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배로 항해할 때 달은 여전히 졸음에 겨워하고 강은 작은 여관 달은 자유로운 여행자 그대가 배로 항해할 때 달은 여전히 어렸네 어느 날, 달이 나이들 것을 강은 알지 못했네 그대가 배로 항해할 때 달은 이제 나이가 들었네 영원히 은혜 입은 달을 강은 기억하지 못하네 그대 배로 항해할 때 강의 이야기를 들었네 『오, 무심한 달이여 어디를 가든 곧 돌아와요』 『오, 무심한 달이여 어디를 가든 곧 돌아와요』

인간은 태어나 사라집니다

시간이 가도 강은 흐르지만 천천히 흐르는 물은 이울며 희미해지는 달의 선명한 그림자를 비춥니다 삶은 여관과 같지요

모든 것이 꿈입니다 삶은 모험처럼 나아갑니다 먼지가 먼지로 돌아가듯이

모래에 남은 발자국은 시간의 변천 속에 서서히 희미해져 갑니다 잊어버린 하늘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그렇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대가 배로 항해할 때 삶은 즐거운 축제 나는 여관에서 그대의 방문을 기다리리 이 곳을 지날 때 왜 그렇게 서둘렀나요? 그대 우아한 발자국을 따르는 조약돌이 되고 삶에 매혹되어 우리 근원을 모르네 오후에 나무의 긴 그림자 물러가니 내 그림자도 물러갔네 삶에 매혹되어 우리 근원을 모르고 하늘아래 증발되는 빗방울에 자신을 응결하네

『오, 무심한 달이여 어디를 가든 곧 돌아와요』 그대 우아한 발자국을 따르는 조약돌이 되어 하늘아래 증발되는 빗방울에 자신을 응결하네 『오, 무심한 달이여 어디를 가든 곧 돌아와요』 그대 우아한 발자국을 따르는 조약돌이 되어 하늘아래 증발되는 빗방울에 자신을 응결하네 『오, 무심한 달이여 어디를 가든 곧 돌아와요』 그대 우아한 발자국을 따르는 조약돌이 되리

존경하는 여러분 예술과 영성의 음악과 시의 4부작에서 어울락(베트남) 예술가로서 사랑하는 고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유명하면서 또한 국제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40년 이상 활동하며 1972년 『잘 자라, 아기야』로 일본 골드디스크상과 2004년 세계평화음악상을 등 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상의 목적은 당시에 평화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찬사를 표하는 것이었지요 이 상은 또한 2004년 저명한 미국 예술가 밥 딜런 해리 벨러폰테, 조안 바에즈 피터, 폴 앤 메리 그룹 등도 수상했습니다 평화와 사랑의 예술가로서 이런 소중한 명예를 얻은 어울락 예술가는 바로 뜨린 꽁 손입니다 작곡가 뜨린 꽁 손의 글이죠

『매일 밤 나는 하늘과 땅을 보며 관대함을 배운다 개미의 흔적을 보며 끈질긴 겸손에 대해 쓴다 생명의 여정을 통해 강은 흘러간다 시냇물은 시냇물의 생명을 따라 흘러간다 인간의 삶도 그렇게 살며 모든 부러움을 버린다』

심오한 고요의 순간에 얻은 깊은 이해로서 칭하이 무상사는 이런 세속에 사는 비범한 예술가의 천상의 음악에서 평온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작곡가 뜨린 꽁 손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 땅을 여행하는 민요시인으로 세상의 환상적은 꿈에 대한 나의 직관을 노래합니다』 선의 정신이 가득한 그런 말들은 고상한 영혼에서 나오며 아마 그의 음악은 무한한 우주의 놀라운 왕국에서 왔을 것입니다

이 재능 있는 예술가가 다정하게 세상에 선사한 소중한 정신의 선물에 진솔한 감사를 표하는 특집방송을 제안해 주신 칭하이 무상사께 정중하게 감사드립니다

