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혜의 말씀은 어울락어 강연이며 함께 보실 자막은 아랍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페르시아어 한국어입니다

미합중국 “자유의 땅, 용감한 자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자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계층에서 온 사람들이 미국을 그들의 집으로 부릅니다 미국은 그들을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물론,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은 이 꿈을 이루는 화신입니다 뉴욕의 대중교육제도만 봐도, 전 학생들이 세계 145개 국가를 대표합니다

미국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여 유래 없는 기회를 줌으로써 모든 영역에 있어서 모든 국가로부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포용해 왔습니다 성공에의 장벽이 거의 없는 진정한 “용광로”가 된 이 젊은 나라는 모든 나라가 따를 모델이 되었습니다

미국엔 수십 개의 주요 도시들이 미국 내의 문화, 유산, 경제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04년, 251의 병합지역이 최소한 십만의 인구를 가졌고 9개 도시는 인구가 백만 이상이며, 여기엔 5개의 중요한 글로벌 도시인 뉴욕,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휴스턴 필라델피아가 포함됩니다 게다가 인구 백만이 넘는 50개의 대도시 지역으로는 롱비치 달라스 보스턴 피닉스 시에틀 산디에고가 포함되죠 공식적인 언어인 영어는 사실상 미국의 언어입니다 약 82%의 인구가 집에서 영어를 말합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영어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원어민이나 비원어민들 간의 일상 상호작용에 있어서 가장 일상적인 언어입니다

미국에서 기회란 여러분의 상상과 능력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입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도 미국 출신이며 둘 다 바닥에서부터 그들의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초강국으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또한 아주 영적인 나라이며 시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합니다 물론 종교는 전통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많은 유럽 이주민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종교는 여전히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주된 영향을 줍니다

시민의 숭배할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국가로서의 미국은 칭하이 무상사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그녀는 1990년대 초반 신실한 영적 구도자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부터 칭하이 무상사는 전국에서 수 많은 초청을 받아들여 영성에 대한 그녀의 지혜와 앎을 나누었습니다 수년동안,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가진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그 나라의 많은 지역에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1993년, 많은 미국 중서부 지역이 큰 비로 홍수의 피해를 입자 칭하이 무상사의 마음이 이 피해자들에게 전해져 즉시 이 지역에 구호팀을 파견하여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1994년 이들 주에 대한 그녀의 자비와 공헌을 치하하여 중서부 여섯 개 주, 일리노이, 미네소타, 미조리, 아이오와, 위스콘신, 캔사스 주지사들은 칭하이 무상사에게 세계지도자상을 수여했으며 또한 2월 22일을 “칭하이 무상사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또한 2001년 9월 11일 미국 땅에서 최악의 인간의 비극이 일어났을 때 칭하이 무상사는 즉시 미국전역 및 전 세계에서 구호팀을 소집하여 뉴욕 시의 폭파지점으로 보냈습니다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에 칭하이 무상사께서 기부한 금액은 미화 삼십만 달러에 달합니다 기부금은 미국 적십자 버지니아 지사, 워싱턴에 있는 국제 적십자사, 국제 구세군, 펜타곤 희생자 가족을 돕는 크라이시스 링크, 그리고 많은 펜타곤 부상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버지니아 의료원에 주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칭하이 무상사의 기부금이 구세군, 미국 적십자, 소방관 기념 재단에 보내어졌습니다 칭하이 무상사의 추가 지원은 구호품 보급에 쓰여졌습니다 폭파지점에서 우리 협회 회원들은 물품, 의약 및 매일 맛있는 채식과 뜨거운 커피로 구호 요원들을 먹였습니다 너무 위험하여 그 지역을 떠날 수 없었던 구조 대원들을 위해 그 당시 유일한 이동 식단이었던 칭하이 무상사 이동 식품이 대원들에게 배달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화신인 칭하이 무상사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그녀의 사랑과 자비를 미국 전역- 버지니아 오하이오 켄터키 알라바마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텍사스 하와이 등지에 전합니다 노인과 노숙자들, 고아와 빈민들, 재난 피해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칭하이 무상사의 사랑의 수혜자들입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가는 곳마다 그녀를 만나거나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깁니다 많은 이들에게, 칭하이 무상사의 지혜의 말씀은 그들이 신의 품으로 돌아가길 갈망할 때에 아픈 영혼을 달래는 향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제 칭하이 무상사께서 1991년 2월 28일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하신 “부처는 인연있는 자들만 돕는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음력설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모든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다,사업은 번창하고 아이들의 행실은 좋아지며 여러분이 더욱 건강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족들과 빨리 재회하고 조국이 평화로워지길 바랍니다

모든 어울락(베트남)인들은 수행하는 법을 알기때문에 내가 여기와서 말해주길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는 “8만4천 가지의 법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때로 어울락인이나 다른 사람들은 어느 법문이 그들,재가자들에게 보다 편리한지 모릅니다 어울락(베트남)인과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집에서 수행합니다 관음법문이라는 법문이 하나 있는데 이건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아주 쉽게 수행할 수 있죠 시간도 많이 필요치 않고 돈도 전혀 들지 않지요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를 떠나서 숲이나 산, 절로 수행하러 갈 필요가 없죠

그래서 능엄경 회합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관음보살을 포함한 25명의 보살들을 모아놓고 어느 법문이 가장 편리하고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지 토론했지요

우선 아난다가 쉽게 수행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둘째, 부처가 아직 생존해 있을 때 수행하는 사람들과 후손들을 위한 것이었죠 그 당시 모두가 자기만의 수행법을 말했습니다 25명의 보살들이 20여개의 다양한 법문을 수행했지요 그런데 결국 관음보살이 자기가 관음법문을 수행한다고 말했죠 자신이 관음법문을 수행했기 때문에 성불, 보살도를 이루었고 사람들에게 관음보살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했죠 관음보살이 관음법문을 부처에게 말하자 부처도 거기 동의하며 받아들이며 말합니다 “맞다, 그게 최고이며 언제 누구에게나 적합하며 특히 말법시대에 그렇다”

말법시대가 무슨 의미죠? 그건 부처가 세상을 완전히 잠시동안 떠난 시기로 살아있는 부처가 오래전에 열반에 오르고 나서 진정한 법이 끊긴 때입니다 끊긴다고 해서 더 오랫동안 사라진다는 게 아닙니다 그건 가끔씩 다른 장소에서 법이 나타나지만 어떨 땐 널리 대중에게 퍼져서 발전이나 수행되지 못하고 대중이 깊게 이해할 수 없죠 그걸 법맥이 끊겼다고 하죠

자, 말법시대는 매우 힘든 시기입니다 하지만 부처는 말했죠 “우린 여전히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 후손들은 희망이 많은 겁니다 경전을 읽고 부처의 말씀을 배우고 나서 난 많은 국가와 다양한 장소를 다양한 스승을 찾아 여행했습니다, 그 법문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죠 부처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관음법문을 수행해서 성불했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다음 그게 신화나 천일야화에 나오는 동화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온 얘기가 아니죠 남녀노소 누구나 이 법문을 수행할 수 있으면 이 법문으로 정화 못하는 죄란 없습니다 이건 수천년간 빛이 없었던 방에 빛이 들어오자마자 즉각적으로 밝아지고 수천 년 된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얼마간 이 법문을 수행하고 수많은 각종 종교의 모든 경전을 연구하고 나니 그들 모두가 동일한 걸 말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전에는 불교 경전도 진실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다른 종교는 말할것도 없죠 전에 나는 다른 종교들이 불교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오해했습니다 허나 이젠 타종교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지요 하지만 수행자들의 수준이 같지 않습니다 수행자들은 각각 다른 방식 다른 개념을 지녔으며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유사하게 어울락(베트남)인은 장미빛 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면 장미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검은 유리를 통해 본다면 사물은 까맣게 될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거나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뭘 보든 깨닫지 못하고 무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사물을 분명히 보고 모든 걸 쉽게 이해하며 복잡한 것도 전혀 없죠 전에는 영성을 수행하는 게 매우 험하고 어렵고 매우 중대하고 기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을 뜻하죠 그건 내 생각입니다 나중에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 그런 게 아님을 깨달았어요

모두 정말로 불성을 갖고있죠 신실히 수행하려는 사람은 해탈할 수 있고 부처가 될수 있습니다 그가 과거 행위가 얼마나 나쁘고 잔인했던 간에 그가 얼마나 부정적이고 무지했던 간에 그가 얼마나 퇴폐적이고 멋대로 했든 간에 일단 깨어나면 관음법문을 깊이 믿게 되고 모두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믿고 신실하게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그, 그녀는 해탈하게 되고 즉시, 매우 빨리 깨닫습니다 며칠 안에 우린 달리 느낄겁니다 몇 주안에 우린 놀라운 진보를 깨닫게 될 거예요 몇 달안에 우린 이세상에 더이상 집착하지 않고 모두 환상임을 알죠 비록 우리가 인류 의무의 실행에 최선을 다해도요 우린 모든 것을 남겨두고 이세상을 떠나지 않아요

일찍이 내 제자들이 300여명이라고 들었겠죠 주의 깊게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그 정도죠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출가하라고 말한다고 생각하겠죠 진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출가하길 바랐습니다 그들은 출가자가 되게 해 달라며 나를 압박하며 졸라댔습니다

입문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입문을 주라고 강요해요 난 말하죠 “천천히 해요! 여러분은 아직 채식을 안하며 서서히 채식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우선 두세달 시도해야해요 또 직업이 살인과 관련이 많다면 바꿔야 해요 여러분이 기꺼이 바꿀수 있는지 보세요 스스로 결정하고 나중에 돌아오세요” 그후에도 그들은 고집하고 나를 강요하고 울어요

많은 외부 사람들은 오해하여 내가 그들을 출가하도록 강요했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흑마술을 썼다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이미 나의 흑마술은 아무 “이익”도 없다고 말했어요 어울락에 “로반” 흑마술이 있지만 내 것은 “무익”한 것입니다 난 난민들을 알게 된 후 내 모든 돈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죠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영적 수행자들의 일을 이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신실한 수행자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에요 난 내 제자들을 칭찬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아요 그들은 진정 매우 드물죠! 진짜 법문을 수행함으로써 진정한 진보, 진정한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법문을 따르더라도 때때로 깨달음의 수준에 다다를 수 있지만, 조금일뿐 전적으로 완전하게 깨닫는 건 아니죠

당신의 직관은 분명치 않죠 모든 법문이 훌륭하고 효과적이었다면 석가모니 부처는 관음법문을 칭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소위 영적 수행자들은 관음법문을 아직 모르는 거죠?

