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자유의 나라, 용감한 자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자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계층에서 온 사람들이 미국을 그들의 집으로 부릅니다 미국은 그들을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물론,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은 이 꿈을 이루는 화신입니다

뉴욕의 대중교육제도만 봐도, 전 학생들이 세계 145개 국가를 대표합니다 미국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여 유래 없는 기회를 줌으로써 모든 영역에 있어서 모든 국가로부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포용해 왔습니다 성공에의 장벽이 거의 없는 진정한 “용광로”가 된 이 젊은 나라는 모든 나라가 따를 모델이 되었습니다

미국엔 수십 개의 주요 도시들이 미국 내의 문화, 유산, 경제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04년, 251의 병합지역이 최소한 십만의 인구를 가졌고 9개 도시는 인구가 백만 이상이며, 여기엔 5개의 중요한 글로벌 도시인 뉴욕,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휴스턴 필라델피아가 포함됩니다 게다가 인구 백만이 넘는 50개의 대도시 지역으로는 롱비치 달라스 보스턴 피닉스 시에틀 산디에고가 포함되죠 공식적인 언어인 영어는 사실상 미국의 언어입니다 약 82%의 인구가 집에서 영어를 말합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영어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원어민이나 비원어민들 간의 일상 상호작용에 있어서 가장 일상적인 언어입니다 미국에서 기회란 여러분의 상상과 능력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입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도 미국 출신이며 둘 다 바닥에서부터 그들의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초강국으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또한 아주 영적인 나라이며 시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합니다 물론 종교는 미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많은 유럽 이주민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종교는 여전히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주된 영향을 줍니다

시민의 숭배할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국가로서의 미국은 칭하이 무상사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그녀는 1990년대 초반 신실한 영적 구도자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부터 칭하이 무상사는 전국에서 수 많은 초청을 받아들여 영성에 대한 그녀의 지혜와 앎을 나누었습니다 수년동안,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가진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그 나라의 많은 지역에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1993년, 많은 미국 중서부 지역이 큰 비로 홍수의 피해를 입자 칭하이 무상사의 마음이 이 피해자들에게 전해져 즉시 이 지역에 구호팀을 파견하여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1994년 이들 주에 대한 그녀의 자비와 공헌을 치하하여 중서부 여섯 개 주, 일리노이, 미네소타, 미조리, 아이오와, 위스콘신, 캔사스 주지사들은 칭하이 무상사에게 세계지도자상을 수여했으며

또한 2월 22일을 “칭하이 무상사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또한 2001년 9월 11일 미국 땅에서 최악의 인간의 비극이 일어났을 때 칭하이 무상사는 즉시 미국전역 및 전 세계에서 구호팀을 소집하여 뉴욕에 있는 폭파지점으로 보냈습니다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에 칭하이 무상사께서 기부한 금액은 미화 삼십만 달러에 달합니다 기부금은 미국 적십자 버지니아 지사, 워싱턴에 있는 국제 적십자사, 국제 구세군, 펜타곤 희생자 가족을 돕는 크라이시스 링크, 그리고 많은 펜타곤 부상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버지니아 의료원에 주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칭하이 무상사의 기부금이 구세군, 미국 적십자, 소방관 기념 재단에 보내어졌습니다 칭하이 무상사의 추가 지원은 구호품 보급에 쓰여졌습니다 폭파지점에서 우리 협회 회원들은 물품, 의약 및 매일 맛있는 채식과 뜨거운 커피로 구호 요원들을 먹였습니다 너무 위험하여 그 지역을 떠날 수 없었던 구조 대원들을 위해 그 당시 유일한 이동 식단이었던 칭하이 무상사 이동 식품이 대원들에게 배달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화신인 칭하이 무상사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그녀의 사랑과 자비를 미국 전역- 버지니아 오하이오 켄터키 알라바마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텍사스 하와이 등지에 전합니다 노인과 노숙자들, 고아와 빈민들, 재난 피해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칭하이 무상사의 사랑의 수혜자들입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가는 곳마다 그녀를 만나거나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깁니다

많은 이들에게, 칭하이 무상사의 지혜의 말씀은 그들이 신의 품으로 돌아가길 갈망할 때에 아픈 영혼을 달래는 향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1991년 초반 칭하이 무상사는 하리 크리슈나 단체로부터 신실한 초청을 수락하여 종파를 초월한 만남에서 신에의 지식과 진리를 나눴습니다

이제 칭하이 무상사께서 1991년 2월 17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하신 “칭하이 무상사와 하리 크리슈나”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어보시겠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이런 책임이 있습니다 이건 신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봉사의 기회지요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내적 평화를 얻기까진 외적인 평화를 유지할 수 없죠 세상의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 가슴에서 평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행사를 훌륭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겁니다 평화는 우리에게서 시작되죠 아멘

감사합니다

난 여러분도 모두 함께 기도하길 바랍니다

미국 원주민 중에 한분인데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 방식에서 여성은 큰힘을 가졌고 세상의 반을 차지하죠 여성들이 충분히 좋지 않고 이기심을 갖는다면 지도자가 박탈당할 겁니다 여성은 늘 영광된 자리에 앉아 행사를 주관했습니다 제 생각엔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다른 방식 중에 하나이자 여기 모든 사람을 깊이 감동시킬만한 방식은 여성들이 정당한 역할을 갖고 지도자가 되어 행사를 이끌고 이 나라 정치 지도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남성보다 훨씬 평화롭죠 여러분은 전사에게 말하고 있죠 전 수백개의 사명을 베트남에 날려 보냈고, 죽였습니다 여성은 그러지 않았어요 남성은 전쟁에 뛰어들지만 여성은 멈춰서 재고합니다 그러니 미래에, 그리고 여기 이 행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여러분의 정당한 역할을 찾아 행사를 주관하길 바랍니다 우리 미국 원주민들은 의식에 기초한 좋은 면을 기꺼이 지도해 드릴 겁니다 그들을 존경해주길 바라지만 여러분이 그들과 함께 앞서야 합니다 우린 소수이며, 소멸될 것이며, 타종족과 결혼해서 없어질 겁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성과 여성의 영혼을 가진 남성들도 이런 길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열쇠는 여성이 그들의 정당한 역할을 갖는 겁니다

나는 서양의 지고한 수디 여인들을 위한 기도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한분, 완전한 사랑과 조화와 아름다움, 스승의 화신을 이루는 모든 깨달은 영혼과 하나된 유일한 존재, 인도자의 영혼에게 평화가 있기를

스와미 박티판이 하신 말씀입니다 제대로 발음했기를 바래요 외부의 평화를 가지기 위해 평화는 무엇보다 내면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평화의 요소는 자비, 진정한 자비이므로 자비로운 부처님인 첸레지그의 기도를 반복하고자 합니다 옴 마니 반메 흠 옴 마니 반메 흠 옴 마니 반메 흠

오늘 저는 하나됨을 대표하여 어머니 아버지 신이여 지상의 평화는 자신 안에서 평화를 찾았을때 온다는걸 깨닫게 도와 주십시오 진리는 하나이지만 진리를 찾는 길은 여럿임을 깨달아 서로에게서, 주변 세상에서 신을 보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여 우리 모두 하나임을 알도록 우릴 정화시켜 주소서 아멘

자유 카톨릭 교회의 역사는 다른 신앙의 역사와 모든 종교를 넘어 하나됨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밀접하게 엮어져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우리 성찬식의 가장 강력한 기도중에 하나는 초기 주교의 요청으로 어떤 힌두인이 쓴 것인데 다른 신앙의 뭔가를 우리의 의식에 결합시킨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그 쿨랏 기도를 하고싶군요 주여, 저희를 가르쳐, 주님땅의 만물과 만인 속에 계신 당신을 보게 하시며 만국이 하나이신 당신을 알도록 인도해 주시어, 주예수를 통해 지상에 평화와 선의가 통치하게 하소서

오 자비로운 어머니 아버지 만물의 창조자시여, 당신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당신의 은총으로 저흰 평화와 행복의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뜻으로 오늘 우리가 의로운 일을 하게 허락하시고 저희에게 빛과 이해를 주셔서 예수님이 한 일을 알게하소서 이 기도를 현존하신 위대한 창조주께 바칩니다 항상 감사하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하시고 세상의 번뇌를 넘도록 하소서 이 삶에서 저희를 도와 불경스럽지 않게 하소서 자비롭고 모든 곳에 계시니 저희와 세상을 치유하소서 저희를 용서하고 순수함을 유지하게 도와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살며 주님 안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시고, 성령이 만인 속에 떠올라 주님의 은총으로 융성하게 하소서

모세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예수와 선지자 모하메드 안에 계시던 성령이 우리 안에, 이 땅에 내리소서 우리 기도이신 주님은 이슬람 신앙의 지도자들의 가슴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들 중에 영적인 위기와 불화가 있으니까요 제 기도는 그 위대한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코란을 통해 평화와 조화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설득력을 가져서 코란을 지하드의 칼로써 이해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 신앙에 화현되어 온 지구를 위태롭게 하는 위기가 평화롭고 영광된 해결에 도달하여 지상의 만인에게 빛이 되게 하소서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여 들어주소서 알라여, 아멘

그 의미는, 여기 친구들과 앉아서 하나가 되는 건 좋은 일이란 겁니다 하지만 중동에서 사람들이 하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전 인류에 대한 가르침으로 다음의 기도를 올립니다

즉 여기 이스라엘에서 주님은 신이며 주님은 하나죠 만유의 왕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샬롬

저는 도의 길을 대표해서 왔습니다 도를 대표하는 것은 또한 관음, 부처와의 관계에서 헌신적인 측면을 나타냅니다 관음은 특별한 자비의 메시지가 있으며 자비와 가슴의 사랑과 균형을 이룬 마음의 지혜가 있습니다 제 기도는 모든 인류가 가슴속의 자비심과 균형을 이룬 마음의 지혜를 얻어서 인류가 진정으로 자비롭고 평화로워지는 겁니다 그게 저의 기도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모두 안녕하세요 티베트의 사랑과 자비의 기도를 드리려고 합니다 영어 번역본을 읽겠습니다 모든 인류를 위해 하나의 지상을 성취하려는 결심으로 타인들과 어울릴 때마다 나 자신을 가장 낮다고 생각하도록 배우며 삼가 가슴 깊이 다른 이들을 무상의 존재로 여기도록 배우겠습니다 모든 행위에서, 내 마음속을 주시하여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 나와 타인을 위험하게 함을 배우겠습니다 그것을 바꾸고 없앨 겁니다 그 나라의 산 존재들과 권력과 고통에 억압 받는 존재들을 매우 얻기 힘든 보물을 찾은 듯이 소중하게 여기도록 배울 것입니다 남들이 질투심에서 나를 학대하거나 비방해서 안 좋게 대하면 모두 살펴보고 그들에게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내가 감사와 희망의 은덕을 배풀어준 사람이 이유없이 나를 해치면 그 사람을 뛰어난 영적 안내자로 보겠습니다 조만간, 부드럽든 거칠든 예외 없이 모두에게 모든 행복을 주는 걸 배우고 내 어머니의 모든 고통을 저 자신이 받아들일 겁니다 환상의 얼룩에 분열되지 않는 이 모든 수행을 수용하여 모든 현상을 환상으로 이해함으로써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날 겁니다 단 몇 분에 불과하지만 영적 가치를 수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쓸 수 없음을 압니다 많은 이들이 대도시에서 바쁘게 살지만 모두가 각자가 매일 아침 5분의 시간을 내어 사랑과 자비와 평화를 명상하여 전 세계에 보내길 요청합니다 티베트 종을 울릴게요 노래 종을 울리면 모두가 평화를 명상하고 그 힘을 전 세계로 보내 주시고 특별히 페르시아만과 티베트와 남아공에 보내주길 부탁합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네,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이 신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내면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게 반드시 옳은 건 아닙니다 지상의 평화나 좋은 지도력을 갖는 것은 가장 좋지만 먼저 신의 뜻을 알아야 해요 신의 뜻을 알려면 우린 외면이 아닌 내면에서 자아를 찾아야 합니다 우선 내면에서 찾은 다음 신에게서 나온 내면에서 지시된 행동이면 완벽한 것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라도 질문 있습니까?

질문을 우리 요원에게 주세요 어제 충분히 대답해 줬는지 알려 주세요 오늘은 마하라지 차례지요 그래서 난 뒤에 앉았어요

이미 특정한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 스승님께 와서 선 같은걸 하며 함께 명상하고 공부할 수 있는지요 어떤 사람이 잠시동안 와서 공부하되 입문은 받지 않는 그런 것도 하십니까?

그런 건 해보지 않았네요 국제적이고 종파를 떠난 이런 모임이나 회합을 말하는 겁니까?

제 말은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어떤 개인 혼자서 한 달이나 세 달 정도를 와서 선을 하거나 공부하면서 스승님과 명상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그래도 되긴 하지만 혼란스러울까 걱정됩니다 난 수천명의 제자들에게 각각 다른 것을 말하는데 당신은 당신 몫을 원하니 난 당신 방식대로 당신을 돌봐야 하고 당신 용어로 설명해줘야 합니다 게다가 그럴 시간이 없으면 당신은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들과 당신에게 해주는 말이 다를 테니까요 결국에는 둘 다 같은 목적으로 가지만 용어와 기술적인 말들은 다르게 써야만 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길과 용어에 집착하기 때문에 내가 다른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음, 제게는 영성이 언어인 것 같은데요 그건, 제게 그저 언어이며 내재적 과정일 뿐입니다

네, 그래요, 사실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 스승님은 불어, 러시아어, 히브리어도 하시니…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언어를 뜻한 게 아니에요

아니오, 그런 말이 아니라 예를 든 것 뿐입니다

외적인 예시죠 하지만 내적인 영적 언어는 스승과 공부할 수 있다면 혼란스럽지 않을 겁니다 최소한 스승님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명확하면요

이해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항상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명확한지 모르겠군요 저 사형이 마하라지에게 물었는데, 언어로 표현하기는 늘 어렵습니다 뭔가를 명확히 하려고 나에게 왔을 테니까요 뭔가 명확하지 않았다면요 명확했다면 올 필요가 없었죠 난 언어와 비언어를 모두 사용해 돕습니다, 그렇죠? 비언어적 부분은 확실하지만 당신이 이해할 지 모르겠어요 비언어적으로… 당신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음의 장애와 선입견을 극복해 비언어적으로 말이죠 자, 당신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때로 명확히 하기가 어렵죠 비언어적으로 할 수 있지만 당신은 인내하고 내면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할 수 없습니다 내면의 가르침을 받으려면 언제나 내면에 머물거나 최소한, 이미 특정 등급에 올라야만 합니다 그래서 외부 언어를 써야만 하는 겁니다 이제 내가 이 용어를 쓰다가 저 용어를 쓰면 여러분은 혼란스러울 것이며, 난 그 차이를 해소해줄 만큼 충분한 시간도 없겠죠? 그러면 여러분은 나와 더욱 오래 걸릴 테고 인내심도 잃게 되고 그럴 시간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스승이 이렇게 충고합니다 “나를 따르려면 완전히 나에게로 돌아서라” 다른 길을 떠나라고 하죠 그 스승은 다른 길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해하겠죠 우리가 뭘 하든 한 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뿐이죠 내 말이 이해됩니까? 우리가 여기 있는데 그들이 흩어져서 빠르고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스승이 아니라 우리가 어렵지요 또 스승이 도와주기가 어렵죠 네, 진실입니다 스승이 어렵게 느끼거나 도와주기 싫은 게 아니에요 당신이 집중을 안하고 한 곳에 있지 않으면 돕기가 어려운 겁니다 모든 길이 같고 같은 목적지로 이끈다는 걸 알거나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럼 다른 길로 전환하지 그래요 만일 다른 스승을 원한다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스승이 아니라 여러분이 차별을 해요 스승은 모든 길을 동시에 가르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그가 원한다 해도 말이에요 모든 길이 다 좋다며, 통상 “모든 길이 좋다”거나 “같은 목적지로 간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어가진 않아요 소위 말하는 어떤 길이든, 설사 길이 아니라 해도 세부사항이나 고정된 일종의 지시사항이나 패턴이 있기 때문이죠 스승이 아니라 제자들이 제자들을 위해 희생되지요 그들을 목적지가지 한발씩 이끌기 위해서 말이죠 지금 당신이 따를 길을 모든 세부 사항들과 모든 내부의 문제들과 함께 내가 가르쳐주길 원하고 다른 길을 가르치고 있는 날 따르길 원한다면 어려움만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맞습니다 여기서 회의 사이에 구별이 생기네요 이런 종교 회의에서 우리의 주된 목적은 상세히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공동 협력하여 서로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겁니다 고향에 가고,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꿈을 쫓기 위해서요 하지만 열심히 수행하려면 우리 자신의 길에 집중해야만 해요

