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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말씀
살아있는 경전의 인도하에 수행하라-1/3부 1988년 6월 19일, 포모사 이란


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살아있는 경전의 인도 하에 수행하라』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 (대만) 일란 1988년 6월 19일

이제 겨우 첫날이라 아직 서먹서먹하지만 둘째날에는 익숙해질 겁니다 그리고 셋째날에는 서로 좋아하기 시작할 터이고 그러면 더 잘 이해할 겁니다 관음법문에 관해서는 우리 모두 최고의 수행 법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수행하는 방법은 모릅니다 그건『법문』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그런 법문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전에는 법문에 관해 쓰여진 말이 없으며 그래서 육조 혜능이 『보이지 않는 법문』 이라고 불렀으며 그래서 아난다가 마하가섭에게 석가모니 부처가 가르쳐준 법문이 뭐냐고 묻는데도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겁니다

아난다에게 가서 장기나 두라고 했죠 그당시 아난다는 두번째 후계자가 됐지요 마하가섭은 석가모니 부처의 첫번째 후계자였어요 아난다는 그 질문을 하고는 두번째가 된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소위 선 수행자들은 여러가지 공안을 참구하고 그와 유사한 질문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왜 석가모니 부처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모두 질문을 한다 해도 아난다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운 법문은 아난다가 배운 것과 다릅니다 정통 법맥을 이어 받은 사람이나 영적 단체를 찾아서 그들로 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무형의 법문』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건『법문이 아닌』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무형의 법문』이라는 거죠 보이지 않아도 배우고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주 역설적이고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수행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도를 얻은 사람이 거의 없는 겁니다

안 그렇다면 세상을 보세요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고 정토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전을 외고 부처를 숭배하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갖 법문들을 수행하지만 여전히 생사의 틀 안에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갈수록 존재들도 늘고 사람들도 늘기만 합니다 모든 게 그『무형의 법문』의 맥을 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법맥이란 것은 지금 당장 맥박을 재고 어디가 아픈지 혹은 건강이 좋은지 알아볼 수 있는 혈맥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 법맥도 보이지 않는 법맥이거든요 모든 게 안 보인다는 것이 이상할 겁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얻을까요?『무형』이란 모든 것이 보이는 형상을 갖춘 이 물질계에 대한 상대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무형의 세상에서는 『보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지만 정말 안 보이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은 형상과 모양이 있지만 진짜 형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이런 말이 있죠 『색즉시공 공즉시색』 다시 말해 형상이 있든 형상이 없든 같다는 뜻입니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같은 겁니다 왜 같을까요?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가 이해하기 힘들어요 우리는 그 말만 믿을 뿐입니다 『색즉시공』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하질 못하는 겁니다

왜 색이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을까요? 왜 형상이 있는 것은 없는 것과 같을까요? 왜 보이는 것은 안 보이는 것과 같죠?

소위 보이지 않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색즉시공』의 진정한 의미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색즉시공』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왜 우리는 『색즉시공』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어떻게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몇몇 제자들과 동료 관음 수행자들은 오래 수행하지 않았어요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았죠 예를 들어 2달 정도 됐는데 『색즉시공』을 체험을 했습니다 『색즉시공』의 수준에 이르면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걸 보면서도 아무도 앉아있지 않는 걸 볼 겁니다 그런 체험을 한 사람이 있나요? 네 뭐가 보이나요?

빛의 바다가 무대 전체를 덮었어요 강연장 전체가 하늘만큼 높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빛이 하늘만큼 높아요 빛이 멀리 퍼져 사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빛이 더 커집니다 강연하는 사람은 없는데 빛만 비춥니다

그때는 수염을 움켜 잡거나 『아,그것이 색즉시공의 의미구나!』 할 겁니다 아마도 그때는 수염을 찾지 못할지도 몰라요 『색즉시공』 이니까요 하지만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수염을 잡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모두 깎았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하지만 『색즉시공』이 무슨 뜻인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한 말은 모두 진리입니다 그는 진리만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말과 가르침은 너무 깊고 너무 높고 너무 신비하고 너무 앞섰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불교도들 대부분이나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이후 깨달은 스승이 없는 사람들은 옛사람들의 체험을 읽기만 합니다

우리는 오직 그들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체험을 읽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은 『색즉시공』을 직접 체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색즉시공』이 무슨 뜻인가 『왜 보리달마는 중국으로 갔는가?』『공이란 뭔가?』와 같은 수많은 공안을 풀려고 하는 겁니다 이런 공안들이 무수히 많아요 그런 체험을 해보면 어떤 건지 알기 때문에 하나도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혼자서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미국에 오기 전에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렇죠? 추측도 많이 하고요 미국이 이렇거나 저럴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막상 미국에 와보니 더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었어요 직접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형상이 있는 것은 빈 공간과 다르지 않다』라는 것은 많은 체험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수행에는 많은 등급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도달할 수 있는 등급이 『색즉시공』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깨닫는 체험을 조금이라도 해보지 못했다면 물론 성서를 읽거나 경전을 외고 부처를 숭배하거나 보이지 않는 부처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그런 체험을 했다면 좀처럼 부탁할 일이 없을 겁니다 더 높이 수행할수록 덜 묻게 됩니다 참 이상하죠 왜냐하면 그런 체험을 하면 더이상 물을 필요가 없어요 체험이 없을 때 묻지요 만일 돈도 없고 굶주리면 음식을 찾거나 사람들에게 음식이 있는 곳을 물어볼 겁니다 배가 부르면 진기한 음식이 앞에 있어도 쳐다보기도 싫은데 먹는 건 말할 것도 없지요 배도 부르고 맛도 이미 다 알고 있지요

우리 동료 수행자들은 내가 방금 얘기한 『색즉시공』의 체험을 포함해 많은 체험을 합니다 그 사람들도 왔어요 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나무불상을 숭배하죠 그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나무불상을 믿고 그게 뭔가를 주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돈을 줘서 부자로 만들고 장수하게 하리라고 믿지요 부와 행운 장수를 준다고요 그들은 그렇게 믿고 10년 이상 그것을 숭배한 뒤에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들은 의심하게 돼요 스승이 여기에 없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여기 있어요 『스승은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어떻게 빛이 있죠?』 예를 들면 이래요 그건 그들이 스스로 못봐서 그래요 또한 자신의 수행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해요 부처에게 절하기란 쉽지요 언제든 하고 싶을 때 절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절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나와 함께 수행하려면 더 노력해야 합니다 뭔가를 바라며 나무불상에게 절하는 대신 매일 성실하게 명상해야 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 수행과 내면의 전능한 힘 타고난 내면의 불성에 의지합니다 그게 더 어렵지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우린 나무불상을 볼 수 있고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우리의 본성을 찾아야 해요 때로는 볼 수 있고 때론 볼 수 없지요 그러니 높은 등급의 수행자들을 제외하면 그건 더 어렵습니다

그들은 매일 엄청난 체험을 하고 매일 그들의 불성과 직접 접촉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심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죠 우린 그들을 『불퇴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퇴보하지 않아서 그들을 불퇴보살이라고 하죠 불퇴보살의 경지에 이른 동료 수행자들이 우리에겐 많이 있어요 그래서, 관음법문이 가장 빠른 법문이라고 난 확신합니다

부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다른 법문이 있다고 믿는다고 해도 여전히 관음법문이 가장 빠르고 안전한, 간단하고 쉬운 법문입니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누구나 관음법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동료 수행자들 중에는 80세도 있고 5, 6세도 있습니다 가장 어린 6살부터 가장 나이가 많은 80세 이상까지 모두 같은 체험을 합니다