그들은 그냥 모릅니다 그들의 운명이 알게 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와 귀중한 보석은 모두 보게 열린 시장에 내놔선 않되죠 그런 보석을 걸칠만한 부유하고 우아한 자만이 찾아서 살수 있겠죠 이해합니까? 예컨대 이세상 다이아몬드에 대해 얘기하자면 모두가 그런 것들을 걸칠 여유가 없어요 그렇죠? 모든 여성이 다이아몬드를 걸치는 걸 보지 못해요 여성은 대게 다이아몬드를 흠모하지만 모두가 진짜를 차고 다니진 않습니다 때로는 가짜 다이아몬드를 착용해요, 그렇지 않아요 인조 다이아몬드는 구하기 쉽고, 더 싸고, 도둑 맞아도 별 문제가 안 되지요 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완벽한 다이아몬드는 정말 비싸요 가난한 사람 말고 부자만 가질 수 있죠 이와 비슷하게, 모든 사람이 부처의 귀한 다이아몬드 법을 아는 건 아니에요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절의 누구나 부처가 되는 게 쉬웠을 거예요 항상 불경을 외거나 목탁을 두드릴 필요가 없죠 만약 관음법문이 이해하기 그렇게 쉬웠다면 적어도 인도 사람들은 부처가 되었을 거예요 아니면 부처가 열반에 든 후 20년, 30년 혹은 많아야 100년 후에는 모든 인도인들 역시 열반에 들었을 거예요 내가 계속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도는 부처가 태어났던 곳이며, 세세생생 유명하고 진실된 인도인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지요 성스러운 땅이라 불리죠 우린 다른 성인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지요 석가모니 부처만 보세요 그가 살아있는 부처였을 때 많은 사람이 따르지않았죠 그래서 그가 열반에 이른뒤 법은 어느 다른 곳으로 가버렸으니 어떻게 모든 이들이 그 귀한 법을 알수있겠어요 매우 논리적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왜 그들이 모르는데 내가 아냐고 물으면 그들 스스로 답하는 겁니다 귀한 것들은 잡초나 길바닥의 잡동사니와 같지 않아요 예를 들어, 이 경우 내가 법을 공개적으로 줬어요 난 어떻게 법을 행하는지 무료로 여러분에게 기꺼이 가르치지요 여러분이 스승을 찾느라고 한 편에 쌀 자루와 돈 가방을 들고서 산이나 강을 넘을필요 없이 내가 와서 여러분의 문을 두드리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배우고 싶어하지요? 날 실컷 욕할 수 없어요 답례로 그 무엇도 난 요구하지 않았죠 만일 내가 “내 가르침을 따라요, 답례로 돈을 내거나 뭘 해주세요”라고 하거나 강도나 도둑이 되라거나 다른 이의 남편이나 아내를 취하라고 가르쳤다면 날 욕할 수 있죠 어떤 나쁜것도 안가르쳤지만 여전히 욕을 먹어요 이제 알겠죠,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중생들이 구원받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러니 왜 이 법문이 가장 귀한지 물을 필요도 없고 부처도 같은 말을 했지만 많은 사원이나 스승들 고위 승려들에겐 알려지지 않았냐고 물을 필요 없어요 그들이 알고 싶어하지 않아서 그래요, 알겠죠 그들은 조사하길 원치 않아요 여기 와서 여러분들의 돈도 받지 않으며, 확실하고 공개적으로 내가 설명하지만 여전히 배우는 걸 거절하죠 그러니 사람들이 항상 절에 머물거나 동굴이나 오두막에 박혀서 혼자 수행하거나 경전을 연구하거나 나가서 스승을 구하지 않고 그것들을 외우기만 하면 그들이 어떻게 이 법문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삼 사십년 동안 연구하고 수행한 사람들이 많지만 좋은 스승을 찾지 않으면 여전히 법을 찾을 수 없어요 알겠어요?

예를 들어, 때때로 여러분은 점쟁이를 찾고 싶어해요 여러분이 더 잘 이해하도록 이런 비유를 들어봅시다 좋은 점쟁이를 찾지 않으면 운명을 잘못 듣게 됩니다 이런 저런 점쟁이에게 계속 들으며, 그를 찾으러 어디든 달려가지만, 그러는 중에 돈만 잃습니다 때론 그를 보기 전에 문 밖에서 한참동안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럼 그가 손을 잡고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이런 저런 말을 하죠 여러분은 여전히 그가 말하는 걸 모르죠 그런 뒤 피곤해져서 집에 오죠 돈도 잃고요 때론 의사를 만날 때도 비슷해요 좋은 의사를 찾을 수 없으면 병은 치유될 수 없고 돈은 없어지고 병은 아마 악화되지요 그렇지 않나요 일반적으로 이렇죠 여러분이 알다시피요 부처가 될 수 없다거나 관음법문이나 깨달은 법문이 우리가 배우기에 어렵다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 거예요 한 생애에 부처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문제에요 그 법을 수행하길 원치 않고 여기 머물러서 그런 게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케익을 안 먹고 싶어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케익이 달콤할 수 있어?” “달콤해 보이지 않는데!” 알겠어요 케익을 보기만 해선, 그게 달콤한지 아닌지 알수없어요 알려면 그걸 먹어야 해요 특히나 그걸 공짜로 맛보도록 초대됐다면 말이에요 누군가 케익을 가져왔는데 맛보지 않으면 여러분 잘못이죠 오래 전 내가 공개적으로 이 법을 가르치지 않았을 때 내 제자들이 말했어요 “스승님, 자비심이 없군요 뭔가 좋은 걸 아시면서 대중과 나누길 원치 않으면 뭐 하러 수행하시는 거죠?” 난 말했죠, “대중을 가르치면 그들은 알지 못하거나 배우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러니 어떻게 가르치죠?” 허나 제자들은 듣지 않았죠 내가 분명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곤 극장을 빌려서 나를 무대에 올려놓고 말하게 했어요 강연 뒤, 마찬가지였지요 오직 수천 혹은 수만명만 가르칠 수 있었어요 전 세계가 아니라요

예를 들어, 수백명이 강연에 와도, 나중에 내가 이 법문을 배우고 싶은 사람을 물어보면 대답은 겨우 열 몇명이죠 그래서 아무리 법이 쉽고 매우 귀하다 해도, 많은 이들이 수행하거나 부처가 될 수 없어요 그 법문이 아주 쉽다고 생각되어, 무시하니까요 아마 이런 걸 거예요 아니면 복잡한걸 배우는데 익숙해져서, 아주 쉬운 뭔가에 대해 들으면 우린 그걸 믿을 수 없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석가모니 부처가 살아있을 때 그는 매우 다른… 복잡한 법들을 수행했어요 단식을 했고, 해진 옷을 입고 그의 가족과 자녀,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떠났어요 뼈만 남을 때까지 단식한뒤 물을 마시기 위해 강까지 기어가야만 했어요 그후, 어느날 한 수행자가 그에게 한 잔의 우유와 과자 몇 개를 공양했어요 그걸 먹은 뒤, 그는 기운을 더 차렸고 그 날 명상 중에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고행이나 복잡한 법문을 수행해야 해탈하는 게 아니란 걸요 우리도 비슷합니다

힘든 법문을 수행하는 데 익숙하지요 어려움과 고난, 고통을 받는 데 익숙해서, 쉬운 뭔가가 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지금까지 우린 잘못된 개념을 가졌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배워서 우리에게 죄가 많고 행하는 모든 일이 죄 많고 수행을 해도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말이에요 아니면 석가모니 부처가 유일한 부처이고, 우린 부처가 될수없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누군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그는 어디서 왔을까요 전설에서 그가 도리천에서 왔다고 말해도 우리 눈에는 우리 생각에선 또 역사 기록을 보면, 그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났어요 그의 어머니도 그를 9개월 동안 임신했고, 그런 뒤 부처를 낳았지요 그도 인간이었어요 그는 “나 역시 수행해서 부처가 된 사람이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말했어요 이 걸 들어본 적 있어요 경전을 읽었나요 그랬어요? 아니요 예

여러분이 불교신자라면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해요 여러분은 내가 부처도 아니고 법도 아니며 바르게 설법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여러분 자신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부처가 말한것을 모르면서 아주 빨리 비난합니다 비난하기 전에 알아야해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 뭘 치는지 모르면서 치면 자신만 쓰러지게 합니다 알겠어요 허공을 치는 거죠, 미친 사람처럼 허공을 치다가 쓰러집니다, 그렇죠? 술에 취했거나 미친 사람이 유령 그림자나 어떤 그림자를 지쳐서 기절할 때까지 치는걸 본적 있어요?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와 비슷해요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의 이해하지 못하죠 정말 안된 일이에요 그들은 모르지만 배우길 원하지 않아요 그들은 누군가가 가르치는 걸 보면 바로 비난할 거예요

전세계가 이렇게 귀여워요 그래서 생사의 윤회 안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겁니다 세상은 점점 붐비게 되지요 많은 경전과 성서, 다양한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 세상을 구하진 못합니다 그저 인구과잉만 될 뿐이죠 그래서 우린 윤회가 계속되고 있음을 압니다 사람들은 해탈하지 못하죠 그래서 붐비는 겁니다 아니면 모두 떠났어야 하죠 불교가 좋지 않아서라면 최소한 기독교는 있는데, 기독교인들 모두 해탈했어야 하죠 그러나 인구는 점점 늘어납니다 투쟁과 다툼이 있지요 그러니 그들이 뭘 말하든 내버려 두세요 그러나 수행을 추구한다면 안전하고 여러분의 기호와 생각에 맞는 그런 법문을 찾아야 합니다 앉아서 비판만 말고요 얼마나 더 비판을 계속할 겁니까? 명상이나 부처의 이름을 외는 것이 좋지 않다면 직접 해보는 것이 어때요? 예를 들어 우리가 경전이나 불교를 좋아한다면 경전을 공부해야 하지요 경전에 쓰여진 말이나 무슨 법문을 수행할지 알면 우린 점차 수행을 진보시킬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냥 앉아서 이것도 안좋고 저것도 안좋다고 비평하지 마세요 정작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말이죠 고통스러운 건 자신이에요 백년이란 그렇게 길지 않죠 여러분 대부분은이미20대 30대, 40대, 혹은 50대죠 여러분이 “가까운 지상 머나먼 천국”이 아니라면 “가까운 천국 머나먼 지상”인 거죠 그렇지 않나요? 오늘은 살아있지만 내일 떠날지 누가 알겠어요 우린 전쟁의 시대에 있죠 가는 나라마다 전쟁을 하죠

어디서 평화롭게 살지요? 수행을 안 하면 항상 문제가 있을 겁니다 우린 전혀 보장이 없습니다 죽음에서 막아줄 보험회사는 없지요 업장에서 자유롭게 해줄 보험회사도 없고요 어떤 보험회사도 백만 달러로 업장을 소멸시켜 줄 수 없습니다 단지 칭하이 보험회사만이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 보험회사는 돈을 청구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상합니다!

