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관음의 힘을
인식하는 법』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 타이베이
1988년 8월 3일
사랑하는 스승님
고결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자리에 서서
여러분에게 스승님을
소개하게 되어서
매우 영광입니다
예전에는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런 자리에서
얘기하라고 하면
말도 못하거나
숨이 넘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반대로
얘기할 것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긴 이야기를 줄여서
스승님을 소개할 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저는 불교 신자가
되기 전에는
솔직히 말해서
세속적인
쾌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운좋게도 저는
부처를 봤습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 부분은 생략하죠
그 사건이 있을 후
저는 부처와 더욱
가까워졌으며
불교를 공부하고
부처에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스승이 없었습니다
저 혼자 했어요
그 일로 인해 저는
우주에는 정말 신들과
부처가 있다는 걸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처에 대해
더 배우고 싶었지요
그때는 솔직히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저 혼자서
경전을 읽고
주문을 외우고
부처의 명호를 외우며
저녁이면 아무런
체험도 없이
명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예기치
못한 일로 제 조카가
그도 지금은
수행자 중 하나인데
스승님에 관한 작은
전단지를 건내줬어요
그는 내게 물었어요
『삼촌,이 스승님을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그 전단지를
받았을 때는
완다 초등학교에서의
스승님 강연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3월8,9일쯤이었죠
저는 벌써 두번째
날이니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연을 들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제 조카는 여러분 모두
갖고 있는 그 작은
견본 책자도
건내줬었어요
다행히
완다 초등학교
강연 후에
중경 남부로에 있는
시민 회관에서
강연이 이틀 더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 강연
전에 그 이틀 동안
견본 책자 읽는 것을
끝냈습니다
첫 장을
읽고 나서
저는 깊이 느꼈습니다
와 스승님이 왔구나!
제 조카에게도 말했죠
『맞아,이분이 바로
내가 찾고
기다리던
스승님이야』
그래서
3월10일과11일
저는 중경 남부로의
시민 회관에
정시에 도착해서
이틀 동안 스승님의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스승님의 강연을
듣고 난 뒤
저는 긍정적이었으며
직감적으로 이 스승은
틀릴 수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불교를 공부하고
부처의 명호를
외면서
5,6년 동안
제 스승이 될 분을
기다려왔습니다
그 스승님이 바로
칭하이 무상사
입니다
우리 스승님은
참으로 가장 자비로운
스승입니다
여러분이 신실하게
입문을 청한다면
스승님은 반드시
입문을 허락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때 스승님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3월12일
저는 드디어
스승님으로 부터
입문,즉 법의
전수를 받았습니다
입문 후에는
정말로 굉장했습니다
경전에는…
전 관음보살의
보문품 같은
경전을
읽었습니다
보문품에 보면
여러분도 이런 문장이
있는걸 알 겁니다
『이 속세의 소리를
초월한
범음과
해조음』
전에는 그 뜻을
전혀 이해 못했어요
저는
『범음』이란
인도의 범어나
주문을 듣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사서 들을수 있는거죠
그리고 『해조음』이란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승님께
입문 받고 난 후
마침내 범음과
해조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관음 보살의
체험도 했습니다
아미타불 경에 있는
새들이 지저귀고
매미가 우는
소리도
사실입니다
스승님께 입문한 후
저는 이런 체험도
했습니다
시간이 없으므로
스승님 강연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해하기가
훨씬 더
분명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내면의 기쁨이 가득한
삶을 기원합니다
큰 영광과 함께
칭하이 무상사를
환영합시다
감사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모두들 관음 보살을
알수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그녀는 아주 유명하죠
우리도 그녀를 좀
알고 싶어 하죠?
모든 사람들이
절에 가서 관음 보살을
참배하고 그녀의
도움을 구합니다
물론 언젠가는
그녀를 어떻게
알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할 겁니다
그녀가 보타산에
있다고 하지요?
들어보기만 했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관음 보살은
보타산에만 있지
않아요
그녀는 무소부재하며
어디에나 있습니다!
부처는 우리 마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신실하다면
관음 보살이
올 겁니다
실은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분이
신실하지 않아도
관음 보살은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신실한지
아닌지 개의치 않아요
부처는 분별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실하다면
그녀를 알 수 있으며
신실하지 않다면
그녀를 아는 게
쉽지 않겠죠
거기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관음 보살은
누구일까요?
왜 그렇게 유명하죠?
나는 오늘 외식을
했어요 아니요
외식을 한 게 아니라
차를 한잔 마셨어요
관음 식당에
갔지요
가까이 있으니까요
거기서 두사람이 내게
물었죠 『스승님
관음 보살은
남잔가요 여잔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가 남자인가요?
(아니요!)아니요!
그럼 여자인가요?
(아니요)
그럼 뭐지요
그녀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면요?
(사람들의 원에 따라
변합니다)
네 그녀는 항상
변합니다 중생들의
필요에 따라서요
그 사람이 또 물었죠
『이상해요 스승님
누구는 관음이
남자라고 하고
누구는 여자라고
했어요
설명해 주실 수
있겠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만이 아니라
오늘 오후부터
강연을 했습니다
3시부터5시까지
강연을 했죠
그런 다음
천궁사에 가서
7시까지
명상을 하고
깨어났습니다
『맙소사!
벌써 시간이 됐네!』
다행히
정시에 도착했지요
아니면 여러분을
기다리게 했을 겁니다
관음 보살은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닙니다
그녀가 원한다면
남자도 될 수 있고
원한다면 여자도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보문품에
아주 명확하게
적혀있습니다
왜 그녀는 어떤 때
남자가 되었다가
어떤 때는 여자가
되는 걸까요?
그것은 여러 중생들과
여러가지 다른 인연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관음 보살이 그들을
제도하기 원하지만
그녀가 남자의 모습을
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남자로
화현해 그녀에게
기도한 사람들을
제도하러 불국토에서
그 곳으로 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남자라고 하는겁니다
만일 다른 나라나
다른 곳에서 여자와
더 많은 인연이 있다면
여자로 화현해서
그들을 제도할 겁니다
그래서 관음 보살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물질적인
형상이 전혀 없어요
성별은 말할것도 없죠
그녀는 우리 불성이며
우리의
자비로운 힘입니다
언제든 여러분이
자비로 가득할 때
그 때가 바로
관음보살과 가장
비슷한 때입니다
그 순간에 여러분의
관음보살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음보살은
본래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고
관음법문을
수행했습니다!
나중에,그녀는
완전히 깨달았고
매우 강해졌습니다
오늘 어떤 사람들이
내게 물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이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그것을
나눠보겠습니다
그가 내게 물었습니다
『이상합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굉장히 강할까요?』
난 몇몇은 졸업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라서
그렇다고 답했어요
그것은 마치
고등학교 때 여러분이
학교 친구와 함께
공부하는 것과 같지요
여러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학업을 그만뒀고
여러분의 학교 친구는
대학에 가려고 계속
공부합니다
몇 년동안 공부한 뒤에
그는 의사,변호사가
됩니다,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더 유능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냥
고등학교 졸업생이죠
여러분은 보수가 낮은
직업을 찾거나
식당에서 일해야 해요
그럼 여러분은 자신의
지위가 낮다고
힘이 없다고 느낍니다
여러분의 학교 친구는
매우 유명한 의사가
되어서 많은 환자를
구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가 대단하다고
여러분은 느낍니다
비슷하게 몇몇 사람은
영적인 수행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수행한 뒤에,그들은
거기서 멈춥니다
그들은 더 높은 등급에
도달하지 않았지요
다른 이들은 수행으로
더 높은 등급에 이르고
보살이나
부처가 됩니다
그들은 더 능력 있고
더 많은 신통을 가지며
중생을 구하는 능력도
더 많이 가집니다
그들을 보살이라 하죠
그렇게 간단합니다
이 세상에는 공부할
과목이 많습니다
졸업한 뒤에
몇몇은 변호사가 되고
몇몇은 의사가 되고
몇몇은 약사가 됩니다
몇몇은
중국 전통 의사가
되고 많은
다른 것들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왕,
국회의원이 되고
고위 관료가 됩니다
무형의 면에서
몇몇은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부처와 신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달렸어요
여러분은 자신이
연구하는 과목에서
졸업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과목을
연구하든 간에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의사 시험을
통과하면,의사가
될 것입니다
사법고시를 통과하면
변호사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 수행이
정말 색다르고
얻기 힘든
신비한 뭔가로
생각합니다!