같은 체험을 한다고 그 둘이 똑같은 건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들은 같은 등급에 있다면 물론 그들은 같은 체험을 할 겁니다 다른 등급은 다른 체험을 할테지만 모두 체험이 있지요 그래서 능엄경에서 석가모니 부처와 문수보살 관음보살 모두가 이 관음법문을 칭찬했습니다 이른바 불교신자인 우리가 능엄경을 읽으면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싶어지지만 그걸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능엄경에는 나와있지 않으니까요 거기엔 관음법문에 대한 칭찬만 있지요 그걸 적을 수 있었다면 석가모니 부처가 그렇게 했을 겁니다 후대가 배울 수 있도록 말이지요 하지만 이 법문은 볼 수 없고 적을 수도 없어요 그래서 사람을 뜻하는 『살아있는 경전』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내면에 수백만 달러가 있고 수천 개의 금조각이 있으니까요 그걸 못찾았다니 유감이에요 관음법문을 수행한 뒤에 우리는 점점 우리에게 모든 게 있고 부족함이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 때, 우리는『모두 마음이 창조한다』는 말뜻을 이해할 것입니다 『부처는 가슴 속에 있다』는 말과 『신의 왕국이 너희 안에 있다』는 성경구절의 뜻도 말이에요

여러분은 살아있는 사원입니다 신이 여러분 가슴 속에 거하시지요 그래서, 불교와 성경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난 어디를 가든 석가모니 부처가 부처이고, 예수 그리스도도 부처이며 노자와 공자도 부처라고 말할 겁니다 부처란 깨달은 스승을 뜻합니다 그들은 과거의 스승들이지요 그들은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것을 설교했지요 그들은 같은 진리를 설교했지만, 같은 법문을 적어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같은 법문을 수행했다고 해도 아무도 적지 않았지요 노자는 귀 없이 들을 수 있고 눈 없이 볼 수 있는 수행법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도덕경에서 그는 귀 없이 들을 수 있고 눈 없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뜻한 바는 우리가 육신의 귀와 육신의 눈을 사용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거지요 육신의 눈을 사용해선 우린 볼 수 없습니다

도를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고 그는 뜻했습니다 매우 분명히 말했지요 하지만 그는 우릴 위해 명확히 기록하진 않았어요 그는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고 쥘 수도 없는 도를 얻기 위해 어떻게 수행하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네 그는 우릴 흥분되지만 좌절하게 만들었어요 그는 자신이 이 도를, 이 위대하고 말할 수 없는 이름도 없는 도를 찾았다고 말만 했어요

그런 뒤에 그는 이 도가 매우 위대해서 모든 게 거기서 오고 모든 게 도이며 모든 게 이 도 안에 있고 전 우주를 이 도가 키운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걸 찾는 법은 말하지 않았지요 우리를 아주 배고프게 만들었을 뿐이에요

그건 이런 상황과 비슷해요 어떤 사람이 우릴 위해 밤낮으로 책을 씁니다 그는 그 음식이 매우 훌륭하다고 그 음식이 얼마나 달콤하거나 짭짤한지 우리에게 말해요 하지만 무슨 재료로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지 설명하지 않고 우리에게 요리법도 주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부처와 노자, 예수 그리스도 공자는 모두 같은 걸 이야기했고 같은 걸 깨달았어요

그들 모두 똑같이 위대한 도를 칭송하죠 어떤 이름으로 그걸 불렀든 말이에요 누구는『신』이라고 누구는『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하죠 누구는『부처』나 『불성』이라 하고요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완전한 깨달음』을 신의 힘을 얻기 위해 이 불성과 도를 깨닫는 수행법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달마는 중국으로 갔어요 그는 석가모니 부처로부터 법맥을 받았습니다 그는 후계자 제자 중 한 명이에요 얼마 뒤에 석가모니 부처가 죽었고, 노자와 공자도 죽었습니다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갔을 때도 별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 법문이 이론을 넘어섰다고만 말했고,어떤 경전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건 더 좋지 않지요 처음에,우리는 경전을 읽는 것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경전을 읽고 부처를 숭배하고 절을 짓고 자선활동을 하고 승려에게 공양하고 삼보에 공양하고 선행을 많이 함으로써 영적 수행을 한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고 여겼어요

양무제에 대해 들어봤지요 그에 따르면 그런 일을 하면 많은 공덕을 쌓는다고 해요 그런 뒤에 달마가 왔을 때 그가 모두 파괴했지요 그는 그런 일을 해서 얻어지는 공덕이 없다고, 소용도 없다고 말했어요 그 당시 우리 중국인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이제 그의 책을 읽으면 많은 이들 역시 실망할 거예요 왜냐하면 수행하는 법을 말 안 했거든요 그는 고대 선 스승들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 법문은 이론을 넘어서며 경전이 소용없고 아무것도 적을 수 없다고 말이지요 경전은 너무나 많아서 그걸 모두 읽기란 불가능해요 또 그걸 모두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이 소용없다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그 법문은 이론을 넘어서서 전수되기 때문입니다 심하지 않나요?

네 그럼 뭘 할 수 있지요? 방법 있어요?(네) 해결책이 뭐지요? (관음법문입니다) 관음법문이요 물론 관음법문입니다 우린 관음법문에 대해 이야기해왔어요 하지만 어떻게 하죠? 그건 여전히 이론 밖에 있어요 경전이 너무 많아서 그걸 모두 읽을 시간이 우리에겐 없어요 또 모두 마치지도 못하죠 잠자고 먹는 일을 잊을 때까지 경전을 읽는다고 해도 우리에겐 여전히 시간이 충분치 않아요 그들은 어떤 경전도 충분하지 않다고 해요

그 법문은 경전에 없으니까요 수행은 경전을 요하지 않습니다 경전에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방법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경전에는 몇 개의 만트라만 있는데 그것은 정확한 법문이 아닙니다 그 만트라들은 관음법문을 수행해서 얻은 내면의 체험이지요 만트라를 계속 외우는 게 아니에요 관음법문은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이걸 알까요? 내가 수행하니까요 우리 동료 수행자들 역시 관음법문을 수행합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다음에 우린 그런 만트라와 친숙해졌습니다 그 만트라들을 내면으로 배우니까요 내면의 보살이 수많은 신통력과 비밀 만트라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필요한 순간이라면 정말 효과가 있어요 그 순간에는 어떤 주문을 외우든 효력이 있을 거예요 경전들도 만트라들도 정말로 많지만 외워도 소용없잖아요 우리가 그것을 얻은 게 아니니까요 그것들은 남들이 옛날에 얻은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 남았죠 우린 직접 번 돈만 쓸 수 있습니다 남의 돈은 소용이 없는데다 그들 돈은 다 써버린 상태죠 그냥 그들의 얘기를 읽는 것 뿐입니다

예를 들어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를 들어봤지만 우린 800년 동안 살지 못합니다 우린 경험할 수 없죠 우린 오래 전에 명 장준이라는 군자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는 매우 부유해서 다 쓰지 못할 만큼 돈도 많았습니다 매일 그는 수천명의 손님을 대접했어요 그는 돈이 충분한지 신경도 안 썼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가 오래 전에 부자였고 이미 죽어버려서 그 돈도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읽는 것도 예전 고대인의 체험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의 영적인 수행자들은 내적인 체험을 얻었지만 그들은 떠났고 체험도 떠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을 읽어서는 도를 성취할 수 없죠 허나 방법은 있어요 세세생생 법맥이 전해졌어요 세세생생 중생들이 생사윤회의 틀에서 해탈을 원했으니까요 그래서 세세생생 법맥이 전해졌어요 물과 음식 그리고 공기가 어떤 삶에든 있는 것과 같아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맥은 세세생생 전해지며 사라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법맥을 계승한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요 그래서 고대로부터 영적 수행자들이 고난을 극복해야 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봤습니다 그 얘기는 감동의 눈물을 선사하지요