맞습니다

우리의 스승은 우리의 길에 기초를 두고 말해야 합니다

맞아요

여러분의 훌륭한 사원을 통해 여러분의 헌신과 예술 감각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 걸 갖는 건 미국에, 미국 사회에 매우 긍정적이죠 하리 크리슈나에서만 아니라 다른 데서 설립한 많은 다른 것들을 봐왔어요 안경을 쓰는 게 좋아요 벗을까요? 너무 비추지 않아요 내 눈을 볼 수 있어요? 끼면 좀 더 나은데 빛을 걸러 줘서요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으면 내 안위를 희생할게요 어쨌든 안경을 안 좋아해요 익숙하지가 않아요 다른 많은 종교 단체와 고결한 수행자들이 이러한 다른 많은 협회를 조직합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도 매우 긍정적이죠 여러분이 다른 배경과 다른 나라에서 온 걸 알아요 다른 국적을 가지고 말이죠 하지만 오늘은 미국인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여기 와서 지적인 미국인들과 말하는 게 굉장한 특권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전 스승과 지금 스승의 지도를 통해 인류와 신에게 헌신하는 길을 택했지요 마약과 독한 술 광고와 설득으로 미국 사회를 붕괴하려고 애쓰는 모든 정치운동이나 부적절한 상업운동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설득, 맞죠 미국 사람은, 지적인 미국 사람들은 깨어나고 있어요 우린 프라부파드 스승과 박티파드 스승, 그리고 그들의 인도 하에 출가한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젊음과 에너지와 삶, 그들이 가진 돈과 지성을 건강하고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희생했으니까요 위대한 미국 말이에요 누군가 몇 년 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고 말했어요 그게 누군지 모르겠네요 잊어버렸어요 그의 이름을 아나요 레이건요?

(로널드 레이건요)

아, 그래요 고마워요 난 정말 멋진 슬로건이라 생각했어요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는 거요 고마워요 단지 무장 세력이 아닌, 특히 무장 세력이 아닌 우리의 영적인 힘, 지적인 힘으로 말이에요 우리 모두가 타고난 것이죠 만약 성경이나 불경 혹은 다른 종교 경전들을 보면 신의 왕국이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가 신의 사원이라거나 우리 안에 불성이 있다는 말을 항상 알게 됩니다 자, 왜 우린 이 불성이나 내면의 신의 왕국을 문제들을 다룰 때 사용하지 않는 걸까요? 외부의 물질적인 힘을 쓰는 대신에 말이에요 그건 불안정하고 믿을 수 없으며, 많은 고통을 초래하며, 많은 재주 있는 젊은이들과 아름답고 창조적인 인간의 목숨을 잃게 하니 낭비잖아요 인간을 창조하려면 엄청난 신의 창조력 또는 우주의 힘이 들어갑니다 많은 지식과 시간, 비용, 사랑이 한 인간을 키우는 데 들어갑니다 그런데 단 1초 만에 수천, 수백만 명이 전쟁에서 파괴됩니다 정말 끔찍하지요 또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는 건 정말 불공평해요 전쟁에서 우리가 옳거나 나쁘거나 관계 없이 늘 양 쪽에 불행을 초래합니다 또 우리의 적이라 해도 영혼이 있고, 감정이 있고 지력이 있고 동정심 역시 있고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있다는 걸 압니다 단지 우리가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고, 사귀고 우리의 적들과 친구가 되지 않는 것 뿐이죠 그래서 그들 역시 우리 같은 사람이란 걸 때로는 잊지요 따라서 그리 존중하지 않거나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는 누군가를 죽이기가 쉬운 겁니다 이제 좀 긍정적인 일에 힘을 기울여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듭시다, 긍정적인 생각과 고귀한 삶으로 재건합시다 단순한 삶, 높은 이상으로요 왜 웃나요, 사실이 아니에요 너무 익숙하게 들려요 상업적인가요 여러분에게 배운 거예요 나에게 가르쳐줬잖아요 미국에 올 때까지 그 전엔 그런 말한 적 없어요, 여러분이 듣고 싶어하는 거라 생각했죠 알았어요, 주제를 바꾸죠

우리가 말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만 하는 거예요 우리가 말한걸 한적이 없고 성취하거나, 우리가 말한 걸 실행에 옮긴 적도 없이 위대한 생각들을 당연하게 여기니까 안 좋게 들리는 거지요, 알겠어요? 마치 모든 이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적을 사랑하라고 말하며 그렇게 하지 않기에 근래에 몇몇 사람들이 교회나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의 개념으로 그것들을 하찮은 걸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한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믿는 것이 좋은 이상이나 행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많은 영적 스승이 사람들을 몰래 입문시킵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 성과와 이상을 깨닫고 실행에 옮기는 대신에 그걸 이야기만 할까 두려워서 그들의 이상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는 거예요 사회의 좋은 슬로건이나 많은 대중에 대한 약속들이 행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우리가 그걸 보거나 들으면 웃어버리죠 왜 웃을까요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말이 갖는 실천적인 면에서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내가 “단순한 삶, 고귀한 생각” 같은 말을 할 때, 여러분들처럼 웃을 수 없어요 난 농담으로 여기지 않죠 왜냐하면 난 이런 걸 행하며 살아왔고 이게 매우 소중한 교훈이고 이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이런 것에서 만족을 끌어내죠

그래서 여러분이 웃어서 놀란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이 웃은 건 좋아요, 그럼으로써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있고 말이나 이론, 철학의 다른 면을 줄 수 있으니까요 마치 내가 여러분에게 설교하거나 어떤 철학을 소개하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내가 살아 있기에 아니에요 난 내가 말하는 철학을 살고 있어요 여러분이 좀 더 내면으로 고요하다면, 내 말의 진심을 느낄 거예요

그들이 왜 웃었는지 이유를 말해드릴게요 단순한 삶, 고귀한 생각을 말하셨는데 그들이 매번 저에게 그 말을 듣거든요 그걸 당신에게서 듣고는 우리가 서로 통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 칭찬인 셈이죠

같은 스타일, 같은 생각을 뜻하는 건가요

내 말과 같은 말을 했어요

아 그래요, 그런가요

좀 더 일찍 말하지 그랬어요 좋아요 그렇다면 좋네요 좋아요 그래서 놀랐던 거예요 여러분 또한 매우 단순한 삶을 살기 때문에요 그게 우리 공동체의 모토에요 예, 단순한 삶을 강조하는군요 당신은 사원을 짓거나 인류에게 삶의 아름다운 면을 소개하는 책을 내려고 당신의 안락과 많은 시간과 돈을 희생해 왔어요 예, 난 놀랐어요 여러분이 날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네 이제 서로를 이해하니 나중에 악수할 겁니다 이미 모두 들었는데 왜 내게 말해달라고 하죠? 난 여기 앉으면 안 되요 좋아요 질문하세요 네? 여러분 갈망에 따라 말하겠습니다 그게 더 좋을 거예요 내가 여기 앉아서 여러분이 이미 수십 수천번 들었던 연설을 하는 것보다요 괜찮습니까? 뭔가를 묻거나 제안하거나 내가 뭘 할지 말해주세요 네 여러분은 이런 연설에 익숙한 것 같은데 내가 또 뭘 할 수 있죠?

불교도들이 하는 서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보살서원을 하며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위한 자비의 서원을 하는데 온 생애를 다 바쳐 모든 예속된 영혼을 해탈시킬거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 강렬한 자비와 헌신을 계발할 수 있죠?

어떻게 자비와 강한 헌신을 계발할 수 있냐고요? 맹세만 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신실한 갈망을 통해서죠 그건 수행에서 나옵니다 예컨대 자비심을 키우거나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법을 이해하려는 동기로 어떤 명상을 수행한다면 시간을 들여 명상하면 이것들은 성장할 겁니다 보다 옳게 표현 하자면 스스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내면에 이미 자비가 있으니 계발할 필요가 없죠 단지 길을 청소하거나 소위 나쁜 습관과 별 도움이 안되는 어떤 선입관만 없애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비심은 다시 드러날 겁니다 그와 더불어 강렬한 결심도 성장할 거예요 당신이 더 봉사하면, 그걸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때문에 그걸 위해 더욱 전적으로 자신을 던질 필요를 느끼죠 이해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자비심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명상과 기도 혹은 신실한 갈망을 통해 해야 해요

질문이 있습니다

네 뭔가요?

때로 우리는 불교도들이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죠 설명해주시겠어요? 고타마 부다가 신을 믿지 않았나요?

예, 설명하지요 당신이 허락하신다면요 마치 당신이 제자들에게 “외형을 너무 숭배할 필요가 없어요 외적인 의식을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라는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당신은 그와 동시에 항상 그들을 인정합니다 크리슈나를 존경하지 않는 다는 게 아니지요 혹은 의식의 전통 가치를요 단지 우리가 집착해선 안 된다는 것이며 더욱 내면에 몰두하여 자신의 지혜를 찾아 더 잘 봉사하려는 겁니다 네 이해합니까? 부처도 마찬가지죠 모두 신에 대한 다른 개념을 갖고 있으며 모두들 다른 질문을 가지되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고 그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신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부처가 거의 수용하고 동의하도록 강요했어요 그래서 부처는 지쳐서 신은 상관 말라고 한 거죠 내게 그 얘긴 하지 말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왜냐하면 부처는 신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이 형편없고 신에 대해 부처가 아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걸 훤히 다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길 “신을 논하지 말자 진실을 말하면 우린 신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계율을 지키고 우리가 현명하고 우리가 자비롭고 무아의 동기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무조건적 사랑을 준다면 신은 필요치 않죠 신은 이런 사람들로 즐거울 것이고 그 사람을 뒤쫓고 그의 이름을 부를 겁니다 신을 숭배하지 않는다거나 부처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가 의도한 건 더 높죠 부처는 여러분 마음에 있는 신에 대한 형편없는 개념을 버리란 뜻이며 진정한 신의 자질들을 배우라는 겁니다 그럼 신이 무엇이며 신의존재 여부를 진정으로 알게 됩니다 부처는 논쟁하기 싫어했죠 난 그를 탓하지 않아요 그가 논쟁을 싫어하는 것에 대한 다른 얘기가 있어요 이 모든 건 매우, 때로는 정신적인…. 체조는 고되고 쓸모없어요 지적인 토론을 싫어함을 보여주는 얘기가 있죠

어떤 남자 출가승이 있었는데 부처에게 와서 말했죠 “창조자가 있는지 창조자가 세상의 고통을 왜 창조자가 이 모든 고통을 만들었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절대 당신을 믿지 않고 당신의 가르침을 수행하지 않을 겁니다” 예 그러자 부처는 답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아서 죽음이 임박했는데 의사가 와서 그에게 치료법을 말하면서 어떤 치료를 제안했다 그런데 환자가 고집을 피우면서 우선 화살을 쏜 사람을 발견했는지, 왜 화살을 쐈으며, 어떤 독이 묻었으며, 어떤 재료로 만든 화살이며 모든 사유를 알려달라고 하면 어찌하겠는냐? 또 애초에 누가 화살을 발명했냐는 등등을 물으며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다면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가 현명한가, 아닌가?” 물론 그 출가승은 그가 우둔하며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죠 우선 약을 먹은 다음에 그가 이것이나 화살의 역사 기록을 찾고자 하면 나중에 찾을 수 있어요 그래서 부처는 “마찬가지로 너도 어리석다 이 모든 역사적인 것들을 내게 묻는 것 또한 시기상조이니라 우선 내가 말한 걸 수행하고 내가 지시한 걸 따르면 어쨌든 답에 얻을 것이다” 부처는 너무 과한 정신적인 씨름이나 증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토론을 싫어했어요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칭하이 무상사와 하리 크리슈나” 2부를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 “성공의 모델”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방송됩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을 계속 시청해 주십시오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기쁩니다 내일도 “칭하이 무상사와 하리 크리슈나” 3부를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 특집 방송 “보살의 마음: 어울락에서의 칭하이 무상사의 인도주의 활동”이 “예술과 영성”에서 방송됩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을 계속 시청해 주십시오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방송될 “칭하이 무상사와 하리 크리슈나” 결말을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의 특집방송 “보살의 마음: 어울락에서의 칭하이 무상사의 인도주의 활동”의 결말편이 “예술과 영성”에서 방송되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

지금까지 1991년 2월 17일 미국 버지니아에서 하신 “칭하이 무상사와 하리 크리슈나”의 결말을 시청하셨습니다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내일도 칭하이 무상사의 강연 “관음법문은 사랑의 힘의 법문이다”를 기대하십시오 곧 “영화 속으로”가 방송되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

우리 전통에서 인생의 목적은 신에 대한 사랑이라 합니다 그러나 신을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그를 사랑할수 있죠?

질문이 뭐지요?

먼저 신을 알아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면 신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건가요? 먼저 신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거죠? 신이 있다고 부처가 말해야 한다는 거죠?

제 말은 부처가 신에 대한 개념을 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신에 대한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네 맞아요

부처는 신을 다르게 말했죠 그는 다르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죠? 때로 신이 없다고 말했지만 정말 신이 없다고 말한 게 아니라 이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한때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만물이 여기서 왔고 또 만물이 다시 돌아가는 그 한 곳이 있다’ 그게 과연 뭐겠습니까? 네, 그게 신이 아니라면, 아마 부처겠죠 맞습니다 신에 대해 말할 때 그는 다른 이름을 사용했죠 고유의 지혜, 본래의 믿음 불성 등등이요 우리가 ‘신의 왕국’이라 부르는 것을 그는 ‘불성’이라 불렀죠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것을 그는 부처의 자비, 부처의 지혜라 불렀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입견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신에 대한 제한적인 관념 말씀이시죠

그래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그들의 관념, 신에 대한 그들의 관념 말이죠 그것도 우리 전통에서 일명 ‘인격주의자’와 ‘비인격주의자’ 사이에 계속되는 논쟁입니다

네, 당신의 스승은 ‘인격주의자’를 믿었죠 내가 제대로 이해한다면요 허나 그가 ‘비인격주의’를 안 믿는다는 뜻이 아니죠 단지 형태가 없는 신에게 집착하는 이들의 관념을 깨뜨리고 싶어한 거죠 그는 “보라 신에게 형체가 없는데 어찌 너희가 있겠느냐” 그는 아주 힘이 있었죠 어떤 스승은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그걸 말해야 합니다 항상 ‘네,네’ 하면서 이건 비인격적인 것이지만 인격일수도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지죠 그들은 이미 비인격적인 측면의 신에게 집착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당신의 스승이 내면에 또다른 관념을 가져와야했죠 그렇게 단호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깨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당신의 스승은 분명 신의 비인격적인 면도 알죠 그는 이 크리슈나 동상에 집착하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의 영적인 스승을 숭배하겠습니까? 이해합니까? 그는 말했죠 ‘나의 스승은 평범한 스승이 아니다 그는 나를 구했다’ 여러분의 영혼을 구해줄 수 있는 자는 신입니다 혹은 신의 대표자이거나 신의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는 살아있는 스승의 강력하고 중요한 면을 아주 온유하게 강조했지요 너무 온유했지요, 아마 그가 겸손해서 법석떨기 싫었거나 명확히 말하지 않았겠지요

제자를 이끌기 위해 더오래 살아 남고자 의식 뒤에 숨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그는 알고 있었어요 맞습니다,