내게는
신비할 것이 없어요
그것은 마치 대학 입학
시험을 치는 것과 같죠
어떤 시험을 치든지
우리는 그에 따른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속세의 시험을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속세를 초월한 시험을
좋아하는 데 비해서요
그것이
유일한 차이점입니다
우린 무엇이든 원하는
시험을 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속세의 시험이 아닌
초세계적인 시험을
치니까요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속세의 지혜와 더불어
초세계적인 능력도
얻습니다
둘 다를 갖지요
그렇지만
속세의 능력과
초세계적인 능력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선사인
육조 혜능의 경우
그는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맹이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그는
위대한 선사가 됐지요
그는 초세계적인
힘을 가졌어요
역사를 통해
그러한 예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초세계적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총명하거나
속세의 지위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와 보살
아라한이 되는 것도
일종의 학교 교육이나
과학이라고
난 생각합니다!
시험을 치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시험을 통과하면
우리는 아라한,보살
부처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렵거나
신비하지 않습니다!
그 시험을 이미 통과한
전문가를
찾는 것이
힘든 부분이지요
그는 시험을
치는 법을 알고
그 시험을 준비하는 걸
도와줍니다
그럼 미래에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의사와
함께 배운 다음에
그들도 의사가 됩니다
많이들 변호사와 함께
배운 뒤 그렇게 됩니다
그건 아주 간단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누가 내게 물었어요
『당신의 강연은 아주
어렵습니까? 제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가요?』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강연을 이해할
정도로 총명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난 그에게 말했어요
『때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도 강연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확실히
이해할 것입니다』
예? 알겠어요?
(예)
그가 말했어요
『스승님,다른 많은
스승의 강연을 전
이해 못했습니다
일단 듣기 시작하면
잠이 들었어요"
난 그에게 나도 전에
그랬다고 말했어요
그것은 그들이 아무도
이해 못할 거창한 말을
써서 그런 것입니다
경전의 특별한
용어들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난 그에게 말했어요
『걱정마요
지금처럼 평범한 말을
쓰니까요
당신은
말할 것도 없이 아이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자
그는 평온한 마음으로
강연장에 갔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난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지요
어디를 가든지
거기서
나와 인연이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강연을 했습니다
내가 안 갔다면
그들은 수 천년이
지나도록 나를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또한 쉬워요
우리 대부분이
영적 수행을 좋아해요
난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영적 수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안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들은 깨달음을 주는
말을 들을 기회를
못 가졌기 때문에
왜 영적 수행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영적 수행이
아주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 불교와
도교,다른 종교의
거창하고 어려운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두통을
안겨주고,듣는 동안
잠이 들게 만드는
용어들을 말이에요
따라서
그들은 영적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기죠
그것이 문제입니다
누군가 그들에게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해할 것이고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나도 해탈하고 싶어
이 세상에는
괴로운 것이
너무 많아
마음 속 깊이
정말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매일
너무나 바빠서
이런 중요한 문제를
잊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깨어날 겁니다
그 순간,그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래서
오늘 원래
오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몇 명 왔습니다
내가 거기 왔으니까요
한 두 명이라도 이미
많습니다,왜냐하면
한 사람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전 국가
온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한 사람이라고
하찮은 게 아니에요
한 명의 사람은
아주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없으면
많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맞죠?
(예!) 맞아요
사람들 대부분이
영적 수행을
좋아하지만
소위 말해 영적 수행자
대다수가
너무 복잡하고
힘들게
만들어놓아서
아무도 감히
그 길을 따르려고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적 수행을
아주 어렵고
진귀한,이상한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영적 수행을
과학이나
취미로 취급해야 합니다
탁구나 축구를
할 시간이 있다면
산책할 시간이
있다면
그럼 영적 수행을 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수행을
우리 취미 중 하나로
대할 수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겠어요?
그렇지요?
(예!) 그래요
마찬가지에요
내 생각에,우리가
영적 수행을
취미로 다룬다면,
잃을 것이 없을 겁니다 그렇죠?
생각해봐요 우리가
수행을 잘 못하거나
부처가 못 되더라도
여전히 잃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돈이나 힘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몸이 약해지거나
맥이 풀리지도 않아요
잃을 것이 없습니다!
가장 곤란한 일은
TV를 볼 시간이
줄고
전화로 수다 떨
시간이 줄며
구경다니고 잡담할
시간이 없다는거죠
대신 이런 시간을
명상하는데 쏟고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묵상하는데 써야죠
이보다 더 안 좋은 건
거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엔
나쁜 점이 없어요
있나요?(아니요!)
그래요,그렇죠!
나와 같이 수행하면
꽃도 필요 없어요!
이런 것들은 그들이
준비한 거에요
여러분은
어딜 가거나 꽃을
바칠 필요가 없어요
과일이나 향도
살 필요 없고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훨씬 더 편안하고요
모든 것이 다 같아요
분별할 것이
그다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한 개피의 향도
살 필요가 없어요
산신이나 물신에게
기도하느라
시간낭비하면서
무릎도 상하고
땀도 많이 흘리면서
혼자서
가족을 떠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절에서 오랫동안
기도하느라
배우자가 화낼 일도
전혀 없고요
여러분 가족이
불평하잖아요
『불상을 집에다
모시고 절해도
괜찮잖아
왜 꼭 절에 가야
하는데?』 등등요
사실 절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도
말했잖아요
『부처는 내면에 있다』
그런데 어딜 가요?
부처가 내면에 있다면
우린 집에 있으면서
부처가 어디 있는지
살펴봐야 하잖아요?
(네!)
모두가 깨달았습니다
깨닫는 것은
정말 간단합니다!
우리가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우린 부처의 지혜와
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타고났습니다!
아니라면 어떻게 그리
쉽게 이해하겠어요?
석가모니 부처만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역시
『신의 왕국은 내면에
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네,집에 돌아가서
성경을 읽어보세요
거기에 나와 있어요
힌두교도 마찬가지죠
힌두교 경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수많은 사원에 가서
절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며
신에게 전 재산을
바친다고 해도
신이 너희 내면에
있다는 걸 모른다면
전부 소용 없다』
이 말은 진실입니다
내가 몸소
체험한 거에요
공덕이 아무리 많고
여러분이 쌓은
복이 아무리 많아도
또 여러분이
아무리 고행을 해도
불성과 전지전능한
신의 힘,
여러분 내면에 있는
천국의 힘을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생사의
굴레 안에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해탈하지
못한 채 여전히
인간이나 동물의
자궁으로 돌아와
수백만년을
윤회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욕수행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난 갠지스 강에 갔죠
구경이 아니라…
인도에선 모두가
갠지스강을 압니다
사람들은 원하면
갠지스 강가에서
명상을 합니다
갠지스 강을 따라
수많은 명소가
늘어져 있습니다
모든 영적
수행자들은 거기
갑니다,알겠어요?
그 중에 하나가
리쉬캐쉬입니다
거기가 유일한 장소는
아니지만 좀 더
유명한 곳이에요
소위 모든
영적 수행자들은
다 거기 있어요
난 거기 가서
한 사람에게 물었죠
『그렇게 오랫동안
수행을 한 뒤에
신을 알게
되었나요?』
그는 답하지 않았어요
난 말했죠『누가 신을
알고자 한다면..』
신이란
불성을 뜻합니다
분별하지 마세요!
신은 신의 왕국이나
하느님 등과
같은 말입니다
『당신은 신을
깨달았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죠
난 말했어요 『누군가
신을 깨닫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말했어요
『스스로 찾으세요!』
그는 내게
답을 주지 않았어요
스스로 찾으라고요?
