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혜의 말씀은 중국어 강연이며 보실 자막은 아랍어 어울락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어 스페인어 한국어입니다

포모사는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이란 뜻으로, 환태평양 지진대의 서쪽 끝에 있으며, 끊임없는 구조운동은 장엄한 산봉우리와 완만한 언덕과 평원, 분지, 해안선과 다른 경관을 형성해왔습니다 열대성 기후부터 아열대, 온대 기후에 걸쳐진 기후에 따른 계절간의 변화가 매우 뚜렷합니다 이 섬에 서식하는 18,400여 종의 야생동물 중 20%이상이 희귀종이나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에는 내륙연어 포모사 산양 포모사 바위원숭이 포모사 흑곰, 파랑까치 미카도꿩, 설산초 도마뱀 등등이 있습니다 포모사는 작은 섬이지만 천혜의 자연 경관을 두루 갖춘 곳입니다 북쪽에는 옛 도시와 원주민 마을이 드높은 산과 아름다운 폭포, 정교한 사원들과 나란히 들어서 있습니다

포모사에는 산이 많은데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이 약 293개나 되며 그 지리적 특징이 다른 나라의 산들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이 밖에 여섯 개의 국립공원은 다양한 지형의 경관을 제공합니다 산을 관통하는 강에 의해 형성된 협소한 골짜기인 타이루거 국립공원, 포모사 최고 지대이자 동북아 최고의 산봉우리를 가진 위산 국립공원, 험준하고 가파른 지세의 쉬에바 국립공원, 화산 분화구와 호수를 가진 양밍산 국립공원, 포모사 유일의 열대지역에 둘러싸여 정말 동남아풍이 물씬 풍기는 컨딩 국립공원 층층의 화강암 언덕을 가진 진먼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또한 포모사 동쪽의 태평양에는 해양 생물들이 풍부하여 병코돌고래, 스피너돌고래, 알락돌고래가 물 위로 점프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담청색의 바다와 화려한 산호초들은 포모사 남부 컨딩과 녹도, 펑후군도에서 발견됩니다 중부지방은 빛나는 바다와 우렁찬 강과 에메랄드 숲을 가진 포모사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진 남포모사는 대륙 이민자들이 이곳에 처음으로 이주할 때의 전통을 여전히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포모사는 문화가 풍부합니다 다양한 지역과 배경에서 온 사람들, 이를테면 포모사의 원주민들, 초기 중국 남방 복건인, 하카 이주민, 네덜란드인, 스페인인과 일본인, 그리고 최근 중국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함께 포모사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하카족과 타이완족, 중국 본토인들의 문화가 어울려 풍부하고 다원화된 문화와 사회를 창출했습니다 종교, 건축, 언어를 망론하고 모든 것이 포모사에 있지요

타이완의 신앙 또한 매우 다원화돼 있어 불교, 도교, 기독교, 몰몬교, 통일교, 이슬람교, 힌두교, 타이완에서 자생된 일관도와 다른 신앙이 있습니다 이 섬은 전통신앙을 존중할 뿐 아니라 외지에서 온 다른 형태의 종교사상도 환영해 줍니다 신의 은총이 내린 나라입니다

1980년대에 칭하이 무상사는 포모사에 도착했습니다 그녀가 작은 절에서 거주하고 있을 때 내적 비전을 본 한 무리의 포모사 사람들이 폭풍우치는 밤에 찾아와 관음법문을 가르쳐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때부터 칭하이 무상사는 포모사의 수만명의 신실한 구도자들에게 관음법문을 전수해 왔습니다 내면의 빛과 소리를 관하는 명상법인 관음법문은 세상에 대한 칭하이 무상사의 자비로운 선물이며 내면에 있는 신의 왕국을 재발견할 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포모사 사람들과 영적 세계에 대한 직관적인 앎과 지혜를 나누는 한편 칭하이 무상사는 특히 자연 재해 때 포모사 전역에 구호품과 인도주의 지원을 하십니다 그녀의 사랑의 본보기와 고귀한 행위를 통하여 많은 포모사 회원들은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동포들과 다른 전 세계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이런 활동에는 재소자들을 방문하고,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지진 피해자들과 홍수 피해자들을 위한 구호 활동과 길거리 청소부를 도와주는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이 자선활동과 인도주의 활동은 포모사 전역에 걸쳐 실천되었습니다 수만명의 사람들의 근면한 관음법문의 수행은 그들의 나라에 풍요로운 번영과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포모사는 경제적인 독립과 국력으로 국제적인 관심과 존경을 얻었습니다 수행자들의 신실함을 통해 포모사는 평화로운 나라의 축복과 공덕을 즐깁니다 내면의 천국과 깨달음에 대한 그들의 신실함과 갈망에 감동받은 칭하이 무상사는 포모사의 구도자들로부터 수많은 초청을 받아들여서 지혜와 직관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칭하이 무상사의 매력적인 강연인 “살아있는 경전의 지도 하에 수행하라”를 들어보겠습니다 1988년 6월 19일, 포모사 이란에서 하신 내용입니다

오늘이 첫 날이며 우린 서로를 모릅니다 둘째 날엔 서로 익숙해질 겁니다 세째 날엔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더 잘 이해하게 될겁니다

관음법문에 대해서, 우리모두 최고의 수행법문이 있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수행하는지 모르지요 우린 그것을 법문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법문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경전엔 거기에 대해 씌어진 것이 없지요

그래서 육조 혜능은 그걸 보이지 않는 법문이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아난이 마하가섭에게 석가모니불이 그에게 어떤 법문을 가르쳐줬는지 묻자 마하가섭이 침묵했던 겁니다 그는 아난에게 나가서 장기를 두라고 말했어요 그 당시 아난은 두 번째 후계자가 됐지요 마하가섭이 석가모니불의 첫 후계자였고요 아난이 이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두번째가 되었어요

하지만 오늘날 소위 선 수행자들은 많은 공안을 참구하며 비슷한 질문을 많이 하는데 왜 그들은 석가모니불의 후계자가 될 수 없었을까요? 모두 같은 질문을 하지만 우린 아난과 다르기 때문이죠 우리가 배운 법문은 아난이 배운 법문과 다르죠 진짜 법맥을 가진 사람이나 영적인 단체를 찾아서 그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때서야 이 안 보이는 법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건 “법문 아닌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 보이는 법문 이라고 부르지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배우고 수행할 수 있죠 아주 역설적이고 이해하기 어렵지요 따라서 고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지만 도를 얻은 이가 극소수에 불과한 겁니다