예를 들면 밀라레빠가 겪었던 많은 장애들과 혜가가 겼었던 많은 고난들 혜능이 겪었던 많은 장애들이요 아니면 오대 조사 홍인 대사가 있지요 그는 스승이 받아 주기에 너무 늙어서 다시 한번 윤회해 수행하러 돌아와야 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 역시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도를 구했고요 그는 왕자였고 돈과 권력이 있었지만 법맥은 살 수 없었어요 그는 편지를 쓰거나 명령을 내릴 수 없었죠 『내가 영적으로 수행하고 싶으니 이런 저런 스승은 궁전으로 와서 가르침을 주시오』 이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전을 떠나야 했고 부유한 재산과 부인들을 포기했어요 그 다음 그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법맥을 계승한 스승을 찾았습니다

왜 그리 어려울까요? 우리가 너무 의심이 많으니까요 설사 스승이 나와서 법맥을 계승했다고 말한다고 해도 우린 그를 정말로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법맥을 이은 영적 수행자들은 수많은 비방과 공격을 감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대조사 홍인이 육대조사 혜능에게 말했지요 고대로부터 진정한 법문을 전하는 스승들은 모두가 늘 위험에 처해왔다고요 그 법문을 가르치는 것이 위험하니까요 이것은 그를 공격하길 원하고 비방하고 없애려 하는 사람들이 있어섭니다

왜 이런 방식으로 해야만 하는 걸까요? 그건 마야가 사람들을 여기에 묶어두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 가버린다면 누굴 지배하겠어요? 그래서 부처의 힘이 1척 높아지면 마야의 힘은 10척 높아진다고들 합니다 그 말은 마야가 부처보다 더 강력하단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들리지 않아요? 그렇겠지요 그래서 부처가 여기선 가르치기 어렵습니다 마야의 세상이니까요

영적 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찾기 어려운 겁니다 그들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어도 우린 찾을 수 없어요 그들이 문 앞에 간판을 달아 남들에게 이렇게 알리진 않죠 『난 이런 스승으로 매일5시부터 8시까지 일요일만 빼고 편하게 가르침을 준다』 그들은 안 그럽니다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절이 문을 열어 둡니다 그들은 대중에게 문을 열어 두지요 그들은 모두를 오라고 청합니다 더 좋을수록 더 잘 열어 줍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분이 오는 걸 환영하지요 하지만 스승의 문은 영원히 닫혀 있어요 여러분이 들어가려면 시험에 통과해야 하죠 수행을 잘 해야만 호법이 여러분을 들여보내 줄 겁니다 그가 이웃에 살아도 여러분은 못 들어가요 스승이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높은 관리든 낮은 관리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여러분의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이 얼마나 부자든 상관없어요 스승은 법맥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그들이 중생들과 섞이길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잘 압니다 그들은 어딜 가든 침묵해야 하며 원하는 곳을 모두 다 갈 수는 없습니다

마야는 아주 강력해요 그는 수많은 방법으로 하루종일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어 도를 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잊게 만듭니다 누가 우릴 고향으로 데려가고 싶어서 오더라도 우리에게 그 얘길 들을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사람들로 가득하고 영적 수행자는 거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수행자가 약간 있더라도 그들 역시 마야에 속아서 계속 정도를 기억하기엔 너무 바쁘게 됩니다

그들은 진정한 법문을 수행하지 못하고 사문으로 빠집니다 사문이 뭘까요? 옆에 있는 다른 길로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도란 무엇일까요? 다른 길이죠 다른 길을 말하는데 정도,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지요 예컨대, 이 길로 가면 집으로 갈 수 있어요 만일 이 길로 걸어가면 당연히 집에 갑니다

하지만 우리 옆에서 누가 헛소리를 하면서 우릴 속이고 다른 곳에 가라고 말하는 것을 사도라고 합니다 『사』란 것은 옳지 못하다는 뜻이죠 사문이란 옆에 있는 문으로 앞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우릴 과거의 문으로 이끌어 다른 곳을 데려 갑니다 그러면 우린 점점 더 고향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도’라고 하죠 고대로부터 많은 생명을 빼앗은 악인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책에서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라는 인물에 관해 들어봤겠지요? 그는 최고의 악인이었습니다 또 진시황제도 있고 주나라의 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의 사람들이죠 설사 우리가 그런 고대 역사와 일화를 지금 읽어도 그들을 그렇게 많이 비난하진 않습니다 그걸 읽으면서 그저 『정말 나쁘군!』 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를 적대적이지 않고 나서서 그를 책망하지도 않습니다

신문에 기사를 내서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남들에게 그를 칭찬하지 말고 믿지 말라면서 함께 비난하자고는 안 하죠 우린 그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죽었으니까요 그는 이미 죽었으니 우린 그를 용서합니다 성인들이 그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이상합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깨달은 선스승들과 타종교의 성인들을 비방합니다

예컨대 모하메드나 다른 종교 지도자들요 많은 본보기가 있어요 이쪽 종교단체가 저쪽 종교 단체의 스승을 비방합니다 저쪽 종교 단체는 이쪽 종교단체의 스승을 비방하고요 우리 자신을 알고 부처가 무엇인지 우리의 내적 체험을 통해서 마야가 무엇이지 모르면 늘 남들에 의해 흔들립니다

지혜의 말씀을 시청하고 계십니다 『살아있는 경전의 지도 하에 수행하라』
1988년6월19일 일란 포모사 (대만)에서 있었던 칭하이 무상사의 강연입니다

적어도 부처가 뭔지 마야가 뭔지 모른다면 우리 마음은 남에 의해 항상 흔들릴 겁니다 한 쪽에서도 우릴 당기려 하고 다른 쪽에서도 당기려 하죠 남들과 논쟁도 못하죠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 노자 같은 위대한 수행자들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우리 같은 범부들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러니 성인들과 높은 등급의 수행자들과 깨달은 스승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불쌍한 이들은 악한 자들이 아니라 위대한 수행자들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악한 자를 비난하지 않아요 악한 자들은 그 당시만 비난받았습니다 그 후론 더 하지 않았죠 하지만 위대한 성인은 이삼천 년 혹은 오천년이 지나서도 비방 당합니다

성인들이 열반에서도 (지고한 극락) 편히 있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조 홍인이 진리를 설법하는 자들의 삶은 언제나 위험에 쳐했었다고 말한 겁니다 전혀 이득이 없는 직업이에요 한번은 나의 스승님이 강연을 할 때 어떤 사람이 물었어요 『누군가 신이나 위대한 깨달은 스승을 지칭할 때 왜 항상『그』라고 부릅니까? 남성형이죠 그녀가 아니라 그요 『왜 남성형이죠? 왜 여자는 깨달은 스승이 될 수 없나요? 여자는 스승이 될 수 없나요?』