나 혼자 찾을 수
있다면 뭐하러
물어보겠어요?
좋아요,그래서
난 거기서 명상했어요
그의 제자가 한 명
오더니 내게 말했죠
『그렇게 명상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나의 스승은…』
내가 방금 물어봤던
사람을 언급했어요
『스승님은 수십년간
금욕수행을 했지만
그렇게 많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아주
젊고 어립니다
여기 앉아서
뭘 얻겠습니까?』
난 말했죠 『그는
전혀 안가르쳐줬어요
그가 스스로 찾으라고
했기 때문에 혼자
명상하는 거에요』
그 당시 나는
이미 신을 깨닫고
관음보살을
알고 있었어요
난 그냥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 제자가 말했어요
『우리 스승님은
열심히 금욕했어요!
믿을 수 없을정도죠!』
난 물었죠 『그는
어떻게 명상했지요?』
그는 답했어요
『몇 년전에
스승님이 아직
젊었을 때 여름에
매일같이…』
알다시피 인도는
아주 덥잖아요
여름엔 훨씬 덥고요
『그는 갠지스 강가
모래사장에 앉았죠』
갠지스 강가 모래는
훨씬 더 뜨거워요
여러분 알지요?
『정오에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그는 자기 주변에
불을 피웠어요
그는 매일같이
그렇게 수행했어요
그는 물 한모금도
안마시고 태양을
바라봤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행을 했지요!』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난
그렇게는 수행 못해요
더운걸 못 참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겨울에 냉탕욕을 하죠
나도 해봤습니다
갠지스 강가에
갔을 때 물이
정말 차가웠어요
갠지스 강 발원지의
물은 정말로
차갑습니다
얼음에서 방금
녹은 물이거든요
얼음과 물이
같이 섞여 있어요
알겠어요?
족히 섭씨
영도는 될 겁니다
나는 거기서
며칠동안 목욕했지만
신이 나타나는 걸
볼 수 없었죠 맞습니다
만일 불을 피우고
위에 해가 내리쬐는
『불 법문』을
수행해서 우리가
성불한다거나
하느님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래전에 신을
찾았겠지요!
맞지요? (네!)
겨울에 냉수목욕을
한다고 우리가
하느님과 신을 찾고
불성을 찾는다면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오래전에 신을
찾고 성불을 했겠죠
맞지요? (네!)
여러분도 그걸 아는데
아직 그렇게 무지한
사람들이 있어요
중생들의 무지를
말하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나도 중생입니다
여러분만 가리켜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린 너무 멍청해요!
우린 잘못된 법문을
수행하면서
세세생생
윤회 했습니다
올바르게 수행한다면
우린 그 즉시
깨닫게 될 겁니다
금욕적으로
수행하면 할수록
도리어 더
오만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아나요?
난 종종 하루에
한끼만 먹고는
자랑스러워 합니다
『오! 하루 한 끼!』
라고 가는 곳마다
남에게 말했지요
내가 몇 끼를 먹든
불성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부처는
외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우리 중생들은
외면만 수행합니다
부처를 깨닫는 다면
그건 좋은 겁니다
모른다 해도
여러분 일이지요
하루에 한끼만
먹는다고 부처를
알게 되는건 아니죠
자신을 바비큐처럼
굽는다고 부처를
아는 것도 아니고요
여러분이 자신을
아이스크림처럼
얼린다고 부처가
찾아오진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엄격하게 수행합니다
예컨대 어떤 이들은
인내를 수행합니다
나도 인내의 정신을
존경하고 동의합니다
참을성은
우리가 지녀야 할
아주 좋은 덕목입니다
하지만 없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수행을 하지
않아서 깨달음은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지니고는 있어요
아무리 인내심이
있어도 못 깨달으면
깨달음은 성취하지
못한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을성을 수행하면서
남들이 자신을 꾸짖고
때리게 내버려 둡니다
일부러 자신의
참을성을 시험하지요
하지만 난 그들이
불성을 찾았다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참을성을 성취해서
무슨 소용이 있지요?
불성을 깨달아야만
소용이 있습니다
참을성을 수행하는 건
별로 대단하지 않아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단한가요?(아니요)
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인내심을 찬탄하지만
아니라고 하면
이단처럼 들리죠!
여러분 말이 맞아요!
어떤 사람들은
인내심을
타고나거든요
안 그렇습니까?
그가 불성을
찾았나요?
꼭 그런건 아니에요
전쟁 동안
많은 이들이
포로로 잡히는데요…
(포로요)포로요?네
모진 고초를 견디죠
두들겨 맞아도
말하지 못합니다
욕을 들어도
불평하지 못합니다
그렇죠?
옛날에는
힘들게
노예로 살던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수행자보다
인내심이 많았죠
그렇죠?
인내심으로
성불할 수
있었다면
오래 전에
성불했을 거예요
그러니 뭘 수행하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금욕도
별게 아니에요
반드시
불성에 이르진
못하니까요
참을성도
별게 아니죠
어떤 이는 우리보다
잘 참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태생이나 직책이
그렇게 만든거죠
상황이 영웅을
만든 거예요!
이런 말을 전에
들어봤지요?
따라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벌하거나
억압해선 안됩니다
견딜 수 없는데
계속 강요하면
언젠가 폭발하여
다른 사람을
공격할 거예요
네!
너무 오래 억눌러
마음에 반대되게
하면 언젠가
폭발할 겁니다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게 좋죠
인내심이 없다면
서서히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인내하는 것으로
충분하진 않아요
많은 이들은
기묘한 법문을
수행해요
전에 그 예를
말해줬었죠
비논리적인 것을요
하루에 한끼
먹는 건 성불과
관계 없어요
밤새 정좌하는
것도 성불과
상관 없죠
난 꽤 여러
사람들을 봤는데
소위 수행자라는
이들이
수년 동안 바닥에
눕지 않는
것을 봤어요
나도 해봤지만
불성을 찾지 못했죠
불성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지금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죠
전엔 내가
엉뚱한 곳에서
기다린 거예요
매일 정좌하는
것으로 성불할 수
있다면
불구인 사람은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벌써
성불하고도
남았겠죠
고요히 있는 것으로
성불할 수 있었다면
신경을
파괴하는
주사를 맞고
불구가 되어
몇 일 내로
성불을
하겠지요
그게 아닙니다
나도 고요히
앉아 있으면
성불한다고
믿었어요
밤에 안 자는
것으로
성불한다면
잠들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겠어요?
불면증 환자는
오래 전에
성불했을
겁니다 그렇죠?
그러면 무엇을
수행해야 할까요?
왜 이런 법문은
효과가 없지요?
이런 법문은
내면의 신의
왕국과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내면을
보고 불성을 찾지
못하니 깨닫지
못하는 거죠
이 불성은
우리 자신의
관음력,
우리의 진아,
우리 자신의 스승,
우리의 원래 자아,
우리의 신,
전능한 힘입니다!
우리에겐 이 전능한
힘이 있지요
성경의 말처럼
신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어요!
우린 신과 같으며
같은 형상,
같은 힘이
있지요!
힘이 있는데
쓰지 못하니
애석한 일입니다
왜일까요?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못쓰는 거죠
그 뿐입니다
안다면
뭐든 할 수 있죠
어떤 이는
땅도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죠?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그런
이들이 있지요
그들은 전능한
힘을 찾고
자신의 관음력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관음과 하나죠
관음 보살은
남이 아니라
자신의 힘입니다
자비로 구하고자
하는 이는 모두
구할 수 있어요
완전한
관음보살의 힘을
모두
얻기 전에도
이를 어느 정도
쓸 수 있습니다
언제 관음
보살의 힘을
쓰는지
아나요?