전에 말했듯이, 우린 복잡한 방식으로 배우는데 익숙하여 누군가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쉽지요” 라고 하면 믿기 힘들죠 나처럼요, 나도 수행 초기에 의심을 좀 했지요 ‘어떻게 내가 이런 귀중한 법문을 발견할 정도로 공덕이 있을까?’ 라고요 스승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믿을수 없는 거죠 법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겁니다 왜일까요? 아주 오랫동안 세뇌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우리에겐 아주 많은 업장이 있다고 하죠 부처가 되기 위해서 세세생생, 혹은 육칠백년, 혹은 수없이 많은 생애 동안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매 생마다 많은 자선을 베풀어야 하고 성인의 도를 수없이 행해야만 부처가 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일세해탈이란 말을 들으면 아무도 믿지 않죠 너무나 오래 잘못된 개념으로 세뇌되어 왔으니까요 이 법문이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해선 안됩니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세뇌되어 왔으니까요 그저 안타까워 할 뿐 비난하진 마세요 난 비난은 고사하고 그들이 안쓰러워 견딜 수 없어요 그들은 오랫동안 안내자나 스승이 없어 아주 불쌍하고 무지하며 자신의 빛나는 품성을 잊어버린 겁니다 그들이 더 부정적으로 말할수록 더 불쌍하죠 영적 수준이 더 낮아지니까요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그렇게 걱정스럽지 않아요 그러나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그 수준이 아주 낮아서 그들을 빨리 끌어 올릴 수 없음을 압니다 즉시 이해하는 사람들은 훌륭하지요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어요 이해는 못하지만 거부하지 않는 이들도 여전히 나아질 수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이해할 겁니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계속 반항하는 이들은 아주 불쌍합니다! 이 수준까지 올려지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죠 수준이 너무 낮아요

그래서 옛날에 석가모니가 막 부처가 되었을 때에 고개를 흔들며 말한 겁니다 “아니 난 중생을 구하고 싶지 않다 열반에 이르고 싶을 뿐이다” 무엇이 열반인가요? 열반에 이르려면 즉 천국에 살 곳을 찾으려면 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죠 열반은 더 이상 욕망이 없고 완전한 지혜를 얻은, 세세생생 모든 욕망이 다 달성된 사람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그 고요함, 지복은 말이나 글로 표현될 수 없으며 완전한 깨달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말로 하는 건 믿기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예컨대 ‘거북이와 물고기’ 이야기에서 물고기는 물에서만 살수있고 거북이는 물과 육지에서 다 살 수 있지요 거북이가 물고기에게 육지 일을 전부 말하면 물고기는 믿을 수 없죠 물고기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가 알 때쯤엔 그는 육지에서 부르르 떨다 죽을 겁니다 이해합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야 진실을 알게 그때쯤 우린 삶이 영원함을 깨달을 겁니다 우주 저편에 대해서도 알게 되겠지만 때는 너무 늦죠 그때 우린 울고, 불고 괴로워하며 업장에 의해 가고싶지 않은 곳으로 끌려가 고통과 번뇌를 겪고 나서 다시 깨어날 겁니다 깨어난후 다음 생에 수행을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모든 빚을 지불하고 무지를 씻고 자궁으로 돌아가면 다시 모두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지는건 매우 어려워요 하지만 진정한 가르침을 듣는건 더 어려워요 왜 그럴까요?

진정한 가르침을 펴는 사람은 많지않아요 이게 첫째고 둘째는 우리가 들어도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부처 되는게 어렵진 않아요 이해하시지요? 이해를 못하거나 믿을 수 없어서 그래요 세번째는 아직 듣지 않아서 이해를 못한 사람들이나 듣지 않고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념을 흔들리게 하죠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많이 있어요 깨달은 사람이나 성인이 가르치기 원하지 않거나 세상에서 진정한 가르침을 잊어버려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지만 시장에 팔지않는 귀중한 보석과 같습니다 수행자들은 이미 진리를 알거나 일부를 압니다 죽기 전에도 말입니다 거북이가 물 뿐만아니라 땅에서도 살다가 돌아갈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가지 환경을 동시에 살수있습니다 그것 이해하지요?

영적수행자에게도 똑 같은 것입니다 명상하는 동안이나 삼매에 든동안 많은 높은 세상을 여행하고 그 세상의 고요와 평화를 즐깁니다 그리고 육체로 돌아와서 이 세상에서 일을 합니다

양쪽 세상에 사는 거북이도 이와 유사합니다 수행을 원치않는 사람들은 땅이 아닌 물밖에 모르는 물고기처럼 될겁니다 그게 다릅니다 거북이가 왔다갔다하며 물속에서 수영하는걸 보고 금붕어는 놀랍니다 “너와 나는 같다 우린 물속에서 수영 중인데 왜 그런 헛소리를 하니? 거기는 땅도 집도 인간도 없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거북이는 다 봅니다

수행자들은 그와 같아요 그렇다고 말을 합니다만 세속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요 그들이 깨달은 더높은 세상을 말을 해도 우리는 믿지를 못합니다 이세상 사람들은 수행자들이 말하는 그 세상을 이해할 능력과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요컨대 깨닫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말할 수 없이 쉽지요 해탈을 행한 신념과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 깨달음을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고통받는 이세상에서 해탈하고 싶고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프면 관음법문을 수행하세요 우린 즉시 알게 될겁니다 이 방법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려고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하면 단번에 압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즉각개오 일세해탈’ 입니다 두가지 다른 세계를 매일 여행할 수 있는 거북이처럼 이번생에 해탈에 이미 참여한 선구자는 두가지 세상을 동시에 살수있어요 이해하시죠?

가끔 경전을 읽으면 집에 앉아있는 보살이 갑자기 다양한 부처의 세계를 본다거나 감옥에 갇혀 있는 왕비가 살아있는 부처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부처의 화신이 왕비에게 가서 아미타불의 세계를 잠시동안 즐기게 해주었습니다 과거 사람들에게 일어나던 그 차원이나 경험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과 이전 사람들의 지적, 영적인 이해의 수준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내 생각엔 현재 사람들이 과거 사람들 보다 더 잘,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좀더 발달되었고 문명화되었으며 가르침이 쉽게 퍼져나가고 정보가 빨리 전해지니까요 어떻게 과거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어요?

이제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방법을 말해 주겠어요 수행하고 싶으시면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론과 적용이지요 이론은 무엇입니까?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전에 제가 알려드리거나 제자가 설명할거예요 앉는 방법이나 집중하는 법 진짜와 가짜 체험을 구별하는 것들을요 일반적으로 그래요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며, 나중에 난 보이지 않게 가르칠 겁니다 그건 여기 앉아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난다는 거죠 영혼과 영혼의 전달이죠 이론은 어떻게 적용하고 어떻게 앉는지에 대한겁니다 적용은 이론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호 연관되어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플러그를 콘센트에 연결하라고 한다면 등이 켜지거나 선풍기가 돌아가서 바람을 느낄수 있지요 하지만 플러그의 연결이 전류를 창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지만 전기가 없어서 선풍기가 움직이지 않으며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요 원인은 아직까지 전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가 말했죠 “난 경전 밖에서 법을 전한다” 그런 의미에요 경전은 어떤 종교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죠 경전은 우리가 종교의 핵심을 찾는걸 도왔어요

예를 들어 사랑하는 커플이 있었어요… 우리는 물질적인 세상에 대해 말하면 모두가 빨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러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이나 부처에 대해 말하는 건 더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남자는 북쪽에 여자는 남쪽에 살았지요 그는 매일, 매주 그녀에게 편지를 썼어요 이렇게 썼죠 “내사랑 너무 그리워” 온갖 것을 적었어요 편지를 받자마자 다른 곳에 있던 아내는 극도로 행복했습니다 가끔은 편지를 가슴에 묻고 행복으로 인해 눈은 반쯤 감겨 있었어요 물론 연애편지는 그녀를 기쁘게 했지요 단어가 행복을 가져다준게 아니라 연인이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행복하게 했어요 편지는 전류인 내면의 느낌을 전하며 사랑의 연결을 전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거죠 그렇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그 문장을 쓰거나 문장을 소설에서 읽었다면 단어는 로맨틱하게 쓸줄 모르는 연인의 것보다 더 아름다웠겠지만 그리고 그의 단어가 더 좋진 않아도 그녀가 그것을 읽었을 때는 행복하거나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지 않겠어요? 그녀의 연인이 쓴 것이 아름답진 않아도 그녀는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단어가 연인에게서 온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연인이 죽었다고 가정해봐요 그 후에 그녀가 편지를 다시 읽어도 느낌은 다를겁니다 이해하시지요?

옛날에 중국에서 한 커플이 있었어요 남편은 군대에 징용되었고 아내는 집에 있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있는 동안 아내는 많이 그리워했어요 글을 쓸 수 없어서 어떻게 할 지 몰랐어요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동물 4마리를 그렸어요 중국어를 이해한다면 4마리 동물에 대해 좀 더 설명할게요 일반적으로 설명만 가능해요 각 동물들은 상징으로서 단어를 나타냅니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말과 비슷하게 보였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어요 4마리를 그려서 누군가에게 전장의 남편에게 배달해 달라고 했어요 그 그림을 본 후 남편은 눈이 행복해서 반쯤 감겼습니다 동료 군인이 그에게 손을 흔들어 물었어요 “뭐하니? 동물 4마리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런 공상에 잠길 수 있니? 낭만적이구나!” 남편은 말했어요 “넌 몰라 그녀는 편지를 쓴거야” “아무 글씨도 없는데 동물 네마리만 보이는데!” “그녀는 네가 이해못하는 그녀만의 언어로 말했어” 글자나 아름다운 단어가 감정을 유발하는게 아니라 쓴 사람에게서 온 겁니다 글쓴이의 삶의 힘에서 진심으로 전달된 것이었어요 그래서 느낄 수 있었죠 따라서 고대부터 지금까지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으면 우리는 경전이 아니라 살아있는 스승에게 배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결혼하고 싶다면 살아있는 사람과 해야 해요 1975년, 1945년, 1935년에 한때 유명했던 미인과 말고요 그들은 모두 죽었죠 얼마나 예뻤던지 상관없이 우린 그녀를 잊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또 배가 아플 땐 현재의 의사를 찾아야 해요 화타나 편작은 이들은 유명했던 중국 의사들이에요 하지만 여러분과 관계없죠 그들이 수많은 책을 썼다 해도, 그들은 우릴 치료할 수 없어요 책 자체는 인간의 병을 치유할 수 없죠 목숨을 구할 운명을 타고난 노련하고 자비로운 의사를 찾아야 해요 알겠어요 그래서 때때로 우리가 이 의사가 더 잘 고친다고 말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는 사람을 치유할 운명이고 아픈 이들과 인연이 있거든요 반면에 역시 졸업해서 학위를 가진 의사지만 그들은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그들을 죽입니다 사실이죠 어울락(베트남)에서 있는 일이죠 고마워요 그래서 유명한 의사가 있으면 “이 의사는 즉시 병을 고칠거야” 라고 사람들이 말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보길 원하죠 그래서 모두가 그를 보러와요 오래 기다려야 하고, 의사에 따라 치료비가 더 비싸거나 비싸지 않거나 해도 말이에요 하지만 환자들이 많아서 꽤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를 보기가, 그가 우리 손을 잡게 하기가 정말 어렵죠 그가 우리 손을 잡은 뒤 우린 벌써 기분이 한결 낫죠 때로 우리가 매우 아파도 이 의사를 보면 즉시 기분이 나아집니다, 그렇죠 일시적으로 좀 기분이 나아지고, 그가 약을 좀 주거나 질문을 좀 하면 기분이 훨씬 더 나아져요 왜 그렇죠? 그 의사가 내는 자장이 우리를 어느 정도 차분하게 만들어서 그래요 왜냐하면 그런 의사들은 의학에 종사할 운명이거든요 알겠어요 그들은 중생을 치료할 운명이에요 비슷하게 누구는 왕이 되고 누구는 이거나 저게 될 운명이라 말해요 맞아요 부처가 된 뒤에 우린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동시에 두가지를 할수있어요 거북이처럼요, 물 속에서도 땅에서도 살 수 있지요

예를 들어 관음법문을 수행한 뒤 의사가 부처가 됩니다 그는 부처가 되기 위해 직업을 포기할 필요없어요 둘 다 할 수 있죠 의사와 부처를 말이에요 다른 평범한 의사들은 그저 의술만 행합니다 부처의 일은 못해요, 그렇죠 예를 들어 여러분 중 몇몇은 2, 3개 다른 일들을 하지요 2,3개의 기술을 가졌으니까요 예를 들어, 예전에 승려가 아직 아니었을 때 내 전 남편은 2개의 다른 일들을 했어요 치과의사면서 외과의사였지요 알겠어요 그는 학위를 2개 받아서 두 가지 다른 일을 알았어요 다른 이들은 오직 한 가지만 공부해서, 하나만 알지요 아주 평범한 일이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우리처럼 생겼어요 하지만 우리보다 좀 다르죠 더 많은 재주와 지혜를 가졌으니까요 알겠어요 비입문자들은 때로 수행자들 보다 더 좋아보이지만 세상일에만 더 좋은거지 천국의 일에는 안 그렇죠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부처는 인연있는 자들만 돕는다” 2부를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성공의 모델”에서는 링컨이 방송됩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에 채널을 고정하세요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해 주셔서 즐거웠습니다 내일도 “부처는 인연있는 자들만 돕는다” 3부를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제 3차 세계 회의” 1부가 “예술과 영성”에서 방송됩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에 채널을 고정하십시오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방송될 “부처는 인연있는 자들만 돕는다”의 결말을 기대해 주십시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제 3 차 세계종교회의2부가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의 “예술과 영성”에서 방송되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