뜨린 꽁 손의 가족은 훼 출신이지만 그는 1939년 다락성 락 양에서 태어났죠 중부 도시 훼에서 부유한 가족의 3형제와 5자매인 8남매의 맏이였습니다 중학교까지 리세 프랑소아즈 프랑스 학교를 다닌 후 사이공의 장자끄 루소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쿠인 농 사범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몇 년간 람동 성에서 교직에 있었습니다 뜨린 꽁 손은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열 살에 이미 발성을 알고 만돌린과 플루트를 연주했고 12살엔 기타로 바꾸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지만 1958년 『촉촉한 속눈썹』 전까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베란다에 비가 내리네 누군가의 외로운 마음
오, 그대 속눈썹의 눈물 비 오는 밤에 울지 말아요 서정시에 슬퍼하지 말아요

오, 밤새 오는 슬픔이여 나를 감싸지 않겠니?
가을비를 좋아하고 인간의 상황에 자주 울던 내 사랑
오 소중한 이여, 돌아오니 사랑의 온기 마음을 매혹해

한밤에 내리는 찬비 우울하고 쓸쓸한 소리
늦은 밤에 머뭇거리는 비 차고 촉촉한 속눈썹
누가 강가에서 마음을 더 차갑게 하는 비를 볼까요?
누가 겨울의 끝에 떨어지는 잎새를 슬퍼할까요?

베란다에 비가 내리네 입술에 떠오르는 슬픔
눈물로 촉촉한 속눈썹에 빛나는 슬픔
늦은 밤 배회하는 슬픔 밤비와 함께 내리는 슬픔
오늘 밤, 비가 내리는데 그대 마음은 실망하네!
이제부터 연인의 눈이 더 흐려지지 않도록
왜 비는 멈추지 않을까? 순진한 속눈썹의 슬픈 눈물

베란다에 비가 내리네 누군가의 외로운 마음
오, 그대 속눈썹의 눈물 비 오는 밤에 울지 말아요 서정시에 슬퍼하지 말아요

오, 밤새 오는 슬픔이여 나를 감싸지 않겠니?
가을비를 좋아하고 인간의 상황에 자주 울던 내 사랑
오 소중한 이여, 돌아오니 사랑의 온기 마음을 매혹해

한밤에 내리는 찬비 우울하고 쓸쓸한 소리
늦은 밤에 머뭇거리는 비 차고 촉촉한 속눈썹
누가 강가에서 마음을 더 차갑게 하는 비를 볼까요?
누가 겨울의 끝에 떨어지는 잎새를 슬퍼할까요?

베란다에 비가 내리네 입술에 떠오르는 슬픔
눈물로 촉촉한 속눈썹에 빛나는 슬픔
늦은 밤 배회하는 슬픔 밤비와 함께 내리는 슬픔
오늘 밤, 비가 내리는데 그대 마음은 실망하네!
이제부터 연인의 눈이 더 흐려지지 않도록
왜 비는 멈추지 않을까? 순진한 속눈썹의 슬픈 눈물

1959년 안푸 출판사가 『촉촉한 속눈썹』을 발표한 후에 반칸 찻집에서 가수 탄 투이의 노래로 데뷔하며 뜨린 꽁 손의 이름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뜨린 꽁 손은 작곡가가 되기 전에 시인이었던 것을 언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촉촉한 속눈썹』의 성공 후에 친구들의 격려로 『가을이 떠나는 걸 보며』 등 12편의 자신의 시로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1963년 더 많은 사랑노래를 작곡했으며 『지난 날의 디엠』『사랑의 추억』 『하얀 여름』 등은 후에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유명해진 첫 노래는 가수 박 옌이 디스크에 녹음한 『슬픈 신성한 말』로 라디오에서 널리 방송되었습니다

작곡가 팜 듀이의 회고에서 『슬픔 신성한 말』은 1965년 뜨린 꽁 손이 반 커피숍에서 공연한 데뷔노래의 하나입니다 커피숍은 문과대학 캠퍼스에 있었으며 커피와 찻집 운동 초기에 카이호아 학생 그룹이 시작했습니다

『슬픈 신성한 말』은 뜨린 꽁 손이 작곡한 다른 노래들인 『촉촉한 속눈썹』 『지난 날의 디엠』 『하얀 여름』 『가을이 떠나는 걸 보네』 등과 함께 순수한 사랑노래로 여겨집니다 뜨린 꽁 손의 사랑노래의 빼어난 특징은 아주 슬프다는 것입니다 『슬픈 신성한 말』은 외국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들으면 바로 레죄 세레스의 『그루미 선데이』를 떠올릴 것입니다