다른 이를
도와주고
다른 이의
고통을 보며
동감할 때죠
아직 돕는 걸
시작하지 않고
동정하겠지요
그들의 고통을 느끼고
공감합니다
그때
관음력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건
관음력의
작은 부분으로
세속적인
낮은 수준이죠
아직
깨닫지 못한
더 높은 경지가
있어요
관음 법문을
수행하면
관음력을
깨달아
중생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해주며
물질계에서
서방 정토로,
고통에서
축복의 세상으로
올려줍니다
즉시 도울 수
있지요
이것이 최고의
관음력입니다
이러한 관음력의
높은 경지를
깨닫고 나면
무엇을 하든
항상 이 힘 안에
있게 되죠
잠자든,
얘기하든,
TV를 보든,
앉든,
서든,걷든,
운전하든 항상
이 힘이 있어요
한번 찾으면
잃지 않습니다
절대 사라지지 않죠
그게 장점이에요
세속의 부와는
다릅니다 그건
오늘은 있다가
내일은 없지요!
오늘은 있지만
모레는 없어지는
세속의 권력과도
다릅니다!
우린 많은 왕과
권력자들을
봐왔어요
그들은 어디로 갔죠?
그들이 세상에
있을 때는
싸워서 최고
권력을 얻어
막강한 권력에
모두가 두려워
했습니다
누구든
벌하고 싶으면
벌하고
상주고 싶으면
상을 줬죠 허나
지금은 어디 있죠?
진시황이나
주왕 같은
가장 위대한
왕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렇게 세속의
권력은 덧없지요
그러니 세상의 지위나
권력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 나아요
언젠가 우리가
그들을 떠나거나
그것들이 우릴
떠날 테니까요
내면의 전능한
힘인 관음력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이 세상
뿐 아니라
사후에서도
영원히
함께 하지요
계속 이 힘을
지니게 됩니다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더 큰 힘을
갖게 되죠
그 때는 이런 짐,
육체를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요
더 자유롭고
강하고
행복할 거예요
세속의 권력은
생전에만
유용하며
죽으면 잃습니다
때로는
생전에
이를 잃어서
못 쓰기도 합니다!
오늘은
고위 관리였지만
내일은 잡혀서
죄수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건 왔다갔다
변하며 진정한
영원함이 없어요
그러므로
추구할거면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속적 능력과
세속적 권력과
지위를 넘어선
것들을요
그것 만이 진정하고
영원합니다
영원히 우리 것이죠
아무도
훔쳐가거나
가져갈 수 없어요
옛날에 금욕을
수행하던 수행자가
있었죠 그는 수행을
잘하지 못했고
헛된 외적인 것을
수행했어요
그는 매일 조금만
먹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배가 너무 고프고
몸이 좋지 않았어요
그는 먹을 걸
찾았지만
헛수고였어요
그러다 달콤한
과일이 열린
과수원을 봤지요
허나 자기 것이
아니었기에 먹지
않으려 했어요
계율을 분명히
알았던 거죠
하지만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었어요
주인도 보이지
않았고
돈도 없었지요
그래서 과일을
몇 개 따먹었어요
과일을 먹자
몸이 회복되어
수행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
수행자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깨달았지요!
그렇게 중생에게
설법을 다니다가
하루는 길가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수행자를
죽이려 하며
가진 것과
돈을 내놓으라
했어요
영적 수행자는
그에게 말했어요
『많이 가진 건 없지만
원하면 모두
가질 수 있소
수고한 값에
못 미칠까 걱정이오』
그래서 수행자는
그에게 다 주었어요
도둑은 충격을 받았죠
『이상하다!
이 사람은 왜
겁내지 않지?
돈은 별로
걱정하지 않고
기꺼이 주는 게
남들과 다르다
남들은 무서워하고
돈을 주려고 하지
않는데』
그래서 그는 물었어요요
『당신 물건이나
돈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나요?』
그는 대답했어
『아!이것은
덧없는 거지요
왜 상관하겠어요?
원하면 내 생명도
줄 수 있어요
당신에게 쓸모가
없을까 걱정이지』
도둑은 물었어요
『어떻게 그토록
편안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소?』
그는 대답했어요
『나에겐 삶이 죽음과
같기 때문이오』
그러자 도둑은 갑자기
깨달았고 물었어요
『스승님,
무슨 좋은 것을
가지고 계세요?』
그는 대답했어요
『그렇다 난 네가
훔칠 수 없는 아주
좋은 걸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원한다면
네게 줄 수 있다
네가 그걸 훔칠 수
없을 뿐이지』
그는 『이상하군요!
뭘 훔칠 수 없지요?
내가 훔칠수 없는건
없어요』라고 했어요
그는 무엇이나
훔칠 수 있다는 것이죠
『나는 왕궁에 몰래
들어가서 물건을
훔칠 수도 있어요!
내가 훔칠 수 없는 게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영적 수행자는
말했어요 『네가
훔칠 수 없는 건
관음법문이다』
『이 법문 때문에
난 편안하다
난 매일 수 백 번
죽는다
나는 죽었다 돌아오고
죽었다 돌아오는데
왜 내가 죽음을
무서워하겠는가?
미래에
이 육신을
떠난 후에도
난 영원히 존재한다
그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아서
두렵지 않다!』
그 순간 도둑은
깨달았어요
그는 무릎을 꿇고
관음법문을
전수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도둑은 전생에
그 과수원의
주인이었어요
그 영적 수행자는
거의 굶어 죽을 적에
그에게서 과일을
약간 훔쳤던
사람이었어요
도둑질을 장려하는 건
아니에요
우린 훔치면 안돼요
도둑질은 아주위험해요
남에게서 훔치면
안됩니다
하지만
그 영적 수행자는
고의로 훔치지 않았죠
그 당시에 그는
너무 배고팠고
너무 약했고
돈이 없었으니까요
영적 수행자는
돈이 없었어요!
청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어요
그는 거의 죽을
지경이어서 과일을
몇 개 가져갔어요
그래서
영적 수행자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사소한 계율이라도
분명히 지켜야 해요
안 그러면
과일 몇 개 때문에
한 사람을 구하려고
윤회해야 합니다
골치아픈 일이죠
많은 사람을 구하는건
말할 것도 없겠죠?
그러면 우리는
인연을 만들려고
모든 과수원에서
훔쳐야 할 겁니다
이런 인연을 만들면
아주 곤란해요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게
더 간단해요
어떻게 좋은 인연을
만들까요?
우리가
부처가 되기 전에
돈이 있다면
자선을 하세요
시간이 있으면
시간을 제공해요
건강한 몸이
있다면
육체적으로 기여하지요
그러면 우리의
도움을 받는 누구든
나중에 돌아와서
제자가 될 기회가
있어요
우리가 부처의
지위를 얻으면
그들은 우리의
호법이 되지요
아주 충성스럽고
법을 위해서 기꺼이
죽을 겁니다
아주 사랑이 많고
영원히
헌신적입니다
모두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더 이상 누구를
구하려고 되돌아올
필요가 없어요
모두 갈 테니까요
그러면 포모사에
아무도 남지 않겠죠
우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까요
돌아올까요?(아뇨)
물론 우리는 사람을
구하려고 우리와
인연있는 사람,
친구,선생님,
친척을 구하려고
돌아오는 걸
선택할 수 있어요
우린 나중에 돌아와요
하지만 돌아오면
편할 것이고
강력하고
우리를 지지할 호법이
많을 겁니다
우리는 돈이 없고
건강이 안 좋거나
정신적 불안으로
고생하는 무식한자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스승님, 입문한
사람들은 영적인
등급에 상관없이
죽을 때 스승이
천국으로 고양되는게
사실인가요?
예 확실해요!
또한 여러분께 달렸죠
계율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스승의 인도를
받아들였는지에 달렸죠
스승을
믿지 않으면
훨씬 힘들 겁니다
하지만 더 느린 속도로
아직 가능해요
스승님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므로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나요?
영적으로 수행하지
않고도 부처가
될 수 있나요?
