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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말씀
우주의 에너지 1/3부 1989년 5월 8일 (포모사어)


한 포모사TV방송에 『마음의 여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티베트 라마승들과의 특별 인터뷰 시리즈를 방송한 적이 있지요 이 프로를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이 프로를 보면서 저는 무척 감동 받았어요 왜냐고요? 그 유명한 티베트 선사가 하는 말들이 스승님의 가르침과 모두 일맥상통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인터뷰에서 그 선사는 포모사의 불교 수행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얘기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포모사(대만)에는 사원도 많고 각 사원 마다 참배자들도 많다고 했지요 하지만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군가 자기들 사원의 신이 더 막강하다고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그곳으로 몰려갑니다

우리는 도를 찾을 때도 똑같은 실수를 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충고하면서 티베트 라마승들은 깨달은 스승을 찾는데 매우 진지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는 포모사(대만) 사람들은 여러 스승들에게서 많은 법문들을 배우며 그 모든 스승들이 서로 매우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린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고 했죠 우린 너무 욕심이 많죠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그것은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면 자신을 혼동시키기만 하죠 그리고 자신의 영적 수행을 가로막게 됩니다

스승님도 『즉각 깨닫는 열쇠』 1권에서 진정한 스승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스승님의 모든 강연에서 깨달은 스승을 찾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죠 그들 모두 다 같은 생각입니다

둘째,그 선사는 우리 인생의 목적에 대해 말했어요 여러분은 그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짐작 못할 겁니다 그는 우리 인생의 목적은 죽음을 찾는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을 겁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한적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인생의 목적이 죽음을 찾는 걸까요?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을때 모두 두려워하는 겁니다

스승님도 그녀의 책 제3권에서 논하셨습니다 스승님은 우리가 태어난 이후로 공부하는 방법과 먹고 일하며 행동하는 법 등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스승님의 법문인 관음 법문은 단순히 죽음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 부분을 읽을때마다 저는 감동합니다

스승님의 법문이 얼마나 특별한지 깊이 깨달았으니까요 얼마 전에 제 동료의 친척이 구강암으로 죽었습니다 죽을 때 암이 갑자기 돌발했어요 너무 아파서 그는 침대에서 딩굴었어요 아주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리들 대개가 인생의 전부를 명예를 찾고 이득을 얻는데 보냅니다 극소수만이 조용히 앉아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대할때 매우 두려워 합니다

우리가 지은 업장(응보)에 의해 끌려 가면서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릅니다 스승님은 죽음을 대하는 방법을 상세히 가르쳐 줍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삼가 경의를 표하며 스승님께 강연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중국 사람들은 영적 수행 전통이 있습니다 칭하이 스승님이 포모사에 온 다음부터 수행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늘 영적인 수행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고대의 경전들을 읽어보면 도덕과 영적 수행에 관한 가르침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에게 영적 수행을 상기시키는 경전들이 많아요 노자와 장자 공자,맹자, 묵자가 쓴 책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황제도 있고 요왕과 순왕 등등도 있습니다

또 더 많이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수행자들이 더 많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접할수 없는 큰 스승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책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죠 혹은 그들이 생존시에 제자들이 가르침을 적어놓지 않았거나 오늘날까지 그 책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를 들어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고대의 수행자들과 대화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다른 세계에서 봅니다 『영적 수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삭발을 하고 출가승이 되어 갈색이나 검은색의 법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산속 동굴에 숨어서 세상 사람들과 일체 접촉하지 않고 산나물을 먹거나 하루 한끼를 먹고 짚으로 만든 옷과 신을 신고 오두막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수행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수행』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이런 이미지를 마음에 떠올립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않됩니다 만일 모든 수행자가 삭발을 하고 출가승이 된다면 가족의 대를 이을 아이들이 하나도 없을겁니다 어느 쪽도 할수없어요 사람들 마다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못합니다 우리는 일할 사람도 필요하고 나라에는 정치가와 대통령,경찰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관음 법문을 권합니다

이 관음 법문을 수행하면 출가승이 될 필요도 없고 동굴 속에서 살 필요도 없으니까요 여전히 이 세상에 머물면서 의무를 완수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무 문제 없어요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생사 윤회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책임을 잘 완수해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불교 용어로 『인과 관계』 또는 『업장』이라고 합니다

이생에서의 정업은 우리의 과거 생에서 지은 행동의 결과입니다 과거 생에서 지은 선행이나 악행들은 이생에서의 행동과 사회적 신분 생활방식을 보고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 말하길 『정업(응보)는 바뀔수 없다』고 한겁니다

공자와 맹자도 모두 우리는 세상에 머물며 책임을 완수하고 동시에 영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느날 공자는 그런 은둔자들이나 세상에서 숨어 사는 사람들을 비웃었어요 그들은 스스로 가로 막고있다고 했지요 그는 우리 자신의 모든 면을 계발하고 싶다면 사회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린 도망갈수 없어요 우리가 학교를 무단 결석한다면 쓰기를 배울 수도 없고 지식도 얻을수 없지요,그리고 선생도 될 수 없습니다

고대로부터 진정한 영적 수행 방법은 세상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불교에서도 『불법(참 가르침)은 세상법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공자와 맹자만 그렇게 말한게 아닙니다 불교도 역시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세요 그가 잠시 숨기는 했어요 49일 동안 안거를 했으며 10년 넘게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진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이것은 그가 숨은걸 뜻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진리를 찾고 공부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다음 그는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는 중생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영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돌봤습니다 영적 수행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계율과 명상』 그리고 지혜입니다 공자와 맹자는 『도』와 『도덕』을 강조했습니다 『도』가 뭘까요? 도는 길을 뜻합니다 우리가 찾는 목표에 도달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도덕』이란 세상의 의무를 완수하는 겁니다

공자도 역시 『인,의,예, 지,신』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맹자도 비슷한 말을 했지요 그는 『자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우주적인 사랑』이라 했어요,그렇죠? 사랑과 같은 겁니다 자비가 없다면 사랑할 수 없지요 자비가 없다면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자비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두 똑같은 걸 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도 자비롭고 인자하라고 가르쳤으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같은걸 가르쳤습니다 맹자는 수행자는 덕스러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도덕은 불교의 계율과 같은 겁니다 동정과 자비는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맹자는 『호연지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이『호연지기』를 얻지 못하면 계율을 훈련하는 것 뿐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했지요 이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계를 지키고 선정에 들면 지혜를 얻는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계』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도둑질 간음,거짓말,도박 음주 등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이란 명상 중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대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호연지기』의 뜻을 물었더니 그는 설명할 수 없다고 대답했지요 하지만 그는 이 호연지기를 수행한다면,이것을 이해하고 얻는다면 그것이 곧 하늘로부터 땅에 이르는 모든걸 포함하는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맞지요? 『맹자』를 읽어 봤나요? 네!내가 맞나요? (네)그래요?고마워요!