우울한 일요일 저녁 침울한 다락에서 앉았네
저녁의 희미한 노래 소리 비가 끝없이 내리네 아, 나는 여전히 외로워라

우울한 일요일 저녁 침울한 다락에서 앉아 저녁의 희미한 노래 소리에 귀 기울이네
친구들은 담요와 자리에서 멀리 있는데 얼마나 더 오래 외로울까?

우울한 일요일 저녁 침울한 다락에서 앉았네
그대의 천사 같은 손가락 속죄의 왕국에서
부조화를 넘어서게 하네 그대 손가락이 외롭게 하네

우울한 일요일 저녁 침울한 다락에서 앉았네
저녁의 희미한 노래 소리 비가 끝없이 내리네 아, 나는 여전히 외로워라

우울한 일요일 저녁 침울한 다락에서 앉았네
저녁의 희미한 노래 소리에 귀 기울이네
친구들은 담요와 자리에서 멀리 있는데 얼마나 더 오래 외로울까?

우울한 일요일 저녁 침울한 다락에서 앉았네
그대의 천사 같은 손가락 속죄의 왕국에서
부조화를 넘어서게 하네 그대 손가락이 외롭게 하네

우울한 일요일 저녁 바람이 오고 가는 소리에 고요히 귀 기울이네
우울한 일요일 저녁 바람이 오고 가는 소리에 고요히 귀 기울이네
우울한 일요일 저녁 바람이 오고 가는 소리에 고요히 귀 기울이네

뜨린 꽁 손의 음악에서 칸 리의 목소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술에도 인연이 있다면 뜨린 꽁 손과 칸 리의 인연도 숙명이었습니다 뜨린 꽁 손은 다랏의 찻집에서 우연히 칸 리를 만났습니다 그때 이후로 미국에는 유명한 포크가수 부부 밥 딜런과 조안 베에즈가 있듯이 어울락에는 뜨린 꽁 손과 칸 리가 있지요

당시에 젊은 칸 리는『길고 신화적인 긴 머리칼』에 맨발로 노래했습니다 아주 고음까지 올라가고 낮은 저음까지 내려가는 재능 있는 목소리를 가졌고 호흡은 길고 강했습니다 그녀는 노래솜씨와 기법에 정통했지요

후에 칸 리는 변함없이 말했습니다 『뜨린 꽁 손이 없었다면 나도 유명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동시에 뜨린 꽁 손도 칸 리의 노래목소리가 없다면 자신의 노래가 사랑 받거나 인기가 없을 걸 알았습니다

음악의 관점에서 뜨린 꽁 손의 노래에서 일반 청중들도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뜨린 꽁 손의 음악기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작곡가가 독학을 했기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의 음악에는 고유의 특징이 꼭 있습니다 뜨린 꽁 손은 작곡가이기 전에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가사는 음악보다 더 강한 영향을 줍니다 뜨린 꽁 손의 음악은 단조롭지만 신이 주신 재능 속에 보이는 희귀한 단조로움입니다 다른 말로 뜨린 꽁 손은 천재로 여겨집니다

그대 이름을 그리워하며 저녁에 홀로 도심을 걷네
때로는 해와 비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꽃은 이미 보랏빛이 되었네
그대 이름을 그리워하며 저녁에 홀로 도심을 걷네
때로 발꿈치가 부드럽고 애수가 손짓하니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리

저녁이 지나는데 여러 번 지은 미소 때문에 아직 서로를 그리워할까?
저녁이 지나는데, 몇 번이나 우리 손이 헤어졌을까?
슬픈 우리입술을 방문한 비애에 귀 기울이네

우리가 함께 머물 때 날은 오래 지속되고 삶에서 우리가 작별할 때 고통을 느끼리

그대 이름을 그리워하며 저녁에 홀로 도심을 걷네
오 바람아, 거리의 먼지가 내 눈에 눈물을 주게 하렴
그대 이름을 그리워하며 저녁에 홀로 도심을 걷네
옛 셔츠는 삶의 바람과 먼지에 익숙하지 않으니 황금빛 가을을 어찌 기다릴까