예 가능해요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부처인 걸 몰라요
그들은 항상
부처였어요
단지 아직
그걸 모르는 거죠
영적인 수행을
한 후에 부처가
되는게 아니에요
금은 금이에요
그걸 금으로 바꾸려고
여러분이 뭔가를 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게 금인걸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 거지요
아무도 그걸 주워서
정제하고 윤을 내고
세공하여 유용한
것으로 만들지 않죠
그건 항상
금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수행하지 않아도
여전히 부처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부처의 힘을 모르면
소용이 없지요
예를 들면
어떤 부자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재산을
반반씩 나눠줬어요
그 재산은 두 아들에게
평생 지속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한 아들은
열쇠와 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어요
그는 매일 자기 재산
일부를 쓸 수 있었어요
다른 아들은
그 장소를 몰라서
그에겐 재산이 쓸모가
없었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처의 힘을
모른다면
부처가 되려고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부처인지
알아야 해요
우리의 부처의 힘을
쓰는 법과 우리를
지옥에서 구하는 법,
부모가 지옥에
떨어지는 걸 구하려면
어떤 힘을 쓰는지
알아야 해요
그렇게 해야
우리 부처 힘은
유용해지지요!
안 그러면 영적으로
수행할 필요 없어요
우리 모두 부처니까요
그렇지만 무지한
부처지요!
스승님,저흰 자비
때문에 죽이지 않아요
만일 모기가 물어서
죽이면 어떻게 되죠?
해로운 곤충을
죽여도 되나요?
이런 식으로 우리는
남들이 물리는 걸
예방할 수 있고
모기가 곧 윤회하는
걸 도울 수 있어요
더 의미있지 않나요?
정말, 아주
자비롭군요 !
모기에게
곧 윤회하고 싶은지
아닌지 물어보고
모기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당신이 자비롭다고
여길 수도 있겠죠
물어보지도 않고
모기를 위해
결정하면
업의 빚을
짊어져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컨대 모기가
원래 살 날이
이틀이지만
단 하루 후에
당신이 죽이면
당신은 하루 일찍
죽을 겁니다
원하면 어서
그렇게 하세요
나중에
당신은 돌아와서
모기가 될 것이며
그 존재에게 죽음을
당해서 이 나쁜 업을
갚을 겁니다
그 모기가
우리를 문 것도
악업 때문이지요
우리는 인내를
수행해야 합니다
스승님 능엄경은
팔만사천법문에
대해 말합니다
왜 스승님은
관음법문만
말씀하세요?
다른 법문은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요?
나만 그걸 말하는 건
아니지요
석가모니부처
관음보살과
문수사리보살 모두
그걸 말했어요!
그들 모두
관음법문이
최고라고 했어요
그건 우리가 일생에
해탈하게 합니다
다른 법문을 수행하는
것도 환영해요
사실 이미 다른 법문을
모두 수행했어요
당신은 인간,동물
개구리,코끼리
말의 법문을
수행했어요
그래서 수 십 만의
생 동안 이미 많은
법문을 수행했지요!
이제
마지막 생애에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법문으로
이 인간생활과
물질세계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어요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싶지 않나요?
(예,하고 싶어요)
그래요
이건 최후의 법문이죠
이해하겠어요?
이 세상에 돌아올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법문을
수행하면,여전히
돌아와야만 하지요
그가 또 질문했어요
그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지요?
불교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의 적개심은
많은 수행공덕을
태워버린다』
그 때문에 공덕이
탕진된다는 의미죠
예
그가 질문합니다
만약 입문자가 화나면
스승님이 주신
축복을
태워버릴까요?
약간은 태울 겁니다
하지만 다음날엔
보충될 것입니다
열심히 수행해서요
좀 전에 언급했듯이
인내는 불성과
아무 관계도 없어요
인내심은
불성을 얻기 위한
도를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내심을 배우면
언젠가는 성품의
한 부분이 될 거예요
그럼 그 때에
좋은 거지요
자신을 억압하는 게
꼭 공덕을 버는 건
아닙니다
참는다는
생각도 없이
참을 때
진정한 인내심인 거죠
여전히 참는다는 걸
안다면,아직 진정한
인내는 아닙니다
그건 가짜입니다
스승님,그는 자주
해외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여행중에
모르고 채식이 아닌
음식을 좀 먹을 수도
있을 거라고 하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채식을
먹을 수 있는지
모른다면,
물어 봐야만 해요!
동물 성분이나
계란이 들어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만약 없다면,
그걸 먹어도 돼요
아주 간단하죠
스승님,전 스승님의
『즉각 깨닫는 열쇠』
1권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을 좀 봤어요
왜 그렇지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갑자기 누군가가
어둠에서 빛을 봤다면
그건 뭘 의미하죠?
아는 사람 있나요?
(깨달음을 얻은 거죠)
당신이 깨달았다고
말하네요!
축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데
왜 당신은 모르죠?
그가 또 질문했어요
명상중에
어떨 땐 낮은 육체에
대해 생각한다는데
『간통하지 말라』는
계율을 깬 건가요?
그런 생각을 하는건
괜찮아요
습관 문제입니다
그건 사회로부터의
영향과
우리 육신과
음식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안 그러면,
모든 생각들이
계율을 어긴게 됩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어떤 생각도
계율을 깨지 않긴
거의 어렵습니다
스승님,부처가 되려면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출가하거나
만트라를
외워야 하나요?
아닙니다
당신은 삼계를
뛰어넘으면
부처가 됩니다
삼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이
진정한 출가자예요
머리카락을
깍든 말든지요
또 그가 승려복을
입든 청바지를 입든
상관없습니다
스승님,어떻게 하면
사람이 한 생애에
해탈할 수 있나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됩니다
관음법문은
내면의 힘을 좀더
빨리 알게 해 주는
길입니다
이 힘을 이용하면 돼요
그럼 한 생애에
해탈할 수 있습니다
스승님,
중생들은
원래 전혀 나쁜
업장이 없었나요?
만약 그렇다면,
뭣이 그들을 삼계내로
떨어뜨린 원인이죠?
물론,
중생들은 처음에는
나쁜 업장이 없었어요
심지언 중생들도
없었죠,나쁜 업장을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지금 이미
우리는 중생이 됐어요
우리는 이미
나쁜 업장이 있으니
그걸 씻어야 하죠
만약 내가 『아뇨,
당신에겐 나쁜
업장이 전혀 없어요
수행할 필요도
없어요』라고 하면
그게 옳을까요?
그걸 믿어요? (아뇨)
믿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이 영적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럼 당신은 진아인
결코 나쁜 업장을
가진 적이 없는 자를
알 수 있어요
만약 우리가 나쁜
업장이 없는 자신의
진아를 알지 못하면,
자신이 나쁜 업장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믿지 못합니다
그게 문제죠
관음법문은
잘못된 관념을
없애 줄 수 있으며
우리가 나쁜 업장을
가진 적이 없다는 걸
알게해 줍니다!
스승님,왜
비입문자는 관음법문을
수행할수 없나요?
왜냐하면 어떻게
수행할지 모르니까요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걸 수행할 수 없죠
스승님,
모두다 나쁜 업장을
얼마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씻어내죠?
관음 법문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관음의 힘을
사용하세요
왜 관음 법문
수행자들은
자신의 나쁜 업장을
씻을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이 법문이
자신의 내면의 힘,
전능한 힘을 열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죠
전능한 힘은
뭐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이 힘으로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나쁜 업장을 좀 씻어
내는건 말할 것도 없죠
예로,
만약 누군가에게
백달러나,만달러나
심지언 백만달러를
빌렸다면,
어떻게 그걸 갚죠?
당신은 오직
한달에 만달러밖에
못 벌죠,그런데
백만달러 빚졌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
만약 부모로부터
유산을 받는 걸
알게 된다면,
재빨리 찾아서
당신의 빚을 갚지
않겠어요? (네)
마찬가지로,우리는
나쁜 업장이 있어
죄책감을 느끼고
실수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어떻게
이런 죄를 씻지요?
재빨리 우리의
무한하고 전능한
공덕을 사용해
이 작은 악업을 갚지
않겠어요? 맞죠?