그는 종종 신은 둘 다라고 말했으니까요



다시 말하면 인격적 관념과 비인격적 관념 모두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네 그럼에도 말이죠 신의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말이죠 그래서요 신은 동시에 인격,비인격이며 둘다 아니면서 둘 다입니다

맞아요 어쩌면 당신이 신에 대해 더 말을 잘하겠군요 난 자격이 없어요 난 신을 어떻게 비인격이다 비인격이 아니다 란 틀에 넣을지 정말 모르니까요

이건 같은 맥락이지만 약간 다른 질문인데요 전 “인터 페이스”에서 젊은 이들과 많은 일을 하는데 몇몇은 초기 불교국가인 스리랑카나 태국에서 왔죠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그 중요성은 신에 관련된 것이 아닌 오히려 다른 수행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은 “인터페이스”에서 일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처럼 다른 종교 전통간의 연결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유익한 것인가 하는 건데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글쎄, 모든 전통의 핵심, 꼭대기엔 아주 비슷한 뭔가가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 실은 모두 같아”라고요 이 젊은 불교도들과 같이 있어보니 그들은 항상 이에 대해 아주 사려 깊고 어울리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적으로 말해보면 그들에겐 생소한 겁니다 그래서 전 종파를 초월하여 다른 전통을가진 누군가에게 손을 뻗는 것이 과연 유익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당신말이 맞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겉으로 말하죠 “모두가 다 같습니다 우린 분별하지 않아요” 하지만 하죠 그래서 공통점을 설명해줘야 하는 거지요 이해합니까? 때로 우린 수행하면서 길을 잃고 목적을 잊어버리지요 그것이 우리의 불행한 집착입니다 예, 영적 스승들이 드무니까요 스승은 많지만 종교의 영향과 경전의 진수를 진실로 이해하고 이를 일상 언어로 표현하여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하는 영적 스승은 드물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전통과 법문을 따르다 보니 그 법에 묶이거나 집착해서 왜 그걸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죠 사실입니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다른 누군가 다른 전통으로 행한다면 육체적으로는 아니라도 정신적으로는 거부할 겁니다 겉이 아니라 속에서 거부하죠

그래도 좋습니다 전 종파초월이 공통점을 깨닫는 데에도 중요하지만 차이점을 깨닫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차이점이란 신이 다른 관점, 다른 방식에서 보여진, 뭔가 훌륭한 것을 돋보이게 하니까요 마치 다면체의 보석처럼요 당신은 한 면을 보고 이 면은 파랗다고 할 수 있죠 다른 사람은 다른 면을 보고 노랗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은 그 입장이 있지만 신은 아주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요 보석에 모든 면이 있듯이 신은 모든 것의 통합이며 그 이상이지요 우린 신을 가둘 수 없으며 그를 정의 할 수 없지요 비록 신의 특성을 천 개나 열거해도 신의 특성을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 잠시 덧붙여 말해도 될까요? 제가 봤을 때 불교인들은 이를 정말 잘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종파를 초월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왜 그는 종파를 초월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이 많은 다양한 형태로 온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걸까 우리 전통에선 신을 아예 생각도 안 하는데’ 이종파에서 그들의 언어를 많이 통하지 않고도 제가 수용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나 당신은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소위 ‘신을 생각하지 않음’도 신에 대한 생각임을 이해해야 해요 단지 인격이 없는 신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린 우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공통점을 이해하면 모든 이의 전통을 인정하고 내가 보지 못한 다른 뭔가를 그들이 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신의 전부를 보지 못했음을 알아야 하니까요 신을 전부를 본다고 생각하는 자는 신을 안보고 있는 거죠 관음보살이요

예, 관음보살도 불교의 성인 중 한 분이죠 중국에선 여성, 티베트에선 남성이라 여겨져요 티베트에는 둘이나 있죠 한 명은 남성, 한 명은 여성이죠 둘 다 관세음보살의 상이에요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에선 여성의 모습인 관음보살만 숭배해요 그녀는 자비와 무조건적인 사랑을 대표한다고 여겨지죠 우리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수천 년 전에 이곳에 왔었고요 또 깨닫기 위해서 소위 말하는 관음법문을 수행했고 그게 관음보살이에요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듣고 적절히 답하며 모든 재난에서 우릴 구한다고 여겨지죠 충분한가요

그걸 어떻게 더 추구해야 할지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예, 맞아요

그녀가 부름을 받으면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전해오게 되었죠?

어디로 돌아온다고요

아기의 울음을 듣고 지구로 돌아왔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항상 여기에 있다고 하잖아요 돌아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죠 만약 당신이 그걸 뜻한 거면 그녀는 곤란에 처한 인간을 보다 활발하고 확실히 도우려 육신의 형상을 취할 거예요 그녀는 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때론 육신의 상으로 돌아와요 다른 많은 성인들처럼요

관음법문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관음법문은 관음보살이 행하는 수행 방법이에요 관은 관찰을 뜻해요 음은 소리, 진동을 뜻하죠 불경의 능엄경은 관음보살이 본성을 듣기 위해 육신의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소리를 듣는 천성을 이용하여 내면의 소리를 듣는 수행을 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본성은 신이며, 신성하고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지요 그러니 이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요, 우리 본성, 본성의 창조력 자체가 신이라고요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죠, 진동과 모든 것이 그것에 의해 창조됐어요 그러니 우리가 우리 본성을 듣는다는 건 우리가 우주의 창조된 에너지, 진동, 소리를 듣는 걸 뜻해요 바로 관음보살이 이 법문을 수행한 방법이죠 불교의 능엄경에 분명히 적혀 있고, 신을 알기를 간절히 바라고, 신과 하나되길 진심으로 원할 때 정말 조용한 곳에서 혹은 깊은 기도나 명상 중에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더조용한 곳에서 들을수 있고 어떤 이들은 “침묵의 소리”, “내면의 진동” , 내면의 에너지 “신의 목소리”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래서 모세가 황야에서 그걸 듣고, 천둥 같다고 했죠 또 성경의 어떤 곳에는 많은 물소리 같다고 언급되었죠 불교의 능엄경에서는 말하길 파도 소리 같다고 합니다 알겠어요 파도 소리나 많은 물소리는 같은 거예요 그게 관음법문이에요 소리를 듣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마치 혼자 배워서 운전을 하거나 전문 운전강사에게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게 더 빠르고, 확실하고 위험이 적지요

그럼 이게 불명을 외우는 정토법문과 비슷하나요? 아닌가요

그것과 관련이 있냐고요?

예,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왜 그렇지 않을까요 관련 있죠, 부처 생전에 감옥에 갇힌 한 왕비가 있었는데, 그녀는 스승인 부처를 몹시 보고 싶어했지만 나갈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스승을 갈망하면, 그 스승이 진짜인 경우 그는 나타날 거예요 그의 육신이 아니라 여러분의 보는 능력에 따라 눈부신 수 백, 수 천 개의 태양빛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거예요 그래서 부처는 감옥에 나타나 그녀를 영계로 데려갔어요 그 중 하나가 아미타불의 세계이며, 정토라 부르죠 너무나 순수하여 순수함 외엔 없으니까요 그녀는 아름다운 곳을 보곤 말하길, “여기 머물 수 있나요 여기서 태어날 수 있나요? 저는 물질 세계에 흥미가 없어요 아들은 제게 잔인하고 남편은 죽었어요 진정한 친구도 없고요 여기가 더 좋은데 머물러도 돼요?” 부처가 말하기를 “예, 하지만 지금 집에 돌아가서 이곳의 모든 걸 명상하고 항상 이 세계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생각하면 죽을 때 그가 데려갈 거예요.” 하지만 거길 어떻게 가죠 예, 깊은 명상으로요 부처가 그녀에게 뭘 가르쳤죠 관음법문이요 관음법문으로 단지 내면의 진동을 듣고, 지혜를 늘리고 신의 힘을 인식하는 것만 아니라 다른 세계와 영적 수준을 방문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머물 거처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녀가 부처의 은총과 함께 바로 관음법문을 이용해서 아미타불의 세계로 간 거죠 그래서 부처가 “예”라고 말한 거예요 관음법문과 관련이 있지요 부처도 관음법문을 아니까요 왜 이걸 말할까요 왜냐하면 능엄경에서 부처도 그의 제자들에게 “그래, 그래, 관음법문이 가장 높은 법문이다”라고 확실히 말했거든요 또 관음보살도 언급했지요 당시 제자들에게 어떤 법문이 가장 좋고 안전한지 설명하기 위해 그에 대해 말하며 부처가 말했지요 “그래, 나 역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관음법문을 수행한다” 따라서 그가 안다는 걸 알죠 그는 물론 가장 훌륭한 제자에게 가르쳤고 정말 신실해서 의기소침한 때에 명상 중에 부처가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가르쳤어요 높이 진보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렇죠 부처가 가르친 관음법문 같은 걸 수행한 사람이지요 이제 “관계 없다”고 할게요 왜냐하면 요즘 불교 개념에선 사람들이 관음법문을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그냥 아미타불경을 읽으며, 이런 문구만 읽겠죠 ‘집에 머물러야 하고 아미타 세계의 아름다움과 아미타불의 모습과 이곳의 모든 보살들과 다이아몬드와 금, 궁전 같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명상해야 거기 태어날 것이다’라는 거요 그러곤 그게 다라고 생각하죠 그들을 그곳에 데려가는 다른 힘이 있다는 걸 잊었죠 공허한 비전에 대해 명상하는 것만이 아니라요

그들 역시 성스런 이름을 외우도록 가르치나요

예 예, 신은 많은 이름을 가졌죠 우린 몇몇을 고를 수 있어요

이 최근의 부처 석가모니를 어떤 이들은 그가 깨달음을 얻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믿고 다른 이들은 그가 아주 남다르며 도솔천에서 와서 좋은 모범을 보이려고 고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뭐가 진실일까요

당신 불교에 대해 잘 아니 아주 기쁘네요 어떤 불교도들은 당신보다 잘 알겠죠, 그렇지 않아요 도솔천에서 왔다는 부처의 태생에 관한 전설은 아마 그 자신에게서 오지 않고 제자들한테서 왔을 거예요 그가 평범한 존재라는 설은 아마 그 자신에게서 왔을 거고요 대부분의 영적인 스승들은 대중에게 그들의 신분을 인정하길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부처가 사람들에게 “난 범부다”라고 말한 거죠 달리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태어났고, 먹고, 걷고, 말하는 그의 물질적 욕구를 가졌지요 결혼도 해서 아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거리의 이방인에게 나타나 “보세요, 난 부처에요” 라고 말한다면 소용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마 그의 제자들이 사적으로 묻거나 어떻게 그가 전수하는 힘, 즉 천국이나 우주의 영적 에너지를 가졌는지 알기 원하면 말할 거예요 또 부처가 도솔천에서 내려왔는지 아는 다른 방법이 있어요 알다시피 여러분이 진정한 영적 스승에게 입문하면 여러 천국들을 갈 특권을 갖죠, 열심히 수행하고 스승의 지도를 잘 따르고 계율을 지키고, 청정하게 살고 채식 등을 잘하면요 그러면 위에 있는 한군데 천국에 가서 자기 스승을 만나게 되겠죠, 그렇죠? 여러분은 스승의 위대함의 역사를 모두 알고는 돌아와서 말하겠죠, “보세요, 스승님 전 스승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오신걸 아는데, 왜 말씀하시지 않으셨죠? 그럼 스승은 “맞다, 이제야 알았구나”라고 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얘기들을 알게 되는 겁니다 불교 경전에서 부처가 말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제자들이 말한 겁니다 부처의 제자들은 부처를 대중적 존재로 만들었고 그래서 문제도 생겨났지요 많은 이들이 부처를 죽이려 하거나 누명을 씌우고 예수처럼 제자들에게 문제를 일으켰죠 그래서 보다시피 모순이 생겨납니다

능가경이란 경전이 있는데 부처와 많은 보살들이 토론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처는 보살들에게 스스로 완벽해지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고기를 먹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또, 제가 알기론 능엄경이란 경전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 나옵니다 새로 출가한 사람이 의심을 하자 답하는데, “그렇다 세 가지 상황에선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라고 합니다 그걸 해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당신이 나중에 말한 경전이 처음에 언급했던 경전의 이전일 겁니다, 그래요 순서를 바꿔놓고 봅시다 첫번째 경전에서 부처는 ‘만일 그 동물을 자기가 죽이지않았고 자신 때문에 죽지 않았으며 또 자신을 위해 죽은 게 아님을 알고 있으며 그 동물이 자연사하거나 다른 동물이 이미 반쯤 먹고 남겼다면 먹을 수 있으며 또 고기가 너무 말랐고 바깥 야생에서 고기를 발견했으면 먹어도 된다고 첫번째 경전에 있죠 새내기들과 많은 비구, 즉 많은 출가승에겐 채식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부처에게 어떻게 점차 채식에 익숙해지며 또 어떤 식으로 채식을 대체해야 수행이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는 “좋다, 이런 상황이면 먹어라”고 했죠 나중에 다른 능엄경이라는 경전에서 부처는 말했죠 “처음 왔을 땐 습관 때문에 이런 종류의 고기를 먹도록 허락했지만 오늘부터 누구도 고기를 먹을 수 없다 고기를 먹는 자는 내 제자라 칭할 수 없다” 라고요 그리고는 더 많이 위협하면서 부처는 무척 강경하게 육식을 금지합니다 원한다면 능엄경을 읽어보고 스스로 부처가 말한 것을 정확하게 찾아 보세요 우리 제자들도 인쇄물이 있는데, 육식에 관한 내 강연을 모아서 한 강연으로 만든 겁니다 제목이 “왜 채식을 해야 하는가?” 예요 거기에 훨씬 분명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나와있죠

왜 그런 특별한 길을 선택하셨나요?

거기 떨어진 것 뿐이며 어쩔수 없이 일어난 거죠 과거에 다른 법문을 하신 적이 있었나요?

사실 난 많은 모험을 해봤어요, 그래요

스승님께서 대승불교인지 혹은 소승불교인지 알려주시겠어요? 둘 다입니다(둘 다라고요?)

둘 다 이면서, 둘 다 아니죠 차이를 구별하실 수 있나요?

사람을 잘못 골랐어요 더 이상 불교가 뭔지 정말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기억을 뒤져 보겠어요 이 시대의 불교 세계 개념에 따르면 두 가지 학교로 구별됩니다 하나는 대승불교로 ‘큰 수레’ 란 뜻이며 하나는 소승불교로 ‘작은 수레’를 뜻합니다 대승불교는 숭고한 일을 강조합니다 다른 사람이 깨닫도록 돕는 동시에 자신도 깨닫게 되면서 당신의 일이 더 위대해지죠 세상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설법하고 전도하는 등등을 하죠! 소승불교는 오직 자신이 깨닫는 것과 자신의 일을 돌보는 것만 의미합니다 그건 현대적 개념입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요

감사합니다

난 어떤 개념도 좋아하지 않아서 둘 다거나 둘 다 아니라고 말하죠

깨달음이라고 하실 때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렵지만 해보겠습니다 깨달음은 내면 세계의 것으로 물질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말로 다하려면 전체를 표현하기 어렵죠 보다시피 깨달음은 빛을 내포합니다 빛은 신의 일면이죠, 그래요 가장 높은 신의 일면이죠 신은 한편으론 비인격이며 다른 한편에선 인격이니까요 신의 비인격적인 면은 오직 빛을 통해 보며 진동과 에너지로 느낄수 있죠 신의 인격적인 면은 신이 스스로 화현하여 부처, 예수, 크리슈나 같은 살아있는 스승인 인간의 모습으로 응집되어 나타날 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가 인격체인지 아닌지 대해 논쟁을 하지만 둘 다 맞거나 아니기도 해요 깨달음은 빛이 있거나 빛을 본다는 뜻이에요 밝혀진다는 것이죠 우리 안에 빛이 있고, 그 빛은 신을 나타내며 그것이 신이죠 그 빛은 약간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럼, 그것은 소리가 됩니다 소리가 보이게 되면 빛이 되고요 빛과 소리는 신의 모습들이죠 알겠어요? 자, 그럼 깨달음은 빛을 얻었다는 뜻이죠 밝혀졌으며, 밝은 세상을 향해 열려졌다는 의미에요 지금 어두운 세계에 있으므로 길을 밝혀주는 빛, 태양, 별과 달이 필요해요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는 물질적인 태양이 필요 없어요 늘 빛이 있지만 그 빛이 아름다워서 그리 중요하다는 건 아니죠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빛을 보고, 빛을 지닐 때 모든 면에서 더 현명해지고 자신의 힘과 신의 품성을 더 인식하며, 신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 신과 하나되며 우리의 근원을 이해하고 타고난 자신의 힘을 사용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신의 뜻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죠 깨달음의 의미가 그거에요 충분한가요? 명상하며 신의 빛을 볼 때 때론 아주 밝거나 흐릿한데 그건 여러분의 등급과 집중에 달렸지요 그리고 어떤 땐 영감과 지혜를 얻기도 해요 때로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것도 깨달음입니다

신과 하나된다는 게 개성을 잃는다는 의미인가요?