저녁이 지나는데 여러 번 지은 미소 때문에 아직 서로를 그리워할까?
저녁이 지나는데, 몇 번이나 우리 손이 헤어졌을까?
슬픈 우리입술을 방문한 비애에 귀 기울이네
우리가 함께 머물 때 날은 오래 지속되고
삶에서 우리가 작별할 때 고통을 느끼리

저녁에 홀로 도심을 걸으며 주변의 물결에 고요히 귀 기울이네
익숙한 발자국을 슬프게 듣고 우리 청춘이 남기를 기도하네
거리에서 홀로 그대 이름을 그리워하네
거기에 상쾌한 햇살 없는데 거기에서 누가 나의 이름을 아직 알까?
거기에 상쾌한 햇살 없는데 거기에서 누가 나의 이름을 아직 알까?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슬픔과 조국을 위한 고뇌를 담은 사랑노래를 계속하겠습니다 노래 『천상의 발자국』은 뜨린 꽁 손이 유명해진 후에 작곡한 첫 사랑노래의 하나입니다

하늘이 바람을 보내고 산길에 구름이 왔네
푸른 잎새의 계절 저녁 덩굴에 벌레가 잠드네
이 생의 한밤중에 비탄처럼 노래 소리가 울리네
바람은 구름 속에 길을 잃고 바다에는 끝 없이 물결이 올라가네

말은 발굽을 벗고 인간의 발, 여러 번 망설이네
한밤중에 머뭇거리는 밤 난초의 노래
어둠 속에서 벌레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네
장밋빛 밤에 삶을 여니 밖에서는 그대 눈의 눈물처럼 물이 솟아오르네

메마른 땅에서 시작된 노래 바람과 비에서 고대의 바위까지 이제 눈은 멀고 검은 머리칼

강에서 조용히 자는 수초 다른 날처럼 폭풍이 불고 아픈 가사가 높이 떠도네

이 저녁에 수천의 잿빛구름 떠돌고 노래가 달콤한 선잠으로 우리를 달래네
그때 이후로 한밤의 벌레는 슬픔을 잊고 장밋빛 밤에 인간이 다시 노래하게 하네
하늘은 여전히 잊혀진 발자국을 남겼네

이 저녁에 수천의 잿빛구름 떠돌고 노래가 달콤한 선잠으로 우리를 달래네
그때 이후로 한밤의 벌레는 슬픔을 잊고 장밋빛 밤에 인간이 다시 노래하게 하네
하늘은 여전히 잊혀진 발자국을 남겼네

장밋빛 밤에 인간이 다시 노래하게 하네
하늘은 여전히 잊혀진 발자국을 남겼네
장밋빛 밤에 인간이 다시 노래하게 하네
하늘은 여전히 잊혀진 발자국을 남겼네

초기 노래와 비교하면 뜨린 꽁손의 후기 사랑노래 내용은 더욱 절망을 담지요 1965년 어울락에 전쟁이 한창일 때 뜨린 꽁손의 절친한 친구는 그에게 정치적 관점이 부족한 것을 보았지요 1963년으로 돌아가도 그의 노래는 오직 사랑과 인간의 운명만 말합니다

오래 잊었다고 생각한 사랑에 내 가슴은 무심 하려 하네
내가 생각한 아득한 사랑이 갑자기 거대하게 돌아왔네
오, 바람에 날리던 옛 옷자락 저녁 하늘을 감동시켰네
잇따른 높은 물결처럼 외로운 날을 없애 주었네

시들었다고 생각한 사랑 어쨌던 아직 마음에 가득해
멀리 떠났다고 생각한 사랑 그러나 아직 주위에 있네
부드러운 발자국이 인생으로 들어왔었네
바다로 떨어지는 각각의 조약돌처럼

고통이 길어지지 않을 때 사랑은 햇살의 일별 같고
고통이 넘칠 때 사랑은 이미 거대하네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네 다른 이는 심연에서 나오네