이런 질문을 했어요 『여자도 스승이 될 수 있나요?』라고요 제 스승은 그녀에게 매우 자비롭고 동정하는 태도로 말했죠 『스승이 되지 않는 게 더 나요 스승이 안되는게 낫죠 너무 너무 힘들어요』 그는 너무 너무 힘들고 또 힘든 고된 일이라고 했지요 많은 압박감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 압박감은 견딜 수 없죠 그래서 고대로부터 스승은 보통 남자라고 말했던 겁니다

남자들의 신체가 더 강하기 때문이죠 또한 압박감 때문에 영혼이 쉽게 무너지는 일도 없지요 여자들처럼 감정적이지 않아요 우리는 더 민감해요 여자들의 신체는 강하지 않아요 약하지도 않지만 강하지도 않아요 그래요 매달 월경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피를 많이 흘려서 몸이 좀 더 약합니다 그 주에는 몸도 좋지 않고 감정도 흔들리고 기분도 좋지 않고 심리상태가 좋지 않아요 때로는 움직이지도 못해요 우리는 아이도 낳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많아요 몸도 더 약해 지고요

또한 옛날엔 여자는 밖에 나가질 못했어요 한 걸음 나아가면 세 걸음 뒤로 돌아옵니다 그런 가르침을 펼칠 수 없었어요 예전엔 차도 없어서 더 어려웠어요 발이 묶였는데 어떻게 걸을 수 있었겠어요? 발이 너무 작아서 한걸음 앞으로 걸으면 궁전의 궁녀들처럼 세 걸음은 뒤로 갔습니다 잘 알잖아요 당연히 가르침을 펼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고대로부터 극소수의 여자들이 나가서 가르침을 전했어요 요즘은 시대가 달라요 신체를 강하게 할 수 있는 약도 많고 차나 비행기가 있어서 여자들도 쉽게 나가서 가르침을 펼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엔 발을 묶지 않아요 그렇게 작게 묶지 않지요 그래서 요즘 여자들은 가르침을 펼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게 매우 편리한 오늘날에도 제 스승은 여전히 여자들은 스승이 되지 말라고 권했어요 책임도 너무 많고 일도 너무 많고 압박감도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견뎌내지 못해요 내가 금방 말했죠 고대로부터 위대한 성인들은 가장 많이 비방 받고 가장 많이 공격 받고 살해된다고요 그들의 얘기를 읽어 보면 비방을 견디지 못했던 스승이 하나도 없다는 걸 볼 겁니다

살해 당할 뻔 하지 않았던 스승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사형당했고 어떤 이는 살해당했고 어떤 이는 살해 당할 뻔 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를 죽이려 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누구는 약점을 잡고 누구는 누명을 씌우고 상처를 입혔지만 죽이지는 못했지요 어떤 사람은 육조 혜능도 죽이려고 했어요 예수는 그들에게 붙잡혔죠 공자도 비방을 받고 여섯 나라가 그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면서 쫓아냈죠

노자는 제자가 거의 없었어요 이런 이유로 깨달은 스승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들이 숨어버리기 때문에 찾기가 어려워요 공개적으로 가르친다 해도 역시 숨어야 해요 대중 앞에 있을 때는 공개가 됩니다 하지만 돌아오면 숨어야 하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어요 그의 제자이거나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에요 가까운 제자들만 찾을 수 있어요 보통사람은 찾을 수 없어요 일단 우리에게 법문을 전해주면 우리를 꼭 붙들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매일 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에게 아무런 보시도 숭배도 시중도 원치 않을 겁니다 아무것도 원치 않아요 그를 찾으려고 돌아 다녀야 합니다 그를 보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깨달은 스승이 있다 해도 찾기가 어려워요 그게 다 그렇기 때문이에요 너무 공개하면 안돼요 공개적이지만 아니에요 그의 절은 닫혔어요 아무나 공개적으로 환대하지 않아요 환대하지만 대부분의 보통 절만큼 공개적이지 않아요 누구나 원할 때마다 들어가 경배한 후 나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드나들 수 없어요 그들을 보러 오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신실하게 도를 찾아야 해요 그러면 받아줄 겁니다 들어가서 절한 후 나가는 대부분의 절과는 같지 않습니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깨달은 스승을 찾으려면 선전 광고에 의지해선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공덕에 의지해야 합니다 축복이 없거나 공덕이 충분치 않으면 광고를 해도 가지 않을 테니까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나 공덕이 충분치 않다면 선전을 한다 해도 가지 않을 겁니다 스승이 바로 옆집에 산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로부터 깨달은 스승을 찾는 게 어려웠던 겁니다

이제 여기서 결론을 좀 내릴까 합니다 우리 관음 수행자들은 수행하면 할수록 더 재미있고, 전에는 해본 적도 없었던 놀라운 체험도 더 많이 합니다 그렇죠? (네) 경전은 남들이 얻은 굉장한 체험만 묘사해 놓은 겁니다 우리 스스로 그런 체험이 없다면 행복도 이해하지 못하고 기쁨과 법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야기 책이나 아이들 책 또는 고대경전을 읽을 때는 그저 재미를 위한 이야기이거나 사실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방정토는 누군가 그려 놓은 그림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떠들어대도 진짜가 아닙니다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모든 경전에 있는 체험들 모두가 사실인 걸 알 겁니다 사실이 아닌 게 없어요 경전에 기록된 것을 체험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우리는 그 등급을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경전에 말로 쓰여져 있는 건 높은 등급의 체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높은 등급의 체험은 말로 할수 없는건 물론 기록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리달마가 경전을 외는 건 소용 없다고 말했던 겁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게』 등급이 더 높아요 단지 체험은 해도 받아 적진 못해요 어떤 사람들은 입문하고 관음법문을 막 시작했는데 나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 체험이 높은지 낮은지 사실인지 거짓인지 물으며 보고를 합니다 어느 정도 수행한 후엔 말할 게 없어요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스승에게 와서 보고는 말합니다 『스승님, 오…』 설명하질 못해요 여러분이 물어도 설명을 못해요 나는 묻지도 않아요 그들은 이미 도취돼 버렸어요 어떤 말도 필요 없어요 그 때는 경전을 읽는 것이 마치 아이들 동화를 읽는 것과 같았는데 우리는 그 등급을 이미 넘어선 겁니다 묘사되고 기록될 수 있는 건 높은 등급에서 온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서방 정토에 갈 수 있는지 물으면 문제없다 말합니다

거기 머물고 싶지 않을까 염려 될 뿐이죠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서방정토를 넘어설 수 있으며 서방정토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서방정토는 한 사람의 체험과 집착일 뿐입니다 그 때는 서방 정토에 집착하면서 그 곳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에게 사후에 그런 아름다운 곳에 올라가서 살 수 있는지 물어본 겁니다

석가모니부처는 『그렇다』고 했지요 여러분은 오늘 본 그 곳을 상상해야 합니다 마음 속에 떠올리세요 아미타불을 보면 아미타불의 이름을 암송하고 그가 있는 곳을 묵상해야 합니다 매일 이렇게 하면 죽을 때 반드시 그 곳에 갈 겁니다 하지만 우리 관음 수행자들에게는 비전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서방정토를 보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보지 못해도 괜찮아요 나중에 더 높은 경지에 올라 갈 겁니다

서방정토는 우주의 한 구석에 지나지 않아요 동쪽,남쪽,북쪽 그리고 위쪽과 아래쪽에도 많은 게 있는데 왜 서쪽에만 집착하지요? 서쪽으로 가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자리에 앉아서 아미타불을 암송하는 것만으로는 갈 수 없어요 돈을 벌고 싶다면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집에서 돈을 생각하는 대신에요 관음법문은 매우 유동적입니다