지금까지 1991년 2월 28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하신 “부처는 인연있는 자들만 돕는다”의 결말을 보셨습니다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기쁩니다 내일 지혜의 말씀은 칭하이 무상사의 강연 “인생의 목적은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다” 입니다 곧 “영화속으로”가 방송됩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뒤 내가 오늘 말했던 것이 매우 뜻깊고, 지금보다 더 의미심장하단 걸 알 거예요 때로 여러분이 직장에서 여기 오느라 바빠서 식사도 못하고, 배가 고파서 내가 말할 때 샌드위치나 밥이 생각나서 잘 들을수 없어요 혹은 아직 법문을 수행하지 않아서 내가 한 말을 이해하기가 더 힘들죠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한 뒤 내가 아무 말 안 해도 여러분은 이해합니다

새 입문자들은 대개 많은 질문을 합니다 108개에서 1001까지 질문이 끝이 없죠 하지만 좀 수행한 뒤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날 보며 미소짓죠 말할 것도 없고요 그 때가 우리 영혼이 평온하고 깨달아 더 이상 욕망도 없고 거기 뭔가가 있단걸 압니다 이번 생에 확실히 해탈할 걸 알지요 때로는 아는 것만 아니라 그걸 보기도 합니다 명상 중에 의식 속에서 확실히 그걸 봅니다

그럼 왜 내 제자들이 날 따르길 원하는지 알겠죠 그들은 나를 정말 사랑해요 사람들은 그들이 눈이 멀었다 말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반대로 매우 깨어있죠 알겠어요 그들이 깨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들이 눈이 멀었다면 그들은 돈을 벌고, 비싼 차를 사고, 미인을 따라다니고, 도박하고, 향락과 세상의 온갖 재미를 즐기겠지요 나와 함께 하는 건 힘들죠 채식을 해야 하고 바닥에서 자야 하고 여러 장소들을 다닙니다 매우 힘들죠 온갖 기구들을 날라야 하고 자비를 써야 하고 불규칙적으로 식사해야 해요 때로는 음식이 좋지만 때로는 좋지 않지요 날씨는 여기는 춥고 저기는 더워요 때론 육신이 너무 지칩니다 눈이 멀어서 날 따르는 게 아니고, 깨어있어서 그렇죠 깨어난 뒤, 그들은 홍법보다 더 중요한게 없단 걸 깨닫죠 중생을 구하고, 그들이 깨닫도록 돕고 영혼이 매일 더 편하도록 도우며 또한 미래를 위해 도덕적 가치들을 찾기 위해서지요

어제 공항에 날 보러 제자들이 왔어요 우린 내가 머물기로 한 곳에 갔지요 그 중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20대로 보이는 남자 제자가 한 명 있었죠 다른 장소로 옮기려고 준비하는데, 그 젊은 사람이 크게 소리내며 울었어요 난 “왜 우나요?” 물어봤죠 그가 “건강 하세요 스승님!” 라고 하길래 내가 말했어요 “우리와 같이 왜 안 가죠?” 그는 갈 수 없다고 말했어요 난 말했죠 “내일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그렇게 울지 마요!” 그는 내일 올 수 없을 거라고 말했어요 난 물었죠, “왜 올 수 없죠? 일이 바빠요?” 그는 그렇다고 일이 바쁠 거라고 말했어요 난 말했죠, “낮에 일로 바쁘면 밤에 날 보러 올 수 있어요 밤에 바쁘다면 낮에 날 보러 올 수 있지요 왜 울어요?” 그가 말했어요 “밤낮으로 일하느라 바빠 못 갈 거예요” 난 물었어요, “왜죠?” 그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싶은데 그가 가면, 그의 가족들은 갈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그들은 가게가 있는데 모두가 가버리면, 가게를 닫아야했죠 가게를 닫으면, 돈이 충분하지 않을 거고요 뭐 그런 거였어요 난 감동했죠 그에게 내 차로 나와 함께 1, 2시간 같이 가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말했어요 그는 말하길 앞으로 며칠동안 내가 떠나는 날에도 날 보러 올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운 거였죠 난 말했어요 “그 집에 가서 잠시 머뭅시다, 거기서 나와 저녁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케익도 같이 먹어요 그럼 집에 가도 그렇게 속상하진 않을 거예요 내 차로 가요” 그가 나와 가면서, 말하길 한때 깡패였다고 했어요 깡패가 뭘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아주 나쁜 사람이었단 의미였지요 전에 그는 모든걸 가졌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 이제 그는 채식을 하고요 며칠 전 몇몇 깡패들이 그를 때렸지만, 그는 싸우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나중에 그들이 찾아와 그에게 사과했지요 그런 이야길 들어서 기뻤어요 왜죠 사회에 좋은 사람이, 좋은 아이가, 좋은 형제가 좋은 자매가, 좋은 친구가 좋은 시민이 한 사람 더 생겼잖아요 내 일에 실제 결과가 있다고 느꼈죠

천상의 왕국에 대해서 말할 필요도 없어요 만일 지금 모든 사람이 그렇게 채식을 하고, 매일 적어도 1, 2시간 명상하면 더 이상 싸움도, 전쟁도 없을 겁니다 내가 어떤 법을 여러분에게 가르치든 관계없이, 만일 모두가 채식을 하고, 계율을 지키며 명상한다면, 여러분은 이 법문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나쁩니다

누가 법문이 나쁘다고 했죠 일어나서 이유를 말해줄래요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주의에 여전히 집착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당신은 왜 고기를 먹는 것에 집착하나요 불교에선 채식도, 육식도 없으니까요

불교에선 채식과 육식이 없나요? 어떤 경전을 말하는 거죠? 당신 말에 증거가 있어야죠

금강경에 있습니다

금강경에서 뭐라고 했죠?

만일 수행하면… 맞아요 선과 악에 집착하지 말라고요 그럼 스승님, 채식이란 것도 없고 육식도 없습니다

하지만 부처는 우리가 거기에 가려면 채식해야 한다고 했죠 능엄경에서 부처는 말했지요 “불교를 따르면서 여전히 고기를 먹으면 부처가 아니라 마야를 따르는 것이니라” 이걸 읽지 않았나요? “선악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부처의 왕국에 이른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그들은 삶을 환상으로 봅니다 땅에 사는 동안, 누가 우리를 때리면, 우린 아파요 그렇죠? 누가 우리를 죽이면, 증오를 느끼고, “ 선악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어요 결국, 거기 도달할 테지만 거기 이르기 전에는, “선악에 집착하지 않는다” 할수 없죠 그렇다면, 누굴 죽이는 것도 안 죽이는 것과 같아요 난 그말을 이해하지만 당신은 아직 그 수준이 아니에요 부처의 말을 반복할 뿐이에요 반복은 사람들을 일깨우니까 아주 좋죠 하지만 그 수준을 얻으려면 수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한 교수가 이미 대학과정을 마쳤는데 물론, 그가 배운 과정에 관심을 별로 갖지 않았어요 그는 이제 교수이고, 더 이상 “2더하기 2는 4” 를 하려고 학교에 돌아와 앉지는 않아요 그는 이미 그걸 배웠지요 건너뛴 게 아니에요 이제, 누가 그에게 덧셈을 하라고 하면, 그는 더해야죠 “2더하기 2는 4이다” “2더하기 2는 5”라 할 수 없죠 하지만 그는 그 수업을 다시 받으려고 학교에 갈 필요없죠 그는 이미 그걸 통과했어요 당신은 뭐라고 말했나요? 불교는 종교 가르침이다 해탈 … 맞아요 해탈을 가르쳐서 우리가 선행을 할수있지요 맞아요!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그 수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제 뜻은 모두 단지 수단이고..

맞아요! 그래서 난 채식이 여러분을 부처로 만들 수 없다고 했죠 다른 강연에서, 채식은 여러분을 부처로 만들 수 없다고 했어요 부처가 되도록 도울 뿐이죠

예를 들면, 자, 더 이상 열반과 해탈을 말하지 말고 이세상에 대해서 말하죠 모두 채식하고, 명상하고 부처의 이름을 암송하면 더 이상 전쟁이 없고 세상에 비참함은 덜하죠, 이해해요? 난 이런 각본만이 아니라 다른 각본도 말했는데 당신은 여기에만 집착하고는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난 이미 오래 말했는데 당신은 왜 이런 것들에만 집착하지요? 난 이것들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말했어요 그건 좋아요 더 이상 논쟁하지 않아요

내 뜻은, 모두 수행하면 우리가 아직 열반을 성취하지 못해도, 땅에서 천국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은 고통스럽죠 서로 훔치고, 타인의 재물을 가져가고, 경쟁하고 서로 싸우니까요 한 사람이 상대를 한번 치면 다른 자는 두세번 되돌려주죠 그러면 증오가 나날이 쌓이고 나쁜 것이 축적되죠 그러므로 우리 세상은 고통이 가득해요 하지만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하고 명상하면 우린 더 이상 불국토로 갈 필요가 없어요 말하건 데, 그 때 우리는 더 이상 부처가 필요 없어요 우리 세상이 불국토지요 이해해요?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결론이죠 그래서 말합니다 “순수한 마음이 정토이다”

예를 들면, 모두 순수하게 살고 있으면, 불국토를 찾을 필요가 뭐가 있나요? 불국토는 이미 거기 있어요 우리가 죽을 때 우리에겐 똑같아요 하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서로 싸우거나 죽이면 죽을 때 이 세상은 항상 우리 앞에 나타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쁜 세상을 뒤쫓으면, 우리가 평소에 속한 상황으로 밀려갈 것입니다 이해해요? 예를 들면, 우리가 죽을 때 우리가 매일 하곤 했던 것 이 비전이 분명히 우리 눈앞에 나타나 거기 뛰어들어야 하죠 “선악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부처가 되었을 때 더이상 누굴 판단하지 않는 거에요 이해해요? 사람들이 나를 꾸짖으면 나를 칭찬하는 것과 같아요 누가 때려도 증오심이 없죠 예수처럼, 이미 그리스도가 되었기에 그는 말했어요 누가 왼뺨을 치면 오른 뺨을 내주어라 그것이 소위 “선악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선악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나쁜 일을 할수있다는 걸 뜻하지 않아요 그걸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 이해하고 논쟁한다면 우린 부조화를 만들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해서 나를 상기시켜서 더 설명할 수 있으니 행복해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은 그걸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선악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만물을 평등하게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든 영향 받지 않는 거에요 그 때에 우리가 지옥에 가면 지장보살처럼 더 이상 뜨겁거나 탄다고 느끼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러 갑니다 우리가 지금 지옥에 가면 우린 즉시 죽을 겁니다 이해하지요? 그냥 거기 서서 “선악에 집착 하지 않는다” 하지 마세요 우린 아직 힘이 충분하지 않아요 이미 부처가 된 사람들은 문제 없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들은 천국과 같이 느끼지요 굉장한 힘이 있으니까요 그들의 마음은 순수해서 정토를 만듭니다 안 그러면, 부처가 되어서 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거나 고기 먹는 사람을 봤나요?