예,그래서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
나쁜 업장을
없앨 수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공덕은
무한하지만 나쁜
업장은 유한하니까요
그래서 무한한 힘으로
한정된 나쁜 업장을
씻는게 쉬운 거예요
스승님,
왜 부처는 중생을
안도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에게
생노병사의
고통을 줘서 병들고
고통받게 하나요?
또,과학은
점점 더 발달하는데
왜 더 치료불가능한
질병들은 더 생기죠?
부처는 이런 고통을
주지 않았어요
우리 자신이 그걸
가져왔죠
부처는 오직
해탈을 도울 뿐이죠
그런데 우리 대부분이
해탈을 원치 않아요
아마도 원하겠지만
조금 뿐이죠
하지만 이 세상은 훨씬
많이 즐기고 싶어해요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겁니다
자비가 없다고
부처를 탓하지 마세요
부처와 보살은
아주 참을성이 많죠
항상 우리들을
기다리고 기다리죠
그들은 언제 우리가
이 세상의 작은
장난감들을 포기하고
더 높은 세계에서
참되고 고귀한 삶을
즐길지 몰라요
우리는 아직
불국토에 있으면
뭐가 좋은지 모릅니다
전능한 힘이
우리에게 가져올수
있는 행복을
모르지요
그래서 작은 장난감을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아직 이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죠
우리는 약간
영적 수행을 하고선
이 세상의 즐거움은
많이 갈망하죠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속세의 삶의 고통을
일으키는 겁니다
예로,
여러분은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걸 알죠
술을 마시는 것은
뇌에 종양을 일으키며
건강을 해친단걸 알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흡연을 포기못해요
심지언
담배 포장지에도
명백히 적혀 있죠
『흡연은 당신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그 꼬리표를 읽지만
여전히 흡연을 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부처와 보살도
친절하도록 가르치고
채식하며 자비롭고
동물의 살을
먹지 않게 가르치죠
하지만 우린 여전히
고기를 먹어요!
고기를 먹음으로써
오는 수많은 질병이
있습니다
과학적인 증거에 의해
명백히 입증됐죠
내 책
제 1권에 아주
명백히 나와 있지요
하지만 여전히 고기를
포기하지 못하죠
질병의 반이상은
입으로
들어옵니다
옛 조상들이 말했던
속담이 있죠
『질병은 입으로
들어온다』
옳습니까?(예)
부처가 고통을 줬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건 잘못된
비난입니다!
스승님,서양 사람은
태어날 때 기독교나
카톨릭이 되도록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왜 불교도는
불교도로서
공양을 바치고
절을 해야 하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전에도 언급했듯이
두가지 상황이 같은
경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신의
자녀로 태어났어요
세례는 필요치 않아요
우리 모두 신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우린 내면에 불성을
갖고 태어났어요
공양을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단지
외부 의식,
관습,
습관들입니다
내 가르침을 받는다면
내게 꽃조차도
줄 필요가 없습니다
말했듯이 과일 조각도
내게 줘선 안됩니다
여러분은 내면의
부처를 찾기 위해
집에서 영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영적 수행입니다
공양을 하든 하지
않는가는
예의의 문제입니다
사회적인 습관이죠
난 공양 하길
강요하는 스승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있나요? (아뇨!)
맞습니다!
이 모든 건 여러분이
만든 겁니다
네 여러분이 그런
스승들을 망친 겁니다
더 이상 공양을
하지 말고 스승이
요청하는 지 보세요
당신이 나를 따르면
아무 공양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시 불교도가
되거나 부처가
될 수 있어요
먼저 불교도가 될
필요가 없고 이것
저것하고 공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스승님
인간 세계에 업보가
정말로
존재하나요?
물론 존재합니다
분명히 보이지요
누군가를 죽였다면
그의 자녀가 당신을
찾아서 죽일 겁니다
안 그래요? (네)
맞아요
스승님,
장님과 벙어리는
어떻게 입문하나요?
우리 단체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내면의 체험이
매우 좋습니다
네,우린 귀가 들리지
않는 입문자가 있으며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도
입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겐 희망이 있죠
스승님,어떻게 하면
우리의 직관에 따라
행할 수 있지요?
다시 말해서 어떻게
우리가 아는 걸
행할수 있냐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걸
통합할 수 없다는 게
괴롭다고 했습니다
우리 탓이 아니에요
당신 탓도 아니고요
때때로 그건
나쁜 업 때문입니다
인간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여러분 혼자 변화를
만들순 없어요
예를 들어
여러분의 성격은
아주 훌륭합니다
원래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지만
그의 악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연관이 되어 있어서
복잡하게 되어
점점 더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그를 꾸짖게 되겠지요
많은 게 관계됐거든요
여러분이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업장과 관계가
있으니까요
최선을 다할 뿐이죠
나쁜 의도가 없다면
충분히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 목불이
되긴 어렵죠
목불만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육체가 있고
남들과 관계가 있어요
충돌은 불가피하죠!
문제를 완전히 없애긴
어려워요
최선을 다하세요!
스승님,
잘못된 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왜 타락하거나
마장걸리게 됩니까?
그건 내면의 힘이
드러날 때 적절하게
다루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에 말했듯이
우리가 내면에서
구할 때
무소부재한 힘을
찾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이런
내면의 힘이 드러나면
벌써 불안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안내해 줄
스승이 없으면
내면의 힘을 다루고
사용할 줄 모릅니다
전기를
예로 들어 봅니다
전기를 만지게 되면
조금이라 해도
전기충격을 받겠지요
맞지요?
하지만 전기를 다루는
방법만 알면
아주 강한 전기라도
매우 유용합니다
네,전문가가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 대한
전문가도 있고
이 세상 너머에 대한
전문가도 있습니다
우린 그런 전문가를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
모험을 하는 대신에요
감전사하게 되면
정말 큰일이잖아요
그 뿐입니다
스승님,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신통력이
있어서
미리 재앙이 올지
안다고 합니다
그는 불찬을 듣고
눈물을 흘렸으며
그의 지혜안이
진동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관음법문과
상관이 있을까요?
그에게
어떤 신통력이
있는데요?
자세하게 말하지 않고
언제 재앙이 오는지
미리 안다고만 했어요
그가 안다고요?
불찬을 들었을 때
울었답니다
그건 신통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불찬을 듣고
똑같이 반응했어요
불찬은 우리 내면의
갈망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는 거에요
영화만 볼 때도
우린 웁니다
불찬은 듣는 건
말할 것도 없죠
그건 별일 아닙니다
그는 미래의 재난을
볼 수 있어요
전생에 영적으로
수행을 했으니까요
그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좀 있어요
그것도 별거 아니죠
그에게 장애가
될 뿐입니다
예컨대 누가
삼일 뒤에
내 돈을 훔치러 와서
내 목을 벨 거란걸
안다면
삼일동안 잠을
설치지 않겠어요?
내가 그런 일을
미리 모른다면
적어도 삼일 동안은
잠을 잘 자겠지요
그런 다음 그냥
삼일 뒤에 죽겠지요
그게 안 좋은 업장이
오는 때이며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지요
우리가 그 일을
알든 모르든요
설사 오늘 안 좋은
업장을 피했다해도
내일 다시 올 겁니다
점술가를 찾아간
사람의 얘기가 있어요
점술가는 말했죠
『이번 달에
차사고를 당할 테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믿었어요
그는 돌아가서
아주 조심했지요
그는 차고에
차를 세워두고
잠가버렸습니다
그는 모든 목적지를
다 걸어갔습니다
그는 길 모퉁이나
대로로 안 다녔어요
그는 보도로만
다녔습니다
네,보도 말입니다
한 달이 다 가도록
아무 일도
안 생겼어요
마지막 날에
그는 말했어요
『거의 다 지나갔군!