맹자도 설명하지 못한 이 『호연지기』는 무엇일까요? 맹자는 대지혜를 지닌 수행자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유명하죠 그와 공자는 유가에서 가장 유명한 스승입니다 맞습니까? 하지만 그조차 호연지기의 뜻을 설명할 수 없었어요 이 정신이 공기라면 설명할 수 있었지요 공기도 천국에서 지구까지 어디든 있잖아요,그렇죠? 공기는 물 속에 있고 바위 속에 있으며 나무 속에도 우리 육신 속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공기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공기라면 그가 숨쉬는 공기라고 말했겠지요 그러니 그건 아니에요 그걸 우리 몸 안에 기나 기공에서 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게 우리 몸 속 기나 에너지라면 그가 설명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맞죠? 왜냐하면 기공을 하는 모든 이들이 어느정도 기나 에너지를 수련한 뒤에 기가 스스로 움직이는 걸 아니까요 맞나요? 맞아요? (예) 우린 기가 여기저기 온 몸을##도는 것을 느낄 겁니다 그걸 『인간의 기』라 부릅니다

그건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이 호연지기는 아주 거대하니까요 그건 육신 속에 갇혀 단순히 돌아다니거나 몸 속을 운행할 수가 없습니다 난 기공을 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나 역시 전에 기공을 했습니다 난 프로는 아니에요 전문가가 아니지요 조금 해 본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힘을 사지나 우리 손으로 보내서 손이 단단하고 힘이 넘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우리가 손으로 사람을 치면,그들은 분명히 다칠 겁니다 그래서 난 그게 온화한 수행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만뒀어요 손이 너무 강해지면 무심코 사람들을 해칠까봐 난 두려웠습니다 그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하지 않아요 난 그걸 안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게 있다고 알려주는 거죠 그래서 맹자가 말한 그 고귀한 정신이 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는 아직 너무 유한하니까요 그걸 꺼내서 여기 넣고 어떤 행위나 일을 할 순 있지만 그건 그다지 온화하지 않습니다

『호』란 말은 광대함을 뜻해요 그건 도교에서의 『태극』과 같은 뜻을 지닙니다 『태극』도 아주 거대한,가장 커다란 궁극의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광대함과 같은 거지요 앞에서 우린 유교와 도교가 다른 말을 쓴다고 해도 생각해보면 그들이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호연지기는 대단한 겁니다

적어도 노자가 말했던 『태극』만큼 위대한 겁니다 아니면 『태극』만큼 크고 거대한 무엇입니다 그건 평범한 공기나 내면의 기나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몸 속에는 정말로 기나 에너지가 존재합니다 그게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몸 속에는 소위 말해 두 가지 기가 있습니다

맹자가 말했던 기는 두번째 기라고 난 생각해요 첫번째는 기공에서의 기입니다 우린 그걸 느끼고 통제할 수 있으며 우리 온 몸에 그걸 보낼 수가 있습니다 에너지로 쓸 수 있지요 기공을 하는 이들은 때론 칼에 의해서 다치지 않습니다 그가 기를 내면에서 외부로 밀어내면 자기 근육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럼 때려도 아프지 않을 겁니다 그를 찌르려고 유리 조각을 쓴다해도 그를 해칠 수 없어요 사실입니다 그래요 또 큰 철봉으로 몸을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근육이 아주 단단해졌으니까요

우린 기를 모두 여기 모아서 쇠와 칼도 뚫을 수 없는 정도로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주 강력하지요 이 기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어떤 기지요? 나면서부터 우리가 이미 가진 겁니다 누구나 그게 있어요 이 기는 우리 몸의 순환을 도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독을 내보내기 위해 있는 겁니다 땀이나 눈물처럼 그건 우리의 배설계지요 지배인처럼 그게 우리 몸을 돌보지요 이런 기 없이 우린 못 삽니다

우린 처음부터 그걸 안 건드려야 합니다 그게 더 낫지요 그걸 건드리면 우린 자연스럽게 정돈된 시스템을 방해하는 겁니다 이런 걸 봤어요 말하지 않을게요 난 끝까지 기공을 했던 몇몇 사람들을 봤는데 그들은 달라졌어요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하지 않을게요 여기선 말 안할게요 그들을 몰아냈다고 할까봐 두렵군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지혜와는 아무 상관 없어요 기공을 하는 사람들은 지혜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그들의 몸이 더 건강하고 칼로 다칠 수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지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혜를 여는 데 기공을 쓸 수 없습니다 이 기는 내면에 있고 몸에 속하니까요

그건 물질적인 에너지에 속합니다 통제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기가 있습니다 두번째 기는 우리가 통제하는 게 아니에요 자연히 존재하는 거죠 그건 첫번째 기를 통제합니다 따라서 첫번째 기조차 그것의 통제를 받습니다 첫번째 기는 없어도 모든 생명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기가 없으면 무엇도 존재 못하지요 그것이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의 기입니다 몇몇은 자정 이후에 밖에 나가서 자연의 공기를 들이마시며,그것을 『호연지기』로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렇다면,맹자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그걸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울락(베트남)에 호연지기가 천국과 지구가 합일하는 자정의 자연 공기라고 여기는 몇몇 영적인 수행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때 숨쉬러 나가야 한다고 믿지요 그럼 그들이 『호연지기』를 훔칠 수 있으니까요 난 그들이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해요 맹자가 『호연지기』을 묘사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그게 아주 크고 광대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게 공기라고 하겠어요? 따라서 그건 뭔가 다른 것이 틀림 없죠 그래서 고대 사람들의 말을 후대 세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나 역시 전에는 잘못 생각했었죠 호연지기가 공기일 거라 생각했어요 깨닫지 못했던 때이니까요 그래서 한밤중에 진지하게 밖에 나가 반쯤 감긴 눈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곤 했죠 고된 일이었어요 힘들었지만 얻는 게 없었죠 그러나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나서 맹자가 말한 그 『호연지기』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답할 수 없죠 그냥 알 뿐입니다 그게 뭔지 알고 싶다면 여러분 스스로 알도록 도와줄 방법은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이를 알고 난 후. 누군가 또 여러분에게 물어보면 여러분 또한 어떻게 설명할지 모를 겁니다 그러나 대략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어요 완벽히 설명하지 못할 뿐이죠 태극이나 도를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것처럼요 노자는 도는 형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도 선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호연지기는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사랑의 힘, 에너지라는 겁니다

이로서 만물이 생겨나고 만물이 존재하며 그 본연의 특성을 발현하지요 유교 경전에서도 우리의 본연의 품성은 이 심장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본성,즉 진성은 천지에서 받는 것이라고 하죠 공자는 또한 말하길 참된 본성을 앎으로서 천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죠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불성』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죠? (네) 그래요 유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과 참된 본성은 같은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는 『일단 자신의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되리라』 라고 했던 거죠

유교에서는 일단 자신의 본성을 보고 이해하면 천하를 이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주를 이해할 것이라고요 같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나요? (네)