그렇기도, 아니기도 해요 내가 이해한 바로는요 내가 깨달았는지 깨닫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내가 이해한 바로는 바로 그렇습니다 무엇을 하든 신이 돌보고, 여러분의 행위를 통해 신이 행하고, 여러분의 인생, 진로, 계획, 행위를 신이 지시하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개성이 있다고 느끼며, 좋고 싫은 게 있고, 우리 자신의 성격을 알기에 그렇지 않다고도 합니다 그것이 내가 이해한 것입니다

당신의 영적 수행, 즉, 얼마나 일찍 일어나서 명상하는지, 또 저녁과 낮 동안에는 어떻게 영적인 삶에 헌신하시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내가 아쉬람에 있으면 사람들이 함께 명상하죠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서 명상합니다 4~ 7시까지 명상하죠 그런 뒤 7~8 시까지는 각자 주변을 청소하고 자신의 텐트도 정리하고 화장실 등을 청소하거나 마당을 쓸지요 8~10시까지는 뭐든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누구는 강연을 타이핑하고, 또 누구는 꽃에 물을 주거나 요리를 하죠 아니면, 전화를 받는 등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10시에 점심을 먹고 좀 쉽니다 혹은 빨래를 하는 등의 개인 일을 보지요 그런 뒤 1~4시까지 계속 일을 하고 4시 반에는 저녁을 먹어요 그것이 마지막 식사죠 죽처럼 아주 가벼운 식사를 해요

두 끼를 먹는군요

네, 하루에 두끼지요 스프나 국수, 쌀죽 같은 거에요 때로 다른 것도 먹지요 그런데 저녁은 점심보다 가볍게 먹어요 점심은 뭐든 좋아하는 걸 먹지만, 저녁은 가볍게 해요 부담스럽지 않게요 저녁 6시부터 명상을 하니까요 우선은 내 강연이나 다른 스승의 테이프를 좀 듣죠 만일 내가 거기 있다면 재미있는 이야기 같은 걸 좀 해주기도 하죠 또는 영적인 영화나 과학 다큐멘터리 같은 흥미롭고 건설적인 것들을 보기도 하죠 그뒤 상황에 따라7, 8시부터 9, 10시까지 다시 명상해요 고정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9시까진 하죠 그런 뒤 자러가요 그것이 보통의 생활이죠 하지만 때때로 달라요 때로 안거에 들어가면 15, 16, 20, 24시간씩 명상하죠 내가 강연을 할 땐 시간을 정해 놓고 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명상합니다

그 명상의 정확한 본질은 무엇입니까?

정확한 본질을 말하긴 어렵군요 그냥 조용히 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신의 빛을 찾고 신의 조언, 음성에 귀 기울이는 거에요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성전에 보면, 영혼과 지고한 주 하느님과의 사랑스러운 관계에 대한 많은 기술들이 있습니다 개별 영혼들이 신이나 부처와 좋은 시간을 보내며 상호교감을 한 이같은 기술이나 앎이 있습니까?

우리 단체에서요?

네 또는 당신이 이해한 거요

네, 네 우리도 그렇게 설명해요 그렇지만 내가 아주 고양되거나 행복할 땐, 난 여러분이 이미 신이라고 말하곤 하죠 때로는 제자들과 경우에 따라 다르기도 해요 난 우리가 신의 의식에서 온 불꽃이라고도 말하죠 우린 의식의 바다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때는 아주 고양되어서 모든 걸 잊고는 우리가 신이라고 말하곤 하죠 우린 다르지 않아요 우린 이미 하나에요, 괜찮죠 네 음 그렇게 내가 말해왔죠

좋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의식의 불꽃이라고 말할 때, 우리 이해한 그 불꽃이란 개인에게 부여된 자질이며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표현될 수 있지요 그리하여 신과 친구로서 하인으로, 연인으로, 부모로 활발한 관계를 가지는 겁니다 당신의 이해나 체계에는 그런 거나, 그런 개념이 있나요?

당신이 말하고 있는 사랑은 육체적인 것이지요 우린 남편, 아내, 부모로서 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죠 이것은 업의 상호작용입니다 신에 대한 사랑은 달라요 말로 표현 할 수 없어요 우리가 빛과 소리 명상수행을 더 해서 신에게 더 가까이 갈 때만 압니다 하지만 이 더 높은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표현합니다 여러분이 신을 알든지 신을 모르든지 여러분이 신의 불꽃인걸 알든지 모르든지 여러분은 남편과 아내를 사랑해요 이것은 본능이지요 신의 사랑이나 신의 사랑의 표현과는 전혀 혹은 많은 관계가 없어요 동물들도 그들의 아내들과 새끼들을 사랑하죠 신의 사랑이라 할 수 없죠

아닙니다 전 당신의 신에 대한 사랑이 하인이나 친구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신을 친구로 보지요

글쎄요, 의식의 바다의 불꽃의 경우 난 아버지라고 말하죠 하지만 다른 편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신이고, 신과 하나죠 우린 신을 경배해선 안되죠 그저 그를 알고 즐겨야 하죠 우리가 신이란 걸 즐기세요

스승님, 일찍이 저는 부처와 아난다의 대화에 대해 스승님과 대화를 가졌어요 아난이 마하가섭의 조언으로 부처님에게 다가갔을 때요 아난다는 부처에게 세가지 질문을 했어요 그가 세상을 떠나려고 했으니까요

(예)

구 질문 중 하나는 이거죠 “우린 당신이 떠나고 나면 누구를 따라야 하나요?” 부처님은 계율을 따르라고 대답했어요

(예)

스승님은 제게 그걸 설명했죠 내가 옳다면, 이것은 부처의 직접 제자를 위한 것이지 만인을 위한 건 아니라고요 그들은 스승이 필요하고 살아있는 스승이 있어야 하죠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 질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후대를 위해 누가 진정한 영적 스승인지 확인하는 법을 토론했나요?

그가 그걸 토론했어요? 예, 그는 많은 곳에서 스승의 자질에 대해 서술했어요 물론, 영적인 스승은 자비롭고 비이기적이고, 무조건적이며 한없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무소부재한 수준에 이르러야 하지요 그는 동시에 여러 곳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뜻해요

그게 육체적인가요, 그가 나타나면 육체적 외형인가요?

때로는, 대부분 빛나는 에너지 형태뿐이죠 빛을 본다는 뜻입니다 외부 스승을 보듯이요 육신적 스승의 형태와 같지만 그건 빛나고 빛입니다 여러분은 손으로 만질 수 있죠 할 수 있지만 육체적인 접촉 수준이 아니죠 이해해요? 그 때에 스승은 여러분을 그나 그 근처에 고양시켜 그의 빛나는 형태를 볼 수 있죠 그러니 사실 여러분은 아직 물질계에 있지만 아니죠

하나 더해도 되나요?

(하세요)

부처님이 어디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영적인 스승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나요?

예, 당신처럼 말하진 않았지만 부처는 만나기 어렵다고 했죠 부처, 즉 살아있는 스승을 만나는 사람은 모두 아주 행운이고 생사에서 해탈할 것입니다 됐어요? 살아있는 스승을 가지는 건 아주 중요한 쟁점이란 거죠 안그럼 과거의 부처나 불상을 숭배해도 좋다고 말했겠지요

균형잡힌 성인이 되기 위해 양손을 사용하는 걸 중요하게 가르치십니까?

왜 신성하게 되기 위해 내 손을 써야 하죠? 아닙니다, 난 오직 불성을 써요 깨닫는데 육체적인 동작이나 무드라를 쓰지 않아요

신과 하나되는 것에 대한 스승님의 말씀에 관해서, 내가 아주 아름답거나 아주 매력적이거나 아주 놀라운 뭔가를 만나면 내 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전 단지 그걸 알아요 하지만 자신을 잊는다 해도 전 여전히 그들이 아니죠 그래서 궁금한건, 우리는 다른 시기에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깨달음을 말할 때 우리가 도달하거나 깨어난 단계를 말합니다 하지만 또, 신은 깨달음이란 말을 듣지요, 마치 그에겐 다른 단계가 전혀 없는 것 같지요 그래서 난 신이 아니란 것과 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명확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신과 하나됨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해 주실 수 있는지요

자, 신과 하나됨의 의미는 당신이 신과 하나라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분별을 만드는 에고 상태가 아니지요 그냥 일을 하고 신이 하는지 내가 하는지 질문하지 않죠 또는 내가 신인지, 아닌지도요 자신이 되는 겁니다 나는 나인 겁니다

스승의 모습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스승은 때로 빛이고, 때로는 사람이지만 스승님이 아는 사례가 있는지요 이 물질적인 차원에 스승님이 아시는 실제적인… 물론 이 차원에서 그 연결은 그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키겠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제 스승님이 제게 와서 저를 안아줬다고 합시다

그래서요?

그는 빛이 아니지만 아직 나를 감동시켜요

둘 다에요 빛도 되고 감동도 줄 수 있죠 예?

다른 질문은 스승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혹은 진보할 수 있는지요? 스승이 없이 말이죠 또 스승없이 신을 아는 거요 글쎄요 시도해보세요 당신은 성공하지 못한 것 같군요 아니라면 여기서 질문하지 않았겠죠 당신은 지금 이미 나이를 먹었어요 당신이 아직 자신과 계속 투쟁하면 시간이 없을까 두렵군요 그래서 우리가 빨리 스승을 찾아야 하는 거죠 이미 전문가인 사람이요 우리는 묻고 아주 빨리 하죠 더듬거리고 많은 힘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에요

당신은 당신의 전통에서 비슷한 스승의 계승을 가진다고 믿으세요 누가 당신의 스승님이죠?

제 스승은, 떠났습니다 그는 가지 않았지만 육체적으로 떠났어요 글쎄 난 후계자와 법맥을 믿어요 우리가 어떤 영적인 스승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가지고 있어요, 가졌었죠 하지만 난 많은 스승이 있어요 각자 내게 다른 걸 가르쳤어요 유형 무형의 스승들입니다 내 유일한 스승은 신이죠

아침과 저녁에 당신이 하는 명상법에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려 줄 수 있나요 우리는 아침에 명상할 땐 우리의 만트라인 하리 크리슈나를 외워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만트라를 사용하나요 아니면 완전히 침묵하나요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통제하나요

좋아요 처음엔 어떤 종류의 만트라나 신의 이름들을 이용하는 게 집중하는 데 참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삼매에 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죠 어떤 이름도 필요치 않아요 혀도, 마음도, 말도, 누구도 아무것도 없어요, 됐어요?

어떤 자세로 하시죠?

뭐라고요?

어떤 자세로 하시나요 만트라나 어느 특정한 형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셨잖아요 어떻게 앉으시나요?

그냥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무릎 꿇거나, 뭐든 좋을 대로요 집중만 한다면 말이에요 그게 중요한 거죠

하지만 말씀하셨듯이, 처음엔 마음을 통제하긴 아주 어려워서 막 마음을 통제하기 시작한 제자에게 있어서 마음의 침묵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루는 걸 돕는데 뭘 제안하시겠어요

만트라를 외우세요 그게 내가 한 말이죠 처음엔 그게 필요해요 그게 필요하면, 외우세요

그럼 만트라가 있고 제자들에게 그걸 가르치나요 만트라 말고 신의 이름들을요 하지만 그게 완전한 깨달음을 가져다 주진 않아요 어느 정도까지만이죠 여러분은 그걸 넘어야 해요 어떤 것도 더는 지니지 않죠 어떤 만트라도 신의 이름도요 여러분은 신 의식 속에 있어요 그렇죠? 하지만 언제든 몸부림치는 마음이 골치면, 그냥 두세요 당신은 당신의 것을 하세요 싸우지 말고요, 왜냐하면 그건 마치 전축 같거든요 기록이 꽉 차있는데 떠들지 않기를 원하면 이건 불가능해요,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둬요, 테이프가 끝나서 조용해질 때까지요 매일 우린 많은 느낌들을 기록해요 어떻게 앉은 즉시 고요할 수 있겠어요 연습과 인내심이 필요해요 예, 때론 성공하기도 하죠 그래서 희망하는 거지요 우린 거기 앉아서 최선을 다하지만, 때론 더 악화되죠 하지만 그것에 만족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만 해요 만약 신을 알기가 정말 쉽다면 스승도 필요 없어요 명상할 필요도 채식할 필요도 어떤 행의 요가도 할 필요 없죠 알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마음에 통제되지 말고 마음이 속한 곳으로 그걸 되돌리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럼 마음은 자신의 자리와 영광을 알고 우릴 괴롭히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아쉬람은 어디 있으며 방문객을 받나요 다른 사람들과 일반인을 위한 선을 합니까?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요?

아, 내 아쉬람이요 다른 나라에 몇 개 있어요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은요

뭐라고요

가장 가까운 아쉬람이요

가장 가까운 아쉬람은 뉴욕에 있어요

뉴욕에요?

누구나 갈 수 있을 거예요 뉴저지와 뉴욕 사이에 있죠 경계에 있어요 뉴욕에 하나 있고 뉴저지에 하나 있어요 뉴저지가 더 자연적이죠 큰 나무들과 개울과 숲이 있어요 뉴욕은 그냥 공간일 뿐이죠 나무도 없고요 누구든 방문을 환영해요 선을 할 때는 소위 말하는 제자들만을 위해서 해요 왜 그렇죠?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하죠 집중적인 훈련 기간이에요 방문객들이나 구경꾼을 받을 여유가 없어요 마치 대학교 교수처럼요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자신의 부인이라도 교실에 못 들어오게 할 거에요 차별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는 방법일 뿐이죠

저희 전통에 따르면 신의 성스러운 이름은 수단일 뿐만 아니라 목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린 성스런 이름을 외우는 건 그걸 더 외우는 걸 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신의 이름은 신 그 자체와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희 바이쉬나바 전통에서는 신의 성스런 이름 안에서 실제로 신을 경험합니다 소리의 진동으로 신의 사랑을 체험하는 우리의 방법이지요 ‘크리슈’와 ‘나’, 이 두 음절 사이에 엄청난 감로가 있다고 말하지요

네,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이 걸 지적하려고요 마음을 다루기 위해 만트라를 왼다고 말하셨지만 저희에겐 성스런 이름이 궁극의 만트라에요

이 칼리 시대에 있어서요 네, 그 이름들은 성스럽고 지고의 생각을 상징하지요

맞지만, 맞지 않아요 차이가 없어요 상징도 아니고 차이도 없어요

알았어요,

그럼 난 당신을 잘 이해하지 않았네요 당신은 우유라는 이름이 우유와 같다고 뜻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건 물질적인 용어죠 하지만 궁극의 세계에서 궁극의 수준에서 신의 이름과 신 그 자신은 다르지 않아요 완전히 하나죠

아 그래요?

(예) 체험으로 안 건가요, 아니면 그냥 들은 건가요?