안 그럼 이 세상을 보세요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으며 아주 많은 이들이 정토법문을 수행하며 아주 많은 이들이 경전을 염하고 부처를 숭배하며 아주 많은 이들이 다른 법문을 수행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생사의 굴레 안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점점 더 많은 존재들과 지구에 있습니다 이건 이 무형의 법맥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법맥은 우리가 여기서 맥을 점검하고 짚어서 어디가 아픈지 진단하고, 건강이 좋은지 아는 혈관과는 다릅니다 이 맥은 보이지 않는 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안 보인다니 이상해 보이지요 우린 어떻게 안 보이는 걸 얻을 수 있을까요? “안보이는” 건 모든 것이 보이는 형태와 모양을 갖는 이 물질계와 상대적인 거죠 무형의 세상에선 보입니다 비록 안보이긴 하지만 정말 안 보이는 건 아니죠 우리 세상은 형태와 모양이 있지만 참된 형태는 아니죠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건 형태를 갖든 가지지 않든 같다는 뜻이죠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같습니다 왜 같을까요? 수행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요 우린 이런 말을 믿기만 하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색즉시공”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으니까요 왜 형태를 갖는 건 갖지 않는 것과 같지요? 왜 보이는 건 안 보이는 것과 같을까요? 우리가 소위 안 보이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우린 “색즉시공”의 진정한 의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색즉시공”은 언어를 사용하는 거나 언어가 없는 거나 같다는 뜻이죠 왜 우리는 “색즉시공” 이라는 말을 하는 걸까요? 어떻게 “색즉시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일부 제자들, 관음법문 동수들은 오랫동안 수행하지 않았죠 그들은 입문한지 얼마 안됐죠 예를 들어 두달 됐지요 하지만 그들은 “색즉시공”을 경험합니다 “색즉시공”의 수준에 도달하면 여러분은 내가 여기 앉아있는 걸 보되 앉은 사람이 없는걸 봅니다 이런 경험을 한적이 있나요? 체험 한 사람이 있나요? 네 무엇을 보나요? 빛의 바다가 온 무대를 덮고 빛이 온 강연장에 가득하여 하늘만큼 높이 뻗어있어요 빛이 하늘만큼 높아요 빛이 보이는 곳까지 온 사방에 뻗어나갑니다 더 수행할수록 빛이 더 커집니다 아무도 여기서 강연을 주지 않고 오직 빛만 빛나죠 그 때 여러분은 자신의 수염을 잡고 “허허, 그것이 색즉시공이구나”라고 말 할 겁니다 아마 그때에 여러분은 수염을 못 찾을 겁니다 “형태가 있는 건 형태가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오늘 여기에 온 사람들은 잡을 수염이 없죠 모두 면도를 했으니까요 다 깎아버렸죠 나도요 난 위에도 없어요 그러니 잡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색즉시공”이 뜻하는 의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이 뭘 말했든 진리입니다 그는 진리만 말했지요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말과 가르침은 너무 심오하고 너무 높고 너무 신비하고 이 세상을 훨씬 능가했지요 그래서 부처가 열반에 든 이래로, 오늘날 대부분의 불교도들이나 깨달은 스승이 없는 사람들은 옛 사람들의 체험만 읽고 있지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그들의 체험만 읽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색즉시공”을 체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많은 공안를 풀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이 “색즉시공”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달마는 중국으로 갔나?” “공이란 무엇인가?”라고요 이런 공안들이 많아요 나중에 체험을 하면 어떤 건지 아니까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스스로 알게 됩니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질문이 많지요, 그렇죠? 많은 상상을 합니다 미국은 이럴까 저럴까하고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미국에 온 후에는 물어볼 필요가 없지요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요 저절로 알게 되지요 깨닫기 전에, “색즉시공”을 체험하기 전에는… 예를 들면, “색즉시공”은 많은 체험 중에 하나일 뿐이지요 영적 수행에는 많은 등급이 있지요 오직 도달할 수 있는 등급이 “색즉시공”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약간의 깨달음도 없을 때는 물론 성서를 읽고, 경전을 외고, 부처를 숭배하며 보이지 않는 부처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체험을 한 후에는 물어 볼일이 거의 없지요 수행이 높을 수록 덜 물어 봅니다 참 이상하지요 그렇게 믿습니까? 그렇습니까?(네) 믿어야 합니다 체험을 한 후에는 더이상 물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체험이 없을 때, 묻게 되죠 우리가 돈도 없고 배가 고프다면 음식을 찾거나, 음식이 어디 있냐고 묻겠지요? 배가 부를때는,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어도 먹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지요 알겠어요? 배가 부르고 맛도 이미 알고 있지요 많은 우리 동료 수행자들은 내가 얘기한 “색즉시공”이라는 체험 외에도 많은 체험들을 합니다 여기에 와 있지요 꽤 많은 이들이 여기에 와 있지요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여기 와 있으니까 할 수 있어요 그렇죠? 거기 있어요?(네) 내가 한 말을 증명하려면 얘기 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은 의심이 많죠 아주 미심쩍어 합니다 목불은 아무 의심 없이 숭배하면서 내가 진리를 말하면 벌써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목불을 믿고 숭배하면서 불상이 뭔가 줄 거라 믿습니다 돈을 줘서 부유하게 해주고 오래 살게 해 주며 번영, 행운, 장수를 포함해 모든 걸 줄거라 믿어요 그걸 믿고 숭배하며 10년 이상을 의심 없이 지냅니다 하지만 진리를 이야기하면 의심을 시작합니다 여기 앉은 스승 같은 건 없다는 거죠 바로 여기 있죠, 이해되요? 스승은 그저 보통 사람이죠 그녀가 어떻게 빛이 나겠어? 예를 들어 그런 식이죠 그건 자기들이 못 보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을 수행하려면 더욱 열심히 해야만 하죠 불상에 절하는 게 더 쉽지요 하고 싶으면 절을 할 수 있고 절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나와 수행하면 더 노력해야죠 매일 열심히 명상해야 해요 목불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길 기도하는 대신 말이죠 자신의 수행에 의지하고 우린 내면의 전능한 힘과 타고난 불성에 의지합니다 이해됩니까? 계속 붙잡고 있을 게 없으니 더욱 어렵습니다 목불은 볼 수도 있고 붙잡을 수도 있지요 우린 자기 내면의 본성을 찾아야만 하는데 때론 본성을 볼 수 있지만 다른 순간엔 볼 수 없죠 고등의 수행자가 아니면 더 어렵습니다 그들은 매일 위대한 체험을 하며, 매일 자신의 불성과 실제로 접촉합니다 그러니 의심도 없을 것이고 뭘 간구하지도 않겠죠 그들을 불퇴보살이라 합니다 퇴보하지 않을 테니 불퇴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불퇴보살의 등급에 오른 동료 수행자들이 우리에겐 많습니다 그래서 관음법문이 가장 빠른 법문이라고 난 확신합니다 성불하게 해주는 다른 법문이 있다는 걸 믿는다 해도 관음법문은 여전히 최고로 빠르고 안전하며 단순하고 간편한 법문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든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료 수행자중 몇몇은 여든 살이고 몇몇은 대여섯 살입니다 6살 된 가장 어린 아이부터 80이 넘은 최고령 노인까지 모두 같은 체험을 합니다 같은 체험을 한다고 그 둘이 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니죠 그들이 같은 등급이라면 당연히 같은 체험을 하겠죠 각각의 등급에 따라서 다양한 체험을 하겠죠 하지만 모두 체험을 합니다

그래서 능엄경에는 석가모니 부처와 문수사리 보살과 관음 보살들이 모두 관음법문을 찬탄했습니다 우리, 소위 불교도들은 능엄경을 읽으면 관음법문을 상당히 수행하고 싶어 하지만 수행법을 모릅니다 능엄경에 안 적혀 있으니까요 관음법문을 찬탄하기만 하죠 적을 수 있다면 석가모니 부처가 적어서 후대가 배우도록 했겠지만 관음 법문은 보이지 않고 적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경전이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뭔가가 살아있다고 하는 건 사람을 말합니다, 이해되죠?

우리 내면에는 수백만 달러와 수천 돈의 금이 있습니다 그걸 못 찾는다면 안타깝지요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나면 모든 걸 지녔고 부족한 것이 없음을 차차 알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일체유심조”와 “마음이 곧 부처다” 라는 의미를 이해하며 성경의 문구인 “신의 왕국은 내면에 있다”가 뜻하는 걸 이해합니다 살아있는 아쉬람이 되겠죠 신은 여러분 가슴에 거하죠 그래서 불경과 성경은 모두 같은 걸 말하는 겁니다

어딜 가든지 난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부처이며 예수 그리스도 또한 부처이며 노자와 공자도 역시 부처에요 부처는 깨달은 스승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스승이며 같은 걸 발견했습니다 같은 것을 설법했으며 같은 진리를 설법했지만 그 같은 법문을 적어두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법문을 수행했지만 아무도 적어 두지는 않았어요 노자는 수행법은 적지 않고 귀 없이도 들을 수 있으며 눈 없이도 볼 수 있다고 했죠 도덕경에서 노자는 귀 없이도 들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귀 없이도 들을수 있다고요 그 말은 육체의 눈과 귀를 사용하지 않고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눈을 사용하면 볼 수 없지요 노자는, 도는 붙잡을 수는 없지만 느끼거나 체험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지요 그걸 아주 분명히 말했지요 하지만 그 방법을 명확하게 적은 건 아닙니다 노자는 보고 들을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는 도를 획득하기 위한 수행법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흥미와 좌절감만 안겨줄 뿐이죠 노자는 이 위대한 도, 말할수 없는 도, 무명의 도를 찾았다고 말했을 뿐이죠 이 도는 너무 위대해서 만물이 거기서 나오며 만물은 도이고, 만물이 이 도 안에 있으며 삼라만상이 도에 의해서 부양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찾는 법은 말 안하고 아주 배고프게 만듭니다 이해됩니까?