산길 끝의 새 그림자처럼 사랑은 빨리 가라앉네

사라졌다고 생각한 사랑에 여전히 매혹되고 생생하네
오래 전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자주 생각하네

망설이는 손가락이 애정과 친밀함을 노래하네
삶에서 동요를 끝내려고 바다에서 부는 바람처럼

지난 일로 생각한 사람이 뜻밖에도 돌아왔네
파도에 쓸려갔다고 생각한 사랑이 아직 무한히 남았네

오, 슬픈 내 마음이 한 시간 동안 소생하다가
메마른 땅의 먼 강둑처럼 비 속으로 가라앉네

고통이 길어지지 않을 때 사랑은 햇살의 일별 같고
고통이 넘칠 때 사랑은 이미 거대하네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네 다른 이는 심연에서 나오네

산길 끝의 새 그림자처럼 사랑은 빨리 가라앉네

사라졌다고 생각한 사랑에 여전히 매혹되고 생생하네
오래 전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자주 생각하네

망설이는 손가락이 애정과 친밀함을 노래하네
삶에서 동요를 끝내려고 바다에서 부는 바람처럼

지난 일로 생각한 사람이 뜻밖에도 돌아왔네
파도에 쓸려갔다고 생각한 사랑이 아직 무한히 남았네

오, 슬픈 내 마음이 한 시간 동안 소생했다가
메마른 땅의 먼 강둑처럼 비 속으로 가라앉네

오, 마음에 남겨진 슬픔이 한 시간 동안 소생했다가
메마른 땅의 먼 강둑처럼 비 속으로 가라앉네

『그리운 사랑』은 『아득한 사랑』과 『슬픈 사랑』의 삼부작으로 유명한 작곡가들이 모든 에너지를 모아 함께 했지요 세 개의 다른 부분이 포함된 작품은 각각 없어서는 안됩니다 1965년 뜨린 꽁 손은 대학생들이 주관한 공연에 참가하기 시작하며 문과대학 캠퍼스에서 시작해 넓게 활동했습니다

1966년과 1967년 평화를 위한 일련의 노래 『황금빛 피부의 소녀』 『교회의 밤 자장가』 『미친 이의 사랑의 발라드』 등을 작곡하기 시작했지요 당시의 음악애호가들은 사랑 노래를 통해 뜨린 꽁 손를 접한 후에 평화 노래를 즐기거나 혹은 거꾸로였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노래에 귀 기울이다가 그리고 낭만적 선율을 찬탄했지요 뜨린 꽁 손의 노래에서 그런 두 분야가 결합될 때 젊은 지성인들을 크게 매혹시켰습니다 유행처럼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었지요

어떤 티끌 하나가 나로 변했을까?
어느 날 올라가 꽃 피도록 오, 경이로운 모래와 티끌
즐겁게 방랑하는 삶에 햇살이 빛나네

어떤 티끌 하나가 나로 변했을까?
언제가 티끌로 되돌아 가도록 오 지친 모래와 티끌!
끝없는 리듬의 박자 속에 어떤 소리가 계속될까?

인간의 삶을 오래 산 후에 어느 날 저녁 문득 머리는 백발이 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엽 백 년이 하루 만에 죽음으로 들어가네

어떤 태양이 내 마음을 밝게 비출까?
사랑이 조약돌로 줄어들며 내 얼굴은 슬픔이 가득해
나날이 지나가며 새로운 기쁨을 기다리네

어느 숲에 나뭇잎이 없을까? 심연에서 부름을 듣네
오, 모래와 티끌의 운명! 나도 모르게 잉크를 지우네

어떤 티끌 하나가 나로 변했을까?
어느 날 올라가 꽃 피도록 오, 경이로운 모래와 티끌
즐겁게 방랑하는 삶에 햇살이 빛나네

어떤 티끌 하나가 나로 변했을까?
언제가 티끌로 되돌아 가도록 오 지친 모래와 티끌!
끝없는 리듬의 박자 속에 어떤 소리가 계속될까?