만일 서쪽으로 가고 싶다면 서쪽으로 데려다 주고 동쪽으로 가고 싶다면 동쪽으로 데려다 주고 북쪽으로 가고 싶다면 북쪽으로 데려다 줍니다 어디든 가고 싶은 대로 데려다 줍니다 노자와 만나고 싶다면 노자에게 데려다 줄 터이고 공자를 만나고 싶다면 공자를 보도록 해 줄 겁니다 살아있는 부처인 제공을 만나고 싶다면 제공도 만나게 해줄 겁니다

그들이 다른 곳에 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모두 높은 경지에 살고 있습니다 어디든 가고 싶은대로 관음법문이 인도해서 데려다 줄 겁니다 이런 법문이 없을 때 서방에 가지 못하는 걸 걱정해야 합니다

나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방정토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돼요 왜냐하면 더 빛나고 더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더 높은 세상이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뼉을 칩니다 알고 있을 거에요 서방정토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도 있어요 네! 서방정토나 『팔공덕수』나 새들의 노래에 집착하는 요인이 뭡니까? 그런 게 예뻐도 마음이 좁아서 그런 구석만 원하는 건가요?

우리는 우주 전체를 보러 가고 우주 전체를 우리의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우주의 한 구석에만 집착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겁니다 그리고 남들이 더 좋은 법문에 대해 말하는 걸 들을 때면 대놓고 비방하며『최고는 서방정토 뿐이야』 라고 합니다 원한다면 서방정토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법문만이 안전하게 데려다 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동쪽도 가지 못합니다

스승님 관음법문을 어떻게 전수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법문이 아니고 힘입니다 전수하는 힘이죠 입문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힘을 남에게 전하는 겁니다 하지만 마음도 진짜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 언어가 매우 한정 됐기 때문에 『법문』이나 『마음』 이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법문을 전수할 때 언어를 쓰지 않아요

지금은 그럴 수 없죠 왜냐하면 많은 걸 설명하고 논리와 이치를 이해시키려면 언어를 써야 하거든요 그러면 도를 찾으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도를 전해 줄 수 있죠 전달 도중에는 말할 게 없어요 나도 조용히 하고 여러분도 조용히 해요 우리 모두 조용히 하면 법문을 얻게 됩니다

법문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게 아닙니다 뭔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니면 무슨 법문을 얻지요? 무슨 도를 얻지요? 법문은 있지만 말할 게 없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는 법문인 겁니다 내가 그 힘을 전수해 주면 뭔가 물어볼 게 있을 거에요

『스승님 방금 입문 받을 때 이런 등급에 도달 했는데 무슨뜻이죠?』 라고 물을 수 있어요 그 때는 정말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관음 법문을 전수할 때 여러분이 어떤 우주의 비밀을 알거나 깨달음도 약간 맛보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경전에 기록된 체험들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범천의 소리라든지 파도소리 같은 걸 말이에요

800 개 눈의 공덕과 800개 귀의 공덕이 뭔지도 이해할 겁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는 것이 뭔지 부처의 무한한 빛이 뭔지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볼 수 있고 들을 수는 있지만 설명해 줄 법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만일 아이들이 관음법문을 하게 된다면 아이들이 앞으로 계율을 지키지 못할까봐 염려된다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들의 부모가 입문했다면, 6살부터 수행할 수 있습니다 부모나 친척 중 아무도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16살이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부모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한다 해도 두 가지 다른 종류가 있습니다 6살 때 반입문을 받을 수 있고 12살에 온 입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나 친척이 수행을 안하면, 16살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스승님』우리의 본성은 나투어도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는 구절이 무슨뜻입니까

그것은 금강경에서 언급한 등급입니다 만일 입문하고 수행한다면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자신의 본성을 보도록 가르쳐 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건 당신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입문식 때 내가 설명해 주면 이해가 될 겁니다 그래서 입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강연할 때도 법문을 전수합니다 한번 보는 것만으로 입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여기 그런 사람이 있나요? 깨닫고 보살을 보는 것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수호 천사나 빛, 혹은 스승이 사라졌나요? 없네요 아주 드물어요

3일만에 체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예컨대 내가 가진 빛을 보거나 여기 많은 보살들과 수호 천사들이 있고 빛이 어디나 있는 걸 보죠 이런 건 깨달음의 작은 체험 중 하나죠 이 평범한 세상의 시야를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이 세상을 초월한 겁니다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거죠 강연을 들을 때 약간 깨달음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말법시대엔 극소수만 깨달음을 얻지요

질문입니다 전에 계를 받기 위해 절에 간 적이 있는 사람이 관음법문을 수행할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보살계를 어기는 건가요? 모든 계율을 어기는 건가요?

보살계를 지킨다는 것은 보살의 길을 걷고 보살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관음법문은 관음보살을 위한 법문입니다 왜 수행할 수 없겠어요? 어떻게 계율에 어긋날 수 있지요? 나한테 배우려면 보살계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어요 계율을 지키면서 수행하세요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계율만 지키는 건 소용이 없어요 계율을 지키는 목적은 수행하는 겁니다

나와 함께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면 먼저 어떻게 계율을 지키는지 보여준 다음 법문을 전해줄 겁니다 그래서 계율은 법문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이 법문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법문 없이 계율만 가르칩니다 계율과 명상 그리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명상과 지혜 없이 계율만 가르친다면 두 가지가 빠진 겁니다

난 계율은 물론 명상과 지혜도 가르칩니다 그래서 완벽하죠 만약 당신이 보살계를 지킨다면 내가 그런 걸 가르칠 필요가 없지요 명상과 지혜만 가르치면 됩니다 그러면 완전한 법문이 되는 거죠 거슬릴 게 없어요 그래서 보살계를 지킨다고 깨달음을 얻는게 아니라는 걸 명백히 알수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조금 전에 이론 밖의 법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신 보리달마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직접 핵심을 가리키고 불성을 봄으로써 부처가 되는 법문은 무엇입니까? 그런 건 어떻게 수행하나요?

그것도 관음법문입니다 입문식 때 어떻게 수행하는지 알게 될겁니다 진짜 가르침을 말하는 것은 이론 밖입니다 보리달마는 경전을 읽는 것으로는 체험이나 도 또는 불성을 얻을 수 없는 걸 뜻한 겁니다 경전을 읽는 대신 가르쳐줄 깨달은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은 경전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법문은 이론 밖에 있다고 한 겁니다 법문은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법문은 경전에 적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경전 『밖』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할 말이 없다고 했던 겁니다

방금 전에 관음법문을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할 수가 없어요 전달만 해줄 수 있죠 법문을 전해 줄 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우리 둘 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갑자기 깨달을 겁니다 아무말도 할게 없어요 지금 내가 말을 많이 하지만 아무도 깨닫지 못합니다 나중에 내가 말을 하지 않을 때 깨닫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것이 소위 『이론적인 가르침 밖에서 법문을 전하는 것』이며『아무것에도 거하지 않는』겁니다

경전에 적혀있는 것에 집착하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며 부처나 사원의 외형에 집착하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소위 『아무것에도 거하지 않으면 자성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스승님 인간이 부처라면 어디에 부처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자신이 부처라면 어디에 부처가 있죠?