이건 어떤 사람이 밤낮으로 우릴 위해 책을 써주는 것과 같죠 그 음식이 너무 맛있고 그 음식이 얼마나 달고 짜며 또는 얼마나 맛있는지 말해주는 격이죠 그 음식이 어떤 재료로 만든 것이며 요리순서는 어떤지 설명해주지는 않고요 석가모니부처, 노자, 공자와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같은 것을 말했으면 같은 것을 깨달았으며 그들 모두가 같은 위대한 도를 찬탄했지요 그들이 쓴 명칭과 상관없이요 누구는 신이라 하고 누군 “더 없이 완전한 깨달음”이라 말합니다 누군 부처, 불성으로 말하죠 하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이 불성과 도를 깨닫고 “더 없이 완전한 깨달음”과 신의 힘을 얻는 법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얼마 후에 보리달마가 중국으로 갔죠 그는 석가모니불의 법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법통을 계승한 제자 중 한명입니다 석가모니불이 떠나고 노자와 공자도 떠났습니다 보리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갔을 때도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요 법문이 교리 밖에 있다고 했을 뿐, 어떤 경전도 인용치 않았으니 더욱 어렵죠 처음에 경전을 읽으면 조금 편안하게 느끼면서 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속입니다 경전을 읽었으며 부처를 숭배하고 절을 짓고 보시하고 출가승을 봉양하고 삼보를 공경하며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까요

양무제 이야기를 들었겠죠 그에 따르면 그런 일이 많은 공덕이 있을 거라고 했죠 그런데 보리달마가 와서 모두 부숴버렸습니다 그런 일을 해도 공덕을 얻을 수 없으며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했죠 당시 우리 중국인들은 무척 실망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 역시도 실망할 것입니다 보리달마는 수행법은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고대 선사들과 똑같이 “불립문자”를 말합니다

경전은 쓸모없고 아무 것도 적을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경전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전부다 읽을 수도 없고 모두 이해할 수도 없죠 그래도 쓸모 없다고 합니다 법문을 전수하는 것은 교리와 상관없으니까요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이제 우린 뭘 할까요? 해결책이 있습니까?(네) 해결책이 뭡니까? (관음법문이요) 관음법문이요 물론 관음법문이지요 우린 관음법문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수행하지요? 어떻게 수행합니까? 여전히 교리와 상관없지요 수많은 경전이 있어서 전부다 읽을 시간도 없으며 전부다 끝낼 수도 없습니다 자거나 먹는 걸 잊을 때까지 그걸 읽더라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경전으론 충분하지 않죠 법문은 교리 바깥에 있고 경전은 쓸모 없으니까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방법은 경전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경전엔 만트라 몇 개가 있지만 올바른 법문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관음법문을 수행해서 얻은 내면의 체험이지요 만트라를 외워서 관음법문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니죠 왜 내가 이걸 알까요? 내가 수행했으니까 압니다 또 우리 동료수행자들도 관음법문을 수행합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뒤로 그런 만트라에 익숙해지지요 왜냐하면 내면으로부터 그런 만트라를 배우니까요 내면의 보살이 우리에게 많은 신기한 비밀 만트라를 가르칠 겁니다 그것을 필요로 할 때만 유용할 거예요 그 땐 어떤 만트라를 외우든 유용할 겁니다 수많은 경전들과 만트라들이 있지만 그걸 외우는 건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얻은 게 아니니까요 과거의 다른 사람들의 돈이죠 남은 게 없어요 우리 스스로 얻은 돈만 사용할 수 있어요 다른 이의 돈은 소용없죠 또 그들의 돈은 다 쓰여졌죠 그들 이야기를 읽을 뿐이에요

예를 들면 우린 팽조가 800년을 살았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 자신이 800년을 살진 않죠 그걸 경험할 수 없어요 오래 전 맹상군이라는 남자가 있었다고 들었지요 그는 매우 부자였고 다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가졌죠 매일 그는 수천 명의 손님을 대접했어요 돈이 충분히 있었기에 염려하지 않았죠 하지만 우린 그가 오래 전에 돈이 많았고 죽었다고 들었죠 그러니 그의 돈은 갔어요 내 말 알겠어요 그의 돈은 더 이상 없지요 그러니 경전을 읽는 것도 비슷합니다 오래 전 사람들의 경험을 읽는 것도요 과거의 영적 수행자들이 어떤 체험을 얻었지만 그들은 떠났습니다 그들의 체험도 떠났죠 그래서 경전을 읽어서 도를 얻을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방법이 있죠 세세생생 이 법맥이 이어지고 있죠 왜냐하면 세세생생 생사의 고리에서 해탈하고자 하는 중생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세생생 이 법맥은 이어지고 있어요 어느 생애든 물과 음식, 공기가 있는 것처럼요 기본 생필품이지요 그래서 이 법맥은 세세생생 전해지며 잃어버릴 수 없어요 하지만 이 법맥을 가진 이를 찾기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우리가 예전부터 영적 수행자들이 겪었던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겁니다 그런 얘기는 눈물나게 하죠 예를 들면, 밀라레빠는 많은 고난을 겪었고, 혜가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혜능스님도 여러 어려움을 경험했어요 또 5대 조사인 홍인스님은 그의 스승이 받아주기에 나이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수행하러 오기 위해 한 번 더 환생해야 했어요 석가모니불도 도를 구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는 왕자였고, 권력과 돈이 있었지만 이 법맥을 살 수는 없었어요 “영적 수행을 하길 원하니 모모 스승은 궁에 와서 날 가르치기 바람”이란 편지나 공고를 쓸 수 없었죠 그럴 수 없었어요 그러니 궁을 떠나야 했고 그의 막대한 재산과 부인들을 두고 가야 했지요 그런 뒤 법맥을 지닌 스승을 찾으려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넜지요 왜 그리 어려울까요 우리가 의심이 많아서 그래요 한 스승이 와서 법맥이 있다고 말한다 해도 우리가 늘 그를 믿는 것은 아니에요 고대부터 지금까지 법맥을 지닌 영적 수행자들은 수많은 비방과 공격을 견뎌야만 했어요 그래서 5대 조사인 홍인이 6대 조사인 혜능에게 고대로부터 진정한 법문을 가르친 많은 스승의 삶이 거미줄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롭다고 말한 겁니다 법을 가르치기가 위험해서죠 그를 공격하고, 욕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왜 이런 식이어야 할까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사람들이 여기 머물기 바라는 마야에게 속해있기 때문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가버리면 그가 누굴 통치하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부처의 힘이 1미터 자라면, 마야의 힘은 10미터나 더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에요 마야가 부처보다 더 강한 것처럼 보이죠, 그렇죠 그렇게 들리죠, 그렇지 않아요 어쩌면 그럴 거에요 그래서 부처가 여기서 가르치기 쉽지 않은 거에요 마야의 세상이니까요

영적 스승들에게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 찾기 어렵지요 그들이 옆집에 산다 해도 그들을 찾을 수 없을 거에요 그들은 “난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5시부터8시까지 무료로 가르치는 모모 스승이에요”라는 간판을 문 밖에 놓아두지 않아요 그러지 않죠 그런 거 본 적 있어요 대부분의 절은 문을 열어둡니다 대중에게 열어놓죠 그들은 누구든 오도록 하죠 많을수록 좋고, 더 자주 올수록 좋아요 모두 여러분을 환영하죠 하지만 스승의 문은 영원히 잠겨있어요 들어가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수행을 충분히 잘해야만 수호신들이 여러분을 안으로 들입니다 옆집에 그가 살아도 들어갈 수 없지요 그가 여러분이 오길 원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어요 여러분이 고위 관리든 하위 관리든 상관 없어요 여러분이 뭘 하든 상관없고 돈이 얼마나 많든 관계없어요 그렇죠 왜냐하면 그들의 법맥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죠 중생들과 어울리기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들은 이 세상이 그들이 나와서 공개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걸 알아요 그들은 어딜 가든 조용히 있어야 하고, 원하는 곳에 갈 수도 없어요

마야는 정말 강해요 그는 그의 시민들이 고향에 돌아가는 걸 잊고 도를 찾는 걸 잊도록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만드는 많은 법을 알아요 누군가가 와서 우릴 고향에 데려가고 싶어 해도, 우린 그의 설명을 들을 시간이 없을 거에요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로 붐비고, 수행자는 아주 적죠 몇몇 수행자가 있다 해도 그들 또한 너무 바빠서 정도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는 마야에게 속지요 그들은 참 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소위 사도나 옆 문으로 갑니다 옆 문이 뭘까요? 정문이 아닌, 옆의 다른 문이죠 사도란 뭘까요? 바른 방향, 바른 길이 아닌 다른 방향, 다른 길이에요 그 뜻이죠

예를 들어, 이 길이 우릴 집에 데려간다고 합시다 이 길을 걸으면 확실히 집에 도착하죠 그런데 옆의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우릴 속여서 다른 곳으로 가게 한다면 그것이 사도지요 ‘사’란 옳지 않은 걸 뜻하죠 옆 문은 정문이 아닌 옆에 있는 문을 뜻하고요 우리의 문을 지나쳐서 고향과 점점 멀어지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이단 사도’라고 부르죠 고대로부터 많은 생명을 빼앗는 악인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보면 조조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맞죠 가장 나쁜 사람이에요 주 나라의 최초 황제인 진시왕도 있어요 하지만 모두 과거의 인물이죠 지금 그런 역사나 이야기를 읽는다 해도, 그들을 그다지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알겠어요 그걸 읽고 “정말 나빴다”라고 말할 뿐이죠 그게 다에요 그리 적대적이지 않으며 일어나서 그를 고의적으로 비난하지 않아요 알겠어요 신문에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를 믿거나 칭찬하지 말고, 혼내는 데 동참하라고 쓰지도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죠 그는 이미 죽었으니까요 이미 죽었고 우린 용서합니다 맞죠 성인들이 그런 좋은 대접을 받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에요

지금까지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깨달은 선사들과 모하메드나 다른 많은 종교의 성인들 다른 종교적 지도자들이나 많은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 한 종교 단체는 다른 종교 단체의 스승을 욕합니다 다른 종교 단체들은 또 다른 종교 단체의 스승을 욕하죠 알겠어요?