자, 석가모니 부처는 말하길 관음 법문이란 것이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를 『내면에 귀기울여 자성을 듣는 법문』 이라 부르죠 맹자는 이 호연지기는 아주 크고 아주 깊어 형언할 수 없지만 모두가 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도 심오하기에 그 자신만이 얻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지요 그냥 이를 안다고만 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그는 답하길 자신은 선악을 알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유가에서 사람들에게 군자의 도덕과 성품만을 가르친 게 아니란걸 알 수 있지요 그 보다는 호연지기를 기릅니다

그래서 내가 전에 강조하길 5대 종교는 모두가 원래 같은 것을 수행했다고 한 거죠 모두가 최고의 힘을 기르고 자신을 수련하여 우주의 궁극적인 힘과 하나가 되려 했습니다 그런 후에야 우주와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지금 우린 한낱 인간으로 하늘에 대해선 알지 못하죠 우리가 호연지기의 법문을 수행하면 그 호연지기 안의 참된 자성을 깨닫게 되어 『우주와 합일』이 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린 이 사회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사는 법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완전하지요 자선도 베풀고 오계도 지키며 열심히 수행할 의지도 있지만 선정이 부족하죠 그래서 지혜가 없지요 이제 우리는 이 호연지기란 무엇이며 얼마나 위대하기에 맹자도 설명할 수 없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이는 창조의 힘, 우주의 어머니라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모두가 도를 얻을 수 있다 했어요 마찬가지로 석가모니 부처도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죠 그렇지 않나요? 예수 그리스도도 『지금 내가 한 일을 장차 너희도 할 수 있다』라고 했지요? 『너희도 나만큼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런 점을 간과한다면 우린 모든 종교가 다른 말을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이를 좀 더 깊이 연구 비교해보면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난 모든 종교가 원래 좋다고 한거죠 그러니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 호연지기는 묘사할 수는 없어도 느끼고 체험하고 얻을 수는 있습니다 호연지기를 얻기 위해선 관음 법문을 수행해야 하지요 관음 법문은 『호연지기의 법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별다른 게 아니죠 그냥 이름만 다른 겁니다

그럼 맹자는 이를 왜 『기』라 했을까요? 이는 일종의 에너지, 『기』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진동입니다 그래서 『기』라고 부르죠 고대 사람들도 우리처럼 적당한 말이나 이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영적 체험을 말하고 싶을 때 맞는 말을 찾을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냥 되는대로 사용했던 겁니다

나도 때로는 관음 법문을 『죽는 법문』이라 하기도 하기도 하고, 『지혜의 법문』이라 하기도 하죠 어떻게 부르든 그 형언할 수 없는 걸 제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허나 이 법문은 어떻게 부르든 우리가 그 형언할 수 없는 것,말로 할 수 없는 도를 얻도록 도와줄 겁니다 이 기는 항상 있어요 온 우주를 감싸고 있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여 쓸 수 없는 겁니다 만약 이 『기』로 우리의 정업, 이 세상의 정업(응보)를 바꿀 방법을 말해주는 현명한 이가 있다면 우리도 이 창조력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세상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창조주의 비밀을 훔칠 수 있다면 우리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정업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을 바꿔야 할까요?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고 우리 자신이 너무 많은 고통을 겪는 걸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나은 분위기를 만들어 모두의 삶이 더 쉬워지고 더 견딜만하게 만들고 싶은 겁니다 이것이 영적 수행의 목적이지요

때로 우린 괴롭지 않고 인간이 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허나 다른 이들의 고통을 보면 영적 수행을 하여 우주 비밀의 열쇠를 얻어 이 세상을 바꾸고 친척과 친구를 구하고픈 갈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 전엔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겠죠

예를 들어 석가모니 부처가 관음 법문을 수행하기 전 깨닫지 못했을 때 그는 왕자였지요 그는 궁전 안에 모든 게 다 있었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족했습니다 부족한 게 없었지요 그는 고통과 아픔이 무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적 수행을 추구하고픈 갈망이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도시를 둘러보러 궁 밖을 나서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생로병사로 고통받는 걸 보게 됩니다 그 때 그의 자비심이 깨어나 모든 것을 치유할 방법을 찾고 싶어하게 되죠 이를 찾기만 하면 다른 이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그의 목적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된 목적은 남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을 겪는 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적 수행을 추구하게 됩니다 또한 고통을 겪지 않는 자도 고통을 겪는 다른 중생을 돕기 위해 영적 수행을 원하게 됩니다 우리가 유가에 속한다면 맹자의 본보기를 따라 호연지기를 수행해야 합니다 호연지기는 설명하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우리의 천국의 문이 열리고 지혜의 문이 열리면 이를 알게 될 겁니다 그냥 알지만 설명할 수는 없지요 다른 이에게 꺼내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린 소중한 『호연지기』를 가졌다는 걸 압니다 호연지기를 얻은 다음엔 뭐든지 쉽게 할 수 있죠 이건 원래부터 돈이 별로 없으면, 뭘 하든 쉽지 않은 거와 같죠

우리가 미국에 가는 게 어려울 겁니다 또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죠 우리가 많은 돈을 벌고 난 다음엔, 어떤 일을 하든 매우 쉽지 않겠어요? 또,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 해도 매우 쉽지 않겠어요? 가령 자신을 위해 돈이 필요 없다 쳐요 그건 좋습니다 고아원과 미망인들, 또 나이 드신 분들과 병들고 고통받는 자 또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쓸 수 있지요? 유사하게,일단 고귀한 영혼이나 진아 또는 창조주의 비밀을 획득하게 되면 우리 자신의 정업과 다른 사람의 정업(응보)도 변화시킬 수 있죠 우리는 그들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

이 생애를 바꾸는 건 쉽지 않지요 그렇지만 사실 또한 큰 업은 감소하고 작은 업장(응보)는 녹일 수 있어요 또 현실을 꿈으로 변화시키죠 예를 들면, 일단 우리가 고귀한 호연지기를 얻으며 창조주의 힘으로 설사 어떤 제자가 차 사고가 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는 사람이어서, 그의 생명을 잃게 예정돼 있더라도, 차 사고를 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밤에 그가 차 사고가 난 꿈을 꾸는 거죠 그게 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아침엔 자리에서 일어나 일하러 공장에 가죠 만약 그 차 사고가 꿈에서 안 일어났다면 그 제자는 생명을 잃었을 겁니다

그래서 비록 정해진 업장(응보)를 바꿀 순 없어도,여전히 약간 비틀 수는 있죠 또,어떤 사람이 차 사고로 생명을 잃을 거였는데, 결국엔 손이 부러져 고통을 받았죠 그게 다입니다 그때 그냥 몇 바늘 꾀 멜 뿐이죠 큰 업이 작은 업으로 바뀐 겁니다 또,원래 그 사람이 지옥으로 가기로 예정돼 있다고 합시다 전생에서 만든 무거운 업장(응보) 때문에요 그런데 그때 우리가 호연지기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업을 약간 바꿀 수 있어서 그를 아프게 해서 짧은 시간 동안 좀 고통을 겪게 하는 거죠 지옥으로 갈 업장(응보)를 대신해서요