부처는 그의 마음에 있어요 부처가 있지만 못찾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예컨대 우리 몸 안에 피가 있는 걸 압니다 모두들 피가 있죠? 피에 대해 알지만 보지는 못합니다 아는 건 쉬워요 조금 상처를 내거나 주사기로 좀 뽑아내기만 하면 몸 안에 피가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보지는 못하죠 너무 어리면 사람들이 혈액 구조를 설명해 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지루해 하거나 들을려고 하질 않죠 하지만 어른이 되어 아플 때 의사가 피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수혈을 해야하고 어떻게 할지 보여 주기도 하고 의사가 피를 뽑아서 보여줍니다 그러면 관심을 가질 겁니다

피는 몸 안에 있지만 꺼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불성과 비슷해요 불성은 전능한 힘이며 그 힘은 신의 힘이며 『지고하며 완벽한 깨달음』이며 위대한『도』입니다 우리는 그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깨달은 스승이 문을 열도록 도와 준다면 매일 쓸 수 있고 매일 볼 수 있습니다 볼 수 없지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만질 수 없지만 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 되어 지는 것은 도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얻을 수 있고 체험할 순 있지만 설명하진 못합니다 법화경에서 언급한 예지와 입문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그 둘은 다릅니다 입문은 법문을 전수받는 때를 뜻하며 자신의 본성을 찾았을 때 그리고 자신의 불성을 봤을 때를 뜻합니다 그것이 입문입니다 예지는 석가모니 부처가 제자들에게 언제 부처가 되며 이러이러한 나라에서 홍법을 할 거라고 말해줬을 때를 말합니다 그것이 예지입니다

스승님 관음법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물었습니다

관음법문 수행의 핵심은 소위 법문이란 게 없지만 법문을 받고 즉각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법문은 즉각적인 법문이라 할 수 있죠 순식간에 가장 귀중한 『전능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수행하길 원한다면 자신의 신구의를 정화해야 합니다 보살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보살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생의 살을 먹지 않는 것이며 살생하지 않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생과 도적질 간음,거짓말,음주를 하지 않는 겁니다 다른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매일 2시간 반씩 명상해야 합니다 시간을 나눠서 해도 됩니다 이런 것들이 관음법문에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하지만 말로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실제로 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법문은 설명될 수가 없어요 법문을 말로 하는건 지루하게 만듭니다

스승님 이 분은 스승님과 공부한 적이 없지만 『즉각개오』 일권을 읽고 난 다음 스승님 모습이 앞에 나타난 걸 봤습니다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이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즉각 개오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을 읽을 때 다른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하니까요 그렇죠? 『즉각 깨닫는 열쇠』 를 읽자 곧 바로 스승님의 화신을 스승님의 화신을 봤던 겁니다 깨달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건 예사로 하는 체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깨달아서 이 세상 너머의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즉각적인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그것이 진짜 즉각 법문이란 뜻입니다 그러니『즉각개오』 책 이름이 맞지요! 틀리지 않아요 그렇죠? 축하해요 그래도 관음법문을 배워야 합니다 스승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더 배울 게 많아요

스승님 저는 스승님께 말하는 꿈을 꿨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영적 체험인가요? 육신의 스승도 그걸 아나요?

네, 그것도 체험으로 칩니다 당신에게 뭔가를 가르치러 온 건 스승의 화신입니다 이것도 즉각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책읽는 것이 깨달음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즉각개오』 라고 하는 것도 틀리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체험을 해요 내 책을 읽으면서 체험을 합니다 육대조사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지요 『일단 지혜의 밝은 태양이 이 세상을 비추면, 그것이 생사의 온갖 근심을 씻을 것이다』

스승님, 『지혜의 밝은 태양』이 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단순한 비유인가요 영적 영역인가요?

그건 매우 간단해요 "지혜의 밝은 태양이 이 세상을 비춘다"는 것은 깨닫는 때를 의미합니다 지혜를 얻고 지혜가 열리는 겁니다 그래서 내 책에서 설명했듯이 지혜를 여는 것과 지혜안은 같은 겁니다 법안과 같은 겁니다

지혜가 열릴 때는 태양이 나올 때와 비슷합니다 어두운 구름과 같은 더럽고 암울한 곳을 모두 파멸할 겁니다 어두운 구름이 세상을 덮고 있어요 마치 우리의 악업과(응보) 무지가 우리의 비전과 지혜를 뒤덮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깨달을 때는 태양이 나와서 어두운 구름을 물리치고 무지와 생사의 구름을 없애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깨달을 때 불광이 우리를 비추는 것은 태양이 우리를 비추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 빛은 태양이 어두운 구름을 뚫고 나오듯이 우리의 무지와 생사의 틀을 산산이 부술 겁니다

지혜의 말씀을 시청하고 계십니다 『살아있는 경전의 지도 하에 수행하라』
1988년6월19일 일란 포모사 (대만)에서 있었던 칭하이 무상사의 강연입니다

스승님, 안녕하세요 당신의 강연을 와서 듣는다는 건 복입니다 그는 자신이 수행을 잘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축복이 어디서 온 건지 모릅니다

내 강연을 듣기 위해 여기 오는 축복은 이생의 공덕이 아니라 세세생생 전생에서부터 쌓아왔던 공덕에서 온 겁니다 하지만 이생에서도 뭔가 좋은 일을 했을 수도 있어요 모르고 있을 뿐이죠 예를 들어, 난 삼십대입니다 서른 살 전에는 여기 오지 않았어요 전에 다른 세상에서 당신을 만났거나 다른 나라에서 당신이 나에게 물 한 잔을 주었거나 나를 위해 길을 치워 줬거나 길을 가르쳐 주고 운전을 해 주는 등 그런 사소한 일들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 것들이 지금의 인연이 된 겁니다

그래서 들으러 온 거죠 부지런히 수행해서 공덕을 얻지 않아도 됩니다 영적 수행자를 만날 때 그 수행자를 한 번만 보는 것으로도 수백만 억겁동안 수행해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처나 산, 바다를 숭배하거나 절을 짓고 삼보에 공양하는 것만으로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꼭 그렇진 않아요 가장 큰 공덕은 살아있는 깨달은 스승을 만나는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가장 큰 공덕과 축복을 얻게 해 주는 부처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공덕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무 작아요 그런 건 소용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이 속세에 묶이게 합니다 더 나빠요 명성이나 부 같은 것은 내게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날 여기에 묶어두기 때문에 악업(응보)입니다 아름다운 부인과 잘생긴 남편 큰 집과 큰 궁전은 우리를 속박하는 겁니다 내게는 축복이 아니라 악업(응보) 입니다 그래서 그게 축복인지 아닌지는 그걸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어요

스승님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이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라졌다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우리는 사라지지 않아요 죽은 후에도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아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그렇게 간단하다면 관음법문을 수행할 필요도 없고 부처를 숭배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원하는 건 뭐든 해도 됩니다,살생하고 술 담배를 하고 훔치고 간음해도 됩니다 죽으면 모든 게 사라져 버리잖아요 아닙니다 사라지지 않아요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세에 인간으로 환생하기도 하고 아니면 동물로 환생합니다 다른 많은 세상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라지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요 미래의 인과에서 해탈하고 싶다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게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더 높은 세상에 갈 수 있고 지복의 세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들은 여기와 비교가 안돼요 우린 사라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세상의 물체들은 모양과 형태가 있어서 만질 수 있습니다 여기 부인과 남편을 볼 수 있고 저기 남녀 노인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형상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사라진다는 것』은 형태나 모습이 없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걸 뜻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느끼고 아무것도 모르고 지혜도 없고 생명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있어요 하지만 여기처럼 조악한 삶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자유로워져서 사라진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사라진다는 게 남는 게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다거나 모든 걸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 『손해』는 보지 않아요 만일 그렇다면 『손해』 보는 거죠 손해 보는 장사예요

스승님 재가자로 수행하는 것과 출가자로 수행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각각 어떤 장애가 있습니까?