우리가 스스로 부처가 무엇이고 마야가 무엇인지 내적 체험으로 알지 않으면 영원히 다른 이들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릴 거에요 한 쪽에서 우릴 끌어 당기면 다른 쪽에서도 끌어 당기죠 영원히 악마나 마귀가 될테죠 다른 이들과 논쟁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위대한 수행자인 석가모니불이나 예수 그리스도, 노자도 그렇게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범부인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이길 수 있겠어요 알겠죠? 그러니 성인들과 높은 등급의 영적 수행자들 깨달은 스승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대수행자들이 불쌍하지, 악한 이들은 아니에요 사람들은 역사를 읽을 때 악인들을 욕하지 않죠 그 당시만 욕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2, 3천년 아니 5천 년이 지난 뒤에도 위대한 성인들을 욕해요 그들이 열반의 평화 속에 머물게 놔두지 않아요 그래서 5대 조사인 홍인이 진리를 설하는 이들의 삶이 거미줄처럼 위태롭다고 말했던 거에요 어떤 이로움도 없는 일이죠

한번은 나의 스승이 강연할 때 누군가 질문을 했어요 “왜 매번 누군가 신이나 깨달은 큰 스승을 말할 때, 항상 ‘그’라는 단어로 이야기하나요?”라고요 사람들은 그들을 항상 “그”라고 칭하지요 남자로요 알겠어요 그녀 아닌 그로요 왜 남자죠 왜 여성은 깨달은 스승이 될 수 없나요 여성은 스승이 될 수 없나요? 그들은 그런 질문을 했어요 여자가 스승이 될 수 있나요? 측은히 여기며 자비롭게 그녀에게 스승이 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어요 스승이 되지 않는 게 좋아요 너무나 힘든 일이에요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말했어요 엄청난 압박을 견뎌야 해요 그 압박은 견딜수가 없죠 그는, 그래서 고대로부터 스승은 주로 남자라고 말했습니다 이해하겠어요? 남자의 신체가 더 강하니까요 그들의 정신은 압박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성만큼 감성적이지 않아요 우린 좀 더 민감하죠 그렇죠? 여자의 몸은 강하지 않아요 약하진 않아도 강하지도 않죠 매달 생리를 하기 때문이죠 그렇죠? 여성은 피를 많이 잃지요 그래서 여자들의 몸이 좀 더 약합니다 그 주에는 몸이 좋지가 않아요 기분도 안정적이지 않고 느낌도 쾌적하지 않고 기분도 좋지 않아요 때론 움직일 수조차 없죠 또한 아이를 가져야 하는데 그건 더 문제를 줍니다 우리 몸은 더 약해집니다 또한 옛날에는 여성은 외출을 못했어요 한 걸음 앞으로 걸으면 세 걸음을 뒤로 휘청대죠 그래서 가르침을 그렇게 펼 수가 없어요 전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사정은 더 심했죠 발이 그렇게 묶여 있는데 어떻게 걸어 다니겠어요? 그들의 발은 너무 작고 한 발자국 앞으로 걸으면 세 걸음 뒤로 걷습니다 성안의 아가씨들처럼요 여러분은 잘 알 겁니다

물론, 그들은 가르침을 펼 수가 없지요 그래서, 옛날에는 극소수의 여성만이 나가서 가르침을 펼쳤어요 이젠 시대가 달라졌어요 몸을 튼튼하게 하는 약들이 많아져서 도움을 줍니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있어서 여자들도 쉽게 밖에 나가서 가르칠 수가 있어요 요즘엔 발이 묶여있지도 않죠 그렇게 작아지도록 묶지 않죠 그래서 요즘엔 여자들도 나가서 가르칠 수가 있지만 오늘날에도 모든 게 너무나 편리하지만 나의 스승은 여전히 여자는 스승이 되지 말라고 했어요 너무 큰 책임감이 따르니까요 할 일은 너무 많으며 압박감은 엄청나죠 견딜 수 없어요

내가 방금 말했지요 고대로부터 위대한 성인들은 가장 중상 모략을 당했고 가장 공격받고, 살해당했죠 그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비난 받지 않은 성인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살인의 위협을 받아보지 않은 스승은 없습니다 일부는 사형됐어요 일부는 살해됐고 또 일부는 살인의 위협을 받았죠 이해합니까?

석가모니부처를 살해하려던 사람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발을 잡았을 뿐이죠 일부는 허위로 비난했고 일부는 그에게 해를 줬지만 그를 죽일 순 없었죠 육조 혜능을 죽이려 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붙잡혔으며 공자는 비난 받았고 6개국이 그를 인정하지 않았죠 그들은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그를 내쫓았습니다 노자는 제자가 거의 없었죠 이런 이유로 깨달은 스승을 찾을 수 없죠 그들이 숨어 있기에 찾기 어렵습니다

공개적으로 가르치더라도 스승들은 숨어야만 합니다 대중 속에 있으면 공개하죠 이해됩니까? 돌아오면 그들은 숨어요 여러분은 찾을 수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의 제자이거나 그와 친한 게 아닌 이상 가까운 제자만 찾을 수 있죠 평범한 이들은 절대 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법문을 한번 전수하면 우릴 꽉 붙들지도 않죠 매일 우릴 만나지도 않겠죠 어떤 공양이나 숭배, 시중 등 아무 것도 원치 않을 겁니다 찾으려면 곁에 있어야 하는데 그를 보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니 깨달은 스승이 있어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방식이 그런 겁니다 너무 공개할 순 없어요 내 말을 알겠습니까? 공개하지만 공개는 아니죠 사원을 열지는 않죠 모두 환영하며 공개하진 않죠 공개해도 보통의 평범한 사원처럼은 아니에요 내 말이 이해됩니까?

모두가 원하면 들어가서 숭배하고 나가버릴 수는 없는 겁니다 마구 드나들 수 없는 거죠 스승들을 보러 오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신실하게 도를 구해야만 여러분을 받아줄 겁니다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나가버리는 보통의 절과는 다릅니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죠 깨달은 스승을 찾고 싶다고 광고를 낼 수도 없지요 자신의 공덕에 의지해야 해요 축복이나 충분한 공덕 없이는 광고를 아무리 해도 우리가 가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의 시간이 안되었거나 공덕이 아직 충분치 않으면 광고를 해도 안 갈 겁니다 우린 스승이 바로 옆집에 살아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에는 깨달은 스승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제야 여기서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겠군요

관음법문 수행자들은 수행하면 할수록 재미도 늘어나며 이전에 절대 해본적이 없는 경이로운 체험도 늘어갑니다 맞습니까? (네)