그래서 영적 수행자는 정말 무한한 힘을 갖고 있으며,뭐든 그가 하고자 하면 쉽게 그걸 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때에만, 우리가 이 우주와 하나라고 말할 수 있죠 만약 우리가 이 우주와 하나가 아니면, 우린 오직 인간입니다 우리가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오직 인간의 능력만 갖는 거죠 여러분 모두 알죠 인간의 능력이 아주 제한돼 있다는 걸요 우리는 눈으로 벽을 투과해 볼 수 없죠 또 우린 귀로 아주 멀리까진 못 들어요 비록 우리 시야가 잘 훈련돼 있다해도요 마치 리루처럼요

고대 황제시대 때 리루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죠,맞죠? 그는 아주 멀리있는 장소까지 볼수있었죠 머리카락 한 올을 몇 키로 밖에 두어도 그는 아주 분명하게 그걸 볼 수 있었죠 설사 그의 시야가 그렇게 좋아도… 또 사광이라 불리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음악의 음조를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었죠 하지만 신비한 내면의 음악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내면의 신비한 음악은 호연지기로 진아이며 또 불성이고 천국의 힘이죠 그것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린 이 생애에서 매우 무기력하죠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하고 싶어하지만 이룰 수가 없습니다 충분한 힘을 갖지 못했으니까요 때로 우리 이웃이 너무 고통 받거나 아주 아프면 우리가 그들을 좀 돌봐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할 수 있나요? 우린 자신의 가족 만으로도 바쁘죠? 우리는 남편과 아내 또 아이들이 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는 오직 한 사람만 돈을 벌어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결국 남편과 아내가 돈을 벌어야만 하죠 또 자신의 자식들도 잘 돌보지 못하죠 이웃사람들의 아이를 돌보는 건 놔두고요 정말 비참할 정도죠 우리가 이웃을 돕길 원치 않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능력이 제한돼 있어요 그래서 때론 우리도 편치 않고 자신을 탓하게 돼요 정말 남을 돕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죠 그때 기분 나쁘며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죠 하지만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신의 힘인 호연지기가 필요하며 그것이 우릴 위해 일해주며 친척들과 친구들을 돕도록 해야 합니다 이 육체의 몸을 써서 돕는 대신에요 이 육체적인 능력으로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런데 오직 호연지기 진아 불성과 또는 부처의 힘만이 더 큰 도움이 돼요 그건 동시에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니까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해서요 관음보살이 이 고귀한 영혼을 얻었죠 내면의 힘이자 창조주의 비밀스런 열쇠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수천의 장소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었으며 그래서 그녀가 천수 천안을 가졌다고 하는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창조주의 가장 위대한 힘이자 광대한 고귀한 영혼을 획득하고 난 다음에, 수십억 화신을 나툴 수 있었지요 또 사람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천국에서 불국토로, 이 세상에서 부처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죠

공자가 가르쳤죠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완전한 선이다』 맞습니까? (예) 처음에 우리는 타고난 좋은 성품이 있는데 이 뜻은 우리각자에게 선함이 있단 의미죠 맹자도 각자에겐 예민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무엇에 대해 예민하다는 걸까요? 그가 예를 들었죠 예들 들면 우리가 누구든 간에 우리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또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많이 배웠든 안 배웠든 아이가 우물에 떨어지는 걸 보며 그애를 구할수 없으면 걱정이 되고 또 급히 그애를 구하러 가지 않겠어요? 이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게 우리의 진정한 좋은 천성이죠

우리에게 타고난 좋은 천성이 있어서 영적으로 수행하길 원하며 고귀한 영혼을 획득하는 겁니다 개인적인 힘에 달려 있기 때문에 모두를 돕진 못하죠 이 세상엔 너무 많은 고통이 있어요 우린 나눠야만 하며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서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야 해요

타고난 좋은 성품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는 40년간 어려움을 견뎠어요 타고난 선함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죠 그리고 타고난 좋은 성품 때문에 공자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르침을 전했어요 많은 국가에서 그를 공격했죠 여러 번 거의 목숨을 잃을뻔했어요 영적으로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며 아직 이 우주와 하나가 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타고난 좋은 성품이 있죠

우린 공자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유명하지도 않죠 석가모니부처처럼 역사에 우리의 이름을 남기지도 않을 겁니다 그건 왜냐하면 타고난 좋은 성품을 계발하지 못했으니까요 우리가 타고난 좋은 성품을 완전히 계발할 방법을 찾지 못했지요 남을 돕길 원하지만 그 방법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어요 우리 잘못이기도 해요 그러면 잠잘 때 불편함을 느낄 겁니다 누구 잘못인가요? 우리 자신의 잘못이죠 그래서 한가지 법문을 말해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타고난 좋은 성품을 계발하도록 도와주고 자비롭고 인정 많은 원래의 바람을 완전히 인식하도록 돕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걸 보면 걱정돼서 급히 서둘러 도울 방법을 궁리해요 이건 우리에게 이미 자비가 있다는 겁니다 그걸 말해줄 경전이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 우주엔 수십억의 중생들이 있으며 그들은 우물에 빠진 아이보다 더 나쁜 상황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냥 멀찌감치 앉아서 매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처음에 모든 사람은 좋은 성품을 가졌다』고 말할 순 없어요 또는 『태양 아래에 할 일이 없다』 또는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라고요 또 뭐가 있죠? 더 큰 말들이 없나요?

사람들은 종종 큰 말들을 인용하죠 『행주좌와가 다 선이다』 이런 것들을요 그런데 우린 계속 무력한 삶을 살고 있죠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린 이 위장을 위해 온종일 일하며 다른 이상은 잊어요 그래서 고대 경전을 읽게 되면 깨달은 스승을 섬길 때 그들이 우리자신의 가장 높은 이상을 대표하는 지 알아야 해요 그들과 같아지려고 갈망한다면 그건 우리가 진실로 그들을 섬긴다는 의미죠

