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깨달은 시청자 여러분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 과학과 영성입니다 오늘 우리는 카발라에 기초한 세계 창조에 대한 이야기의 발걸음을 계속 따라갑니다

카발라는『받다』는 뜻의 헤브라이어입니다 카발라는 신과 접촉하는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방법입니다 카발라는 종교가 아니라 영적인 경험에 기반합니다 신의 수준은 『조하르 책』같은 카발라 책을 개인적으로 연구하면서 성취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의 길과 고등세계의 영적인 현실감을 지각하면서 카발라인들은 주변 영적 공간의 감각을 개발할 수 있고 이것은 그들에게 물질세계를 다룰 수 있는 지혜를 줍니다

카발라는 우리 세계의 우리자신을 포함한 뭔가를 진정으로 바꾸길 원하면 먼저 영적인 수준을 올라가 거기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유대교도 기독교인 회교도에게 성경에 나오는 『국가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브라함이 4천 년 전에 발견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카발라의 핵심입니다

잠시 지난주 프로그램에서 논했던 창조의 과정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근원 그리고 욕구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다른 독립적 존재의 개발을 뜻하는 창조의 네 가지 단계를 논했습니다

이 창조의 패턴은 세계 진화의 모든 수준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설계의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창조의 모든 연속적 단계는 이전 단계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성인이 된 사람이 때론 아이처럼 행동하는 경우처럼요 창조의 뿌리는 빛을 발산하고 빛이자 사랑이자 베풀어주는 창조주의 욕구입니다 이것은 단계 제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빛은 크리 혹은 덜 발달한 피조물 그릇을 만듭니다 크리는 대항하는 자연입니다 기쁨을 받으려는 욕구며 그것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첫번째 단계 호크마입니다 한번 충만해지면 피조물은 빛 뒤에 있는 증여자를 감지하고 두번째 단계 비나에서 창조주에게 빛을 되돌려주는 것으로 자연스레 반응합니다

허나 창조주의 기쁨은 주는 데서 옵니다 그러므로 신을 기쁘게 하려면 그릇은 두 욕구를 결합하여 동시에 빛을 받고 주는 자신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삼 단계 제르 안핀입니다 뒤섞인 행동으로 창조물은 창조주의 생각을 어느 정도 느끼게 되며 네 번째 단계 말쿠트에서 스스로 느끼는 창조물이 되지만 아직 이 단계에선 확실히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말쿠트는 두 가지 형태로 자신의 기쁨을 의식합니다 하나는 빛을 받으면서 두 번째는 창조주의 지위를 나누는 겁니다 말쿠트는 모든 욕구가 충족되고 창조주에게서 영적으로 매우 가까운 무한(아인 소프)의 세계의 행복 속에서 느낍니다 말쿠트는 이제 자신의 근원적 영적 수준 이상입니다 하지만 곧 피조물은 그녀가 창조주 빛을 받기만 함을 알게 되고 오직 기쁨만 받음에 부끄러워지며 신과 같은 수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참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말쿠트는 먼저 침첨이나 제한으로 불리는 행동으로 빛을 받는 걸 완전히 멈추기로 결정합니다 그녀는 빛의 수령을 조정하는『칸막이』 마사크를 습득하게 됩니다 사건의 변화는 창조주와 닮기 위해 창조물이 자신의 욕구를 고치려는 것이므로 칭찬받아야 합니다 피조물의 천성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고 따라서 그릇이 한번 차면 더 이상의 기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공복의 느낌을 충족했을 때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향한 식욕이 더 이상 없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우리 자신을 위해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즉시 기쁨을 주기 때문에 기쁨이 느껴진다면 기쁨과 욕구는 우리가 얼마나 받느냐에 좌우되기 때문에 무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존재에게 더 줄수록 더 많은 기쁨을 얻게 됩니다

마사크 역할은 그릇에 얼마나 많은 내면의 빛을 받는지 계산하는 겁니다 주위의 빛이라 불리는 잔존하는 빛은 거절당해 창조물을 위한 주변환경을 형성합니다 칸막이는 기본적으로 창조물의 이기적이고 애타적인 욕구 사이의 비율을 조절합니다 칸막이 행동의 결과로 마쿠트 그릇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흰 지대인 윗부분은 빛을 받는『세계들』을 구성하기에 다른 이들에게 실행 가능한 욕구라는 기쁨을 줍니다 빛이 통과하지 못하는 낮은 부분 회색 지대는 실행 가능한 욕구라는 기쁨을 주지 못하는 욕구로만 만들어진 창조물을 구성합니다 실행 가능한 욕구는 이제 낯익은 영에서 네 단계 구조 특징을 이루며 맨 위의『아담 카드몬』(근원단계) 세계에서 시작해 『아트질루트』 『베리아』『옛지라』 맨 아래의『아시야』가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그릇 바닥은 실행 불가능한 욕구로 구성되며 다섯 단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정상『정지』 (무변화)에서 시작해 맨 아래 수준에는『생장』 『생동』『말하기』 그리고 맨 밑바닥에 『영적인』수준이 이어집니다 영적인 욕구가 그릇의 맨 밑바닥에 있다는데 놀랐을 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은 잠시 후에 카발라의 시점에서 물질세계의 성질에 대해 토론하며 설명하겠습니다 계속 시청해주세요 과학과 영성입니다 오늘은 고대 철학 카발라의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창조됐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물질 세상에서 발생하는 만사의 실제 근본은 『공동 영혼』 『아담 하 리숀』 『아담』으로 불리며 『최초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담은 빛을 받지 않는 5가지 수준의 욕망으로 분리됩니다 정지 생장 생동 말하기 영성입니다 아담은 아담 앗찔루와 빛을 받는 다른 것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제 아담의 주변 환경인 그 세계의 도움으로 아담은 그 세계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가르쳐준 방식대로 빛을 받도록 노력해 자신을 변화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빛을 받으려 할 때 이 받는 기쁨이 너무도 엄청나서 자신의 이기적 욕망 때문에 스크린(마사크)이 즉시 빛의 수용을 막습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침첨 제한은 말쿠트에 의해 경험하는 첫 번째와는 매우 다릅니다 이는 지금 아담이 창조주의 기쁨을 고려치 않고 자신만을 위해 빛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는 죄로 간주되며 카발라 용어에선 아담이 창조주의 창조 목적에서 멀어졌단 뜻입니다