석가모니부처는 그의 마지막 날까지 채식을 했어요 그러니 영적인 수행자는 육식과 채식간에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육식과 채식을 구별하지 않으면 세상은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럼 우리 돈은 또한 타인의 돈과 같고 그럼 우리는 더 이상 돈을 벌 필요가 없어요 누구의 아내가 또 우리 아내고 그러면 우린 결혼할 필요 없죠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으므로 이 세상에 맞게 행해야지요 해탈은 오직 우리 내면에 있죠 이해하지요?

예를 들어, 대통령도 그의 국법을 존중할 필요가 있어요 만약 대통령이 나쁜 일을 하면 문제가 있고 감금될 겁니다 그의 손에 사법부를 장악해서 그가 원하는 뭐든 할수있다고 말할수 없어요 그런 것과 같아요

예, 오세요 그 사람은 좋아요 그는 내 앞에서 말했어요 그는 신사입니다, 이해해요?

난 그를 무척 존경합니다 그에게 박수를 쳐주세요 저분은 타인 앞에서 직접 말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좋아요

오래전에 스승님에 대해 들었고 비디오테이프도 몇 개 봤습니다 오늘 여기서 스승님의 강연을 듣게되어 아주 행운입니다 저는 어떤 질문이 있는데 여러 출가승에게 물어봤지만 제게 정답을 주지 않았죠 석가모니부처는 말했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가 언제 그렇게 말했나요? 그 뜻은 무엇인가요?

그가 막 태어나서 일곱 걸음을 걸은 후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단지 경전에 의한 거에요 우리 자신이 진아이며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석가모니부처가 막 태어났을 때 말했다고 말씀하시면 …

그건 경전에 따른 것이죠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죠 예

그래서 그게 정확한 건지 묻고 싶어요 왜 내가 경전에 반대해야 하나요?

책에 의존하면 그럼 우린 책벌레가 됩니다 스승님은 이미 무상사니까 불교도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걸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그럼 이제 …

당신이 허락한다면 이걸 설명해주고 싶어요

예, 설명해 주세요

신사숙녀 여러분, 저는 이 질문을 많은 승려에게 했어요 어떤 고승은 이미 제게 동의했어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경전에서 언급된 것을 믿어요 그들은 그렇게 된 걸로 믿고 우린 그렇게 믿도록 둡니다

실례지만 나 그걸 믿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전 스승님을 말하지 않았고 속세의 사람들을 말했어요 경전이 그렇게 말했죠 이 문장은 석가모니부처가 말했어요

예 그건 사실이지만 그는 부처가 되었을 때 그렇게 말했고, 일곱 걸음을 걸었을 때가 아니죠 불교가 무신론적 종교인데 어떻게 태어난 후에 일곱 걸음을 걷고 각 발자국마다 연꽃이 핀걸 상상할 수 있나요? 그의 모친이 도망갔을 겁니다 태아가 자궁에서 나와서 태반이 아직 매달려있는데 어떻게 일곱 걸음을 걷고 크게 말할 수 있나요?

석가모니부처의 엄마가 칠일후 죽은게 이상하지 않죠 아마 그래서 일찍 죽었나봐요

(너무 놀랐지요) 예, 이 문장은 부처가 뭐냐에 대한 겁니다 부처가 여전히 수행할 때, 시타르타 왕자였을 때, 그는 아직 석가모니불이 아닙니다 그는 39살이 될때까지 수행한 뒤 부처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이 문장을 말했죠 그는 수년 동안 수행했지만 진리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는 목욕을 하고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맹세했어요 “진리를 얻기 전에는 절대 여길 떠나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앉아 있었죠

어떤 책에 따르면 스승님 말씀처럼 그건 오직 경전에 따른 겁니다 어떤 책엔 그가 49일 동안 앉아있었다고 하고, 누구는 오래 앉아있었다 하는데…

아무도 그렇게 할 순 없어요 얼마나 앉아있었는진 모르죠 그가 “하늘과 땅에 자신밖에 없다”라는 진리를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란 말을 “나”로 번역했어요 대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천국과 지상에 걸쳐 석가모니 부처만이 소중하다” 잘못된 거에요, 옳지 않아요 석가모니부처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어요 그건 너무 교만한 거죠 석가모니부처에겐 교만의 병이 없었어요 석가모니 불은 아주 높은 존재였어요 그가 “천상천하유아독존” 이라고 말한 건, 천국과 지상에서 자아만이 소중하며 영원히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둘째,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라고 외쳤던 것처럼 석가모니부처도 이 말을 했다는 것이죠 아르키메데스가 왕에게서 금관의 순도를 측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죠 왕관을 만든 보석상이 금에 구리를 섞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요 아르키메데스는 난처했어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미 왕관으로 주조됐는데 순금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몹시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왕의 명령은 중했죠 이천년 전의 일이에요 그건 매우 중대해서 몹시 걱정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욕조에 들어가 앉았는데, 갑자기 물이 넘쳤죠 그 순간 영감을 받아, 말했죠 “아! 알았다” 그것은 물과 순금의 밀도, 무게를 알아냈다는 뜻이죠 그는 그걸 발견했어요

석가모니의 경우도 아주 똑같았죠 그는 수년에 걸쳐 오랫동안 깨달음 없이 명상했어요 너무 지쳐 목욕을 하고서 명상했는데 그때 진리를 발견한 겁니다 그것은 진아, 영원한 진리, 불성으로서 변할 수 없는 겁니다

스승님, 그게 첫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이 있는데요 스승님은 많이 배우셨지요 처음 당신의 말씀을 듣고 아주 달변이신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 말을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답할 수 있을 거에요) 아닙니다 아주 말을 잘하던데요, 당신이 답해 주는 게 낫겠어요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모든 교리나 종교는 인류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죠 즉 그 종교나 교리의 우주관, 인생관, 정치관과 말입니다

여러분 여기서의 정치란 지난 수십 년간 보아왔던 그런 나쁜 정치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여기서 정치란 사람들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거죠 그게 정치죠, 서로 속이고 죽이며 싸우는 그런 정치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내가 말하는 정치죠 그럼 우주의 관점, 인생관, 불교의 정치관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이미 석가모니불이 한 그 말을 알고 있어요 그럼 이것도 틀림없이 알죠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오, 아닙니다 세 번째 질문은 부처나 불성에 관한 겁니다 ‘부처’는 육체를 가진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 그렇게 부처를 정의합니다 불성, 영원한 진리, 여래, 유교의 완전한자, 흰두교의 브라만, 도교의 도, 중동 이슬람교의 알라, 기독교의 하느님, 민간신앙의 신은 서로 다른 건가요? 다르다면 무엇이 다릅니까? 그게 세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은 차이점을 보나요? 저는 차이가 안 보입니다

그럼 나도 당신에게 동의해요 그렇군요! 그럼 다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그것들이 다르지 않다고 바로 말씀하시니 정말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듯이 눈과 귀를 가진 신이 아녜요 그것은 단지 힘입니다 온 우주를 둘러싸고 있죠

그래요, 힘이에요 그리고 이 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가르쳐주세요 석가모니불이 다섯 명의 수제자에게 하신 첫 강연과 그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마지막 강연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그것이 불교의 정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정수는 오직 그 두 설법에 담겨있습니다 첫 강연과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설법 말입니다

여기 모두를 일깨워주십시오

그게 스승님이 수행하시는 법문입니다

당신이 말하는게 더 낫겠어요

정말 달변이군요

말해주세요

이미 알고 있으면서 계속 질문 하는군요 다른 질문을 해주세요

스승님, 업장에 의한 질병을 고칠 수 있나요?

환생한 영혼은 매우 지혜로워 몸이 불구가 될걸 알고 있나요? 업장 병은 고칠 수 있지만 영적수행을 해서 업을 바로잡아야만 치료될 수 있어요 줄일 수만 있습니다 그리고 또 뭐라고요? 윤회한 영혼이요?

두 번째 질문은, 윤회한 영혼은 매우 지혜로워 육체가 아플 것임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때로는 알지만 그걸 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모릅니다 영혼이 항상 태아 안을 돌아다니는 건 아니니까요 태어난 후에만 확실한 거죠

스승님, 명상은 무엇입니까? 왜 명상을 해야 합니까? 얼마나 많은 명상법이 있습니까?

명상은 인도용어를 번역한 거에요 인도어로 ‘디야나’에요 앉아 있는걸 의미해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평화로움을 뜻하죠 외부에 방해받지 않는 것이 명상이며 내면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삼매입니다

고맙습니다,

자 명상은 ‘디야나’란 말이 뜻하는 거죠 조용히 앉아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디야나는 단지 “좌정”외에도 많은 뜻이 있죠 우리의 내면이 깨어있는걸 의미합니다 더 높은 경지를 안다는 거죠 그것을 디야나라고 하는데 명상을 뜻합니다 그 다음 어울락어(베트남어)로 명상이라고 번역하고 중국어로 “선” 이라 부르죠 “참선”도 같은 거에요 지금은 많은 명상법이 있죠 누구든 그나 그녀가 명상을 가르친다고 말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어떤 이는 주문을 외는 법, 가부좌, 즉 명상할 때 앉는 법이나 주문을 외는 걸 가르칩니다 또 어떤 이는 머리 위에 부처가 앉아있다는 등의 생각에 오랫동안 잠기게 합니다 이런 식이죠 상세히 설명할 순 없어요 오늘 강연이 명상수업이 아니니까요 그냥 그 의미들을 대략 설명하는 거에요 각각의 법문을 하나씩 공부하고 싶다면 그 법문을 가르치는 선생을 찾아서 세부적인 것을 얻어야 해요

예컨대, 지금 관음법문을 말하자면 난 여러분에게 앉는 법을 알려줘야 해요 의자에 앉거나 가부좌를 하고 어디에 마음을 집중하면 명상의 경지가 저절로 나타나는지 말해줍니다 그것을 좌선이라고 해요 그것이 한가지 방법이죠 다른 방법들도 있어요 예를들어, 호흡을 이용하고 숨을 세거나 숨을 명상합니다 그런 방법들도 명상법이라 부르죠 어떤 사람들은 입문을 받는 법문을 활용하죠 이해해요? 그것도 명상이라고 하지요 밀교도 있는데 거기엔 많은 명상기법들이 있죠 요가를 가르치는 이들도 있는데, 역시 명상이라 하죠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명상법을 하나 고르세요 예컨대 자신의 마음이 더 현명해지길 바란다면 명상법은 많죠 병을 치료하고 싶다면 다른 법문이 있고요 신통을 갖고 싶다면 다양한 만트라를 외우는 다른 법문이 있지요 생사의 굴레에서 해탈하고 싶다면 관음법문이 있어요 내 생각엔 관음법문이 가장 짧고 빨라요 만일 다른 법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기힘으로 볼 수 있어요 소위 명상법은 지나치게 많습니다 하지만 보통 명상은 조용히 낮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을 보며 진아를 찾고 자신의 지혜와 불성을 찾는 걸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불교를 믿지 않는 배우자를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지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우선 스스로 강한 신념을 지녀야만 합니다 우리가 뭘 믿으며, 자신의 믿음이 올바른지 알아야죠 우리 배우자들을 강요할 순 없습니다 배우자가 믿든 안 믿든 그들의 권리죠 정부도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니 뭔가 믿도록 배우자를 강요하기 위해 결혼을 이용해선 안됩니다 첫째, 불교를 믿는 방식은 수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절에 가서 불상에 절하며 향을 사르고 염불을 하는 등 많이 있죠 그럼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을 따르라고 강요하죠 때론 미신이라고도 합니다 증거가 부족하다고 느끼죠 그가 믿을 만큼 충분히 논리적이지 않다고요 그건 무신론자라는 뜻은 아니죠, 이해해요? 때로는 충분히 말하지 않고 우리 힘도 부족하며 수행도 뛰어나지 못해서 우릴 믿지 않는 겁니다 그게 첫번째 이유죠 둘째로 남편은 우리와 인연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와 결혼했을 뿐 영적 수행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못하죠 어떨 땐 다른 누군가 친구가 와서 말하면 곧바로 믿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그렇습니다 우린 시간을 둬야 합니다 인연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끔 사람들이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믿도록 유창하게 말하거나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럼 시간을 둬야죠 말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걸로 족해요! 상관없죠 우린 여전히 부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인연이 되기를 기다리면 되죠 믿지 않아도 괜찮아요 걱정할 게 전혀 없지요 세상에는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는 이는 많지 않아요 그러니 걱정할 게 없어요 결혼이란 관계만 지녔으니 결혼을 잘 돌보십시오 자기 의무를 다하세요 최선을 다해 말해도 소용없으면 그걸로 됐어요 강요하고 재촉하지 마세요 종교적인 차이로 서로 다투지도 말고요

사랑하는 스승님 병 치료에 신통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또한 밤에 명상하는데 낮에 만난 환자의 고통을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먹고 명상도 하는데 그들의 눈은 열렸지요 자기들 전생도 역시 보고요 보고 싶으면 예수나 부처 조상과 전생 같은걸 봅니다 어떤 법문이 그런가요?