매년 멋진 옷을 입고 유교 사원에 가서 소를 제물로 바치고 두세 번 절을 하는 것 또 긴 문헌을 읽고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참된 숭배가 아니에요 그건 사람들을 돕는 방법이 아니죠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 아니에요 불교도들이 절에 가서 많은 과일과 꽃들을 석가모니 불상 앞에 바치고 두세번 절하고 먹을 과일을 집으로 가져오는 건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거죠? 누가 알죠? 왜 신은 불공평하고 우리가 고통 받도록 놔두죠? 왜 부처는 자비롭지 않고 우리가 괴로움과 슬픔에 빠지도록 놔두실까요?왜죠? 이건 공안이에요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겠어요 공안은 빠른 답을 요구하는 즉석 질문이에요 하실래요? 무지요 이건 변명이 아니에요 맞아요 다른 답은요? 우리의 업장(응보)가 너무 무거워요 당신은요? 교훈입니다 우리가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반드시 그런건 아녜요 또 뭐죠? 우린 깨닫지 못했죠 깨달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지요 우린 자비심을 키워야 합니다 맞습니까? 그걸 의미하신 건가요 좋아요 맞아요 깨달았군요 이런 겁니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고통 받는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질병 통증 고통이나 가난과 힘든 일을 경험해보지 않고는 우리의 타고난 선한 본성을 개발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기 때문에 아직도 안 깨어났다면 너무 느립니다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내게는 고귀한 정신과 우주의 비밀에 이르는 열쇠를 얻을 수 있고 모든 질병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고 천국의 문을 열고 지옥의 문을 닫고 수많은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관음법문입니다 우리자신이 수련하지 않고 하루 종일 도덕경이나 금강경,혹은 어떤 종교경전을 읽기만 한다면 어느 중생이나 동포 이웃들,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영적 수행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이론과 실습입니다 이론은 경전과 다른 책 읽기를 통해 우리의 깨달음을 계발하고 수행하기 위해 깨달은 스승을 찾도록 고무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말하거나 책을 읽을 순 없습니다 물론 노자,장자, 공자,맹자 모두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에 공헌해야 하고 지도자와 국가에 충실해야 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배우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도덕규범들을 모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도덕규범을 떠나서 노자와 공자는 묘사할 수 없는 힘 호연지기 우주와 하나되는 품성에 대해서도 강조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설명했던 것과 같이 인간의 힘이 유한하기 때문이죠 앞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지만 도울 수 없지요 우리가 일개 개인이기 때문이에요 전세계를 구하길 원한다 하더라고 여러분은 한 육체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포모사(대만) 사람들을 구한다면 중국본토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중국 본토 사람들을 구한다면 미국인들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아프리카 부시맨들을 어떻게 하죠? 그래서 우린 여전히 신의 힘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힘들 대자연의 타고난 본성과 고귀한 정신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스승님 에고가 저희 힘만으로 없어질 수 있다는게 사실인가요?

네 맞아요 에고가 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후 에고를 통제하고 줄이고 없앨 수 있죠 누구도 우리 대신 그걸 할수 없어요 하지만 밖의 상황이 많은 도움이 될수있죠 예를 들면 우리가 실수를 하고 그걸 미처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옆 사람이나 스승 혹은 형제자매들이 그것을 보고 직접 지적을 하든지 한두 마디 꾸짖는 말을 해줍니다 좋은 동료이기에 불필요한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때 우리는 깨어날 겁니다 에고를 없애는데 이 방법도 효과적이죠 하지만 이런 친구는 매우 드뭅니다 사람들은 아부하며 살죠 진실한 친구들만이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말해줄 거예요 범부들은 감히 우리를 화나게 하지 못합니다 스승님 마야가 부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같은 건가요?

마야가 부처의 말을 알 수는 순 있지만 그걸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안다는 것은 다른 수준 입니다 그래서 말의 의미를 음미해서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을 때 그때만 우리가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죠 그것들을 소중히 할 때 그 말들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따라서 석가모니가 살아있을 때 마야가 와서 석가모니 부처를 열반(최고의 천국)으로 초대를 했었죠 물론 마야가 석가모니 부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걸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부처보다 마야가 되길 택한 거예요 모두에겐 자유의지가 있죠

스승님 고대에는 선 창시자가 비밀리에 입문을 시켰었는데요 그것이 부처가 입문을 시키고 비밀리에 누군가 부처가 될 거라 예언했었던 불교의 전통과 같은 건가요? 이것이 스승님의 입문과 같은 건가요?

같아요 우리도 같은 걸 합니다

스승님 강연장에서 저는 영적 파도가 리듬을 가지고 진동하는 걸 느낍니다 강연장을 가득 채웠던 이 주기적인 진동이 호연지기입니까?

네! 하지만 그건 나의 호연지기죠 그래서 자기 것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강연에서 관음법문 수행자들은 매일 두 시간 반 명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쁜 산업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너무 오랜 시간이 아닐까요? 매일 더적은 시간동안 수행하고도 같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은 있지만 결과는 다를 거예요 행주좌와가 삼매상태에 있을 수 있으려면 먼저 하루에 두 시간 반 명상해야 합니다 매일 두 시간 반씩 명상하지 않으면 우린 이완할 수 없어요 영어를 배우는 것과 같아요? 우린 매일 열심히 공부해야 하죠 ABC를 읽고 지루한 대화문을 공부하죠 잘 지내요?네 좋아요 당신 이름이 뭔가요? 같은 것들을요 그런 지루한 대화를 하루 종일 외워야 해요 그런 단계를 거처야 합니다 나중엔 더 이상 읽거나 읊을 필요가 없죠

나중엔 언제든지 영어를 읽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 도약하길 원한다면 매우 어려울 거예요 두 시간 반 시간을 내는 건 쉬워요 예를 들면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TV보고 신문을 읽는 시간을 줄이고 잡담을 덜 하고 노래방에 덜 가고 전화통화를 줄이면 여분의 시간이 생길 거예요

스승님 제 어머니는 제가 영적 수행을 하고 출가하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출가자가 되길 바래요 스승님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네 하지만 먼저 입문을 해야 합니다 입문을 하지 않으면 나를 따른 후에 지루해질 거예요 내면의 소통이 없이는 매우 지루해질 거예요

스승님 입문 후에 제 직업이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도록 권하는 일이라면 업장(응보)를 얻게 되나요?

직업이 해롭지 않고 누구도 해치지 않고 살생하거나 술이나 고기를 파는 일이 아니라면 괜찮아요

스승님 어떤 스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천국에서 용신호법을 이 세상에 보내 사람들의 등급을 매긴다고 TV에서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틀 동안 자선과 방생 채식하기 등 좋은 일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질문이 있어요 우선 보시와 지계는 사람이 매일 해야 하는 기본적인 도덕적 행위들입니다 (예)왜 초하루와 보름 이틀만이 더 특별한가요?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양심에 따라 모든 걸 해야 합니다 왜 용신호법을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하고 우리를 판단하게 하지요?

맞아요 이 질문이 대답입니다 그 스승은 잘못된 걸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는 단지 모두에게 좋은 의도로 비밀 매수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사실 그에게서 나온 건 아니죠 지장경에 기록되었어요 그는 그 책을 읽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모두에게 그걸 쓰라고 말했죠 하지만 당신 말처럼 선행하고 덕 있는 존재가 되는 건 인간의 의무지요 매일 그렇게 해야죠

매달 초하루와 보름을 기다리는 대신에요 하지만 우리모두 인간의 심리를 알죠 호법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우리의 좋은 행동을 보여줘서 그들이 돌아가서 우리에 대해 좋은 보고를 하도록요 우리가 때로는 사장님이 주변에 없으면 사무실에서 커피 마시고 잡담하는 것과 같아요 맞지요? 언제 사장이나 감독이 우리를 점검하러 오는 지 압니다 그래서 그 날에는 우린 매우 잘 정돈하고 열심히 일할 겁니다 맞지요? 그게 전부예요 석가모니부처와 지장보살 둘 다 인간심리를 알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그래서 최소한 한 달에 이틀은 사람들은 선행을 해요 안하는 것보다 낫죠 석가모니 부처는 정말 위대한 심리학자죠

스승님 안녕하세요? 최근에 인생이 아주 무의미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학생인데요 학교의 지식을 얻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느껴져요 자퇴를 하고 싶지만 자퇴한 후에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제 인생이 좀 더 의미 있을까요?