경전은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경이로운 체험을 묘사할 뿐입니다 스스로 그런 체험을 하지 않는다면 행복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기쁨과 법열을 이해하지도 못할 겁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읽을 때 아이들의 책이나 고대의 경전을 읽으면서 흥미거리로만 생각하고 현실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방정토는 누군가 그려 놓은 그림일 뿐이며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말해도 사실은 아닌 거죠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나면 어떤 경전에 나온 체험이든 모두 진실임을 알 겁니다 진실이 아닌 게 없지요 우린 경전에 기록된 걸 체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등급을 초월합니다 경전에 말로 씌어진 것은 높은 수준의 체험은 아니니까요 높은 수준은 말로 못합니다 맞지요? 적는 건 말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 달마가 경전을 외워도 소용없다고 말한 겁니다 “말할 수 없는것”은 더 높아요 체험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적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막 입문을 해서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시작하면 자기 체험을 적어서 내게 보내어 체험이 높은지 낮은지 진짜인지 거짓인지 묻지요 얼마간 수행하고 나면 말할 것이 없습니다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스승을 보러 와서는 “스승님, 어…”라고 하죠 이해됩니까? 묘사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묻더라도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난 묻지도 않죠 이미 도취되어 있습니다 어떤 말도 필요 없어요 그 당시 경전을 읽는 것은 어린애 동화를 읽는 것과 같습니다 우린 그 등급을 이미 넘었죠 기록하고 묘사할 수 있는 건 높은 등급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내게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서방정토에 갈 수 있는지 물으면 문제 없다고 합니다 거기서 머물길 싫어할까 봐 문제죠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거길 초월해서 갑니다 서방정토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어떤 사람의 체험과 집착일 뿐이죠 그는 당시 서방정토에 집착하면서 거기 머물고 싶어 했죠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그런 아름다운 곳에 가서 살 수 있는지 석가모니불에게 물어본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답했죠 “그렇다, 너는 오늘 네가 본 이곳을 마음속에 그려야 한다 이곳을 마음속에 떠올려라 아미타불을 보려면 그의 이름을 염하고 그의 세계를 명상해야 한다 매일 이렇게 한다면 죽을 때 당연히 거기로 갈 것이다” 하지만 관음 수행자들에겐 그런 세계를 명상하지 말라고 했어요 서방정토를 보는 것도 좋지만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중에 더높은 곳으로 갑니다 서방정토는 우주의 한 부분일 뿐이에요 동, 남, 북쪽엔 더 높고 낮은 경지의 많은 세계들이 있어요 근데 왜 서방에 집착하죠? 서방세계에 가길 원해도 괜찮죠 문제 없어요 그래도 방법을 알아야 하죠 그냥 앉아서 아무타불을 염해서는 갈 수 없어요 돈을 벌고 싶다면 집에서 돈 생각만 하지 않고 방법을 알아야 하듯이요 관음법문은 매우 유연합니다 서방에 가고 싶다면 여러분을 그곳으로 데려가며 동방에 가고 싶다면 그곳으로 데려갈 거에요 북방에 가고 싶다면 북방으로 데려다 줍니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그곳에 데려갈 거에요 노자를 만나고 싶으면 그를 보도록 데려갈 거에요 공자를 보길 원하면 그에게 데려갈 거에요 제공활불을 보고 싶어하면 역시 그에게 데려갈 겁니다 그들이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들은 더 높은 경지에서 살고 있어요 가고 싶은 곳은 어디나 관음법문은 우릴 인도하여 그곳으로 데려다 줄거에요 이 법문을 얻지 못하면 서방세계에 가지 못할까봐 걱정해야겠죠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서방극락세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 같군요 더 영광스럽고 아름다우며 더 자유롭고 더 높은 많은 세계들이 있으니까요 어떤 이들은 박수를 치는군요 아마도 그들은 알 겁니다 어떤 이들은 서방 극락세계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지요 네! 팔공덕수와 노래하는 새들이 있는 거기에 집착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내 말 알겠어요? 그곳도 멋지긴 하지만 그곳이 원하는 전부일 만큼 마음이 그렇게 좁나요? 우린 온 우주를 보러가고 온 우주를 자신의 집으로 삼아야 합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갑니다 그게 더 좋죠 그냥 우주의 한 구석에 매어 있는게 아니에요 다른 이들이 더 좋은 법문에 대해서 말하는걸 들으면 공개적으로 비방하면서 “서방극락세계만이 최고지” 원하면 갈수 있어요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해요 이 법문만이 안전하게 거기로 데려가줄 수 있어요 안그럼, 동쪽에도 갈 수 없어요, 알겠어요?

좋아요, 그만 하겠어요 다른 질문 있으면 종이에 적어서 단상으로 보내주세요

스승님, 관음법문을 어떻게 전수하는지 설명해주십시오

그것은 법문이 아니라 전수되는 힘입니다 입문은 이심전심으로 힘이 전수되는 걸 의미해요 하지만 실제 마음은 아니지요 언어에 한계가 있어서 ‘법문’이나 ‘마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에요 내가 법문을 전수할 땐,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지금은 전할 수 없어요 많은 것을 설명하고 여러분을 논리와 이성으로 이해시키려면 언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 다음 여러분은 도를 찾고싶어 할거에요 오직 그때에만 도를 전수해줄 수 있어요 전수 과정에는 말이 필요없죠 나도 침묵하며 여러분도 침묵하죠 우리 모두가 침묵할 때, 여러분은 얻게 될 거에요 법문이 없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뭔가를 얻을 거에요 안 그럼, 무슨 법문을 얻죠? 또 무슨 도를 이루겠어요? 거기엔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방법이죠 말할 만한 게 없으니까요 그 힘을 전수하고 나면 여러분에게 질문이 생기겠죠 알겠어요? 이런 질문일 수 있어요 "스승님, 방금 입문했는데 이런 등급에 이르렀어요. 그것이 어떤 등급인가요?” 그때 비로소 정말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관음법문을 전수할 때 우주의 비밀을 조금 알게 되거나 깨달음을 약간 맛보게 될 것임을 약속하죠 여러분은 경전에 기록된 범음이나 파도소리 같은 체험을 이해하게 될 거에요 여러분은 팔백안 공덕이 무엇이고 팔백이 공덕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거에요 천국과 지옥을 보는 게 무엇이며 부처의 무량광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에요 우리가 그런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그렇죠 하지만 설명할 법문은 없어요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즐거웠습니다 내일도 이 지혜로 가득찬 강연, “살아있는 경전의 지도하에 수행하라”의 결말을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 예술과 영성에서 “성 스테판의 왕관”이 수프림 마스터TV에서 방송됩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그가 질문이 있습니다

스승님 만일 아이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면 미래에 계율을 지키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관음법문 수행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만일 아이 부모가 입문했다면, 6세부터 수행할 수 있어요 만일 부모나 친척이 아무도 수행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16세가 될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부모가 관음법문을 수행하더라도 두 종류의 아이들이 있죠 그들은 6세에 반입문을 받고 12세에 완전입문을 받을 수 있어요 부모나 친척이 수행 안 하면 16세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질문도 있습니다 스승님, 그가 묻기를 “우리의 본성은 나타나되 머무는 곳이 없다”라는 뜻이 뭐지요?

그건 금강경에서 언급된 어떤 수준이에요 만일 입문해서 수행하면 머무름이 없이 자신의 본성을 보도록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말해도 당신에게 큰 의미가 없어요 입문할 때 내가 설명하면 당신은 이해할 겁니다 그러니 입문이 필요합니다 내가 강연을 할 때 난 또한 법문을 전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너무 거칠어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보기만해도 입문을 받을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요 여기 그런 사람이 있나요? 여기서 깨달음을 얻고 이를테면 보살을 보는 체험을 한 사람이 있나요? 호법신장이나 빛이나 스승이 사라지는 거요? 본 사람 있어요? 없군요 아주 드물지요 어떤 사람들은 사흘째 되는 날 작은 체험이 있어요 내가 빛을 가진걸 보고 많은 보살과 호법신장이 여기 있는 걸 보며 빛이 사방에 있는걸 봅니다 그건 작은 깨달음의 체험입니다 그건 우리가 일반 세상의 시각을 넘어섰다는 거지요 본 것이 세상을 넘어선 거죠 그것이 소위 깨달음입니다 여러분도 체험할 겁니다 강연을 들으며 깨달음의 체험을 좀 할 겁니다 하지만 이 말법 시기에는 극소수만 깨닫습니다

이 질문은, 그가 전에 절에서 계를 받았는데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건 보살의 계를 어기는 건가요?

왜 그게 계를 어기는 거죠? 보살의 계를 지킨다는 건 우리가 보살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보살이 되는 걸 의미합니다 맞지요? 관음법문은 관음보살의 법문인데 왜 그가 수행할 수 없지요? 어떻게 계를 어긴다는 거죠? 당신이 나와 같이 배워도 보살계를 지켜야만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관음법문은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계율만 지키는 것은 소용 없습니다 계율을 지키는 목적은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가령 당신이 나와 함께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면 난 먼저 계율을 지키는 방법을 보여주고 나서 법문을 전수해 줍니다 계율은 법문의 일부지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법문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법문 없이 계율만 가르칩니다 계율, 명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명상과 지혜 없이 계율만 가르친다면 두 가지가 결여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난 계율 뿐 아니라 명상과 지혜도 가르칩니다 그래야 완전합니다 만일 당신이 이미 보살계를 지키고 있다면 그건 가르칠 필요가 없죠 난 명상과 지혜만 가르쳐 줄 겁니다 그럼 완전한 법문을 얻지요 어기는 것은 전혀 없어요 보살계를 지키는 것이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알 겁니다

스승님 좀 전에 보리달마를 언급하시며 그가 ‘불립문자’와 다른 길이 없다는 걸 말했다고 하셨지요 그럼 이른바 ‘직지인심 견성성불’이 무엇인가요? 어떻게 그것을 수행하지요?

그것도 관음법문입니다 입문시에 수행하는 법을 알겁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교리 밖에 있다는 말에서 보리달마가 의미한 것은 경전을 읽어서는 도나 불성을 경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릴 가르쳐주는 깨달은 스승이 있어야 하죠 경전을 읽는 대신에요 그건 경전 밖에서 줍니다 그래서 그가 ‘불립문자’를 말하는 겁니다 법문은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법문은 경전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경전 밖에 있지요 따라서 나도 말할 게 전혀 없다고 한 겁니다 좀 전에 관음법문을 설명해 달라고 했는데 난 할 수 없습니다 난 전수해 줄 뿐입니다 법문을 전수할 때 난 한마디도 안합니다 둘다 조용히 앉아 있는데 당신이 홀연히 깨닫습니다 말할게 전혀 없습니다 지금은 말을 많이 하지만 아무도 깨닫지 못합니다 나중에 내가 말을 안할 때 누군가가 깨달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것이 소위 “교외별전”이며 “머무름이 없음”입니다 경전에 기록된 것에 집착함으로써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나 사원의 외형에 집착함으로써 우리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머무름이 없으면 본성이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스승님, 사람이 부처이면 부처는 어디에 있나요 만일 그 자신이 부처라면 부처는 어디에 있죠?