내일이면 자유구나!』
그는 마지막 날
나기기 싫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이제 하루 남았군
집에 있는 게 좋겠어』
마지막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집에 있었어요
그는 문을 잠그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봤습니다
헌데 갑자기 심한
복통이 느껴졌어요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약을 좀 사러
가야 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괜찮아! 약국은
오른쪽에 있으니까
걸어가면 되지』
그래서 약을 사러
갔습니다
그는 도보를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알기도 전에
어떤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떨어졌어요
알다시피 장난감
자동차도 꽤 무겁죠
그게 머리 위에 떨어져
죽었죠 끝났어요
그것도
자동차사고 입니다!
스승님
출가승들이
부모님을 뵈러
집에가도 될까요?
네,왜 안되겠어요?
석가모니 부처는
성불 한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에 가서
관을 묻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영적 수행자가
나무조각이나
돌덩이가 아니란 걸
알리고 싶었던 거죠
영적 수행자도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 부모에게
성심을 다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인간 감정이 있었죠
부처도 제자들이
그 부분에 대해
명확히 하길 바랬죠
그래서 돌아와
아버지의 관을
날랐던 거예요
관을 날랐던 건
상징적이었어요
그럴 필요는 없었죠
제자들이 많았으니
부처대신
그들이 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부처도 여전히
인간의 감정을
가진 것을 제자들이
알기를 원했어요
스승님,
불경에는
『부처가 되기 위해선
삼십육만 년이 걸리며
수많은 영겁의 세월이
걸린다』고 써 있습니다
입문하면 바로 부처가
된다고 써있는데
여태까지
수많은 윤회와
환생을 통해
지은 업장은
어떻게 되나요?
당신은 이미
오랫동안
윤회를 했어요
삼십육만 년보다
더 오래요
다시 돌아오고
싶으세요?
이미 오랫동안
수행해왔어요
이건 지난 생이에요
당신이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수행을
해 왔다는 의미에요
이건 지구상에서
지난 생이에요
당신은 해탈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하길
거부하는 건
아직도 윤회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의미해요
아직 그들의 시간이
오지 않았지요
위대한 스승님,
스승님이 언급하셨던
관음법문을
어떻게 시작합니까?
관음법문이
무엇입니까?
입문부터
시작합니다
관음법문은
우리의 진아를 즉시
알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지요
원래 우린
어떤 존재였죠?
우리가 가진
힘은 무엇이죠?
우린 어디서 왔죠?
우린 원래 뭐였지요?
우리 힘은 어디 있죠?
고통으로부터
우릴 구하고
고통으로부터 친척과
친구를 구할 힘은
어떻게 사용하죠?
이것이
관음법문이에요
입문하는 동안
약간의 확증을 얻는데
그건 부처의 빛을
봄으로써
우리가 깨달았다는 걸
증명해주지요
『부처의 빛』은
우리 자신의 진아이죠
두 가지 양상이 있어요
하나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빛이에요
이것들은
우리 자신의 진동과
힘에서 옵니다
우린 이걸
알게 될 겁니다
이게 관음법문의
개요입니다
스승님,
우린 악업 때문에
이 세상에 왔습니다
입문해도 여전히
악업이 남아 있다면
더 높은 세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악업을
제거해야 합니다
입문 후에 내가
당신의 남아 있는
악업의 일부를
처리하는 데 도울게요
작은 악업조차도
남아 있으면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어요
그래서 당신은 입문할
필요가 있어요
스승이 당신을
돕기 위해
스승의 힘과 연결할
필요가 있지요
우린 하나이므로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내면의 교류인
입문을 통해 우리가
하나가 되면 당신의
문제는 네 것이 되죠
그렇게 하여
내가 중재하는 겁니다
그러면 난 당신을
묶고 있는 악업을
처리할 수 있지요
악업이 풀린 후 당신은
자유롭게 떠나지요
사실,
작은 악업조차도
당신의 해탈을
방해할 거예요
누군가에게 단지
십 센트라도 빚지면
떠날 수 없어요
많은 악업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스승과
관음법문이
필요한 겁니다
아니라면,누구의
도움도 없이 쉽게
떠날 수 있었겠지요!
그것은 마치 당신이
진흙 속에 빠졌다면
당신을 꺼내 줄 단단한
땅에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과 같아요
당신이 진흙 속에
빠지지 않았다면
당신을 구해 줄 사람이
필요 없는 거지요
당신 스스로 걸을 수
있으니까요
스승님,
이해를 통해서
깨닫게 되나요?
아니면 해탈을
달성했을 때만
깨닫게 됩니까?
이해로만은 안됩니다
진정으로 깨달을
필요가 있어요!
진정으로
해탈해야 합니다
진실로 체험을
입증해야 합니다
신체와 세상이 없이
모든 물질적인
현상을
초월하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난 많은 옷을 입지요
목욕을 하고 싶으면
그걸 벗어야 합니다
『옷을 벗는 것』이
옷을 입지 않는 것과
같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 아니죠
그건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난 확실히 이해하지만
실제로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게 소위
내적 체험인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옷을 벗는 건』은
『옷을 하나씩
벗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에요
당신은 실제로
옷을 벗어야 합니다
생사에서
해탈한다는 것도
똑 같은 거예요
당신은 진정으로
해탈해야 하며
해탈을 알아야 합니다
해탈의 의미를
단순히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아요
영적 수행은
이해가 아니라
실제로 내적 체험을
통해서 그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스승님,
사람이 깨달았다는
징후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깨달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요?
그걸 증명하는 건
어려울 거예요
석가모니 부처를
보세요
그와 보통 인도인과
다른 점이
있나요?
있어요? 없지요
인도에 가면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외모가
석가모니 부처처럼
생겼어요
대부분의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겼잖아요
외모로는
구별할 수 없지만
그와 얘기하거나
질문을 하면
그는 주저 없이
쉽고 빠르게
답합니다
그는 어떤 질문이라도
답할 수 있죠
이것으로 그가
뭔가를 갖고 있다는
작은 실마리가 되죠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입문을 줄 때
경전에
묘사된 대로
우리가 어떤
깨달음의 체험과
증거를 가진다면
그가 깨달았다고
우린 말할 수 있어요
그 사람에게
배우지 않는다면
그걸 잘
모를 거예요
그 사람에게 배우면
배울수록 그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지요
그게 아니면 그는
외모가 다른 사람과
똑 같을 겁니다
스승님,
선불교의
돈오법문은
당신이 가르치는
즉각 깨달음과
같습니까?
이 둘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것들은 원래
같았어요
그것들은 같지만
이른바
오늘날의 선불교는
다릅니다
고대 선불교에선
같은 관음법문을
수행했지만
현재의
선불교에선
덧없는
인간의 언어를 써서
오직 지적인 문제만
공부합니다
『내가 누구지?』
『누가 불경을
외우고 있지?』
『달마는 왜
중국으로 갔지?』와
같은 그런 것들만요
원래
이 둘은 같았어요
오늘날의 선불교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죠
스승님,카톨릭교
기독교,회교
그리고 불교 모두
같은 걸 강조합니다
선해지고
악행을 피하는 거죠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주일 학교에 다니고
목사가 됨으로써
영적으로 수행합니다
왜 불교인의
영적 수행은
오직 머리를 깎고
스님이나 스승이
되려고
절에 사는 것만으로
되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종교의
원래의 본질을
점점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서,오늘날
서양이나 동양이나
사실상
언제나 같아요
살아 있는 스승이
있을 때는 언제나
참된 법문과
진리가 있지요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수백 년이 지나면
그 법통은 점점
쇠퇴합니다
그것이 다른 장소로
확산됩니다
그러면
남은 제자들은
조직되고
함께 모이기 시작하여
종파를 이룹니다
그들은 죽은
스승의 상에
엎드리고
과거 스승의
경전을 읽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또한 점점
본질은 더 적게
남게 됩니다
법통의
본질이 없는
종교적 의식만이
점점 더 많아 집니다
서양인지 동양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스승 없이는
진리도 없습니다
내적인 가르침이
없이는 외적 의식만
남게 되죠
참된 가르침은
법통과
법통 없는 경전을
모두 포함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모든 것이 그저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이며 정말 무익합니다
그건 우리가
깨달은 스승을 찾을
시간이 없도록
우리를 묶는 겁니다
우리가 진리를 찾지
못하게 하지요
그건 더 나쁩니다
스승님,왜
부와 권력과 같은
세상의 힘은
없어질 수 있는데
영적 수행을 통해 얻은
이 세상 너머의 힘은
없어질 수 없습니까?