아무 차이가 없어요 같은 스승을 따르고 같은 법문을 수행한다면 차이가 없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요 차이가 있고 없고는 각자 상황에 달렸어요 예를 들어 석가모니 부처 생전에 출가 제자들 중 아라한의 등급에 도달한 사람도 있었고 보살 등급에 도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재가 제자들 중에도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도 있었고 보살 등급에 도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똑같아요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를 따르지 않았던 출가승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를 따르지 않았던 재가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 중요한 건 여러분이 재가자인지 출가승인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스승을 따르고 어떤 법문을 수행하느냐입니다

광진 대사는 말했죠 출가승 열 명이 있으면 그 중 아홉은 실수로 출가한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요?

그가 한 말은 깨달은 스승이 없이 출가승이 된다는 것은 무의미한 삶을 사는 비참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죠 악업(응보)만 모으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수행으로는 아무런 공덕도 얻지 못하고 남이 올린 공양을 받는 일이 다거든요 그 악업(응보)를 소화할 수도 없고 여러분에게 공양한 사람들도 아무런 축복도 받지 못해요 석가모니 부처가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이건 내 말이 아닙니다

그는 공양을 올린 사람의 마음이 청정해야 하며 그래야 공양을 받는 사람이 악업 (응보)를 모으지 않는다고 했고 공양을 받는 사람도 청정해야 하며 그래야 공양을 올린 사람이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나요? 아무렇게나 공양을 올리거나 받는 것은 좋지 않아요 우란분경에 따르면 하안거가 끝나고 아라한과 성인들이 석가모니 부처에게 배웠는데 오직 하안거가 끝난 후에만 공양을 받았을 때 그 악업(응보)를 소화할 힘이 충분해서 죽은 사람들이 해탈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출가승이 공양을 받으면 죽은 사람이 해탈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가 살아있었을 때에도 바로 그 앞에서 지옥으로 간 출가승들이 많았습니다 석가모니가 하는 강연도 듣지 않았어요 그대신 도망을 갔죠 그들 중 5000명이 강연장을 떠났어요 그래서 출가승이든 재가자든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좋은 스승과 좋은 법문을 찾아야 하는 것 말고는 출가승이든 재가자든 상관없어요 차이가 없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음과 양을 모두 보는 사람들은 깨달은 건가요?

깨달은 게 아닙니다 어떤 등급을 볼 수 있는가에 달렸어요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깨달은 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지옥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귀신을 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죠? 왜 귀신을 그렇게 빨리 보고 싶어하죠? 오직 부처를 보고 부처의 빛을 보며 부처의 소리를 들어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짜 소리와 진짜 소리가 있고 가짜 빛과 진짜 빛이 있으며 가짜 부처와 가짜 체험 그리고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모든 걸 무감각하게 만드는 가짜 부처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런 걸 보고 나면 뭐든지 잊어버리거나 자신이 한 말이나 자신이 한 행동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것은 깨달은 게 아니라 빙의가 된거죠

자기가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자신도 모르니까요 그건 깨달음이 아니죠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한 모든 말에 대해 아주 분명하며 어떤 등급의 천국을 봤는지 정확히 압니다 나중에 자기가 봤던 경지도 다시 가볼 수 있고 다음날 똑같은 체험도 할 수 있어요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만일 오늘 한 가지 빛을 봤다면 내일도 모레도 한참 뒤에도 똑같은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후면 그 빛도 뛰어넘을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 입니다

만일 오늘 부처의 소리를 한가지 들었다면 내일도 모레도 한참 후에도 역시 똑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얼마 동안 수행한 다음에는 그 소리를 깨고 다른 소리를 듣는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다고 해서 깨닫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수없이 많아요

어떻게 곤충과 파리를 보는 것이 깨달음으로 간주될 수 있겠어요? 그런 걸 보려면 확대경을 사용하면 돼요 그건 깨달음이 아니죠 가짜 체험을 보고 가짜 부처와 가짜 부처를 보는 건 사람의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몸이 불편해져서 일상생활이 엉망이 될 겁니다 진정한 부처와 부처의 빛을 보고 부처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주 편해지고 의식이 맑아지며 지혜도 더욱 열리게 됩니다 진짜와 가짜는 다릅니다 자신이 한 체험으로 자기 등급을 재어볼 수 있어요

수행자에게 깨달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깨닫고 나면 알게 됩니다

스승님 인성은 본래 선인지 악인지 모두 아닌지 또는 선과 악을 넘어야 하는 건지요?

모든 걸 다 갖고 있죠 선과 악을 포함하는가 하면 선도 악도 아니며 선과 악보다 높아요 세상적인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수행해야만 합니다 안 그러면 설명하면 할수록 더 나빠지고 알면 알수록 더 궁핍해집니다 이것은 진정한 체험 없이 알기만 하는 것은 과자의 이름만 외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인간에게 영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보지 못할까요?

그것은 어떤 것은 보이지만 어떤 것은 안 보이기 때문이죠 예컨대 공기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아주 중요합니다 공기는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렇죠? 물은 없어도 하루,이틀,사나흘은 살 수 있습니다 음식과 옷 그외 다른 것이 없어도 한참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기가 없으면 당장 죽을 겁니다 안그래요? 그래서 공기는 형태도 모양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정말 중요합니다

영혼도 똑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죽을 때 몸도 그대로 있고 눈과 귀도 그대로 있는데 어째서 움직이지 못하죠? 어디에 있는 거죠? 그것은 영혼이나 진아,진정한 본체 혹은 불성이라 불리는 또다른 존재가 있다는 뜻이죠 우리는 몸이 아닙니다 몸은 자동차 같은 운송 수단입니다 차는 기사가 아닙니다 그 둘이 같이 붙어 있다 해도 기사는 차 안에 앉아 운전을 하지만 차는 아닙니다

그는 열쇠를 잊었을 때 말고는 원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그것은 여기서 마야에게 갇혀있는 우리의 현재 상황과 같아요 문이 모두 닫힌 속에 갇혀 있는 겁니다 죽어야만 나갈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용이 없어요 전에 나가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다른 세상에 가 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우주에는 어떤 종류의 세계가 존재하고 어떤 곳과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나라로 갈 수 있는지를 미리 알려면 먼저 영적으로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죽어서도 계속 그곳에 갈 수 있죠 그렇게 하는 게 더 안전해요

스승님, 왜 사람은 죽은 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윤회하나요? 왜 세상에는 계속해서 업장(응보)를 짓는 나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가요 이 세상에 평화가 있나요?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닌 마야의 세상이라고 이미 말했죠 평화를 원한다면 더 안전한 다른 세계로 가야 합니다 우리 지구와 비슷해요 지구에는 많은 나라가 있지만 더 안전한 곳도 있고 더 무질서한 곳이 있죠 어떤 나라는 전쟁이, 어떤 나라는 자연 재해가 있습니다 그런 곳은 안전하지 않아서 살 수가 없어요 안전하길 원하면 살 수 있는 다른 세상이나 다른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돈도 있고 능력도 있고 안내자라든가 그곳에 데려다 준다는 보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가고 싶다고 아무 데나 갈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에는 이런 작은 지구만 있는 게 아니라 피신할 수 있는 세계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런 세계를 아는 어떤 사람은 우리를 데려 가려고 돌아옵니다 그런 사람들을 따르는 게 더 안전해요 그런 사람들을 스승이나 인도자,선생이라고하죠 모두 같은 말입니다 모두 그런 일을 합니다

스승님 저희 어머님은 30년 이상 채식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80세가 넘으셨고 오랜 병환으로 매우 허약하십니다 입문을 받으면 회복할수 있을까요? 허약한 사람도 입문을 받을 수 있나요?