인간의 삶을 오래 산 후에 어느 날 저녁 문득 머리는 백발이 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엽 백 년이 하루 만에 죽음으로 들어가네

어떤 태양이 내 마음을 밝게 비출까?
사랑이 조약돌로 줄어들며 내 얼굴엔 슬픔이 가득해
나날이 지나가며 새로운 기쁨을 기다리네

어느 숲에 나뭇잎이 없을까? 심연에서 부름을 듣네
오, 모래와 티끌의 운명! 나도 모르게 잉크를 지우네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에 뜨린 꽁 손은 『불후의 노래집』을 출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뜨린 꽁 손을 역사의 관찰자로 자신의 마음의 소리로 작곡을 했다고 봅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작곡가 뜨린 꽁 손이 천상의 음악을 노래하고 연주한 하늘의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인류에게 고귀한 기쁨을 주기 위해 땅에 내려왔지요 그러므로 그의 노래들은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칭하이 무상사 자신도 뜨린 꽁 손의 음악에 아주 감사합니다 그는 사랑을 찬양하고 인류에게 전쟁을 하지 말고 서로 친절하도록 호소하는 노래를 지었으며 깨달은 음악을 지었다고 하셨지요

그러므로 뜨린 꽁 손의 음악을 즐기는 동안 스승님은 천상의 왕국에서 보낸 따뜻한 메시지를 듣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 뜨린 꽁 손이 병원에 입원한 동안 가수 안 뚜옛과 우리 협회 회원들인 칭하이 무상사를 대신하여 모든 진실하고 위로하는 말과 기도로 그를 방문했습니다

그에게 또한 필요한 선물을 주었기에 그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천재 작곡가 뜨린 꽁 손이 무상한 세상에 작별을 고할 때 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 대표들이 추도모임에 정중하게 참여하여 그의 마지막 안식처를 보았습니다

오늘 『작곡가 뜨린 꽁 손 -지상의 왕국에 천상의 음악을 가져오다』특집 4부작의 2부에서 작곡가 뜨린 꽁 손의 노래 『우리의 근원은 어디인가?』 를 가수 칸 리의 목소리에 맞춰 어울락 북부의 뜨레 비엣 무용단의 춤으로 감상하셨습니다

이어선 작곡가 뜨린 꽁 손의 노래 『촉촉한 손눈썹』 『슬픈 신성한 말』 『저녁에 홀로 도심을 걷네』 『천상의 발자국』 『그리운 사랑』과 『모래와 티끌』을 가수 탄 투이, 박 옌 뚜안 응옥, 레 투 홍 눙, 쾅 덩, 칸 리의 공연으로 감상했습니다 해설은 SBS 라디오에서 호이남이 진행한 『어울락 현대 음악의 사랑노래 70년』에서 발췌했습니다

탄 투이는 중부어울락 투아 티엔에서 태어났지요 작가 뚜안 후이는 그녀노래를 『갚은 밤을 달래는 애수의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1962년 『여류 예술가』 영예를 받았고 뜨랑덴 신문에서 3년 연속으로 독자들이 뽑은 가장 인기 있는 가수였습니다 탄 투이는 『도시의 한밤』 『지난 날의 밤 기차』 『야간 비행』 등 많은 노래들로 청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박 옌은 최고의 어울락(베트남) 가수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어울락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히브루어로 쉽게 노래합니다 박 옌은 에드 셜리반 쇼에 출연하여 위대한 스타 밥 호프, 빙 크로스비, 마이크 더글라스, 팻 분, 리브라체와 함께 공연했습니다 미국의 여러 곳과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캐나다, 멕시코, 큐라소 등에서 순회공연을 가졌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1997년 미국 워싱턴에서 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가 주관한 자선콘서트에서 가수 박옌에게 직접 기념선물을 주셨습니다

다음은 가수 바흐 옌과 그녀의 남편 음악가 트란 광 하이께서 칭하이 무상사께 1998년 3월 31일 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가 1997년12월 미국 워싱턴에서 주최한 “심미 세계로의 여행” 자선 공연에 대해 보낸 편지 일부입니다