체험하진 않았지만 체험한 사람을 압니다

누구죠

셜라 박티파다에요

사실이에요? 그보다 더 높은 근거가 있습니다 더 높은 근거가 있다고요 뭐라고 말했죠

경전에서요

경전에서요 차이타냐 신의 말씀에서요 내가 아는 바로는 그가 뜻한 건 이렇습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참아주세요 그가 뜻한 건 온 마음과 영혼, 모든 힘을 다해 신의 이름들을 외울 때 이런 커다란 갈망과 신실함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는 겁니다 그때 신과 하나가 되지요 이름이 신을 대표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하나의 이름에 신이 응축될 수 있겠어요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죠 신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말로 그를 표현할 수 없지요 미안해요 신은 저나 당신의 말로 표현되지 않죠

맞아요

그럼 그가 어떻게 불려지죠? 체험으로요, 신이 그 자신을 그의 이름에 담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신은 할 수 있지만 아마 우리가 할 수 없겠죠 우린 할 수 없어요

(네) 그러니 외우는 데 있어서 그것이 본질이죠 그것이 있어야 해요 그 주문의 본질 말입니다

네, 그게 이유에요

입술로 외우는 게 아니에요

네 그래요 가슴으로 외우는 거죠 물론이죠, 그래서 내가 거기에 온 마음과 영혼, 힘을 다하면, 자신의 신실함 속에 자신을 잃는다고 한 거에요 아마 그가 뜻한 게 이거겠죠 그렇지 않고 만약 신의 이름이 신 자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이름을 외우겠지만 도움을 얻지는 안잖아요 당신처럼 외우지 않아요 알겠어요? 그러니 확실히 말해야 해요 안 그러면 사람들은 그냥 당연히 여기고, 좋아, 난 신의 이름을 외우니까 됐어, 난 신을 안다고 하죠 그건 진짜 방법이 아니죠 좋아요, 내가 맞나요?

당신이 논하는 게 비언어적인 체험이지요 물론이죠 어떤 이는 그걸 이런 말로 하고 다른 이는 다른 말로 합니다

네 어렵지 않지요

하지만 그 중 어떤 말도 체험은 아니죠

그래요 이제 알겠어요

제가 처했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질문을 하게 된 상황이요

무슨 상황이지요?

전 태국에 살았어요(네)

3년 간 승려로서 외국인이 많은 방콕 곳곳을 다니며 부처의 삶에 대한 슬라이드를 보여줬지요 매일 승복을 입고 공원에 앉아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제가 서구인이라 사람들이 주위에 모였고 다른 승려들과 친해지면 난 그들에게 왜 그들처럼 하지 않냐고 물었어요 왜 당신들도 공공장소에 앉아서… 그들은 단체의 규칙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했죠

밖에 나가서 홍보하는 거요 맞아요

질문은 당신이 정통 불교도와 문제가 있냐는 거예요 혁신적이고 독창적으로 보디치타(깨달음)를 펼치고 계시니까요

네, 그 뿐만이 아니죠 그러나 난 불교도나 비 불교계에 부처의 가르침을 다른 식으로 소개하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들이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는 겁니다 내가 부처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게 아니지요 그들은 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에 익숙해서 부처는 이러저러하다고 생각하며 우린 경전만 믿으면 되고 계율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난 아니라고 합니다 부처는 그리 말하지 않았죠 부처는 계율이 너희의 안내자라고 말했을 겁니다 죽을 때, 가까운 제자들에게만 그렇게 말했죠 제자들은 이미 스승의 가르침을 아니까요 그들은 계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입문했고 명상법을 알았어요, 예를들면요 이해합니까? 그래서 부처가 말했습니다 “지금 난 죽지만 너희는 계속 계율을 지켜라 계율이 안내자가 될 것이다” 이건 그 제자들만을 위한거지 다른 이들을 위한 게 아니에요 후대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죠 난 사람들에게 말하길 계율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들은… 덜 복잡하게 해줄 뿐이죠 고마워요 그리고 경전도 충분치 않다고 말합니다 그나마 경전의 많은 것들이 불명확하고 오역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통파들이 싫어하는 거죠 알겠습니까?

그래서 불교가 인도를 떠나게 된 건가요? 승려들이 규칙과 규율에만 너무 신경 쓰고 전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요?

인도 밖에서 불교가 번성한 첫 번째 이유는 한 왕의 아주 의욕적인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소카였어요 그는 불교교리에 신념을 가지고 그의 왕자와 공주, 그가 아는 모든 이들을 인도 밖으로 보내어 불교를 전파시켰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후에 그 본고장보다 외부에 더 많이 전파되었던 겁니다 그런 거죠 전 세계에서 예수를 믿고 있지만 진작 유대교사회에선 그다지 많이 믿고 있지 않죠 맞나요 아닌가요?

맞습니다

내 말을 이해하겠어요? 식구들에게 자신의 신성함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죠

저희에게 명상을 안내해 주실 수 있는지요?

언제요?

내일아침 시간이 있으신지요

내일 아침이요? 네 그럼요, 일정 담당자에게 물어보세요 난 그가 무엇을 예정해놓았는지 모릅니다 된다, 안된다라고 못하겠군요

어쨌든 일 때문에 난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요 난 이미 이번 강연에 하루를 끼워 넣어야 했어요 처음대로라면 오늘 떠나기로 되어 있었지요 팩스를 보면 처음엔 하루라고 했다가 수많은 전화통화 끝에 이틀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보낸 팩스를 봤지요 여러분이 본 원래 거에서 나중에 이틀로 바꾼 겁니다 여러분에게 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여기 있는 여러분들에게요 그리고 어울락(베트남)의 설에 내가 여기에 있게 되어 기쁩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한 걸 난 몰랐어요 문제는 해마다 설이 한번밖에 없는데, 모두가 내가 그들과 함께 있길 바라죠 당신의 스승도 이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 그는 자유롭지요 행운입니다 난 아직 자유롭지 못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스승님도 행복한 새해되세요

스승은 힘겹습니다

나의 스승이요?

당신은 스승이라 힘겹지요

내가 힘겹다고요?

그런 가르침이 있답니다 모든 일을 책임지면 우주의 모든 무게를 책임진다고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꺼번에 다하죠 힘들어요! 네, 너무 힘듭니다 하지만 당신이 작은 신이나 스승을 데리고 나눠서 하면 더욱 힘들 겁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나의 스승이 힘들다는 건가요?

당신이 스승님이십니다

말씀하실 땐 상당히 무거운 의미들을 전달하시죠

맞다고 하든 틀린다고 하든 괜찮습니다 내가 배우는 방식이며 내가 아는 것만 제공할 뿐이죠 여러분에게 불완전하거나 유쾌하지 않겠지만 난 아는 걸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가 아는 것만 말해서 다툼이 일어나지만 어쩌겠어요? 알다시피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죠 언론의 자유가 있잖아요? 네,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 모든 걸 잊고 문제를 만들어요 내 생각을 말하긴 하지만 동시에, 난 신이 모든 걸 완벽하게 안배한다는 것을 늘 알고 있습니다 난 내가 원하는 걸 말하지만 신이 원했던 것이지요 신이 당신은 크리슈나를, 그는 불교, 티베트 불교나 카톨릭, 로마카톨릭을 따르길 원하는 겁니다 신은 그렇게 안배합니다 하지만 신이 원하기 때문에 난 내가 아는 걸 제시합니다 삶을 보다 다채롭게 하세요 내가 당신의 생각을 따라야 하고 늘 당신도 괜찮고 그도 괜찮고 모두 괜찮다면 내가 왜 여기 오겠습니까?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죠 모두가 이미 맞으면 말이죠 모두 맞지만 나 역시 맞아요 보다시피 그래서 내가 뭔가를 말해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불쾌해도 말입니다

우린 그런 말이 있어요(네) 너도 맞고, 나도 맞다 나도 맞고, 너도 맞다고 하죠 그건 비판입니다 그래요?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죠 글쎄, 한편으론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걸 말하며 그게 최고라고 믿습니다 최고라는 걸 믿지 않는다면 난 주지 않을 겁니다 왜 친구들에게 가장 좋지 않은 걸 주겠어요? 그렇죠? 말할 것이 전혀 없다면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게 최고라고 믿으니까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괜찮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내 말 알겠어요? 한편으로 난 모두 완벽하게 조화롭다는 걸 압니다 다른 한편에서 난 인류애의 진보를 위해 일해야 하지만 당신은 뭐든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하지요 한편으로 난 제자에게 내가 말하는 것을 따라야 하며 그게 좋고 최선이라고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을 그냥 두라고 합니다 그건 모순이지만 진실입니다 그게 내가 믿는 겁니다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들을 자기가 생각하는 최선에 따라 기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 참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는 내 방식에 따라 기르는 게 맞겠지요? 아이양육방식에서 다른 부모들과 의견충돌은 있겠죠 하지만 무슨 상관이죠? 내 말이 이해 됩니까? 모두 다른 이를 따를 수 없죠 스와미지, 당신은요? 당신이 그러리란 건 알지만 왜 당신이 직접 입지 그래요?

이것은 사원의 쉬리 마쑤 마하라니에서 온 거에요 그녀가 오늘 일찍 입었어요 이젠 당신이 입으세요 그녀에게 훔쳤단 뜻인가요?

훔쳤다고요? 그녀가 크리슈나를 보길래 우리가 가져 왔습니다

그녀가 바빴을 때요?

알아요

당신은 궁전에서 그녀에 대한 멋진 칭찬을 했지요 모든 사람이 불안할 때 크리슈나를 찾지만, 크리슈나가 불안할 때는 그가 봅니다 라다를요

예,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죠 자신이 신이니까 안식을 위해 신을 올려다 볼 수 없었죠 또는 집착하려고 다른 걸 보여줘야 해요

그가 물질 세상에 있을 때죠 니툐디타 마하라지를 보셨죠

못 만났습니다

니툐디타는 좋아요

니툐디타란 무슨 뜻입니까? 니툐는 영원, 디타는 뭐죠?

크리슈나의 자질입니다 고양됨이죠

고양됨이라니 아주 좋군요 그 이상대로 살길 바랍니다 내 이름 칭하이가 순수한 바다라서 늘 그에 맞게 살고 싶어하는 것과 같죠 하지만 바다엔 늘 쓰레기가 흘러와 완전히 순수해지진 못하죠 바다는 가장 낮아서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지요 그것이 바다의 의미인가 봐요 가장 낮은 바닥이고, 모든 건 거기 이르게 되요! 모두 정화되지만 바다는 아니죠

궁전에서 보았던 모든 대리석 작품은, 이 스와미가 한 거에요 이거요? 매우 예술적이군요

내가 아니라 신이 하셨죠 누가 신을 만들었죠?

좋아요, 당신도 신이에요

네, 때론 나도 그런 기분이죠 누가 신인지 구별하려고 굳이 애쓸 거 없지요 난 늘 신에게 기도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요 신이 있으면 그가 일을 하겠지요 뭐 하러 신을 찬양하거나 신에게 기도하겠어요 뭐 하러 신에게 감사하거나 신의 능력을 인정하죠 그는 신일 뿐인데요 그죠?

질문이 있거나 토론을 하고 싶으면 부디 하십시오

5년 전에 인도에 있을 때 박티파다는 날 말레이시아로 보냈는데 거기 페낭에서 멋진 건물을 하나 찾았습니다 페낭에 가보셨어요? 네

아, 우린 방갈로가 있었고 대부분 복건성 혈통의 중국인들이 왔습니다 우린 그들을 라다 크리슈나 숭배자로 개종시키려고 거기에 간 것이 아니라 그런 숭배를 소개하되 그들이 보다 나은 부처님의 숭배자가 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죠, 그게 그들이 아는 전통이니까요 그런 목적으로 무료시식회를 시작하게 되었죠 거기에 한 유명한 관음보살 사원이 있었어요 슬라이드를 보여드릴까요?

그러세요

우리가 시작했던 겁니다 빛을 들여다 보는 거죠

이게 무료시식회 인가요? 승합차에서요? 아름답군요



당신은 열렬하시군요

매일 오백명이 왔습니다 이곳이 가장 중요했지만 매일 우린 네다섯 군데를 보러 갔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제 질문은요 중국인은 무척 도움이 됩니다 우릴 위해 요리를 해주고 나눠주며 무료로 쌀이나 많은 것들을 기부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요?

정말 철저히 관음보살을 따르려면 고기 먹는 습관을 끊어야만 한다고 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녀는 자비의 화신이니까요 난 많은 집을 방문했었죠 중국인들이 그들의 집에 날 초대하면 난 그들에게 슬라이드를 보여줬지요

네, 계속하세요

다른 슬라이드군요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하고싶은 말이군요

그게 뭔지 묘사하는 거요?

그걸 잘못 놓아서 모든 말이 거꾸로 나와요 아니죠, 뒤집어 놓았어요 아, 이제 됐어요 수백만의 무력한 동물이 학대 받고 삽니다! 오직 도살되기만을 기다리는 조건에서요 이게 고통의 원인이죠 살육의 맛과 고기의 수요가 수십억 원에 이르는 죽음의 산업을 창조했어요 네, 빨리 그만두고 쉬어야죠 “이것은 고통입니다 우린 고통을 가하지 않는 과일을 선택함으로써 영적 식생활을 배워야 해요 그건 다른 존재에게 폭력이죠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죠 이건 길입니다 출가승이 비폭력을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하죠?(맞아요!) 침묵 역시 폭력입니다

확실합니다!

괜찮은가요?(좋아요!)

완전 찬성이에요 하지만 많은 출가승들이 그렇게 하지 않지요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해요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할 수 있어요!

너무 어렵습니다

아니에요! 적당할 뿐입니다 네, 당신은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안 하면 누가하죠? 기필코 진리를 말해야 해요 남이 듣거나 안 듣거나 그들의 선택입니다 강요는 안해도 말해야 합니다 당신의 스승처럼요, 그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교리를 너무 많이 광고해서 비난을 하자 이렇게 말했죠 “왜 안되죠? 당신들은 위스키, 담배, 온갖 나쁜 걸 광고하지 않나요?” 그러니 좋은 것이 있으면 왜 광고하면 안되지요? 그가 논쟁하면서 그랬지요? 그러니까 그가 옳아요 난 당신의 스승의 논점을 청중에게 읽어준 적이 있어요 코스타리카였는데, 거기서 7일간 선을 할 때였는데 마지막 날이었어요 당신의 스승이 옳아요 우린 긍정적인 힘을 광고해야만 합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서 안 하면, 그걸 하찮은 일로 만드니까요 여러분이 홍보할 때 모두가 싸구려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럼, 왜 정통 불교도들은 나가서 설교를 하지 않지요? 예를 들어 방콕에서 수많은 남방불교 승려들이 그냥 걷기만 합니다 어디서나 그렇지요 사람들도 도움이 안됩니다 이 사람들은 내가 가족에게 이걸 보여줄 때마다, 다 보여주고 나서 마지막에 질문이나 어떤 언급을 하면 아주 충격을 받습니다

충격을 받아요?