예 그럴 겁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닐 수 있어요 학교에 가지 않으면 나중에 직장에 갈 때 좌절할 겁니다 학교지식이 없으면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더 절망할 겁니다 거의 마쳤으면 그걸 계속 견뎌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마치는 것은 당신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고 나라를 돕기 위해 더 능력을 갖는 거죠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은 여분의 것입니다 학업을 마치고 가족이나 자신에 대한 의무를 완수하는 게 더 좋아요 그러면 우리 마음이 편하죠 영적인 수행자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그들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고 영적인 수행도 견고하지 못할 겁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는 동안에 그걸 믿는 것이 중요한가요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어요 그들이 스승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나요? 혹은 믿는 건가요?

둘 다 합니다 그걸 이해할 때만 그걸 믿을 수 있어요 그걸 믿을수록 더 이해하지요 더 이해할수록 더 그걸 믿지요 내가 사용하는 건 모두 논리니까요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해해서 박수를 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해하고 날 믿으니까요 둘 다 가졌어요

스승님 여자가 출가를 하면 평생동안 팔경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녀가 뭐든 위반하면 불교의 질서를 어지럽히게 겁니다 이런 팔경법을 전파하는 것이 필요한가요?

아니요 팔경법은 이렇게 나왔어요 석가모니 부처의 어머니가 그를 따라서 비구니가 되려고 한 최초의 여성이었죠 원래 인도 여자는 비구니가 될 수 없었죠 고대 중국여자들처럼 외부에 나갈수 없었죠 이걸 아세요? (예) 그들은 아주 높은 벽안에 감금되었어요 그들은 남자를 볼 수 없었고 직접 남자에게 말할 수 없었죠 인도 여자들도 이와 같았어요 오늘 날에도 그들의 상황은 아직 비슷해요 그들이 외출하면 동반해야 합니다 여자가 혼자서 외출하면 강도를 당하거나 이용당하지요

좋아요 석가모니 부처가 여자에게 출가를 허용했을 때 그건 큰 혁명이었어요 그는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박았지만 이런 공격을 피할 수 없었죠 원래 그는 여자가 출가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고 사회가 그를 배척하여 나쁜 분위기를 만드는게 두려워서요 그래서 그는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이모를 시험하려고 팔경법을 만들었어요 그의 이모는 그에게 어머니와 같았죠 처음부터 그를 길러줬으니까요 그는 그녀에게 효도를 하고 싶어서 그녀를 거절할수 없었죠 그래서 이 방법을 사용한 겁니다 그는 말했죠 『만일 이 팔경법을 따른다면 비구니가 되게 해 주겠어요』

팔경법 중 첫째가 이랬어요 『나의 남자 제자들을 볼 때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출가승을 했든 그에게 절을 하고 그가 아무리 젊어도 그에게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할수 있겠어요?』 그녀는 하겠다고 했죠 그는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계속 어려운 일을 진술했어요 그의 어머니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불은 그녀의 헌신과 겸손함을 거부할 수 없었어요

석가모니 부처는 원래 생각하기를 그녀가 국왕의 아내인 왕비인데다 부처의 어머니라서 아주 거만하여 그녀가 와서 승단의 규율을 따르거나 그런 출가승을 존경할 리가 없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그런 엄격한 규율을 써서 그의 어머니를 시험했지요 그는 그의 어머니가 비구니가 되는 걸 말릴 의도였지요 그렇지만 그의 모친은 모든 규율을 수행했죠 그래서 그가 한 말을 돌이킬 수 없었어요 그는 그의 어머니가 출가승이 되게 했죠 그날부터 그의 승단에 비구니를 받기 시작했어요

팔경법은 그 시기에만 유용한 거였어요 그 시기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남자 제자들과 출가승들이 아주 겸손했으며 그들 대부분이 아라한과를 얻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불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고 또한 갓 비구니가 된 그의 모친이 그 아라한과 보살들을 존경하지 않으면 큰 업장(응보)를 짓게 됩니다 그 결과 그녀는 수행을 성공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죠 『제 제자들의 나이가 많든 적든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거만해지는 걸 막았고 미래의 비구니들이 행동을 가볍게 하여 비구들과 너무 가까워 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남녀간의 깊은 관계에 빠져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니까요 그 당시에는 필요한 일이었어요

스승님 화를 조절하는 것과 화를 누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어떻게 화를 다루지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어떻게 할 지 알게 됩니다 내가 방법을 말하기는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수행하면 지혜를 얻어서 우리가 그 순간에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테니까요 그러면 쉬워질 겁니다 때로 우리 일반인들은 화를 조절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요 힘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먼저 내면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걸 조절하는 방법을 알게 되지요 이건 가르칠 수 없어요 당신이 스스로 깨쳐야만 알게 됩니다

스승님 좀 전 강연에서 말씀하시길 일어나기로 예정된 나쁜 차 사고 같은 정업을 줄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관음법문을 배우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 사고가 생기는 꿈을 꿨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관음법문 수행자들은 지혜안에 집중하고 수행해야 하는데요 태극권은 수행해도 될까요?

과거에 달마대사도 쿵후를 가르쳐서 건강과 명상이 좋아지게 도왔습니다 태극권은 수행해도 됩니다 태극권은 호흡조절을 전혀 할 필요 없어요 운동으로 할 수 있습니다 태극권은 중국 전통 무술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을 죽일수있나요? 아니요! 그럼 수행해도 됩니다 죽이지 않는다면 수행해도 됩니다 죽일수 있다면 안되죠

스승님 잘 볼 수 없는 사람도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수행하는데 눈을 사용하지는 않아요

사랑하는 스승님 관음법문은 호연지기를 기릅니다 세상이 끝난다는 게 사실인가요? 세상이 파괴된다면 호연지기를 길러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맞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가 세상이 끝날 거라고 말한다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니 오늘부터 먹는 것도 그만두면 됩니다 뭘 하든 상관없이 언젠가 죽을 테니 세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 부와 명성을 얻거나 땀 흘려 가며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거나 높은 지위를 위해 경쟁하거나 수행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것도 소용없지요 조만 간에 우린 모두 죽을텐데요 그렇죠? 하지만 세상이 끝나든 말든 우리는 여전히 영적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 삶은 언젠가 끝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미래를 곧게 펴기를 바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죽은 뒤에 어디로 가겠어요? 우리가 모르는 사후세계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많은 영원한 곳이 있어요 이 호연지기의 법문을 수행한다면 우리의 본래면목으로 돌아가게 될 테고 머물 수 있는 다양한 세상을 많이 찾을 겁니다 앉아서 세상의 종말을 기다려선 안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천국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말해주세요 천국은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영원한 세상이며 그런 뒤 윤회를 통해 고통스런 세상으로 돌아올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죠 천국에선 영원한 행복을 얻을 겁니다

스승님 전 스승님의 강연을 많이 들었고 책도 읽었습니다 스승님의 강연은 움직이는 구름과 흐르는 강처럼 감명깊어서 완벽합니다 강연장이 즐거움과 평화로 충만합니다 우리가 천국이 아닌 세상에서 그걸 경험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정말 보기드문 현상이란 의미입니다 강연중에 스승님께서 어울락어(베트남어), 영어,혹은 중국어로 생각하시는지요? 스승님께서 강연중에 어울락(베트남)어와 중국어, 혹은 영어로 생각하시는지 물었습니다

난 부처의 말을 쓰죠 서너가지 언어로 생각해야 한다면 말할수 없을 겁니다 고대의 선 스승은 『말은 도를 방해한다고』 했지요

사람이 말하거나 생각하는 동안 도와 연결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요?