그들이 보고 싶다는 건가요? 아니면 볼수 있다는 건가요? (원하면요)

보길 원한다고요

둘째로 그런 영적수행법이 있습니까? 셋째는 그런 식으로 해탈이 가능합니까?

자, 고기를 먹으면 해탈은 어려울 것 같군요 채식을 한다고 해탈하지는 않으며 육식도 또한 해탈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올바른 수행만이 해탈을 가져다 줍니다 올바른 수행을 하되 또한 채식을 해야 합니다 왜죠? 동물의 고통을 봅니다 예컨대 고기를 먹고 부처가 될수 있다고 해도 우리의 자비심과 사랑때문에 고기를 먹어선 안됩니다 이런저런 논의가 필요 없죠 동물의 고통을 보고 그들이 죽음을 원치 않는 걸 보면 살려줘야 합니다 특히나 자기를 지키기 위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면요 우릴 전혀 해치지도 않았죠 자비로운 사람이면 채식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논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해됩니까? 그게 첫번째죠 육식하며 수행을 하면 석가모니 부처는 보살의 차원이 아니라 마야의 차원에 갈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야도 과분합니다 마야는 귀신,악마가 아니죠 잔인한 그런게 아닙니다 마야는 차원이며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영적 등급을 마야라고 하죠 마야는 산스크리트어죠 마야는 “환상”일 뿐이며 아직 환상,꿈에 있는 거죠 악마가 된다는 말이 아니죠 이해됩니까? 환상을 못 빠져나가는 거죠 그런거죠, 이제 다른건요

타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행하는 건 자비심이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우리 몸도 동물처럼 영혼이 있습니다 우린 조금만 다쳐도 못 견딥니다 누군가가 우리 때문에 견뎌야 한다면 어떻게 동물을 먹겠습니까? 우리 자비심에 반대됩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수행하면 전적으로 가야만 합니다 환자를 사랑한다면 환자와 다른 고통스런 중생 전부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처는 모든 중생은 평등하며 또한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사랑한다면 동물의 고통도 그와 같다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동물이 도살되면 얼마나 고통 받고 절규하는지 봤죠? 이제껏 몰랐다면 집에 가서 한번 죽여보세요 이미 죽은 음식을 먹으니 때로는 잘 모릅니다 아니면 도살장에 보러 갈수도 있죠 그러면 집에 가서 더 이상 고기를 먹고 싶지 않겠죠 그렇게 수행하면 해탈하기 힘듭니다 왜일까요? 우리 양심에 법정이 있는데 알라야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세세생생 우리가 한 모든게 기록됩니다 우리가 육식 같은걸 하면 양심의 법정에 호출됩니다 거기 이런게 기록되죠 그럼 미래에는 자기양심의 고통을 벗어날수 없습니다 해탈을 못하는게 아니고요 여러분 이해합니까? 오직 회개하고 그런 행위를 멈춰야만 소위 해탈이란 걸 할수 있습니다 해탈이란 자기 죄의식을 벗어난다는 뜻이며 자기 심판을 벗어나는 거죠 어떤 부처가 올려주진 않죠

스승님, 부처가 설법한 경전의 첫장은 화엄이며 마지막 장은 법화경입니다 하지만 부처가 두 경전을 설한다음 이렇게 말했죠 “49년 후에는 나는 아무 말도 한적 없다” 생사윤회의 해탈에 관한 진리는 경전속에 있는게 아닙니다

(맞습니다) 수단안에 있지 않지요, 맞죠! 오늘 당신이 여기 휴스턴에 와서 ‘즉각 개오 일세해탈’이라는 전단을 붙입니다 깨닫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왜 여기 앉은 사람들에게 명상뿐만 아니라 관음법문과 채식과 같은 것을 가르치십니까? 그것은 수단과 목적에 상반됩니다 서로 모순되는 겁니다 스승님과 여기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이 명백하게 모순된단 말입니다 진리는 어떤 수단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부처가 처음으로 한 강연을 상기시켜드릴게요 다섯 스님을 위한 것이었어요

스승님, 저는 더낮은 수준의 사성제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말하기는 싫습니다 그것은 화엄경이 아닙니다 화엄경을 말하고 싶습니다

네, 좋습니다

부처는 천사에게 불사신들과 신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지금 예를 들자면 만약 방법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면 수행도 필요 없어요 그렇죠?

그런거라면 괜찮습니다 당신이 말한게 맞아요 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뭐라고 했나요?

스승님의 깨닫는 방법을 말하고 싶습니다 스승님은 즉각개오가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스승님, 깨달음을 구하러 여기온 사람들은 왜 명상이 필요하며 왜 채식을 하거나 다른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까?

즉각 개오는 완벽한 깨달음이 아닙니다 깨달은 후에도 우린 계속 깨달음에 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에 들어가서 등록을 하면 즉각 대학생이 됩니다 아무도 더 이상 고등학생 이라고 하지 않아요 대학에 들어가면 이미 고등학교는 졸업한 겁니다 이제는 대학생이지요 지금 대학생이지만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5~7년이 남았습니다 아직도 공부해야만 합니다

‘깨달음’이란 말에 대해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깨달음을 설명해주길 바라지요? 달마의 경전에서도 깨달음은 자성을 보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자성은 빛입니다 입문을 하면 우린 즉각 빛을 봅니다 자성은 빛입니다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입문을 하면 즉시 자성을 봅니다 그래서 즉각개오라고 하지요 하지만 깨닫는데 하루는 부족합니다 내일이면 잊어버리니까요 내일이 되면 다시 세상에 집착하고 잊어버릴 겁니다 항상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죽을 때 잊지 않습니다 모든 불교도의 방법은 예컨대 부처를 암송하는 법입니다 부처는 한번만 암송하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항상 암송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승려들은 항상 계율을 지켜야만 합니다 부처 아래에 있던 승려가 깨닫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부처의 발자국을 따라 진리를 편 사람은 모두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이 완벽하지 않아서 더 깨닫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안정될 때까지 완벽히 믿을 때까지 말입니다 예컨대 갓난 아이도 이미 인간입니다 하지만 먹어야 하고 성장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깨달은 후에 우리는 완벽히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세세생생 마음이 다른 개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매일 자신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안정될 겁니다 자신이 부처임을 알겁니다 그때의 지식은 지금과 달리 언어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알면서 모르는 겁니다 내가 부처이고 위대하다는 식이 아니에요 세속 사람들이 설명하는 것과 같지 않아요 내가 말한 걸 이해하려면 당신은 수행해야 할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3,4,5년 동안 논쟁만 하고 결론은 없지요 이미 너무 많이 논쟁했어요! 그들은 수천년간 침이 마르도록 논쟁해 왔고 서로 싸우고 많이 논쟁했습니다 더 이상 논쟁은 싫습니다 그래서 즉각개오를 믿지 않는 사람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아무도 강요 안합니다! 당신의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불교의 ‘깨달음’에 따르면 깨달음은 자아를 보는 겁니다

(네! 맞아요!)

그것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맞습니다!)

우린 상사의 윤회에 있어서 매 생마다 그것을 찾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처음 불교를 수행하고 이해서 깨닫는 것은 “예류(성스런 삶의 흐름에 진입한 사람)”라고 합니다 (성스러운 삶의 흐름에 진입한 사람을 말함)

스승님, 그 수준은 이미 생사의 윤회를 해탈한 것입니다 이미 28극락을 넘어섰어요 그 것을 성취한 후 더 발전하고 싶으면 보살의 맹세를 수행하고 더 나아가 그들은 부처의 이해력을 가질수 있고 아래로는 중생의 고통을 볼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며 제가 알고 있는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을 말하는 것은 원래의 성품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이 맞습니다!

당신이 맞습니다 이제 질문을 허락해 주십시오 스승님은 깨달았습니까? 깨달음은 어디 있습니까 스승님?

깨달음에 대해 그렇게 많이 말하고 왜 지금 깨달음이 어디 있는지 묻는 겁니까? 스승님이 이해한다고 말해서 묻는 겁니다

문제를 명확히하고 싶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진리는 수단에 집착 안합니다

집착한 것은 당신입니다 집착을 하니 그렇게 논쟁을 하지요 집착하지 않는다면 논쟁하지도 않을 겁니다

논쟁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실 그가 말한 건 옳아요 옳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말을 많이 할수록 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요합니다 그래서 말할수 없는 거예요 내가 항상 ‘이해하나요?’라고 묻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언어가 내면의 진리를 설명할수 없단걸 아니까요

여기 강연하러 오기 전에 여러분을 만나기 전에, 난 동굴에 재밌게 살았어요 거긴 강이 있었지요 두세명의 비구니와 있었어요 난 그림 그리고 차를 마시며 국수를 요리해서 같이 먹었죠 매일 그와 같았습니다 두세달을 그렇게 살았지요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고요? 자비가 없거나 중생을 돕기 싫어서가 아니었어요 그런 생각은 안했어요 그때는 중생을 돕는다거나 자비심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이미 부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할 일이 없었지요 하지만 이미 부처라는 것을 믿지 않는 중생이 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강요합니다 나를 밖으로 끌어냅니다 간청하고 편지를 써서 조용히 있을 수 없었어요 영원히 있을 수 없었지요 강연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지하다고 생각 하지도 않았어요 스스로 무지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이미 했어요 와서 말하기를 요청했고 난 할수있는걸 하려고 노력해요 여러분은 능력껏 이해하죠 여러분의 깨달음이 얼마나 좋든지 사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뭔가를 할 필요가 없어요 해야할 일이 없습니다 아무도 날 필요로하지 않아요 하지만 왜 사람들은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까요? 이건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내가 필요하면 도우려고 해요 예를들어 난민들이나…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그들의 업입니다 모든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통, 괴로움도 없고 좋고 나쁨도 없으며 순결과 평화도 없고 증가와 감소도 없습니다

왜 내가 도와야 하나요? 내가 이런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모릅니다 그들이 필요하면 도와야죠 난 그들을 도울 필요도 없고 그들이 필요하단 생각도 없죠 그들 자신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이해됩니까? 그 뿐입니다!