창피스러워 합니다 (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이름은 불교도이지만 (네) 부처를 따르지 않지요

이유를 말할게요 채식을 하는 다른 승려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채식을 강조하지 않죠 사람들이 안 들을까 겁내며, 따르기에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서 “뭐 하러 해?” 하죠 그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오해한 겁니다 대개, 참 스승들은 비밀리에 입문을 시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들은 대중에게 설법하지만 입문은 비밀리에 줍니다 보통은 나가서 설법을 하지도 않지요 전통이 그런 겁니다 그들이 대중의 박해와 오해를 두려워해서 지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스승이 아주 자비롭다고 말한 겁니다 그는 나쁜 평판을 감수했어요 오해를 감수하고 나갑니다 많은 이들이 안 하니까요 아무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가서 여러분을 찾기도 어렵겠지요 지금은 그들이 나가면 바타바다 스와미를 찾지요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서적, 출가승, 텔레비전 신문 등 많은 것들이 이미 아주 공개적입니다 하지만 그가 여기 오기 전에 어떻게 사람들이 알겠어요? 인도까지 가서 진지하게 하리크리슈나를 수행하고 여기로 가져올 서양인들이 많지 않아요 그런 식이어야 하지요 그들이 가져 온다고 해도 여러분 스승이 하듯이 한다고 할 수 없지요 알겠습니까? 화술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해 수준이 다릅니다 그는 그렇게 해야 해요 대부분의 스승들은 대중 광고를 피하지요 스승이 뭐라고 할지 상상할 수 있겠어요? 스승이 사람들에게 가서 “보세요, 난 스승입니다 혹은 내가 부처입니다” 라고 한다면 대부분 웃을 겁니다 웃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의심하겠지요,알겠어요? 여러분이 이러 이러하다고 말하는 건 정말 어렵지요 실제로 자신이 부처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니까요 내 뜻을 알겠습니까? 보리란 없습니다 수준이 다르다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수준이 있지요 사람들에게 가서 단순히 “내가 부처다”라고 할때 어떻게 말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실을 말하지만 동시에 거짓말쟁이처럼 되지요 실제로 부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대부분 스승은 조용한 곳에 머물면서 입소문이 나게 하거나 신의 안배대로 하지요 이게 진정한 스승의 관례지요 그래서, 모든 불교 승려들은 너무 많이 읽어요 여러분이 불교 전통에 대해 물었기 때문에 말하는 겁니다, 그들은 진리는 스스로 드러나며 사람들에게 보이거나 적극적이지 말고 개종시키지도 말라는 낭만적인 걸 많이 읽었지요 하지만 진정한 스승이라면 그들 자신을 진정한 스승이라고 말해 주기가 어렵지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등급을 광고하는 것도요 하지만 그들은 어렵지 않죠 단순히 비폭력적인 면을 보이고 사람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계율을 지키라고 합니다 내가 뜻하는 말은 도덕 규범 정도지요 그렇게 하는건 어렵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스스로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가르치기가 어렵지요 밖에 나가서 어떻게 뭔가를 주겠습니까? 보일게 없지요 이해하겠어요?

네?

그들이 염려한들,무엇을 말할 수 있겠어요?

비폭력에 대해서는 우리가 분명히 일치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떤 위대한 불교 스승에 대해 읽었는데 혼동됐지요, 그들은 스승님 법맥은 아닌것 같은데, 마르빠나 밀라레빠요 정말 놀랐었지요 마르빠가 어떻게 공양을 하고 죽과 고기를 요리해서 먹었는지 읽었지요

마르빠가요?

네, 그는 높이 고양된 사람인데 어떻게 그랬는지요? 이런 전통에서 어떻게 고기를 먹었는지요?

그것이 진짜 고기였는지 나는 모릅니다, 모든 걸 고기라고 말하니까요 예를들어 성경에는 신이 모든 것과 멋진 과일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예를 들어, 성경에 말했죠 “신이 들판에 온갖 풀과 나무 열매들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너희의 고기이니라” 원래 너희 양식이 되리라죠 아닌가요? 모든 번역이 ‘그것이 너희의 고기가 되리라’라고 했지요 그것도 맞아요 우리 몸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게 고기죠? 결국엔 고기가 됩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언어들 사이의 이런 차이점이나 번역의 문제나 번역자의 다른 깨달음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면 혼동하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불교만이 무력이 전혀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유일한 종교적 또는 영적 가르침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역사적으로 무력을 쓴 일이 전혀 없으며, 설득만 썼지요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것은 저절로 당신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네)

당신은 정통파 선생들이 당신을 싫어한다고 하셨죠 ‘그리스도의 삶’을 싫어하죠 그래서 당신이 진리를 전할 때 공격을 받는 일이 당연히 생길겁니다 그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적절한 행동이 뭡니까?

아 잘 모르겠어요 적절한 행동이 뭔지 말을 못하겠네요 내가 한 행동을 말할게요 유일한 반응이 무반응이에요 바람부는 대로 놔둡니다 바람은 부는 대로 가고 개가 짖고 싶으면 짖겠죠 왜 걱정하죠? 내 일만 해요 그는 그의 일을 하고요 그가 원하면 나를 공격할 권리도 있지만 난 반응할 필요가 없지요 난 갚을 필요도 없고 한편으론 선물을 받을 필요도 없어요 나는 돌려 줍니다 안받는다면, 갖고 있겠지요

제가 아는 예수의 가르침이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신의 사랑을 전하는 순교자의 가르침을 보면, 실제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은총을 전하기 위해 육체적 고통을 받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지요 프라부파다도 말하길, 만일 일반 사회나 정부가, 프라부파다요

,네

그가 한 말을 안다면 그를 죽일 거라고 했지요 알고 있어요? 만일 사회가 그가 뭘 가르치는지 안다면 그를 죽이려고 할겁니다

(네)

하지만 그들은 안했어요 거기에 대해선 좀 느리죠 불교 신자들도 이런 얘기를 하나요? 이렇게 나가는 거요 누군가 불과를 설법하려고 목숨을 희생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그런 경전 같은 게 있나요?

부처는 그렇게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필요 시에 부처가 이걸 승인했다는 것을 많은 제자들이 입증했지요 한 출가승의 얘기를 예로 들어 보지요 부처가 살아 있을 당시에 불교에 대해 아주 거칠고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곳이 있었어요 그곳에 입문이나 가르침을 줄 스님이 오기를 원하는 신실한 신자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부처가 물었지요 누가 자진해서 갈텐가? 한 제자가 가길 원했어요 부처가 말했죠,그곳은 아주 난폭한 곳인데 너가 할 수 있겠느냐? 그는 자신 있다고 했어요 부처는 말하길, 사람들이 냉담하면 어쩌겠느냐? 너의 말에 냉담하고 너를 안믿는다면 말이다 그는 말하길,괜찮아요 그들이 저를 비난하지 않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저를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부처가 말했죠, 만일 너를 비난하고 꾸짖고 말로써 너를 조롱하고 학대하고 공격한다면 어쩌겠느냐? 그는 말했죠, 그들이 저를 때리고 육체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하지요 부처가 다시 물었어요, 만일 육체적 공격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가 말했죠, 나를 죽이지 않아서 감사하겠습니다 제 목숨을 끊지 않았지요 부처가 또 물었어요 너의 목숨을 끊는다면 어찌 하겠느냐? 그때는 어찌하겠느냐? 그는 말했죠, 그러면 열반에 빨리 들게 해줘서 고맙지요 업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되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자 부처는 말했어요 네가 적격이니 가거라 이 얘기에 나온 대로 부처도 올바른 가르침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것을 승인했다는 걸 알수 있지요?

도덕경과 불교의 상관 관계에 대해 영적으로 어떻게 인식하고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도덕경도 불교의 양상을 나타냅니다 축약된 형태이며 이야기나 비유도 없고 설명도 없지요 불교 경전은 부처가 오래 살면서 그동안 설교한 것을 후에 제자들이 모두 옮겨 적어서 많은 부분이 더 길지만,노자는 말이 적었으며, 이것을 쓰는 것도 원치 않았지요 누가 이걸 모두 쓰겠어요? 누군가가 썼지만 그는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그는 제자들로부터 도망치려 했죠 하지만 관리였거나 문지기 군사였던 제자에게 붙잡혀 옥에 갇혔지요 그 제자는 말했어요 이곳을 나가기 전에 우리를 위해 써놓지 않으면 못 나갑니다! 강제로 썼지요 알겠어요? 그래서 나가려고 가능한 빨리 썼어요 어떻게 된건지 알겠지요

예수가 한 여행에 관한 건데요 13살에 이스라엘을 떠났고 이집트를 지나서 인도에 갔으며 티베트에 가서 공부를 했지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죠? 이에 대한 정보가 있나요? 기독교를 공부할때 이것에 관해 알아 보셨는지요?

네,알아봤어요 사실이라고 믿어요 아니면 그가 동양 철학과 불교 철학의 영향을 받은 많은 것들을 얘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스승님께서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실때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말인 “나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다” 라는 말이 생각났어요

(네)

이건 예수는 말한 똑같은 의미지요

(네)

심원한 뜻으로 개인으로서 나를 뜻하거나 나를 사랑하라거나

(맞아요) 나란 개인적인 신이 아니죠 알고 있군요! 그는 나란 길과 진리와 빛과 같다는 걸 뜻했지요



제가 이해한 스승님의 말씀은 분리가 없다는 겁니다 내면의 신 의식과 한번 연결이 되면 우리와 신 사이에 분리가 없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거지요 생각 않고 그냥 우리입니다 분리 됐는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 거지요

맞아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더이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게 되지요 예수가 한 말을 깨닫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어쨌든, 그가 나는 세상의 빛이며 길이라고 한 것이 사실이며 진리도 말했지만 또한 덧붙여서, “내가 세상에 있는 한”이라고 했죠 살아있는 스승이란 뜻이죠? 내가 세상에 있을 때 나를 숭배하고 따라야 한다는 거죠 그는 뒤에 말하길, 다른 위로자를 보낼거라고 했는데 나의 후계자나 다음 스승을 따르라는 뜻이지요 내 말 뜻을 알겠어요? 그는 그 자신이 돌아 온다고 하지 않았지요 위로자를 보낸다고 했지요 그와 동등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제자들을 위로합니까? 엄마처럼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아이를 위로할 수 있습니까 알겠어요?

당신은 기독교인들 방식으로 성령이 위로한다고 보지 않죠 당신은 그렇게 안 보지요 예수가 내가 위로자를 보낼 것이다 라고 말할 때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성령이라고 받아들이는데 사실 현재 많은 개신교 교회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었던 최초의 기독교회는 대명사가 “그”에서 “그녀”로 바뀌었죠 왜요? 여성들을 교회밖에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아,그래요?) 교회가 힘이 없어요 여성들을 따돌릴 수 없어요 놀랍군요 그래서 궁금합니다 그들이 우릴 오랫동안 제쳐둔 게 놀라워요 그건 효과가 없어요 여성들을 제쳐두면 종교에서 힘을 얻을 수가 없어요(네) 그래서 제가 궁금한 것은 전에는 생각한 적이 없는데 스승님께서 정말로, 위로자가 기독교 교회의 전통에서 성장한 성령이라기 보다는 살아있는 스승을 뜻한다고 보는지요

난 그런식으로 생각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성령은 길을 이끌며, 진정한 위로자이죠, 그것도 맞아요 하지만 만일 성령이 살아있는 스승의 육신을 통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떻게 알죠? 우린 물질 세계에 있어요 신이나 성령과 직접 접촉하는 게 쉽다면 예수가 그렇게 많이 희생하고 고생할 필요가 없었죠 그가 그의 재능과 삶 영적 능력, 엄청난 노고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어요 당신이 이해하듯이 19년 혹은 13년 간의 수행과 구도, 큰 깨달음 후에 3년 반을 설교하다 죽는 건 큰 낭비이자 희생입니다 정말 필요한 게 아니라면요 신이 허락하지 않았을 거예요 또 예수 자신도 허락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깨달았고 재능있고, 달변가에, 잘생기고 젊고, 힘이 있었으니까요 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줘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하나의 시각이죠

언젠가 시후에 있는 당신 단체에 있었을 때 말씀하셨어요



전 그때 데밤리타 스와미와 함께 있었어요 제가 맞다면 당신은 그때 다양한 제자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어떤 부류는 그저 숭배하기만 원하고, 그들보다 나은 다른 부류는 당신이 말씀하신 걸 하려고 하며 스승님의 지시대로 청정해지려는 제자들입니다 이해하시지요?(네, 네)

하난 헌신하고 하난 깨달았죠

예, 그 차이를 다시 한번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실제론 차이가 없어요 우리의 물질적인 이해에서 다르게 보일 뿐이지요 헌신적인 영혼은, 만일 그가 정말 헌신적이라면 사심이나 에고가 없으며 모든 게 그의 스승입니다 그가 입을 열 때면 ‘나의 스승’이죠 그가 뭔가 할 때면 ‘나의 스승’이죠, 만일 그가 누굴 숭배해도 ‘나의 스승’, 누군가 그에게 덕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어도 ‘나의 스승’이라고 하죠 모든 게 ‘나의 스승’이에요 한편으로 우린 그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죠 오직 그의 스승만 있으니까요 이게 진짜 헌신적인 사람이죠 에고가 정말 없어요 하지만 내가 “깨달은 이, 깨달은 제자”를 말할 때는 그가 그 자신과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한다는 걸 뜻해요 그의 스승처럼 깨닫기를 원하죠 스승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스승의 짐을 줄이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서, 스승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그가 스승의 등급까지 깨달을 때 그는 스승처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럼 스승을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죠 하지만 스승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스승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며 유일하게 중요한 무엇이며 그 자신은 완전히 잊지요 그 역시 스승이에요 스승의 등급이 아니라면 어떻게 스승을 그만큼이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정말 헌신적인 의미에서요 알겠어요 겉으로 찬양하고 반만 그렇거나 당신이 진짜 헌신하지 않는데 헌신한다고 믿는 그런거 말고요 알겠죠 그러니 사실 어떤 차이도 없죠 당신은 어때요?

재미있네요

그래요?

아직 그걸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게 맞나요?

재미있어요 모르겠어요

그래요?

좋아요 그럼 같이 생각해봅시다

누군가 그렇게 물은 건 처음이고 내가 그렇게 답한 것도 처음이에요 그러니 내게도 새로운 거죠 바가바드 기타 서문에서 푸라부파다는 말하길 만약 충분한 믿음이 있다면 나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스승 때문이라는 거죠(예) 그는 스스로 깨달은 거죠 그래서 같은 겁니다

됐나요?

내가 또 옳을지 모르겠네요 보다시피 난 항상 당신의 스승이나 다른 스승이 말한 걸 인용합니다 그럼 말에 권위가 서고, 내가 옳다는 게 확인이 되죠 좋아요 그걸 읽지 않았어요 알다시피 오늘밤 크리슈나 운동과 성경에 대해 말한건 공부하지 않고 말한거에요 그걸 연구하지 않았어요 이 책을 읽었다 해도 오늘 당신에게 말하듯이 떠오르진 않았을 거예요 오로지 나 자신의 이해에서 말했어요 우연히 그런 거죠 크리슈나 경전과 대등하지요 훔치지 않았죠, 예를 들어 “나는 나다”라고 말한 거요 그 말을 알지만 오늘처럼 그렇게 한 적이 없어요 전엔 그 이름도 말한 적이 없지요 오늘, 여러분에게만 말했어요 계획 없이 말이에요 내 말 알겠어요? 전엔 그 말을 한 적 없어요 다른 식으로 그걸 표현했지 직접 “나는 나다”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 그 상황과 내 느낌을 표현하는데 딱 맞았지만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어요 혹은 내가 말한 걸 당신 스승인 취타나도 말했던 것처럼, 동시에 인식한 거죠 좋아요 나역시 그렇게 말한적 없어요, 연구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괜찮죠, 맞잖아요 확인이죠

질문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론 이해가 안 가서요 만약 틀렸다면 알려주세요 당신이 말씀하시길 어떤 제자가 스승을 따르고 스승에 대해 말하고 모든걸 스승을 위해 합니다 모든 행위를요 반면 다른 제자는 같은 걸 하는데 무슨 차이가 있는 거죠? 차이가 뭔지 모르겠어요

예, 그 둘은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결과는 같잖아요

네, 결과는 같지만 각자 다른 길을 따르지요 이유를 말하자면, 에고지요 에고를 적게 갖거나 에고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스승과 동화되기 쉬워서 스승처럼 생각하고 스승 속에서 자신을 잊고 스승의 분신이 됩니다 알겠어요 다른 몸이지만요 다른 사람 역시 스승을 믿고 스승을 따르지만 아마 에고가 좀 있어요 그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스승이 되겠다 꼭 깨닫겠다라고 생각하지요 그에 비해 다른 사람은 그리 신경쓰지 않지요 깨닫거나 스승이 되는 걸 한번도 생각하지 않아요 스승을 정말 사랑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잊지요 그둘 사이에는 에고의 작용밖에 없어요, 알겠어요?