그는 『말이 도를 방해한다』는 건 말하는 중에는 도와 분리되어서 연결될 수 없다는 뜻인지 물었습니다 이런 뜻은 아닌가요?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옛날 사람들은 우리가 언어로서 도를 표현할수 없다는 것을 뜻했지요 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에요 그게 아니라 내가 말하는 도중에 도와 분리된다면 정말 큰 문제가 됩니다 나는 늘 도안에 있어요 말할 때조차 도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불교도가 기독교 병원에서 일한다면 아침 예배 시간에 신과 어떻게 대화할수있을까요? 만일 삼보와 불명를 조용히 외운다면 죄가 될까요?

왜 죄가 되지요? 기독교 병원에서 일하니까요 아침 예배가 있어서 그는 어떻게 신과 소통할 지 의아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 일한다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신과 가까워질 겁니다 왜 기독교 장소에서 불명을 외우면서 마음속에서 그렇게 심한 고통을 받으려 하지요? 만일 당신이 삼보를 어긴다고 느낀다면 불교 장소에서 직업을 찾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면 거기서 신과 예수를 암송하세요

아직도 모든 존재가 하나이며 5대 종교가 하나란걸 느낄 수 없다면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말하건대 거기서 외우더라도 삼보를 어기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 기관에 부처를 갖다 둬서 두 종교를 통합했으니 그들을 더욱 행복하게 할 뿐이죠 하지만 정말로 신과 소통하고 싶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해요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커피는 식물성 음료지만 자극제인데 영적 수행자도 마실수 있습니까?

마셔도 되겠지만 영적 수행자들은 그런 부자연스런 자극제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호연지기를 작동시키죠 우리 센터에는 차, 커피, 콜라, 자극성 음료를 모아두지 않습니다 때로 차를 마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엄격해서가 아니에요 차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면 마십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마실 수도 있지요 편하게 하세요 그러고 싶지 않으면 마시지 않습니다 중독된 사람처럼 매일같이 마시진 않습니다 이게 차이점이지요 우리가 움직이는데 차나 커피가 필요해서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거나 몸이 부서지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수행할수록 더 자유로운 겁니다 만일 뭘 갖고 싶다면 가지겠지만 우린 언제든 그만둘 수 있으니 괜찮아요

사랑하는 스승님 전 아직 입문하지 않았지만 입문식에서 전생의 모든 업장(응보)를 가져가신다고 입문자에게 들었어요 입문한 뒤에 스스로 제 업장을 없애길 바란다면 이것이 제 영적 수행에 영향을 줄까요?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많은 전생의 업장을 어떻게 없앨 수 있지요?

모두 없앨 수 있다면 입문할 필요가 없지만 당신이 못할 것 같군요 세세생생 너무 많은 업장(응보)를 쌓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호연지기와 연결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문 앞의 장애물을 치우는 걸 도와야 하며 여러분을 방해하는 모든 업장(응보)을 가져다가 태워버립니다 그러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지요

사랑하는 스승님 저는 묵상을 하면 어떤 진동을 자주 느낍니다 이것이 본성의 힘인가요?

아직 아닙니다 이건 내부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기공수행으로 생기는 내부 에너지며 호연지기는 아닙니다 호연지기는 좀 다릅니다 입문식에서 알게 될겁니다 우린 알수있습니다 그 진동은 호연지기가 아닙니다 평범한 법문으로 명상하면 이따금 진동을 느낍니다 그래서 명상할 때 내면의 에너지가 순환하기 시작하고 진동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아니면 내면의 몸부림치는 생각이 선악이나 내면의 다툼으로 바뀝니다 그것이 그렇게 느끼게 만듭니다 그건 호연지기가 아닙니다 호연지기는 진동하지 않습니다 그건 매우 평화롭고 잔잔합니다 그래서 침묵의 수행이나 침묵의 명상이라 합니다 만일 호연지기가 수행자를 진동하고 움직이게 만든다면 『동작수행』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만일 입문 중에 누군가 신구의가 순수하지 않거나 에고가 너무 크다면 그는 입문할 수 없을까요? 그런 사람은 입문이 소용없습니까?

그래도 효과는 있죠 우리 에고가 너무 크고 업장(응보)가 너무 많으며 아직 순수하지 않아서 그걸 씻으려고 결심한 거니까요 우리가 벌써 매우 순수하다면 멋진 일이죠 이미 부처라면 입문할 필요가 없겠지요 모두가 약간의 문제는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환영해요 친애하는 스승님 왜 불상은 대체로 가부좌를 하고 있는 건가요? 저희가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까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어째서 가부좌를 해야 하죠?

인도인들은 늘 가부좌를 한다는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들도 가부좌로 앉았지요 나중에 테이블과 의자를 갖게 되었고 많은 가구들을 발명했습니다 그 다음 의자에 앉기 시작한 겁니다 과거 사람들은 걸었으면 지금은 자동차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석가모니 부처를 그릴 때 걷거나 가부좌를 한 모습을 그리지 테이블이나 의자를 그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날 그린다면 자동차나 버스 기차 옆에 있는 나를 그려야 할겁니다 세상은 변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부좌를 하느냐는 취향에 달렸죠 하지만 명상할 때 가부좌를 하면 매우 안정감이 듭니다

삼매에 들어도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와 같습니다 서있다면 좀 더 위험해질 겁니다 서서 명상한다면 이상해 보일겁니다 한시간동안 서있는걸 아내가 본다면 아내는 걱정이 되어서 여러분이 괜찮은지 와서 밀어볼 겁니다 그럼 문제가 되죠! 가부좌로 명상하고 있는걸 본다면 아내는 이것을 눈치챌 겁니다 앉은 자세를 보면 그녀는 당신이 명상하는걸 알겁니다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남들은 당신이 삼매에 들었음을 알겁니다 서있거나 물구나무를 서서 삼매에 들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히기 시작하겠죠

영적 수행자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한시간동안 서서 명상을 한다면 스스로 문제를 찾게 될 겁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가부좌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서서 강연하는 것이 더 좋나요? 아니면 가부좌를 하는 게 좋나요? 이렇게 앉는 것이 더 편안합니다 더 오래 앉을수 있고 좀더 안정되어 있어요 긴장되지 않습니다 말하는 동안에 앉아있는 사람은 서서 말하는 사람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앉은 것이 더 친근하고 친밀합니다