그래서 빛을 모으는 과정에서 이기적 의도는 확장되고 각 욕망은 자신에게만 이기적으로 빛을 받으려 합니다 그래서 공통 영혼은 60만 조각으로 나눠지고 각 조각은 다른 욕망을 대변합니다 그 결과 그릇도 부서지고 아담의 공통 영혼은 세상의 체계와 125개 상태를 통해 내려오며 아담이 존재의 물질적 수준으로 현시될 때까지 더 큰 자아의식에 싸입니다

이 거대한 하락의 결과로 카발라는 우리가 영적 세상을 떠나 잔재한 많은 이기적 욕망으로 흩어지고 각 아담의 영혼 조각은 다른 조각으로부터 분리와 단절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린 서로와 그리고 동식물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창조주의 빛은 우리 자신의 이기적 천성으로 우리로부터 감춰지고 우리의 이기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오감인 촉각 미각 시각 후각 청각에 의지합니다

아담의 공통 영혼의 흩어짐은 비록 물질적 세상의 관점으론 재앙처럼 보이지만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 단계입니다 인류 역사는 이미 사소한 욕망의 작은 조각조차 해결하기 어렵다는 걸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수많은 이기적 욕망을 고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알겠지요? 아담을 돕기 위해 빛과 창조주는 인류로부터 모습을 숨깁니다 숨음으로 해서 창조주는 아담에게 다른 창조물을 사랑하고 실상은 환상인 자유 의지를 경험할 기회를 줍니다 우리가 익숙한 물질 세상의 역사적 진화는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동일한5가지 수준으로 진화합니다 바닥에서 시작해서 사소한 욕망인 사소한 욕망인 정지 생장 단계 생동하는 단계가 따라오고 가장 윗부분에는 말하는 (인간) 피라미드 절대 끝에는 최고로 강한 욕망과 영성이 있습니다

우리 인류 발전도 0에서4단계까지 거칩니다 예비단계 0단계에서 인간은 동물의 욕망과 똑 같은 생존 안식처 재생산 가족의 기본적 물질적 욕망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첫 단계 후엔 부에 대한 욕망이 뒤따릅니다 2단계는 사회적 욕망인 권력과 명예의 욕망입니다 3단계는 더욱 많은 지식을 탐하는 것으로 진보된 과학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날 카발라주의자들은 우리가 수천 년이 걸리는 이 진보 단계의 마지막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변화 면에서 그리 많은 성과를 얻지 않았음을 깨닫는다고 믿습니다 우린 사실 여정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이 잃고 혼란스럽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이 단계에 있지만 그들의 숫자는 항상 증가합니다 결국 모든 인간 존재는 말쿠트 선망에 의해 야기된 부분인 영적 욕망에 이릅니다 즉 창조주를 닮고 그의 수준으로 다시 도달하고자 하는 모든 창조물에 내재된 욕구입니다 카발라는 창조주가 좋기 때문에 창조주가 우리에게 최상의 존재 상태를 주기 위해 우리를 창조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수준은 신의 상태입니다

카발라 신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영적인 세상에도 이미 살고 있습니다 영적인 욕망은 화현에서 분리된 수준이 아닙니다 이는 영혼이 창조주와 다시 직접 접촉하는 높은 세상의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려는 발전의 명확한 수준입니다 카발라에선 수정의 실제 행동이 높은 빛에 의해 취해집니다

창조주의 도움 없인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성을 원하는데 우리 내면을 도울 방법이 없다면 다시 말해 특별한 그릇이 없어 우리 자신에게 영적인 힘을 확장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세기 주요 카발라 신자 발 하 술함은 『탈무드 에세르 세피로트』에서 다음처럼 답했습니다

『카발라의 지혜와 만나는 이들에게는 훌륭하고 귀중한 치료약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배우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대단한 열망과 갈망을 통해 그들은 영혼을 감싼 빛에 깨어나게 됩니다』

사물이 위에서 밑으로 영적에서 물질적으로 진화한다는 걸 기억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 반대가 아닙니다 또한 높은 세상의 동의 없이 발생하는 일은 우리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영적 세상의 사건들이 이타적인 의도를 반영하는 반면 우리 세상의 것은 에고적인 욕망을 반영한단 것입니다 카발라의 관점으로 우리 세상의 창조를 같이 살펴본 영적인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주목할 뉴스 후 지혜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높은 빛으로부터 나날이 은총 받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