부처는 그의 가슴에 있죠 우리에게도 있지만 찾을 수 없죠 그 뿐이에요 예를 들어, 우린 우리 안에 피가 있다는 걸 알아요 누구나 피가 있죠, 그렇죠 그걸 알고는 있지만 볼 수 없어요 알기는 쉽죠 작은 상처를 내거나 주사기로 피를 약간 뽑으면 그때 속에 피가 있다는 걸 알 거예요 하지만 볼 순 없죠 만약 아주 어리다면 사람들이 혈관계를 설명해도 우린 그걸 이해할 수 없죠 지루해서 듣고 싶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자라서 아프게 되면 의사는 피가 좋지 않아서 수혈을 해야 한다며 어떻게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보여주려고 우리의 피를 좀 꺼낼 거예요 그럼 흥미가 생길 거고요 우리 안에 피가 있지만 어떻게 피를 채취하는지 몰랐기에 볼 수 없지요 불성도 비슷해요 우린 이미 가지고 있죠 불성은 전능한 힘이며, 그 스스로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는 신의 힘이며 “더 없이 완전한 깨달음”이자, 위대한 도에요 우린 그걸 깨달을 수 없죠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깨달은 스승이 우릴 도와서 그걸 열면, 매일 쓸 수 있어요 매일 그걸 볼 수 있지요 볼 수 없지만 그걸 봐요 들을 수 없지만 듣고요 잡을 수 없지만 잡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건 도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그걸 얻고 경험할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어요

이 사람은 스승님께 존경을 표하며, 질문하고 싶답니다 법화경에서 말하는 예언과 입문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다르죠 입문이란 당신이 법을 받는 때이며 당신이 진정한 본성을 찾는 때이며 당신의 불성을 보는 때를 뜻하지요 그게 입문입니다 예언은 석가모니 부처가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부처가 될 거고 이런 저런 나라에 법을 펼칠 거라고 말한 때에요 그게 예언이죠

스승님, 그가 관음법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묻습니다 비밀 법문이 뭔가요

관음법문 수행의 핵심은 소위 법문이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법문을 받아서 즉시 깨닫는 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법문을 즉각적인 법문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순식간에 우린 가장 귀한 전능한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한 점이죠 그런 뒤 수행하고 싶다면 행동과 말과 생각을 순수하게 해야 해요 보살의 계율을 지켜야 하죠 보살의 계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중생의 살을 먹지 않고 생명을 취하지 않는 거지요 죽이지 말고, 훔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며, 술 마시지 않는 거예요 다른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매일 2시간 반 동안 명상해야 해요 명상을 나눠서 할 수 있어요 이런 것들이 관음법문의 요구조건입니다 그걸 말하는 건 의미 없어요 여러분이 그걸 할 때만 의미가 있지요 법은 설명될 수 없어요 그걸 말하는 건 지루해요

스승님, 이 사람은 스승님과 수행한 적이 없지만 즉각 깨닫는 열쇠 1권을 읽은 뒤 스승님의 모습이 앞에 나타난 걸 보았다고 합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당신이 깨달았단 걸 뜻해요 그래서 우리가 그걸 즉각 깨달음이라고 부르죠 당신이 다른 경전들을 읽을 때 다른 스승들의 모습을 보지는 않아요, 맞죠? 당신이 “즉각 깨닫는 열쇠”를 읽었을 때 즉시 스승의 화신을 보았어요 깨달은 뒤에만 볼 수 있어요 이건 일반적인 매일의 체험은 아니에요 그건 당신이 깨달았고 이 세상 너머의 체험을 가졌다는 걸 뜻하죠 그래서 깨달음이라 불리죠 책을 읽어서 즉각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 이게 진정한 즉각적인 법이란 걸 뜻해요 그러니 “즉각 깨달음”이란 책의 제목은 진실이에요 거짓이 아니에요 맞죠? 여러분 동의해요? 축하해요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관음법문을 배워야 해요 단순히 스승의 모습을 보는 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배울 게 더 많습니다

당신과 대화하는 꿈을 꿨어요 이것도 영적 체험인가요? 육신의 스승님도 그걸 아나요?

네, 그것도 체험입니다 스승의 화신이 당신에게 뭔가 가르치려 온 거예요 이 역시 즉각적인 깨달음이죠 책을 읽어서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주니 “즉각적인 깨달음”이라고 불리는 게 잘못된 게 아니죠 많은 이가 비슷한 체험을 해요 내 책을 읽어서 체험을 하지요

육대 조사가 이런 말을 한 번 했어요 “지혜의 밝은 해가 세상을 한번 비추면 생사의 모든 구름이 걷힐 것이다” 스승님, “지혜의 밝은 해”가 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단순한 비유인가요 아니면 영적인 차원인가요?

정말 간단해요 “지혜의 밝은 해가 세상을 비춘다”는 건 깨닫는 때를 말합니다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지혜가 열릴 겁니다 그러니 난 내 책에서 지혜를 여는 것과 지혜안이 같다고 설명했지요 혹은 지혜안을 완전히 여는 것이라고 하죠 지혜안이 열리면 해가 나오는 것과 비슷해요 어두운 구름 같이 더럽고 어두운 곳을 전부 없애지요 검은 구름이 세상을 덮고 있죠 우리의 업장과 무지가 우리의 체험과 지혜를 덮고 있는 것과 비슷해요 여러분이 깨달을 때 해가 나와서 검은 구름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무지의 구름과 생사의 구름을 부숴버리죠 그러니 그건 깨달을 때 해가 우릴 비추듯이 부처의 빛이 우릴 비춘다는 걸 뜻해요 어두운 구름 같은 우리의 무지와 생사의 굴레를 부숴버릴 거예요

그가 말하길, 스승님 안녕하세요 스승님 강연을 들으러 온 건 축복이에요 하지만 그는 수행을 잘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축복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답니다

여기 내 강연을 들으러 온 축복은 이생의 공덕이 아니라 당신이 세세생생 축적한 전생의 공덕에서 온 거예요 하지만 아마 이번 생에서도 뭔가 좋은 일을 했겠지요 당신은 그걸 모를 뿐이죠 예를 들어보죠 나는 서른 몇 살이에요 서른 살 전엔 여기에 안 왔죠 아마 전에 다른 세계나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당신을 만났는데 그때 내게 마실 물 한 컵을 줬거나, 1달러를 줬거나 날 위해 길을 청소했거나 길을 알려줬거나 운전을 해줬던지 했겠죠 그런 작은 일들을요 알겠어요 그게 오늘의 인연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당신이 들으러 온 거죠 수행을 열심히 해서 공덕을 얻을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수행자를 만나 그를 단 한 번만 봐도 우리는 영겁의 시간을 수행해서 얻을수 있는 것보다 더많은 공덕을 얻을수 있어요 부처나 산, 물을 숭배하거나 절을 짓고 삼보에 공양해야만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불필요해요 이해해요? 최대의 공덕은 살아있는 깨달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죠 석가모니부처는 말했어요 부처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그것은 최대의 공덕과 축복을 얻는 것이다 다른 공덕은 작아서 없는 거와 같다 소용없을 뿐 아니라 우리를 이 속세에 묶으니 더 나쁘다 명성, 명예와 부는 내게는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여기 묶으니 나한테는 업이다 아름다운 아내, 멋진 남편 큰 집, 거대한 궁전들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니라 나한텐 업이지 공덕이 아니다 따라서 공덕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보는가에 달렸지요

스승님,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사람이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가능한가요? 그게 가능하면 어떻게 그걸 얻을 수 있지요?