영적 수행을 통해
이 힘을 얻는다면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했습니까?
네,여러분 모두 이
세상의 힘을 압니다
이미 내가 그에 대해
말했지요
오늘 여러분은 공무원
이지만 내일은
죄수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부자이지만
내일은
거지일 수도 있어요
보통 사람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너머의 힘은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잡거나 가두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지요
이것이 수행을 통해
깨닫게 되는
내면의 힘입니다
우리는 이 힘을
원하는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원치
않는다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훔칠 수 없는 겁니다
이 힘은 완벽히 제어가
가능합니다
이 세계의 힘이 외부의
영향을 전제로 하는
것과는 달리 내면의
힘은 완벽히
우리의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가 가진
힘을 볼 수 없습니다
훔치는 건 고사하고요
그들은 돈과 사회적
지위를 볼 순 있어도
내면의 힘을 지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허락할 때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도록
허락할 때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도 당신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거지 혹은
평범한 사람
등등으로
생각 할 것입니다
그가 또 묻기를
한번 불성을 알기만
하면 그는
깨달은 것입니다
그가 더 이상 이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가족과
직업적인 책임을
포기하는 것입니까?
왜죠? 누가 그랬나요?
안됩니다! 세속적인
책임을 버릴 수 없어요
가족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도
출가한 제자가 있어요
그들이 책임을
다했고
모든 가족 문제가
해결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가족과
책임이 있습니다
계속 책임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더 많이 깨달을수록
자신의 책임을
더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오해입니다
더 깨달을수록
책임을
더 잘 다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악업을 해결
하겠습니까?
악업도 해결 못하는데
어떻게 해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린 책임을 다하고
일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습니다 그건 모두
갚아야 할 악업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망간다면
해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초연함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초연함은
마음속에서 집착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걱정이 없습니다
우린 우리를 가로막은
그런 덧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아이나 부인 등 모든걸
그냥 팽개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한 건 그게
아닙니다
스승님
한 난민 가족이
남중국해 섬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가족 전체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남자 가장이 크게
소리쳤어요
『관음보살님!
예수님! 모하메드님』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았어요
스승님,경전에서는
관음보살이 무소부재
하다고 하는데
왜 이 가족을 구하지
않았나요?
물론이죠,누가
이유를 말할수 있죠?
그 이유는 그들이
관음보살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영적 수행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석가모니 부처는
그렇게 열심히 수행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예수도 사막에서
명상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는 강연만 하면
됐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관음 보살
석가모니를
단순히 찬양하는 걸로
충분했을 겁니다
왜 우리는 열심히
수행할 필요가 있나요?
왜 석가모니
부처가 그의
가르침을 펴고
경전을 그렇게 많이
설교하며
그렇게 많은 법을
가르쳤을까요?
팔만사천법문은
말할 것도 없고요
관음보살을 외는 걸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아니오) 그렇습니다
우린 실제 관음보살을
알아야 합니다
우린 관음보살과
소통해야만
합니다
우리 내면의 관음
보살의 힘을 꺼내서
사용 해야만
합니다
이름은 외는 것만이
아닙니다
비스켓을 왼다고
배가 부르나요?
이것이 명확히
설명합니다
나는 진리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부처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잘못된
방법으로 수행합니다
석가모니가
진리를 말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우리가 관음보살을
알게될 때,
생사해탈과
재앙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에 세상에서 만들어진
덧없는 이름을 외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못 번역했습니다
번역자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세속적인
조건들을 붙였습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생각을
덧붙인 것입니다
불명확한 번역은
사람들의 영적 수행에
부정적 효과를 주고
보살의 이름을 외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걸로 충분하다면
왜 석가모니가
그의 제자인
아난다에게
『내면의 그의 자아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라고 했을까요?
그는 아난다에게
관음보살의 이름을
외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가 말했지요
『내면의 자아의
소리를 들어라』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우린 생사에서
해탈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관음』
이라고 부릅니다
이 관음이 진짜로
의미하는 건 내면의
소리를 관하는 겁니다
관음보살을 외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잘못 수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를 탓하지요
부처는 어떤 것도
잘못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스승님,예수는 산에서
사람들에게 빵 다섯
조각과 두마리의
생선을 먹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채식을
하지 않아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왜 채식을
옹호 하시나요?
이것은 오역에
의한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는 생선을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생선 2개로
5천명을 먹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생선 2마리가
5천명 에게 충분하죠?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중생들의
의지에 맞춘 것
뿐입니다
우린 중생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자비는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중생이 무엇을
원하든 우린 그것을
줍니다
그래서 대부분 인간이
부처가 되지 못하고
영적 수행에
실패하는 겁니다
그들이 세속적인 것을
원해서 그렇습니다
부처의 길을 걷길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세속적인 것을
주는 겁니다
그가 묻길,비록
스승님께서 『죽이지
말라』라고 했지만
현대 의약품은
인간 삶의 안녕을 위해
동물실험을 합니다
그런 실험을 위해
동물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의학이
발전하겠습니까?
살생을 했어도
진보가 없어요
그것은 무지입니다
과거에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살았지요
요즘은 많은
동물들이 실험으로
죽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질병은 많습니다
누군가 언급했듯이
전보다 더 많습니다
과거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질병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동물 실험이
유용한가요? 아니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실험을 원합니다
동물들은
무력하기 때문이
인간은 쉽게
그들을 잡아서
실험용으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물을 쓰지요
불쌍한 동물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 보다는 더많은
악업을 짓습니다
그리고 더많은
질병을 유발하지요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치료하기 힘든
그런 질병들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에이즈,암
그리고 전에 들어보지
못한 많은 다른 병들이
있죠?
동물을 시험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병원을 더 만들
뿐이지요
이전에는 병원이
아주 적었습니다
지금은 더 많지요
그것은 그렇게 많이
진보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진보는 우리 도덕성의
향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모든 인간이
도덕적이면 질병도
없을 겁니다
모두가 채식을 하면
암도 거의 없을
겁니다
만약 바꾸길 원한다면
내면으로부터
바뀌고 도덕적인
측면부터 바꿔야 해요
동물을 죽임으로써
바뀌지 않아요
약이 많다고 병을 더
치료하는 건 아니지만
더도덕적이면 가능해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죽이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스승님
채식을 하는데
반드시 계란을
먹으면 안됩니까?
안됩니다
계란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마녀들이 나쁜 영을
불러내는데
계란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계란을 먹으면
부정적인 영혼을
끌어올 것입니다
그래서 좋지 않습니다
계란은 수정란도 있고
무정란도 있어요
무정란일지라도
난자는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먹는다면 또한
살생의 형태입니다
계란이라도
부화만 되지 않았지
안에 난자가 있지요
스승님,
식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데 식물을 먹는 건
자비롭지 않은 건가요?
정말로
식물을 먹는 것도
자비로운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고기와 계란은
먹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식물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식물은 감각이 둔해요
상당 부분이 물로
이루어져 있고
의식도 거의 없지요
식물을 죽인다면 업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식물은 고통을 많이
느끼지 못하니까요
예를 들어,비행기가
날기 위해서는
많은 석유와 노동력
돈이 필요합니다
큰 트럭은 많은
기름을 사용하지요
하지만 오토바이는
훨씬 적게 사용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측면에 속합니다
영적인
측면으로는
식물은 거의 감각과
의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여도
느낌이 작은 것입니다
나무의 가지를 자른다
해도 다른 가지가
자라날 것입니다
때로는 두 개 세 개가
더 날 것입니다
나무는 실제로 더
이득이고 잃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돼지를 죽이면
영원히 죽게 됩니다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