서있는 것은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거나 좀 긴장하거나 달릴 준비가 된것처럼 급해보여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을 할 때 항상 앉아있었던 겁니다 또한 명상하는 것처럼 앉아있곤 했습니다 요즘에도 인도사람들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가구가 없어서 업무를 보거나 일하고 명상하고 책을 읽거나 부처와 신을 숭배하는 중에도 가부좌를 합니다 습관이 된 거죠 불교의 명상법이나 다른 몇몇의 법문들은 인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해진 것입니다

고대 영적 수행자의 대부분은 매우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공자는 강연을 하려고 수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의자나 테이블을 항상 갖고 다니진 않았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가는 곳마다 가부좌로 앉았습니다 가구는 없었지요 석가모니 부처는 49년간 설법했으며 사람들을 구하려고 모든 곳에서 강연했어요 부처가 의자와 테이블을 항상 갖고 다녔을까요? 그래서 고대의 중국인들도 대개 전통을 따라서 가부좌를 했던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강연하는 동안에 가부좌를 했으며 제자들은 강연하는 동안에 그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혹은 부처가 법(진정한 가르침)을 전하는 동안이나 명상하는 동안에요 물론 그때에도 가부좌를 했었지요 하지만 온종일 앉아있진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49년간 걸었겠어요? 누가 탁발했겠어요? 석가모니 부처는 모든걸 했습니다 걷고 쉬고 앉았으며 잠도 잤습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진정한 사원은 우리 가슴 안에 있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절을 세울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우리 도장에 멋진 사원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본질을 벗어날 겁니다 난 우리 도장이 늘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남아있길 바라며 겉모양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래요 우린 사원을 세울 시간도 없어요 내가 얼마나 자주 강연을 하나 보세요 어떻게 시간을 내죠? 미안해요 절을 가질 기대는 하지 마세요 하나도 바라지 마세요 우린 절을 지을 시간이 없어요 하나 짓는다 해도 감당할 수 없어요 우린 만 평방피트의 땅을 개발했는데 다 짓기도 전에 이미 북적댑니다 우린 방금 지붕을 마쳤어요 사원을 짓는 건 따라잡을 수 없어요 절을 짓는데 3,4년이 걸리는 거 알지요 난 짓고싶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난 텐트에서 삽니다 난 강연하기 위해 돈을 씁니다 멋진 절을 지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지붕만 짓고 천막을 치면 돼요 이런 걸 짓는걸로 충분해요 우린 절이 필요없어요

안녕하세요 스승님 현대 사회에서 우린 종종 살인이나 절도를 범한 사람들 얘기를 듣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사형을 받습니다 그들 중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잘못을 했다는 걸 종종 깨닫곤 합니다 (네)

스승님 이 깨달음이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인가요? 또한, 불교에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도 결국엔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아마 다른 시대나 다른 생에서요 이 생에서는 불가능해요 그들의 삶이 단절되었는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지요?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사형을 폐지합니다 아마 대만(포모사)도 나중에 폐지할 겁니다 우리 바람이에요 사람들이 도둑질과 강도질, 살인을 멈추는 게 최고지요 그러면 정부는 그런 끔찍한 형을 부과하지 않아도 돼죠 정부가 그걸 하기 원해서가 아니에요 그들은 단지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려 하죠 그래서 그렇게 엄격한 형벌이 있는 거죠 정부는 엄한 형벌이 사람들을 겁줄 거라 여기죠 정부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스스로를 검진하여 남들이 여러분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그만두는 겁니다 그리고 정부가 그런 법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걸 사용할 기회가 없는 겁니다 아무튼 그러면 안돼죠

스승님 우리가 관음법문을 배울 때 서약을 해야 하나요?

아뇨 서약을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린 아주 쉬워요

스승님 왜 명상은 저절로 우리의 나쁜 습관을 바꾸도록 도우지요?

그건 호연지기를 얻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동적으로 일이 정돈되며 옳고 그른 것을 알게 됩니다 맹자는 자신이 호연지기를 길러서 옳고 그름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스승님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해야 초자연적인 스승을 볼 수 있나요?

모두 상황에 달렸죠 어떤 이들은 입문 후에 몇 분만에 보며 어떤 이들은 수행을 시작한지 몇 일 후에 봅니다 어떤 이들은 몇 주, 몇 달, 몇 년이 걸립니다 어떤 이들은 죽을 때에 스승의 화신이 와서 그들을 낙원으로 데려가는 걸 봅니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가 보게 됩니다 비록 이 생에 보지 못하면 죽을 때에는 반드시 그녀를 보게 됩니다 그건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렇죠? 수 십 년이죠 절대 볼 수 없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렇죠?

스승님, 한 사람은 평화롭게 죽었으며 다른 사람은 병으로 죽었는데 이 두사람이 죽은 후에 결국엔 같은 장소로 가게 될까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때론 누군가 병으로 고통 받았다면 그것은 그가 업장의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관음법문을 수행했다면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거예요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평안히 죽었더라도 별거 아닐 거예요 천국엔 가겠지만 그 뿐이죠 생사에서 해탈할 수 없지요 혹은 불국토에 갈 수 없죠 사실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병으로 죽지 않아요 그렇지요? 대부분 평화롭게 죽으며 안색이 화사하며 자신들이 죽을 때를 미리 압니다 스승이 와서 그들의 손을 잡을 겁니다 그래서 평화롭고 높은 등급을 얻었죠 이것이 가장 안전한 죽음이죠 이런식으로 죽으려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스승님 우리를 해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죠?

업의 인과응보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인과응보를 강조해요. 아마 전생에서 그에게 뭔가를 빚져서 이생에서 기꺼이 그의 원한을 받아 들이죠 이후로는 모든 사람이 기쁘지만 눈에는 눈이라면 언제 보복이 끝나겠어요? 지금은 모두 알지요

스승님,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깨닫지 않은 사람들이 있나요?

예, 너무 많아요 그들은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두들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행주좌와가 모두 선이라고 말하면서 아무도 수행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걷고 쉬고 앉고 잠자며 시간을 낭비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시간이 되면 그들은 어디로 갈 건지 모르지요

스승님 육감도 신통력의 일종인가요?

육감이요? (네) 하지만 이건 실제 신통력이 아니에요 신통력은 의도적으로 사용하지만 육감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걸 신통으로 보지 않죠 그것은 그저 전생의 수행에서 물려받은 일종의 영적인 특성이지요

스승님, 저는 불교 스승에게 귀의했는데 지금은 관음법문을 배우길 원해요 과거를 참회하고 전에 배운걸 없애며 자유롭고 해탈하려면 뭘 해야 하나요?

참회할 게 뭐죠? 당신은 그 기간동안 그에게서 배웠어요 이제 나를 따르는 거죠 마치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듯이 등급이 올라간 거죠 참회할게 뭐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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