당신이 이미 우주에서 사라지면 왜 그걸 얻어야 하죠? 당신은 자가당착의 질문을 하고 있어요 이미 사라졌다면 그걸 왜 얻을 필요가 있어요? 당신이 사라지면 남은 게 없어요 우린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죽은 후에 없어지는 건 없어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그렇게 간단하면 관음법문을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를 숭배할 필요 없죠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이나 살인, 음주, 흡연 도둑질 간음도 할 수 있어요 죽은 후에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지요? 아닙니다 안 없어져요 우리를 기다리는 지옥이 있죠 우리는 미래 생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 생에 동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많은 세계가 있어요 사라지는 것은 쉽지 않아요 미래의 인과로부터 해탈하고 싶으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은 여러분이 사라진다는 걸 뜻하지 않아요 다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죠 그런 게 아닙니다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더 높은 세계에 축복의 세계에 갈 수 있어요 이 세계들은 우리세계와 비교할 수 없어요 우린 없어지지 않아요 우리 세상의 물건들은 형태와 모양을 가지므로 우리는 그걸 잡을 수 있어요 이아내, 저남편을 볼수 있고 저 노인과 노파를 볼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형태와 모양을 있다고 하죠 사라지는 것은 우리가 형태나 모양이 없는 다른 세상에 가는 걸 뜻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못 느끼고 아무것도 모르고 지혜도 없고, 생명도 없는 걸 뜻하지 않죠 우리는 다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곳의 조잡한 생활과는 달라요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롭고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요 우리가 하나도 못 느끼거나 모든 걸 포기하는 건 아니죠 이런 게 아닙니다 이렇게 “돈을 잃지” 않아요 이해하지요? 만약 이와 같다면, “돈을 잃죠” 그건 좋은 사업이 아니죠

스승님, 재가자로서 수행하는 것과 출가자로 수행하는 데 차이가 있나요? 각각 어떤 문제가 있나요?

그들 모두 같은 질문을 해요 다른 점이 없어요 당신이 같은 스승을 모시고 같은 법문을 수행하면 차이가 없어요 약간의 차이는 있을수 있죠 차이가 있고 없는 것은 우리 상황에 달렸어요 예를 들어, 석가모니부처가 생존시 그의 출가제자 중 몇 명이 아라한이 되었고 그의 출가제자 중 몇 명은 보살이 되었지요 그의 어떤 재가제자들도 아라한이 되었고 그의 재가제자도 보살이 되었어요 그건 같아요 하지만 석가모니부처를 따르지 않은 출가승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죠 이해하지요? 그를 따르지 않은 재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출가자인지 혹은 재가자인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스승을 따르고 어떤 법문을 수행하는가 입니다 이해하죠? 출가자 캔톤 옐친은 말했어요 “열명의 출가자가 있다면 그 중 아홉은 실수로 출가자가 된다” 그가 뜻한 게 무엇이죠? 깨달은 스승이 없으면 출가자가 되는 건 불쌍하고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뜻하지요 난 정직하게 말해줍니다 당신은 업만 쌓습니다 수행을 통해 공덕을 쌓지 않으니까 여러분이 하는 것은 모두 남의 보시를 받는 것 뿐이죠 이 업을 소화할 수 없어요 당신에게 공양을 하는 자들도 아무 축복도 얻지 못해요 석가모니부처는 이걸 분명히 설명했어요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죠! 그는 공양을 하는 자는 순수하고 깨끗해야 하고 오직 이런 식으로 해야 그 공양을 받는 자가 업을 쌓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공양을 받는 자도 순수하고 깨끗해야 하며 오직 이런 식으로 공양하는 자도 축복을 받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아무렇게나 공양을 하고 받는 것은 좋지 않아요 이해하지요? 우란분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부처에게 배운 아라한과 성인들은 하안거 후에, 오직 하안거 후에 충분한 힘을 얻어서 그들이 공양을 받았을 때 소화할 수 있었고, 죽은 사람들이 해탈할 수 있었죠 아무 출가자나 공양을 받고 죽은 사람이 해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심지어 석가모니불이 살아있을 때에 바로 그 앞에서 지옥에 간 출가자가 많았어요 그들은 석가모니부처가 강연할 때 듣지 않았어요 그 대신 그들은 도망갔어요 그들 중 오천명이 그의 강연을 떠났어요 그러니 출가자가 되든 재가자가 되든 차이가 없어요 좋은 스승과 좋은 법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출가자든 재가자든 상관없어요 차이가 없어요

스승님, 스승님이 말한 깨달음은 안 보이는 걸 본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음양 모두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깨달았나요?

그들은 깨닫지 않았어요 그들이 볼 수 있는 등급의 종류에 달렸어요 유령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은 깨닫지 않았죠 그들은 열린 지옥을 가졌으며 지옥 문이 그들에게 열렸어요 귀신을 봐서 뭘 하겠어요? 왜 귀신이 빨리 보고 싶어요? 오직 부처를 봄으로써 부처의 빛을 봄으로써 부처의 소리를 들어야 여러분은 깨달을 수 있어요 하지만 가짜 소리와 진짜 소리가 있어요; 가짜 빛과 진짜 빛이 있어요 가짜 빛, 가짜 부처 가짜 경험과 가짜 부처의 소리도 있어서 사람들을 혼란하게 하고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하죠 이것을 본 후에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거나 당신이 한 말을 기억못하고 당신이 한 행동을 기억못해요 나중에 아무것도 몰라요 내 말을 이해하나요? 그것은 깨달은 게 아니고 귀신들린 것입니다 그 자신이 그가 행한 것과 말한 것을 모르니까요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죠 깨달은 사람은 그들이 말한 모든 세계에 대해 분명해요 그들이 본 천상의 등급이 어떤지를 정확히 알아요 보았던 왕국에 다시 방문할 수 있어요 내일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지요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오늘 이런 빛을 본다면 내일 같은 빛을 보고 모레도 같은 빛을 보며 다른 날도 그렇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빛을 넘어서 가게 될 겁니다 그게 진정한 깨달음이지요 오늘은 부처의 한 종류의 소리를 듣는다면 내일도 같은 소리를 들 을 수 있고 나중에도 그렇습니다 수 일이 지나도 같습니다 잠시 수행을 한 후에는 거길 넘어서 다른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다고 우리가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건 많습니다 어떻게 곤충, 파리를 보는 걸 깨달음으로 취급하나요? 그건 돋보기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가짜 경험을 하고 가짜 부처와 가짜 빛을 보면 영혼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육신에 불편함을 초래하고 일상의 삶이 혼란스러워지죠 진정한 부처를 보고 부처의 빛을 보며 부처의 소리를 들으면 매우 편안해 질 것입니다 양심은 매우 깨끗해 지고 지혜는 더 열릴 겁니다 진리와 거짓은 다릅니다 체험을 통해 자신의 수준을 측정할 수 있어요

영적인 수행자에게 깨달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깨달은 후에 알 겁니다

스승님, 인성은 원래 선합니까 악합니까, 아님 둘다 아니며, 선악을 초월해야 하나요?

선, 악을 포함한 모든 것이며, 선도 악도 아니며 둘 다를 넘어서는 겁니다 세속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설명할수록 더 나빠집니다 더 알수록 더 나빠지게 됩니다 경험이 없이 아는 것은 과자의 이름을 반복해서 외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인간은 영혼이 있나요 있다면 우린 왜 볼 수 없죠?

어떤 것은 보이고 어떤 건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공기는 못 봅니다 하지만 존재하죠 그리고 매우 중요합니다 공기는 가장 중요합니다 물은 없어도 하루나 이틀 사흘, 나흘 정도 살수 있고 음식이나 옷, 다른 것은 없어도 오래 살 수 있지만 공기가 업으면 즉시 끝장납니다 죽지요 그렇지 않나요? 공기는 형태나 모양이 없고 잡을 수 없으며 볼 수 없다고 해도 그건 매우 중요합니다 영혼도 같은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을 때 몸이 여전히 존재하고 눈과 귀가 여전히 있는데 왜 움직일 수 없을까요? 진짜 자신은 어디 있나요? 그것은 영혼, 진아, 진정한 본성, 불성이라 불리는 다른 것이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육신이 아닙니다 그건 자동차와 같은 겁니다 자동차는 운전자가 아니지요 함께 있긴 하지만요 운전자는 차 안에서 운전해도 그가 차는 아닙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요 열쇠를 잊어버려서 문을 못 여는 때를 제외하면요 그럼 안에 갇혀서 나올 수가 없지요 그건 마야에 의해 갇힌 우리의 현재 상황과 비슷해요 모든 문이 닫혀 있고 우린 그 안에 있는 거죠 죽지 않고는 나갈 수 없지요 죽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니 소용없습니다 어떻게 나가는지 전에 배운 적이 없고 다른 세상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우주에 어떤 세계, 어떤 장소,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알고 어떤 나라에 갈 수 있는지 미리 알기 위해 먼저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후에 계속 그곳에 갈 수 있어요 이런 방법이 더 안전합니다

스승님, 왜 사람은 죽으면 사라지지만 계속 윤회하나요? 왜 이 세상에 계속 나쁜 업을 짓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까?