난 돕지않고 돕습니다 나는 함이없이 합니다 한다는 생각없이 하죠 우리가 중요하다거나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없이 하는 겁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누가 부탁하면 우린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 뿐이죠! 오랫동안 계속 부탁해도 안온다면 고통받겠죠 울거나 우릴 책망할겁니다 그럼 안 좋습니다! 인간으로서 우린 서로 자비심이 있어야 해요 무슨 이유로든 필요로 하면 가능한 한 도와야해요

예컨대 아이가 배가고파서 우유를 마시고 싶어합니다 난 어릴때부터 우유를 먹지 못해서 혹여 마시면 가끔 배가 아팠습니다 난 우유를 싫어했어요 우유도 동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우유를 마시길 싫어했죠 냄새가 안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달라고 하면 왜 우유를 마셔야 하냐고 말할수 있겠어요? 예를들어 왜 나처럼 쌀을 먹지 않느냐고요 불가능합니다 우유를 마시고 싶어하면 우유를 줘야 합니다 예컨대, 아이일 뿐이니까요 그러니 내가 여기서 설법하길 원한다거나 이런 말하는 걸 즐긴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말하지만 침묵과 같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날 필요로하니 말하는 거죠 그게 전부에요, 알겠어요? 내가 말하더라도 모든걸 설명할 수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해하고 누군가 좋아하면 충분하죠 양쪽이 모두 만족하니까요

부처가 되느냐 못되느냐는 내 말이 아니라 여러분 업장과 인연에 달렸지요 경전은 이미 너무나 많은데 왜 수많은 사람이 읽어도 성불하는 사람은 없을까요? 난 말할 필요가 없죠 경전이 나보다 낫습니다 때론 훨씬 감명적입니다 나보다 훨씬 효과적이죠 그러니 말은 중요치 않아요 허나 들으려는 사람은 있죠 내게 청하는 이들이 있으니 하지 않을수 없지요 여러분 이해되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누가 어울락(베트남)에서 이미 죽었고, 그의 환자는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왜 망자의 영혼은 여전히 손님을 따라 미국으로 가죠? 그 영혼이 어디든 날아가며, 영혼과 인연있는 사람만이 느낄수 있습니까?

네, 낮은 세계는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증오와 같지요 우릴 미워하는 사람들은 우릴 계속 따라다닙니다

스승님, 당신께 입문하는건 전생의 업장을 스승님이 없애준다는 뜻이죠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들이 가끔 신발, 슬리퍼, 코트 등을 같이 쓰면 업장이 전해질까 두려워해야 합니까? 감사합니다, 스승님!

두렵다면 그걸 쓰지 마세요 물을 필요 없습니다 마음이 아직 집착해 여전히 두렵다면 사용하지 마세요 마음이 안정되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면 써도 됩니다 그게 “일체유심조”입니다 마음이 안정적이면 우린 일을 보다 안정적으로 합니다 우리 마음이 아직 약하면 그에 맞게 해야 합니다 예컨대 모든 경전과 모든 계율이 그런 겁니다 모두 마음에 달렸죠 허나 마음이 아직 그 수준에 있다면 따라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소가 코뚜레를 하도록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알겠어요? 헌데 이미 코뚜레가 있으니 부수지 못하고 사람이 당기는 대로 따라야만 합니다 원래 따랐던건 아닙니다 계율은 그런거죠, 세세생생 계율이 정해진게 아니죠 뭐가 좋고 나쁜지 등이요 우리 마음이 전통이나 세뇌된 걸 극복할만큼 강하지 못하니 우리가 고통을 피하려면 계율을 따라야 합니다 소가 주인을 따르는 것처럼 그래야 코가 아프지 않죠 소가 그걸 깰수있다면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말이 있지요 “우리가 성불하게되면 선악도 분별도 없다” 하지만 문제를 피하고 제자에게 본보기가 되려면 여전히 세상을 따라야죠

스승님, 부디 염주를 설명해주시겠어요? 18염주,36염주,108염주는 왜 있는 겁니까?

얼마나 많은 염주알이 있든 상관없어요 과거에는 18나한이나 36승 또는 36계가 있었는데 각각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앉아서 이런것만 연구하면 너무 지루하죠 생사해탈에 관해 배우세요 그런것만 계속 보태면 씻는데 오래 걸리겠지요 아직 거기 집착 안했으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 거기 앉아 셀 필요없어요 불국토에 가려고 하면 이런 건 셀 필요없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더라도 생사해탈엔 도움이 안되죠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 자기 진아를 본다는 뜻이니 그럼 해탈합니다 18이나 28 등 많은 염주가 있는지 상관없습니다 우리 영혼과 아무 상관없죠

스승님, 무아가 뭔가요? 부처가 자신을 종교의 우두머리인 무상사라고 칭했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스스로가 아니라 그러했죠 부처는 자신이 부처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불한 사람들은 에고를 사용하지 않고도 압니다 그들이 거만한 게 아니죠 우리가 그들을 존경하도록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진실을 말하는 거죠 예컨대 당신이 의사가 된 후 난 어제 의사 시험을 통과했어라고 말하는 거죠 에고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죠 에고인지 아닌지는 사람을 보면 바로 압니다 때로 그 사람이 성불했다는 말도 없었고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린 오만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죠 에고 냄새는 매우 강력해요 때로 어떤 사람들이 말해요 “난 이 법문으로 수행했고 자유롭고 해탈했어” 우리 제자들은 그리 말해요 예를 들면요 하지만 오만한 냄새는 없죠 우린 말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부처는 자신을 무상사라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이 그리 부른 거예요 하지만 부처도 자신이 부처라고 말했어요 가는 곳마다 자신을 부처라고 불렀습니다 달리 뭐라 부르겠어요? 그의 아버지가 그를 아들로 부르자 “저를 아들이 아닌 부처라고 불러주세요 이미 부처이니까요” 라고 말했죠 그게 오만한 건가요? 사람에 따라서에요 어떤 사람은 겸손한 척해도 매우 거만하지요 어떤 이는 자연스레 말하죠 예컨대 그들이 부자면 “네 난 부자죠”라고 하죠 그들은 말하죠 “난 은행에 백만달러가 있어요” 물으면 진실을 말합니다 “난 백만달러가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일반적인 방식이죠 소유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들은 부유함에 익숙해요 부유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들에게는 부유함이 별게 아니지요 부처가 된 사람은 성불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묻는 사람에게 그저 진실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것에 붙어있거나 집착한다는 게 아닙니다 우린 진실을 말하죠 예컨대 당신이 의사라면 항상 자랑스럽게 거기에 앉아 있나요? ‘난 의사야, 난 의사야’ 하면서요 그렇지 않죠 누군가 물으면 그들에게 말해주죠 오래 전에 의사시험에 통과했어요 익숙해져서 아무 느낌이 없지요 그처럼 오래 성불한 사람은 아무 느낌이 없어요 성불한 후에 그들은 자신이 성불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처라고 생각하지 않죠 위대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게 아니죠! 여러분 생각과는 다릅니다! 성불할 때까지 기다리면 알게 될겁니다 우리 생각과 달라요 성불하지 않았을 때엔 성불하는 건 이러저러하다 생각하지만 다 틀렸어요!

스승님, 때론 삶이나 정치나 사업 등의 직업에서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가 죽으면 그 대가를 받게 될까요?

지장경을 읽어보면 곧바로 알게 됩니다 지장경은 어떤 죄를짓든 그 대가를 치를거라고 하죠 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승님, 질문이 많은데요 우선, 입문이란 뭔가요? 많은 이가 이에 대해 얘기 하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공기로 전달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요?

이를 알려면 입문을 해야 합니다 여기 앉아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긴 힘들지요 입문한다는 것은 불성을 얻은 사람의 내면의 부처가 자신이 불성을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이에게 내면에 부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영혼의 높은 수준, 높은 경지에서 말하는 거죠 말이 없이 말하나 둘 다 이해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해력이 커지면 그 사람은 이렇게 느끼죠 ‘나는 전과 같지 않다 난 세속의 몸이 아니다 난 죄인이 아니다 나의 본성은 지고하다 난 부처이며,불성이 있다’ 그게 바로 입문이죠 만일 언어로 설명하려면 잘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요 “교외별전 불립문자” 그리고 선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고 하지요 물질적 수단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증명할수 있다면 너무 쉽겠죠 그냥 와서 딱 보여주면 순식간에 알게 되며 모든 것이 끝나겠지요 “오! 칭하이씨가 부처였군 이 법문은 대단한데” 아주 쉬울 겁니다 부처가 비난받을 필요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필요도 없었겠지요 고맙군요!

스승님, 우리가 채식하고 동물, 야생 짐승을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그들이 넘쳐나서 인간에게 해를 줄텐데 그럼 인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야수들을 죽여야 할까요? 그러면 살생이 될 텐데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자비심에 감사하군요 자비심이 아주 대단해요! 우리가 죽이지 않아도 그 수가 과잉되지 않는 동물들이 있어요 자연의 법은 스스로 보존해요 예를 들어 소나 돼지는 야수가 아니며, 당신은 매일 호랑이 고기를 먹지 않는데 왜 야수를 죽여야 한다고 얘기하는 겁니까? 당신은 닭, 돼지, 개, 소를 먹죠 온순한 동물들을요 그런데 야수에대해물으니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요

스승님, 전 늙었지만 이미 채식을 하고 있는데 입문할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채식을 해왔죠?

(네!) 고령에 채식을 해야 하면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죠 그러나 오랫동안 채식을 했다면 괜찮습니다

스승님, 채식인인데, 양파나 마늘을 먹어도 될까요? 그리고 달걀을 먹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양파와 마늘을 먹고 싶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냄새가 날 거에요 다른 이들이 견딜수 없겠죠 소위 강직한 불교도들은 당신을 비웃으며 말할 겁니다 “왜 양파와 마늘을 먹지?” 그들에게 고기 먹는 건 괜찮아도 당신이 마늘과 양파를 먹으면 놀릴겁니다 능엄경에 이를 먹지 말라 했다고 말하겠죠 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린 다른 이에게 맞춰야 해요 그 뿐이죠 내 생각엔 양파, 마늘을 먹어도 문제없어요 누굴 죽이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비웃거나 당신이 계율을 어겼다고 하는게 두렵다면 양파나 마늘을 먹지말라는 계율을 따라야 합니다 달걀은 채소가 아니니 채소를 먹는다고 할수없죠 달걀은 동물이 될 수 있어요 때로 신기술에 의해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내면엔 동물의 절반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절반의 생명의 있죠 이미 음이나 양이 있어요 또 동물한테서 온 거죠 그 동물은 벌레, 귀뚜라미, 곤충을 먹어요 그런 곤충, 벌레에서 달걀이 만들어진 겁니다 그러니 달걀을 먹으면 깨끗하지 않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 누가 당신에게 달걀을 먹으라고 권하면 당신은 토할 겁니다 냄새가 아주 지독하지요 참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은 고기를 먹는 거나 채소를 먹는 거나 같아 보이지만 한동안 채식을 한 후에 보면 얼마나 다른지 알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해보지도 않고 말만 한다면 이해할 수 없을 거에요

