그때이다 장님으로 태어나 예수가 눈을 뜨게 해준 이는 신의 의지 실현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망 때문에 그는 와서 자신을 도울 이를 기다렸던 것이다 힌두의 철학에 의하면 이 사람이 그의 업장을 갚아서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정 질문에 대한 각각의 이해는 모든 나머지 질문들이 주변에 늘어서는 원형을 나타낸다 사람 주변에도 동심원들이 만들어지며 자연에도 그런 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의 어디서 그런 동심원을 볼 것인가? 나무를 잘라 그 단면을 보면 여러 개의 동심원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동심원으로부터 우리는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왜 그곳에 사각형이나 다른 기하 도형이 아닌 동심원이 생긴 걸까? 왜냐하면 곡선으로 원주가 되는 것이 직선보다 저항을 덜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랄 때 식물이 가장 저항을 덜 받는 부분을 찾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이 자연의 한 방법이다 에너지를 쓸데 없이 낭비하지 않기 위해 자연은 늘 저항이 가장 약한 곳을 찾는다

또한 그렇기에 가장 저항이 약한 곳을 찾으면서 인간은 자연의 도덕률 중 하나에 순종한다 현대인들도 또한 도덕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이웃들의 행위를 비판하거나 승인하지만 자신들의 행위를 살펴본다면 그들은 자신의 행위들 대부분이 도덕률에 맞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도덕은 인간의 말에도 존재한다 조심하지 않을 땐 말이 거칠고 불쾌하며 표현력이 떨어지게 된다 도덕률에 맞게 말하는 자만이 필요한 부드러움을 표현하게 된다 부드럽게 말하는 그러한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 있다 성격에 부드러움이 부족하다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똑같이 들릴 것이다 이런 이가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하거나 미워한다 해도 다 똑같이 들릴 것이다 누군가에게 행운을 바란다고 하거나 경멸한다고 말해도 둘 다 똑같이 들릴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에 표현과 억양을 주기 위해서는 부드러움이 필요하고 그러면 말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한 것이 선지자엘리야가 세상에 신은 오직 한 분이며 모든 이들의 기도를 듣고 답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했던 기도에 보여졌던 것이다 그의 기도의 모든 단어는 부드러움과 힘, 바른 억양이 들었다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 그것이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왔다고 말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의 기도는 영혼의 저변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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