첫째,80세가 넘은 분들은 입문한 자녀가 없거나 자녀들 중 입문한 사람이 없다면 입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명확히 수행할 수도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그녀의 불성이 명확하지 않고 마음이 맑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병을 치료하려고 입문해서는 안되며 병 때문에 와서도 안됩니다 노인이 병이 드는 건 당연한 겁니다 병을 치료할 작정이라면 관음법문을 수행하러 오지 마세요 그것은 생, 노 병, 사를 겪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사 해탈을 찾고 덧없고 일시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절대 돌아오지 말고 다시는 아프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오늘 아팠다가 내일 또 아플 수도 있고 오늘은 좋았다가 내일 다시 아프거나 올해는 건강해도 내년에는 다시 아플 수 있습니다 병을 치료하려고 수행을 하는 건 대도의 길이 아닙니다

전문적으로 병 치료를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게 더 쉬울 거에요 나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병이 낫는다고 약속하지도 않고 병을 치료하는 신통력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아프면 의사를 만나 봐야 합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신통력을 쓰고 싶으면 마술사를 찾아 가세요 난 약속할 수 없어요 거짓말할 수 없어요 나는 영원한 해탈만 주지 병은 치료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병은 악업 (응보)거든요 악업(응보)는 병을 통해 씻을 수 있고 그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은 좋은 겁니다

스승님 금강경에 보면 형상이 있는 건 모두 환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빛과 천국의 경계를 보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스승님의 말씀과 모순됩니까?

어떻게 모순되죠? 그 빛은 전구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환상은 파괴될 수 있는 겁니다 한 때는 나타났다가 다음 번엔 사라집니다 그런 게 환상입니다 하지만 부처의 빛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 빛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빛을 파괴할 수 있는 건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환상이 아닌 진짜 체험입니다 이 세상은 환상입니다 모든 게 생과 사가 있고 오늘 존재했다가 내일은 사라지는 곳입니다 그것이 환상입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금강경에서 언급했던 것은 이 세상을 말한 겁니다 그는 그 자체가 환상인 생과 사와 형상과 모습이 존재하는 이 세상을 얘기한 겁니다 이런 것들은 오늘 여기 있다가도 내일이면 사라집니다 정말 덧없어요 그는 부처의 세계 영원한 세계를 찾으라고 말한 겁니다 영원한 세계에는 태양빛이나 전등이 없어도 빛이 있습니다 빛이 저절로 나오고 저절로 빛납니다 그게 부처의 빛이죠 그런 등급에 도달했다는 것은 불성을 얻고 불국토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불국토는 환상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빛은 물질적인 방법으로 만든 게 아니거든요 오늘 왔다가 내일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영원합니다 그런 경지는 영원히 존재하며 태어나거나 죽지 않으며 더럽혀 지거나 깨끗해지지 않아요 짓거나 관리할 필요도 없고 썩거나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건 환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환상입니다

스승님 누가 먼저 나온 존재인가요 부처인가요 중생인가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태초에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고요하고 안정된 힘이 있었는데 지루해 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형상을 창조했죠 그것이 중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가 중생보다 먼저 왔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는 중생이 없다면 부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쩌지요?

나는 공안을 생각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공안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어요 자유로워지려면 공안을 하거나 고심하고 논쟁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난 공안 같은 거 풀고 싶지 않아요 원한다면 여러분이나 하세요 솔직히 말해서 부처가 중생보다 먼저 왔다 해도 나는 상관 없어요 중생이 부처보다 먼저 왔다 해도 가서 차를 마실 겁니다 내게는 문제도 되지 않고 상관도 없으며 중요하지도 않아요 부처가 먼저든 중생이 먼저든 상관 없습니다 그들 둘이 서로 경쟁하는 건 그들의 일입니다

중생이 성불을 하고 난 다음 이 속세로 돌아오게 되면 혼란스러워서 다시 방황하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네 그렇지 않으면 이세상의 존재로 여겨지지 않겠죠 여기에 오려면 길을 잃어야 합니다 먼저 길을 잃은 다음 다시 깨닫기 위해 수행합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가 도솔천에서 내려와 세세생생 부처로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이세상에 돌아왔을 때 무지했었어요 30년 이상 무지했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인생을 즐기며 좋은 건 하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세상의 덧없는 현상 즉 생노병사를 보고는 깨닫게 됐어요 부처는 서둘러 깨달은 스승을 찾았어요 스승을 찾은 뒤 6년간 열심히 수행해서 마침내 도를 얻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부처라도 이세상에 오면 다른 중생과 같아 진다는 뜻이죠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아들이었지만 여기에 왔을 때 그도10여년 동안 열심히 수행한 끝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들이 여기에 오면 다른 중생과 똑같은 겁니다

그들은 자비를 베풀어 이곳에 오며 중생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중생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보통 사람들 처럼 똑같은 두뇌를 사용하고 보통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중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보통 사람과 같은 일을 합니다 그것은 부처의 등급이 너무 높아서 우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부처는 우리의 상황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의 가르침을 설명할 수 있어요 부처는 부처로 있고 우리는 우리로 있다면 어떻게 소통하겠어요? 그래서 부처는 무지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우선 처음에는 무지해야 합니다 중생을 이해하려고 무지해졌던 겁니다

스승님 천국이 인간을 창조한 건가요? (네) 그렇다면 왜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성인들을 세상에 내보내 세세생생 수많은 악업(응보)를 짓게 하는 대신 천국에 머물도록 하지 않았나요? 왜 세상을 태초에 있던 대로 비워두지 않았나요?

그러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선호하는가 하면 누구는 지옥을 좋아하고 누구는 불국토를 누구는 이 세상을 선호하죠 이 세상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오늘 내 강연에 온 사람들 중 천국에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죠? 아주 극소수예요 그저 호기심에서 온 사람들이라 수행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입문 후에도 그들 모두가 계속 수행하는 게 아니에요

다시 말해서 그들 모두가 서둘러 천국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먹고 마시고 흥겹게 노는 그런 물적인 즐거움을 주는 세상도 있고 행복이나 분노 슬픔이나 즐거움도 체험할 수 있는 어떤 등급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모두 다 천국에 살라고 강요할 순 없어요 이 세상도 똑같아요 포모사(대만)은 아주 작은 나라지만 행복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장도 있고 부처의 명호를 외는 사람들을 위한 정토법문도 있고 만트라를 외거나 염주를 세는 사람도 있어요

스승의 육신은 보지 못하고 빛만 보는 사람들도 귀신을 보나요?

내 육신은 보지 못하고 빛만 본다고 귀신을 꼭 보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귀신과 지역신의 등급을 뛰어넘었기 때문이죠 그는 더 높은 경지만 봅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지옥은 보지 않아요 귀신은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어요 그가 하기에 달렸죠 귀신을 봐서 뭐하게요? 당신은 밤낮 살아있는 보살이 아니라 귀신을 보길 바라는군요

열심히 협력해 주시고 성심껏 배우고 토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오늘 이 강연에 오신 분들은 훌륭한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견해를 나누고 교환하기를 원하니까요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내일 다시 만나서 토론을 계속하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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