이제 완전히 이해됩니다

이해되죠? 나도 기쁘고 행복하네요 그걸 생각한 건 처음이에요 내게도 새로운 거죠

예수는 신이 사랑이라 말했고 바울은 유일한 법이 있는데, 그건 사랑의 법이며 사랑한다면 법을 완전히 실행한 거라고 말했습니다 또 예수는 열매를 보면 그들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열매가 사랑으로 된다고 했으니, 이 모든것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그 문장과 당신이 말씀하신 사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나요? 당신이 말씀하신 거요 제가 이해하려는 것과 관련시킨 겁니다

알았어요 그게 그거죠, 당신 말은 아니 내 생각엔 모든 종교의 목적은 사랑하는 겁니다 모든 걸 사랑하는 거요 만약 누군가 여기에 이르러 모든 걸 사랑하거나 적어도 그 쪽으로 가고 있다면 어떻게 거기에 가는지, 길이 얼마나 특별한지 상관없다는 거지요 목표가 같습니다

당신 말은 예수와 바울이 다르게 이야기했지만 둘 다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우리가 만일 다른 길을 가도 그렇게 될 거라는 거지요?

네 불교도, 회교도, 기독교인,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들이 사랑스럽고 자애로운 사람이라면 누가 그들의 종교가 뭔지 아니면 종교가 없는지 신경 쓰겠어요

맞아요, 정말 그렇죠 그래서 아마 부처가 신이 필요 없다, 신이 없다라고 말했겠죠 알겠어요? 그냥 가르침을 따르고 좋은 사람이 되고, 깨닫는 거죠 신의 이름을 뭐 하러 말하겠어요 아니면 알다시피 왜 신인지 신이 아닌지 따져야 하죠 우린 신을 알아야지 말만 하면 안됩니다 아마도요 그 말도 맞지만 신을 아세요 사랑엔 아주 많은 측면과 아주 많은 수준이 있지요 하나는 인간의 사랑이며 육체적인 끌림인데 사랑이라고 오해하며 업장의 속박을 또한 사랑이라고 잘못 해석합니다 다른 수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에요, 알겠어요 사랑하는 걸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죠 사람들은 여러분의 사랑을 그냥 알고요 엄청난 사랑을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죠 그렇지 않고 그런 사랑을 어깨에 지고 다니면 무거워요 이게 진짜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신이죠 소위 말하는 자선활동이나 생각, 아니면 남녀 사이의 속박도 아니고 부모 자식 간의 애정도 아니지요 예, 신의 사랑에 대한 많은 말을 들었어요 그걸 얘기하지 마세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 말은 제가 신에게 가서 “신이시여 당신을 무척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면 제 생각에 신이 제게 말해줄 유일한 것은, “오 신이시여 사랑합니다 어떻게 당신을 섬기나요”이며 그는 말하죠 “내 아이들을 사랑하라”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거나 신을 섬기는 다른 방법이 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말고요

신의 자녀들을 섬긴다니 좋군요, 그런데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어요? 정말 높은 수준의 사랑이죠 어떤 이들은 사랑 없이 자선 활동을 하지요 자선 활동이나 봉사를 하는데 사랑이 필요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신이나 신의 품성을 뜻하는 진정한 사랑이나 완전한 사랑이 없을 수도 있지요 어떻게 구별할까요? 쉽지요, 많은 이들이 목적을 갖고 일을 하니까요 예를 들어, 천국을 가거나 공덕이나 일을 하는데 있어 정성과 영혼을 다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선은 좋은 일이며 남을 돕는 일은 신을 돕는 것이라고 하니까 하려고 합니다 명예를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지요, 따라서 사랑한다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모두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요,네? 때로는 조심해야 합니다 신의 사랑과 사랑이 신이란 것은 신과 완전히 하나가 될 때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동의합니까?

저는 사랑이 많지 않아요 저도 스승님이 말씀하신 거기에 도달하길 바라죠 저는 그렇게 일을 많이 해요 정확히 사랑이 없이요

사랑은 전염되는 것이죠 퍼지고 전파될 수 있어요 자기도 모른 채 사랑이 충만한 사람 주위에 있게 된다면, 그 사랑이 전달되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하게 됩니다 정말 예민하다면요 그다지 예민하지 않거나 그 힘을 믿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사랑을 얻게 되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성인들과 가까이 하려고 하지요 그들은 신과 같은 진정한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감정이나 집착이 아닌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사람과 같이 있고 싶은데 왜 그런지는 모르죠 뭔가 할 필요도 없고 그사람도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좋아요, 사랑 받는다고 느끼지요,이런 사랑이 바로 신성하고 사심없고 조건이 없으며 어떤 언어나 해석으로 오염되지 않은 사랑이지요

범망경이라는 경전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부처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얘기했지요 그가 말하기를, “너희 출가승이나 요가 수행자들, 고행자 중 절대 진리가 이러 이러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것도 어느 것도 아니다” 그는 10번정도 반복하면서 각각의 설명 끝에 말하길 진리는 그와 같지 않다 나는 직접 봤기때문에 알고있다고 했지요 제 질문은, 석가모니 부처가 다른 가르침에서 자신이 봉사하고 대표한다고 느끼는 그 인물이 모든 신들 중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을 뜻하는 겁니까?

하리 크리슈나 의식을 말하나요? 그가 그걸 직접 봤냐는 건가요, 뭔지요?

아니요, 예를 들어서 마하야나 전통의 모든 신들 중에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등 많이 있지요 그가 한 말은, 나는 봤다 너희가 생각하는 건 이거다

진리를요?

대면한 거요 아니다,난 직접 봤다고 했죠 부처가 그의 스승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지요 제가 알기로 석가모니 전에 32명이 있었다고 했지요 틀렸다면 정정해주세요 42개의 다른 부처의 모습이었다고요

일곱입니다

일곱이요? 죄송해요 부처가 봉사하거나 대표한다고 했던 존재도 그 일곱명 중에서 한 명을 뜻한 거였나요 아니면 그 일곱명도 더 높은 존재를 말하나요?

부처 이전의 일곱 부처들이 그와 같다고 하는 거죠, 알겠어요 그가 뜻하는 면은 당신이 말한대로 진리입니다 진리를 얘기하고 있었지요 네, 진리는 또한 신을 뜻하죠 부처는 신을 직접 봤다는 겁니다,그는 그들이 말하는 진리나 신은 그들 자신의 낮은 등급에서 나온 생각이며 선입견일 뿐이란 걸 알고 있었지요, 됐어요? 어떤 개인적인 거나 성품, 인물일 필요가 없어요 그 일곱 부처를 부처라거나 자신을 부처라고 했지만 개인을 언급할 필요는 없었어요 천만에요

신이나 절대 진리는 궁극적으로 성품이 없다는 개념과 단순히 그 성품이 어떤지 스승님이나 우리가 이해 못한다는 개념간에 차이가 있나요? 성품은 뭘 뜻하나요?

아니요,내가 아는 것만 말해 줄 수 있어요 당신 말도 맞아요 신성이나 신의 성품을 알 수 없다고 한 말도 맞지만 또 한편 알수도 있어요 하루 만에 전부 알 필요는 없지만 알 필요가 있는 건 뭐든지 안다는 걸 알지요 네, 또한 알아야 할 바로 그 순간에 알지요 내가 경험한 겁니다 신은 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부를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번에 모든 걸 나타낼 수 없으니까요 그럴 필요도 없어요 마치 은행에 돈이 많지만 항상 그 많은 돈을 들고다닐 필요가 없는 것과 같지요 필요한 만큼만 꺼내면 됩니다

사랑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사랑이 충만한 사람 앞에 있게되면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고 하셨지요

네 마찬가지로 신성한 사랑 안에 있으려면 그런 사람과 함께 있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필요라고요?

그런 사람과 같이 있는 거요 그건 같다고 봐요 그래서 그사람을 의식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의 사랑을 알고 느끼게 됩니까? 그 사람과 그의 사랑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보세요 설탕을 맛 보게 되면 달다는 것을 알지요 질문의 여지가 없어요 샤워기 옆에 가면 당신이 알던 모르던 의식이 있던 없던 물이 튀어 젖겠지요 샤워기 아래 서있고 물은 물질이라 해도 우리는 젖게 됩니다 어떻게 그 물질보다 더 높고, 더 강력한 성스런 사랑에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인식하든 안하든 항상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젖을 때도 있지만 상관 않지요,알겠어요 젖은 걸 못 봐요 추위도 못 느끼고 젖은 것도 못 느끼지요 다른 걸 생각하느라 바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젖어 있기는 마찬가지지요 자, 그건 사람으로 화현한 성스러운 사랑을 알게 될때 더욱 느끼게 되고 내면의 변화를 더 실감하게 됩니다 더욱 관심을 갖고 깊이 인식하고 느끼게 되지요 하지만 깊이 느끼지 못할 때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강해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민감하지 못해서 당신에게 영향을 주는 그 성스러운 사랑을 못알아 본 경우라면 나중에 많은 다른 방법으로 영향을 줍니다, 알겠어요 아마 갑자기 “더이상 복수하고 싶지 않아”라고 느낄 겁니다 갑자기 뭔가 더이상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낀다던가 갑자기 자선을 하고 싶어질 겁니다 갑자기 모든 걸 버리고 출가승이 되길 원하지요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생각은 있습니다 갑자기 영적인 스승을 찾아가고싶어 지지요 비록 몇 분이나 몇일 전에 바로 그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란 걸 모르지만요 또는 어떤 물질적 삶에서 흥미가 없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요 무슨 뜻인지 알지요? 우리는 기차안이나 커피숍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자신의 의식에 변화를 줬다는 걸 모릅니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거나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니까 스승님 말씀은 못 알아 볼 수도 있다는 거군요 당신이 하신 말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제가 쉽게 알 수 있듯이 갑자기 물질적인 욕망이 사라지고 영적인 스승을 찾게 되는군요 (네) 그럼 그걸 의식하게 될때 영적인 스승을 찾는군요 내가 햇볕 속에서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갑자기 왜 더워지는 알게되죠 멋진 일이야, 셔츠와 재킷을 벗어야지 우산을 던져버리고 햇볕 아래서 걷자 하지만 내가 햇볕의 근원을 모른다면 어떻게 거기에 마음을 열지요? 사랑의 근원을 모른다면 어떻게 그 사랑을 깨닫도록 나아가겠습니까?

네 당신이 그것을 알아챈다면 준비된 겁니다 알아채지 못한다면 나중에 준비가 되겠지요 준비됐다면,스승이 당신을 찾을 겁니다 언제 스승이 필요한지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됐는지 스승은 알지요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신이 돌봅니다, 됐어요?

칭하이 스승님 여기 회원이 포모사에서 갖고 온 스승님의 책을 보았습니다 참 인상적이었어요 언어가 달라 읽지 못했지만 사진이 정말 좋았어요 그 책에 스승님이 한때 결혼했던 사진이 있었어요 지금은 영적인 스승이 되셨는데 어떻게 속세의 구속을 떠나 가르침을 시작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결혼하셨었지요 내가 결혼했고,

그래서요?

전에요,지금은 출가자이시죠 지금은 스승이 됐다는 말이지요?

네 내가 스승인지 누가 압니까? 나는 다른 영감을 받아서 떠났습니다 결혼보다 더 나았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차이가 있었죠 결혼을 해도 특별할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린 사랑에 빠졌지만 얼마 후엔 그렇고 그렇죠 또 한편 나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많이 봤어요 그때 나는 낭만적으로 더 자비로웠지요 난 자비롭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너무 고통 받는다고 생각했고 TV나 신문을 보고 들으면 결혼 생활을 즐길 수가 없었지요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걸 TV와 뉴스에서 보면서 앉아서 즐길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떠났지요 난 부처의 헌신적인 제자가 되고 진정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거나 명상 같은 걸 하며 진리를 찾는데 온 생애와 모든 시간과 모든 힘을 헌신하여 사람들의 고통으로 인한 내 가슴의 고통을 덜도록 도와줄 해결책을 찾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난 떠났어요 내가 우연히 스승이 되거나 소위 스승이 되었다면 난 이유를 몰라요 그저 신의 뜻이지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 직업을 갖고싶었던 건 아니었죠 때로는 여자에겐 꽤 힘들기 때문이지요 여성은 멋있고 부드럽고 논쟁을 싫어하지요 안 그러면 사람들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스스로 스승이라고 말하려면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죠 혹은 제자가 당신을 스승이라고 하면요 이 직업은 유쾌하지 않지만 난 벗어날 수 없어서 그냥 계속 있어야 합니다 다른 신의뜻이 있을때까지요 그게 내 짧은 인생 이야기죠

예 여기요!

어떻게 소위 내 제자가 될 수 있냐고요? 그리고요?

그들은 어떤 종류의 수행을 하나요? 어떤 규칙이나 서약이 있으며 무엇에 대한 거지요? 계율이요?

먼저 그들은 계율을 지키거나 약속해야 하죠 여러분 단체에 살생, 간음, 마약, 술 등을 금하는 많은 계율이 있듯이요 알겠어요? 영적인 생활의 울타리지요 그리고 영적인 수행에 입문을 하면 그걸 수행합니다 신의 모습인 빛과 소리, 지혜에 대한 단체명상이요

계율은 어떤게 있나요?

계율은 여러분 것과 같아요 살생을 금하며, 술, 마약이나 모든 독성을 삼가하며 거짓말하지 말라 등이죠 성경의 십계명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만하면 쉽지요? 사람들에게 계율을 지키라는 말한 크리슈나 운동처럼요 모든 종교에서 비슷해요 그건 출가의 길인가요? 예, 어떤 점에서는요 하지만 출가자가 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재가자로서 거기 참가할 수 있고 똑같이 완전 입문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출가합니다 어쨌든 출가하게 됩니다 얼마간 법문을 수행한 후에 삶의 물질적 측면에 매력을 느끼지 않지요 마야의 유혹이 당신 삶에서 더 이상 그리 강하지 않지요 어떤 계율은 그저 초기 단계이고 여러분에게 알고 평가하는 안내지침을 줍니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 말할 필요가 없죠 그들은 어쨌든 출가할 겁니다 그들이 입문할때 받은 것을 진정으로 수행한다면요 그렇게 안하면, 그들에게 회개하고 다시 시작할지 떠날지를 물어요 됐지요?

당신에게 어느 것이 더 가치있지요? 경험을 통해 아는 건가요, 경전에서 말하는 건가요?

둘 다요 우린 같은 걸 말해요 경전과 내 가르침이요 하지만 스승님의 가르침은 경험에서 나오는 거지요? 당신은 경전에서 가르침을 얻지 않으시잖아요? 하지만 경전도 같은 방법을 수행하는 고대인들의 체험을 말하고 같은 체험을 말하므로 둘다 중요해요 당신이 그걸 이해한다면요 둘다 똑같이 중요해요 오직 경전을 이해했을 때요 오직 우리가 그것들을 이해할 때만 그것들은 중요해요 아니면 둘다 중요하지 않죠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언제 그들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알게 되며, 언제 그들의 마음이 경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결론에 이르기 시작하는지요? 즉 우리 자신의 체험을 신뢰하는 것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다시 한번 해주세요 언제쯤 자신의 체험을 믿는다는 걸 알게 되나요? 자신의 체험이 경전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하게 될 때 그렇게 되나요? 그렇게 해서 자신의 마음을 믿게 되나요? 마음은 아주 기만적일 수 있으니까요

예, 맞습니다 이거 아세요? 우리가 정말로 뭔가를 신뢰하려면 마음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함이 없이 하고 앎이 없이 알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 삶을 계획하지만 신은 다음에 그걸 깰 겁니다 당신은 자신의 계획을 갖지만 신은 그걸 깰것이고 당신은 좋다며 완전히 항복하고 신을 완전히 믿고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완전하게 알게 됩니다 그때 믿지요, 그전엔 못믿죠 심지어 경전도 믿을수 없죠 충분한 깨닫지 않으면 경전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심지어 경전과 비교해도 자신의 어떤 판단을 믿을 수 없어요 아마도 경전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만 이해해요

그럼 어떻게 자신의 판단을 믿고 영적인 스승을 선택하지요?