칭하이 무상사께 이렇게 예술을 향상하시고 예술가들의 우아하고 고귀한 기량을 펼칠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뚜안 응옥은 유명한 공연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났지요 4살 때 뚜안 응옥은 라디오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그 후 빛나는 가수로 계속 활동했습니다 따뜻하고 섬세하며 세련된 뚜안 응옥의 목소리는 특히 낭만적인 발라드에서 많은 청중의 사랑을 받았지요 그가 말했지요 『예술가가 느낌을 표현하려면 내면에 낭만적 품성이 필요합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그에게 선물을 보내시며 즐겁게 행운을 기원하셨습니다

이번이 수프림 마스터 TV를 위해 처음 공연한 겁니다 오늘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공연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오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아주 행복했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님은 완전채식주의와 덕있는 삶이란 가치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장려하시면서 선행하십니다 세계 사람들이 이 방향을 따라간다면 아주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란은 가수 타이 탄과 배우 레 쿠인의 딸입니다 달콤한 목소리와 세련된 공연으로 청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4년부터 『누군가를 사랑하며』『지나는 가을을 보네』『내가 돌아오면』 등 많은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자주 콘서트와 음악활동의 공연에 초대받습니다

1996년 12월 미국 남부캘리포니아에서 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가 주관한 자선콘서트 『지난 날의 발자취와 사랑노래』에서 칭하이 무상사는 가수 이란에게 다정하게 기념품을 선물했습니다

가수 레 투는 1960 년대 가장 유명한 어울락(베트남) 가수 중에 한 명입니다 60 년대 중반에 『우수의 손길』『사랑노래 1』 『가을의 눈물』 『당신의 이름을 여전히 부르네』 『과거의 향기』같은 노래를 부른 레 투는 청중의 사랑을 받는 인기 있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는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어울락 예술가들을 위해 열린 자선콘서트에서 가수 레 투에게 다정하게 직접 선물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칭하이 무상사에 대한 칭찬과 감탄만 듣는다면 움츠러들 겁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스승님이 아주 친절하고 호의적인 것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스승님이 영적 사명을 계속하시고 횃불을 들어 당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의 길을 밝혀주시길 정중히 부탁합니다

칸리는 60 년대에 빛나는 가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섬세한 목소리는 모든 숭배자의 가슴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일본 텔레비전 방송국 NHK는 칸 리를 1990 년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 12명 중 한 명으로 뽑았습니다

감사와 찬탄을 표시하며 칭하이 무상사는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어울락 작가와 예술가들을 위한 『지난 날의 발자취와 사랑노래들』자선콘서트에 참여한 가수 칸리에게 직접 기념선물을 주었습니다

가수 홍 눙은 어울락(베트남) 하노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0살에 가수를 시작했습니다 15살에 홍 눙은 전문 공연에서 전국 금상을 탔습니다 1990년에 전국 전문가 솔로 가수 부문에서 우승했습니다 홍눙은 독일, 일본, 러시아, 이라크, 폴란드, 한국, 중국 싱가포르 등이 포함된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공연 초대를 받았습니다

가수 쾅 덩은 1976년 중부 빈딘성에서 태어났죠 그는 1998년 훼에서 중부 어울락 최고 성악가 금메달과 『VTV-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서 인기가수대상을 9회와 11회 연속으로 『블루 웨이브』상 노란 살구꽃 상 등의 수많은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쾅 덩은 많은 앨범인 『영원히 머무는 바다』 『그대와 함께 하는 삶』 『수천 년간 자장가를 부르다』와 『노란 꽃이 거기 있나요?』 『별이 가득한 도시의 밤』 등을 발매했습니다

호아이 남은 호주SBS 라디오 진행자로 청취자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작곡가들과 아주 예술적인 노래들을 담은 『어울락 현대음악의 사랑노래 70 년』이란 시리즈를 편집해 성공적으로 출판했습니다

오늘 예술과 영성의 음악과 시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프림 마스터 TV에서 유명한 채식인을 계속 시청해 주세요 신의 은총 속에 만물이 사랑과 평화를 누리길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창백한 원이 달이 된 이래 내 마음에 불을 붙였네
창백한 원이 달이 된 이래 그대가 놀란 가슴을 가져갔네

2011년 1월 15일 토요일, 작곡가 뜨린 꽁 손을 기리며 그의 사랑노래들과 저명한 어울락 예술가들의 해설을 보내드리는 4부작의 3부를 시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