이 세상에 평화가 있습니까? 여긴 우리 고향이 아니라 마야의 세계라고 이미 말했죠 평화를 원하면 더 안전한 다른 세상에 가야 합니다 우리 지구도 비슷합니다 지구에도 많은 나라가 있지요 어떤 나라는 안전하고 다른 나라는 혼란스럽습니다 어떤 나라는 전쟁 중이고 어떤 곳은 자연재해가 있어요 불안하고 살만하지 못해요 안전하길 원하면 다른 세상, 다른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고 싶다면 돈과 능력, 안내자가 필요하고 거기까지 책임지고 데려갈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어디든 가고 싶다고 갈 수는 없습니다 유사하게, 우주에는 작은 지구만 있는 게 아닙니다 피난할 수 있는 많은 세계가 더 있어요 어떤 사람은 그 세상을 알고 우릴 데리고 돌아갑니다 그들을 따르는 게 더 안전하죠 우린 그들을 깨달은 스승이나 안내자, 선생님 이라고 부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한 그들은 같습니다

스승님, 제 어머니는 채식을 30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든 이시고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으며 매우 약합니다 입문을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나요? 약한 사람들도 입문 할 수 있나요?

첫째로 80세가 넘은 사람은 입문한 자녀가 없다면, 즉 그들 자식이 아무도 입문하지 않았다면 그는 입문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명확히 수행 할 수 없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불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두뇌가 그렇단 겁니다 또한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입문해서는 안됩니다 병 때문에 와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픈 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질병 치료를 위해 입문한다면 관음 법문을 수행하지 마십시오 아프거나 늙거나 죽고 태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우린 생과 사에서 해탈하고 다시는 아프지 않고 돌아오지 않길 바래야 해요 덧없는 일시적인 질병의 치료를 위한 게 아닙니다 오늘 아프고 또 내일도 아플 수 있죠 오늘은 괜찮다가도 내일 또 아플 수 있습니다 올해는 괜찮지만 내년에 아플 수 있죠 여러분이 병에서 낫기 위해 영적 수행을 한다면 이는 대도의 길이 아닙니다 차라리 병에 대한 전문가를 찾는 것이 더 쉬울 겁니다 난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병이 나을 거라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내게 병을 치유하는 신통이 있다고 말한 적도 없지요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이해합니까? 병을 치유하기 위해 신통을 쓰고 싶다면 제발 그런 마술사들을 찾아 가세요 난 약속할 수 없어요 거짓말 할 수 없어요 난 오로지 영원한 해탈을 제공할 뿐, 병을 치료하지 않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죠 왜냐하면 병은 업장이니까요 병을 통해서 업장이 정화되고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병은 좋은 겁니다

스승님, 금강경에서 형체를 가진 모든 것은 환상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빛을 보고, 천국에 이르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스승님의 말씀과 상반됩니다

왜 상반된다는 거죠? 그 빛은 전구의 빛이 아니에요 환상이란 파괴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하지요 때로는 있다가 때로는 사라지는 것들이죠 그런 것들이 환상이지만 불광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오늘, 내일, 그 다음 날에도 그 빛을 가질 수 있죠 결코 그 어떤 것도 이를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환상이 아니라 진정한 체험입니다 이 세상이 바로 환상이지요 모든 것이 태어나고 죽으며, 오늘 존재했다가 내일은 사라지지요 그것이 환상입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금강경에서 언급한 것은 바로 이 세상이었습니다. 그는 생사와 형체가 있는 이 세상이 모두 환상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오늘은 여기에 있지만 내일이면 사라지지요 아주 덧없는 것이지요 석가모니 부처는 영원한 세상인 불국토를 찾으라고 말하려 한 겁니다 영원한 세상에서는 빛나는 태양이나 전등이 없어도 빛이 있지요 빛은 스스로 옵니다 스스로 빛나지요 그것이 부처의 빛입니다 우리가 그런 수준에 이르면 불성을 얻고 불국토에 도달했음을 뜻합니다 불국토는 환상이 아닌 영원한 것입니다 그 빛이 물질적 도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요 오늘 왔다가 내일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니지요 이는 영원합니다 그 경지는 영원히 존재하며 태어나거나 죽거나 더러워 지거나 깨끗해지지 않아요 짓거나 유지할 필요도 없고 부패하거나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이는 환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로 환상이지요 내가 금강경에 대해 조금 알고 있어 다행이군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을 겁니다

스승님, 이 세상에 부처와 중생 중 누가 먼저 왔나요?

질문이 너무 커서 대답할 수 없겠군요 스스로 부처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스로 답을 구하세요 만물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이란 어디서 왔을까요? 애초에 마음이란 없지요 원래는 고요하고 안정된 에너지가 있다가 이것이 지루해지면 움직이기 시작하여 많은 형상들을 만들어냅니다 그 형상들이 중생이지요 그러니 중생보다 부처가 먼저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는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이 공안을 생각해 보세요 난 공안을 참구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자유로워지려면 공안의 수준, 언쟁과 다툼이 있는 수준을 넘어야 하죠 난 공안을 풀고싶지 않아요 원한다면 혼자 하십시오 솔직히 말하면 중생이 부처보다 먼저 왔다 하더라도 내겐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생이 부처보다 먼저 왔다 해도 난 차를 마시러 갈 수 있어요 내게 그건 문제도 아니고, 의미가 있거나 중요하지 않죠 부처가 먼저 오거나 중생이 먼저 오거나 다 괜찮습니다 이 둘이 서로 경쟁한다면 그건 그들의 일이지요

질문이 더 있습니다 중생이 부처가 된 후에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면 다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까요?

네, 안 그러면 그는 이 세상 존재라고 볼 수 없지요 여기 오려면 길을 잃어야죠 우선 길을 잃고, 다시 깨닫기 위해 수행을 합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가 도솔천에서 왔으며 세세생생 부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도 여전히 무지했습니다 30년이 넘도록 무지한 상태에 있었죠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어떤 선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생로병사, 이 세상의 덧없음을 보고는 깨닫게 됩니다 그는 서둘러 깨달은 스승을 찾았고 그 후 6년간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도를 얻었지요 그건 부처가 세상에 와도 다른 중생과 똑같아 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지만 그가 여기에 왔을 때, 10년 이상 열심히 수행한 후에야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지요 부처들이 이곳에 오면 다른 중생들과 같아요 그들은 사랑으로 여기 와서 중생들과 친구가 됩니다 중생과 다른 일반인들처럼 평범한 옷을 입고 다른 일반인들이 쓰는 같은 두뇌를 사용하고 다른 일반인들이 먹는 같은 음식을 먹으며 다른 일반인들이 하는 같은 일을 합니다 중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죠 부처의 등급이 아주 높아서 우릴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의 상황과 생각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이 되어야만 해요 그래야 부처의 것을 설명할 수 있죠 그는 그대로 그 자신이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면 어떻게 우리가 소통하겠어요? 그러므로, 그는 원래 무지하지 않지만 우선 무지해져야 합니다 알겠어요? 중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무지해집니다

스승님, 인간은 천국에서 창조됩니까?

(네)

그렇다면, 왜 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그 성인들을 천국에 두지 않고 지구에 보내서 세세생생 많은 업장을 짓게 하나요? 왜 세상을 처음에 있던 대로 텅 비게 나두지 않았죠?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누구는 천국을 더 좋아하고, 누구는 지옥을 더 좋아하며, 누구는 불국토를 더 좋아하고, 누구는 이 세계를 더 좋아하죠 안 그래요? 우리 세상을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오늘 내 강연에 온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천국에 돌아가길 원하죠? 거의 없죠 그냥 호기심에서 온 것뿐이죠 수행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입문 한 후에, 그들 모두가 수행을 계속하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서둘러 천국에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뜻이죠 알겠어요? 그래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 같은 육체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희노애락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있어야만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지요 알겠어요? 모두에게 천국에서 살라고 강요할 순 없어요 맞죠? 우리 세상도 똑같아요 포모사는 아주 작은 나라지만 희노애락이 아주 많은 곳이에요, 안 그래요? 사람들이 부지런히 수행하는 수행처가 있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콩알을 세는 등 정토법문을 하는 곳도 있죠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런 지적인 질문을 한 사람이 누군지 손을 들어주세요 아니면 설명할 게 있나요? 이제 알겠어요 당신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승을 보고, 신통력을 얻고 빛을 보는지를 내게 묻으려 했던 거에요 그래서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게 해달라는 것이죠 그게 사실이면, 당신은 이미 알 거에요 깨달았으니까요

스승의 육신을 보지 못하고 빛만 보는 사람들은 유령도 보나요?

내 육신을 보지 못하고 빛만 보더라도 꼭 유령을 보는 건 아니에요 그가 유령과 신들의 등급보다 위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는 더 높은 경지를 볼 뿐 자신과 무관한 지옥을 보지는 않아요 그래서 볼 수도 있고 못 볼수도 있어요 나름이죠 유령을 봐서 뭐하지요? 살아있는 보살이 아니라 밤낮 유령을 보길 원하네요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연구와 토론을 위한 여러분의 협조와 부지런함과 신실함에 대해서요 난 아주 기쁩니다 오늘 강연에 온 분들은 대부분 진지한 마음으로 토론과 대화에 임하기 위해 오신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아주 기쁘며 내일 다시 만나 이야기를 계속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됐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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