어떻게 스승을 믿느냐고요? 영적인 스승을 선택하는 자신의 판단을 믿지요 글쎄, 어느 것도 할수없죠 그건 그냥 사랑처럼 생깁니다 그게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거지요 그래서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스승이 와서 선택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가서 스승을 고르는 게 제자라고 하지 않지요 당신은 선택할 수 없어요 당신은 누굴 선택할지 몰라요 맞습니다 그건 놔두고, 기도하세요 “당신이 스승이라면 와서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죠 그게 일어나면 당신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도망갈 수 없어요 당신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처럼 사로잡히죠 두번째 보고 빠질수도 있지요 때로는 금방 사랑에 빠지고 때로는 더 오래 사귀어야 사랑에 빠집니다 어느 쪽이든 애쓰지 않아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당신이 채식주의자이며 스승을 찾고있고 경전을 공부하며 정의를 믿고 있으며 그것이 스승에게 이끌어 줄거라며 자랑스러워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스승이 없어도 채식을 해요 소도 채식하지만 스승이 없죠 일어나야 할건 일어납니다 내가 아는한 그래요 다른 경우를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좋아요, 질문 있나요? 당신은 내가 말한 걸 믿을 필요 없어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생각하고 분석해서 알아내죠

다른 사람, 누구 없어요?

신과 신을 찾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오늘 말씀하신 많은 것들이 제가 가진 굳은 신념을 알게해 주셨어요 그건 우리 안에 신이 있다는 것이며, 그건 저에게 있어 저의 하느님입니다 난제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신이 있단 걸 받아들이는 것인데, 신을 가질때, 신이 드러날때 그걸 깨닫게 됩니다 신에 대해 말하든 않든 최고의 힘이 뭐든 간에 그 탐구가 끝났을 때 신은 우리 내면과 만물에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고 오늘 그렇게 말씀하셨죠 마찬가지로 신은 제 내면에 있으며 그것이 해답입니다 제 구도의 경우엔 신을 찾으려 밖을 보지않고 제 내면을 보고 신을 찾아냅니다 제겐 매우 간단한 겁니다 때로 너무 간단한 게 아닌가 생각해봐요 단순함 자체가 신이니까요

‘자신이 신이다’라는 게 너무 간단한 거라고요? 아뇨, 제 깨달음은 신은 제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아주 간단해요 내가 조사한 바로는 많은 책들과 종교가 말하는걸 찾으러 멀리갈 필요가 없다는 거죠 모두 똑같은걸 말합니다 그건 신은 각자의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뭐지요?

질문이 아니고 그냥 제 말입니다

당신이 그를 찾았다니 좋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다시 감사합니다

크리슈나 의식에 대해 말씀해 줄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우리는 향유자가 아니고 크리슈나가 향유자이지요 우리 삶은 헌신하는 거고요 크리슈나가 향유자라고요?



우리는 아니고요?

맞아요 제가 이해하는 한, 전 헌신자는 아닙니다 제가 이해하는 선에서는요 그래서 저는 인간으로서 이 세상의 우리의 장소에서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오는 곳이나 우리와 신과의 관계를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 궁금해요

좋아요

누가 향유하는 자이고 우리 삶에서 그건 어디인가?

첫 번째 질문은 '누가 향유자인가’지요? 글쎄요 크리슈나가 향유자인 건 맞아요 크리슈나는 신의식, 자신의 지혜, 우리의 진아를 뜻합니다 진아는 항상 즐기죠 크리슈나는 항상 즐기지만 우린 그렇지 못합니다 마음은 온갖 속임수에 걸려서 많은 것들을 오해합니다 행복을 고통이라 생각하며 고통을 행복이라 생각하죠 독을 즐거움이라 생각하죠 온갖 독, 알코올, 마약을 즐거움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향유자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란 우리가 우리라고 믿는 자이지요 진정한 우리는 크리슈나지요 그런 경우라면 즐길수 있어요 진아는 즐기지만 거짓자아는 괴로워하고 그리 즐기지 못하며 진정한 즐거움을 얻지 못해 항상 갈구합니다 그게 내가 이해하는 바죠

그럼 에고가 향유자군요 에고요,

네 마음, 이 세상에서의 경험, 수집된 경험, 선입견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선입견, 편견의 덩어리일 뿐이죠

스승님께선 에고를 없애는 길은 명상이고 사랑과 자비를 통한 봉사라고 믿으세요?

영적 안내자, 즉 스승이 있다면요 그렇지 않으면 정확히 뭘할지 알기 어렵죠 스승 없이는 더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많은 고통과 실수, 위험을 통해서요 우린 스승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필요 없겠죠 사람들은 병을 치유하기 위해 오직 육체만을 볼 뿐 병이 생긴 그 영적이고 감정적인 영향은 소홀히 하는데요

이해합니다

그러면 그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이 아주 느려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고양된 의식이 없다면요 전 병원에 가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게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좋아요 당신이 어떤 이를 돕고자 그 병의 근원을 치유한다고 합시다 당신이 말한 거죠 그러나 그 병의 근원이 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저 다른 사람에게 감염된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노화하는 것일 수도 있고, 순전히 육체적인 것일수도 있지요 또 그 질병의 업장을 알게 되었다고 합시다 당신은 환자가 배워야 할 교훈을 배우게 하지 않고 어떻게 그 업장의 짐을 짊어질 건가요? 신의 존재와 신의 영광의 필요성을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사람들에게서 빼앗지 마세요 일시적 신통에 의지하는 대신 영적인 힘, 영원한 치유력을 구할 필요성을 더 알게 될 기회를 말이죠 알겠어요? 그건 육체가 고통받게 두는 것보다 더 잔인한 겁니다 죽는다면 다시 태어나죠 육체는 옳게 쓰지 않으면 그다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래서 육체를 더 좋게 써야 함을 상기시키기 위해 신이 질병과 불행을 보낸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그를 돕고 싶고, 영적인 방법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면 업장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가장 좋죠 그 자신을 죽이는 대신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하세요 하지만 그런 일도 있어요 당신이 영적 스승, 강력한 스승과 있을 때 업장이 소멸되기도 합니다 스승이 뭘 하지 않아도 저절로 치유가 되지요 그건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러나 난 이런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선 값싼 자랑처럼 들려서지요 사람들이 와서 내게 치유력이 있냐고 묻습니다 보통 난 없다고 하죠 그러나 이런 일은 있어요 그가 충분히 받아들인다면 온갖 병이 즉시 낫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겪는 것이 그에게 최선이라면 치유되지 않거나 서서히 치유되죠 알겠어요?

우선 감사 드립니다 오늘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많은 걸 알게되었어요 최근 제게 정말 혼란스러운 어떤 것이 있는데요 전 19살이고 미국에 삽니다 전 이미 어떤 계획 같은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투쟁해서 얻어야 하는건지 혼란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환영의 섬에 살고 있고 우린 이 몸이 아니라면 그냥 여행하듯 좋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저나 다른 친구들은 병이 만연하고 강간, 살인, 아픔이 있는 나라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옆에 서서 그런 것들을 지켜보고 있을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아주 난감해요 스승님께서 이에 대해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

네, 사랑이 많고, 사려깊고 배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하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치지 않으면 치유법은 없습니다 업장의 법칙을 알지요? 당신이 영웅이 되어 살인을 막고 정숙한 여인을 보호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당신이 온 세상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때로 소위 정숙한 여인들은 그렇게 정숙하지 않아요 예를들어 실례지만 살인자나 강간범은 그 사건에서 유일한 책임자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와 전세계, 시대의 모든 추세가 책임이 있지요 그러니 어떻게 하지요? 그 사람을 감옥에 넣어도 또 다른 이가 나올 겁니다 사람들이 바뀌려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시도 해야죠 그래서 당신의 스승이 노후의 안락함과 평판, 시간, 에너지를 희생하면서 사람들에게 스스로 변하라고 말한 거죠 따라서 당신의 출가승들과 형제자매들이 밖으로 나가서 프라부파다 스승의 뜻을 계속 행하는 것이지요 세상엔 이런 숭고한 일을 하는 다른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합류하는 게 어때요? 불을 하나 더 밝히세요 더 많은 단체에 힘을 줍니다 거기 앉아서 미안해 말고 뭔가를 하세요, 알겠어요? 어쩜 당신이 10명을 구하고, 다른 이가 20명, 그가30명을 구할 수 있죠 그럼 세상을 아주 빨리 구하겠지요 그걸 바꿀 다른 방도는 없어요 사람들을 도울 딴 방법이 없죠 그냥 가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세요 더 나은 삶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사회 전체에 알리세요 알겠죠! 희생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변해야 해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죠 모든 불행을 멈출 순 없어도 적어도 일부는 멈출 수 있어요 알겠어요?

이미 큰 성과가 있어요

안 그래요? 오! 나를 으쓱하게 하는군요 나를 칭찬해주는걸 알아요 내일 내 에고가 부풀어서 저 문을 통과할 수 없지 않도록 바랄 뿐이죠 매우 감사합니다, 스승님

가려고요?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은 아주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내일, 종교 초월 행사에서 당신을 뵙길 바랍니다 있잖아요, 여러분이 떠날 때를 대비해서 이걸 나눠주는 걸 잊었어요 빨간 봉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요 중국과 어울락인 새해의 사랑과 행운의 상징이에요 오늘은 아직 새해에요 네, 다른 사람은요?

제가 가져갈게요

나눠주세요 거기 뒤에 있는 이들에게 나눠주세요, 사형 지금이 새해지요? 네, 이틀전에 시작했죠 이틀 전이에요 올해가 무슨 해입니까?

새해죠, 쥐띠 해입니까? 양띠 해입니다 봉투에 무엇이 들어있나요? 돈이죠 당신께 드리는 건가요? 아뇨, 당신거에요,1달러를 부의 상징으로 주는 거에요 이른바 내 제자들이 그걸 준비합니다 모두에게 주려고 준비해요 네, 새해에는 내가 뭔가를 주는 것이 전통이니까요 우리도 뭔가를 드려야죠 난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그래도 우린 드려야 해요 여러분은 모른채 많이 주죠 여러분은 나를 지지해주고 사랑과 미소를 주며 내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그건 내게 아주 고무적이죠 돈보다 낫습니다

스승님, 다소 간단한 질문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저를 괴롭혀온 게 있습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으로서 좋아지려고 하는 건가요, 아님, 아픈 사람으로서 나아지려고 하는 건가요? 이해되세요?

우린 누구냐고요? 못 알아들었어요

모든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는 악에 책임이 있나요? 악은 일종의 심리적인 질병에 기인하는 건가요, 아님, 우리 안에 있는 악한 본성 때문인가요?

우리에게 심지어 책임이 있는건 아니지만 좀더 주의를 기울여서 자유의지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돌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신에게도 책임은 없어요 그는 우리가 즐기라고 창조 했지만 우린 집착하며 그 집착에서 전쟁, 증오, 경쟁과 질투가 생겨났어요 조심하지 않았죠, 그게 다죠 크게 깨달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에게서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라는 말을 듣겠죠 필요하다면 즐기세요 하지만 쾌락은 최소로 만들고 내면에서 더 영원한 것을 즐기도록 노력하세요 그럼 전에 해온 일들이 정말로 여러분의 삶과 영적인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알기 시작하죠 그래서 우리가 변합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이런 초월을 하려면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또한 사랑, 사랑의 개념, 무조건적 사랑과 그것의 진정한 본성은 많은 절제를 요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말한 진정한 사랑을 얻는 것이 아주 어려운 건가요 그게 맞습니까?

그렇기도, 아니기도 해요 여러분의 업장에 달려있죠 이미 여러 전생에서 사랑을 발전시켜왔다면 이번 생엔 필요치않을 거에요 알겠어요? 그래서 그 경우엔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 많은 고통과 수련을 겪지 않아도 되는 걸로 보이죠 하지만 훈련과 절제, 사랑을 완성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생에서 그걸 해야만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자비를 이해하기위해 고통을 겪어야만 해요 하지만 부처와 예수는 그럴 필요가 없었죠 내 말을 알겠어요? 그는 아마도 그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것이지 강제로 그걸 겪을 필요는 없었어요 예수는 그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고통을 겪지 않았죠 결국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이미 그가 내면의 그 사랑을 깨달은 뒤였습니다 그가 이미 다른 생에서 그 품성을 개발했거나 신의 인격체이기 때문이죠 내 말 알겠어요? 그러므로 고통이 반드시 자비를 의미하진 않아요 경우에 따라서지요 여러분이 항상 자신의 삶을 사랑해왔다면 깨달은 스승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고통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비와 사랑으로 태어났어요 알겠죠? 만족합니까?

내가 가기 전에 여러분에게 줄 것이 있어요 우선 음악을 좋아하는지 여러분과 여러분의 영적 삶에 영감을 주는지 묻고 싶군요

난 많은 것을 좋아해요

난 나와 여러분의 영감을 표현한 몇 소절의 노래를 해주려고 해요

노래로 날 기쁘게 해줘요

사랑하는 친구여 내 느낌을 말해 줄게 내게 너의 보물을 주었지 널 너무 사랑해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게 그들이 날 곤란하게 하는 방법이죠 이런 것을 인쇄하고 날 생불이라 부르는 것을 통해서요 날 살아있는 스승이라고 부르면 더 좋을텐데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러서 문제를 만듭니다 사람들은 부처와 스승간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죠 그들은 부처는 한 분이라고 믿거든요 마지막이 석가모니이고 더는 없었다고요 오천 년,만년이 흘러 우리모두 지옥에 가고나면 다른 부처가 올 거라고 하죠 사람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찾아오는 부처가 있다는 걸 믿지 않아요 매 시대마다 우린 늘 영적인 요구를 가지고 있지요 왜 부처가 우리 시대와 그 시대 간에 차이를 둬야 하지요?

때로 우리가 그만한 가치가 있단 걸 믿기 어려워요

가치요? 맞나요? 만일 유일한 것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가치 없겠어요?

우리가 답을 알고 있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우리가 가치없다면 최소한 부처는 가치있을 겁니다 부처는 우리를 돕는 특권을 가질 만해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요 왜냐하면 부처는 죄와 무죄를 분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에겐 죄가 존재하지 않죠 그렇죠? 왜 그리 비관적인가요? 알아채든 못 알아채든 우린 신, 살아있는 신입니다 만일 누군가 그의 부모가 집에 감춘 보물을 갖고 있다면 그가 그걸 알든 모르든 가졌다는 건 늘 같죠 그가 쓸 수 없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백만장자죠 쓸 수 없다면 그에게 안 좋을 뿐 그가 나쁘다는건 아닙니다 빛과 소리입니다 그건 육체의 의식 너머로 고양시켜주죠 완전히 떠나서 축복 속에 사물을 인지합니다

빛을 볼 수 없다거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요?

그럼 보고 들을 때까지 하고 스승에게 은총을 구하세요 살아있는 스승의 은총을요 적절한 지도를 구해요 당신이 올바로 못하거나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 더 집중해 봐요 명상할 때만 집중하라는 게 아닙니다 항상 집중해야만 합니다 명상할 준비를 하는 거죠 늘 만트라를 외우세요 앉으면 준비가 되도록요 그래서 항상 만트라를 외울 필요가 있어요 떠날 준비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외우면서 최대한 일심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해봐요 만일 장기를 포기 못하면 최소한 두면서 명상해요 둘 다 하세요 그럼 저절로 미련 없어지죠 둘 다 하세요 장기도 두고 그에 대한 책도 쓸 수 있죠 하지만 명상을 더 하세요 그러면 내면의 것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고 내면이 보다 즐겁게 됩니다 더 흥미로운 게 있으면 덜 흥미로운 것을 놓기가 쉽습니다 당신이 장기를 더많이 두고 명상은 조금하면 영적인 것이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육체적 활동이 훨씬 즐겁죠 그만두기 정말 어려워요 여기엔 아무 흥미가 없고 거기엔 흥미가 좀 있다면 당연히 거기에 집착하지요 이해하기 쉽지요 어떻게든 더많이 명상하세요 장기를 그만 두든지 말든지 명상하십시오 스스로 훈련하세요


International Sites
English | Âu Lạc | 正體中文 | 简体中文 | Français | Deutsch | Magyar | Italiano | 한국어 | Indonesia | Español | Português | Svenska | فارس | jezik | Русский | 日本語
  • PC 버전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