내가 파나마에 갔을 때,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이년 동안 채식을 했죠 이년 밖에 안됐습니다 그리고 이젠 나를 따라 수행합니다 그는 내가 파나마에 입문해주러 갔을 때 갓 입문했습니다 하루는 스승과 제자 몇몇이, 소위 말하는 스승, 제자 말이에요 사실 난 여러분을 친구로 생각해요 세상 말로 사제지간이라 말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스승과 제자들이 어딜 갔는데 그곳은 한 제자의 집이었어요 강과 바다가 있었고 난 이를 좋아했어요 난 강에서 멱감길 좋아하며 숲과 시원한 장소, 자연을 좋아하죠 그래서 강둑에 천막을 치고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셨어요 그리고 우린 양계장을 지나가게 됐어요 난 전화를 끊고 싶었죠 닭 배설물 냄새를 견딜 수 없었어요 토할 것 같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우린 좀 민감하잖아요 냄새를 견딜 수 없었죠 속이 메스꺼웠어요 “차를 좀 멀리 대라”고 했죠 그 소년은 단지 이년 동안 채식했는데도 말했어요 “전에 여기 많이 왔었는데 이 역한 냄새를 몰랐어요 오늘은 저도 메스껍네요 이젠 육식과 채식의 차이를 알겠어요 전에 육식할 땐 이 곳에 와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오늘은 저도 속이 메스꺼워요”

그건 차이점 중의 하나에 불과해요 우리의 감각은 좀 더 민감해지죠 느낌이 더 민감해 집니다 전보다 더많은 것을 압니다 당신이 해보지 않기 때문에 나를 비판하는 겁니다 왜 채식과 육식을 구별하냐면서요 당신은 내가 이런 저런 것에 집착한다고 하죠 아니에요! 채식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면 육식하는 것에는 왜 집착합니까? 그러니 고기를 포기하세요 시도해보고 어떤지 보세요 당신은 시도도 안하고 물속의 물고기처럼 거북이와 말만합니다 거북이가 어떻게 증명합니까 땅에 올라가 보면 알 겁니다

전 자유 천주교회의 여자 사제입니다 사랑과 빛, 지혜로 이 도시를 축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사랑과 축복이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에 함께하길 빕니다 여사제 올림

감사합니다 좋네요 아주 좋군요 일어서서 보여 주세요 당신도 빛의 대표자입니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해요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스승님, 왜 10년에서 20년 동안 수행한 사람들이 절을 떠나 채식도 하지 않고 성적인 만족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할까요

행복을 찾으려 한다고요? 그건 그들 자유죠 왜냐고 물을 필요없어요 예를 들면 20년간 당신이 군인이었지만, 은퇴해야하죠 당신은 더 이상 군인이고 싶지 않아서 경찰이나 판매원이 되려고 떠납니다 문제 없어요 누구나 선택의 자유가 있죠 때론 그들이 절에서 수행할 때 명확한 지침이 없어요 그들을 가르칠 높은 등급의 승려도 없고요 그럼 경전을 읽을 때 혼란스럽죠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뒤 그들은 채식하는 사람들조차 여전히 서로 논쟁하고 서로 싸우고 욕하는 걸 봅니다 그럼 그들은 질리죠 그들은 채식을 해도 이득이 없고, 영적 수행을 해도 이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절에서 수행하는 이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아니면 부처의 가르침을 올바로 따르지 않고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그 사람 자신이 수행을 제대로 안하고 지쳐버렸겠죠 아니면 그들이 출가할 인연이 몇 년 밖에 안되서 다른 걸 하러 떠나야하죠 모두가 다른 인연을 갖죠 강의 다른 부분들처럼요 어딘가는 직선이고, 굽어있고 어떤곳은 크고, 급류이며 어떤곳은 물이 천천히 흐르죠 그걸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에 신경쓰지 않죠 자신이 수행을 잘하는지 물어야 하며, 그게 중요해요 남들이 올라가든 떨어지든 그건 그들 문제예요 세상엔 참으로 많은 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들 모두를 신경쓸 수 있겠어요

스승님, 두번째 질문입니다 그의 영적 인연이 끝나서 그런 건가요, 전생에 그가 그 이성에게 빚을 져서 그런 건가요? 그럼 그 사람이 결혼하기 위해 그를 찾나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난 점쟁이가 아니에요 누가 누구에게 빚졌는지 몰라요 일반적으로 그런 거죠 이미 그걸 설명했어요

스승님, 질문이 두가지에요 삼매에 들고 명상 중 다른 경지를 보는 게, 영혼이 유체이탈을 체험한 건가요

삼매에 들고 다른 경지를 보는 데에는 다른 경우들이 있지요 때론 가짜 경지이고 때론 진짜입니다 높은 수준의 삼매가 있고 낮은 수준의 삼매가 있죠 이건 당신의 스승에게 지침을 물어봐야 해요 그렇게 일반적으로 물으면 답하기 어렵습니다 당신 스승에게 당신의 특별한 체험을 말해야하죠 그럼 스승이 진짜 삼매와 가짜 삼매, 진짜 경지와 가짜 경지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말해줄거예요

스승님, 두번째 질문입니다 지금 전 채식을 할수없는데 명상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명상하는지 또 명상시간을 알려주십시오

이건 아까 알려줬죠, 맞죠 괜찮아요 채식을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한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세요 지고의 존재, 신 혹은 자비로운 최상의 부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 뒤, 우리가 명상할 때 우리의 지혜안에 집중하죠 그걸로 지혜안을 사용해 앞을 똑바로 보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 그냥 계속 부처의 이름을 외세요 “나무아미타불”을 외거나 예수의 이름을 외우세요 이걸 명상이라 할 수 있죠 무엇을 보든지, 흥분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영적 삶이 진보가 있는 걸 보게 될 겁니다 당신의 지혜안이 열리면 확실히 볼 수 있지요 매일 30분동안 그렇게 명상하면 이미 좋습니다 부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는 걸 기억하세요 좋건 나쁘건 다른 경지를 볼 때 말이에요 그 경지에 집착하지 마세요 유령이나 악마를 만나면 두려워하지 마세요 만일 부처를 보면 영적인 질문을 하세요 하지만 고기를 계속 먹으면 부처를 만나기 어려워요 노력하면서 스스로 보세요 아마 운이 좋으면 복권에 당첨될 거예요

스승님, 전 이미 채식을 하는데 나중에 입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들과 일로 바빠서, 매일 두세시간 명상할 수 없습니다 절 받아주실 수 있으신지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좋아요! 시간을 더 날 때까지 해보세요, 그럼 더 명상할 수 있죠 없는 것보단 조금이 낫죠 당신이 그걸 원하니까 내가 거절할 수 없어요 영적 수행을 하고 명상을 더 하면, 당신에게 좋지요 내가 그걸 강요해서가 아니죠 예를 들어, 대학에 등록하고는 여러분은 말합니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지만 출석하지 않거나 한달에 한번 출석해” 그럼 거기에 출석은 하지만 이익은 많지 않죠 그게 다죠 내가 엄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뭘 할 땐 그걸 올바로 해야 해요 예를 들어, 배가 부르려면 하루에 2, 3번 먹어야해요 불교의 승려들처럼 하루에 한번만 먹을수 있나요? 아니면 하루에 반 끼는요 영적 음식은 육신의 음식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수행할 시간을 찾아야 해요 누구도 시간을 주지 않아요 이 세상은 우리의 시간을 뺏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해요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해요 우리 자신을 해탈할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부처가 말한 겁니다 “스스로 불을 밝혀 자신의 길을 비추라”고요 하여간 우린 다른 이들에게 의지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말을 좀 덜 하고 신문을 좀 덜 보고 TV를 덜 보고 잡담을 덜 하면 어떤 경우든 시간을 좀더 절약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수행한다면 언제라도 수행하세요 그냥 1월, 7월, 10월에만 수행하고, 다른 달엔 수행을 안 하면, 그게 뭡니까 난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걸 합니다 매일 더많은 사람이 요구하죠 난 이 나라와 이 세상의 시민의 의무를 다해야 해요 왜냐하면 부처도 나가서 설법해야 했으니까요 그가 49년 동안 아무 말 안 했다고 하지만 말이에요 그는 수천 개의 경전을 설했어요 아무 말 안 했다는 건 부처가 생각하기에 아무 말도 안했다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의 경우 부처가 설법했던 걸 여전히 보죠, 알겠어요 그는 여기저기 다니며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어요 그가 말을 안한 게 아니죠 “아무 말 안 한 것”은 부처의 경지에서 볼 때 아무 말도 안했다는 거에요 우린 그걸 이해할 수 없죠

스승님, 당신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떻게 당신처럼 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나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감사합니다

곧 턱수염이 자랄 텐데요 난 그리 젊지 않아요 내가 여자라서 턱수염이 없는 겁니다 내 나이를 물을필요 없어요 이미 수 천 살이니까요 셀 수도 없을 거예요 난 나이가 없어요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우리가 건강하든 아프든 몇 십 년 뒤에 모두 무덤에 갈 거예요, 알겠어요 신이 아프게 하면, 우린 아파요 신이 우릴 건강하게 하면 우린 건강하고요 인간으로 우린 적당히 먹고 충분히 자고, 올바로 명상하고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일을 하고,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건강한지 아닌지에 대해선 신이 그걸 정할 겁니다 우린 그저 최선을 다하죠

스승님 이 두 구절을 설명해 주세요 왜 부처에게 세번만 절해야 합니까? 왜 향은 세개만 피워야 하나요? 감사합니다 무상사님!

나는 모릅니다 절에 가서 스님에게 물어 보세요,네? 이런 걸 가르치지 않아요 난 어디에 절하라고 하지 않아요 오직 명상하고 자신의 불성에 절하고 그걸 찿으라고 하지요 그때는 향을 세개나 네개, 다섯개도 피울수 있지요 아직 자신의 불성을 찾지 못했다면 세개든 삼백개든 소용 없습니다

스승님,사체를 묻어야 하나요,화장해야 하나요? 망자에게 영향이 있나요? 화장이 망자에게 좋다면 화장후 재를 절에 모셔야 하는지요, 아니면 재를 강물에 버려야 하는지요, 영혼이 어떤곳도 집착않고 해탈하게요?감사합니다!

땅에 묻든 화장하든 당신이 갖고 있는 땅에 달렸지요 땅이 있다면 싸니까 묻을 수 있겠지요 땅이 모자라고,가난하다면 묘지가 너무 비싸니까 화장해야겠지요 화장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지요 그러면 귀신이 몸에 못 들어가지요 화장 후, 재를 절에 모시고 싶다면 가져 가세요 절에서 수수료를 적게 받고 비싸지 않다면 절에 모시세요 돈도 충분치 않은데 절에 모시고 싶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강물에 버려야지요 당신의 경제 사정에 달렸죠 때로는 절에 모시는 게 돈이 많이 듭니다 비싸지 않다면 절에 모실 수 있지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재를 절에 모신다면 자리가 없어서 스님들이 어디서 살지요?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원래 절이란 부처에게 기도하는 곳이지요 승려들이 살며 공부하고 명상하는 곳입니다 절은 사체를 쌓아두는 곳이 아니지요 아니면,영안실이라고 했을 겁니다 됐어요,전통대로 하고 좋을 대로 하세요 하지만 이런 것은, 생사 윤회를 생각한다면 도움이 안됩니다 예를 들어,이렇게 얘기하면,화를 내겠죠 그래서 원하는 대로, 좋을대로 하고,의무를 다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세요! 절에서 재를 받아준다면 가져가세요, 당신만 좋다면 원하는대로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해탈에 관해서라면 재를 절에 모시거나 밖에 모셨기 때문에 영혼이, 육신이 재로 변한걸 보고 그걸 따르진 않습니다 영혼은 갈길을 갑니다 인연있는 곳으로 가지요 어떤 곳에 집착했다면 그곳으로 갑니다 반드시 사원에 머물러 경전을 듣는게 아닙니다 그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절에 머물러 경전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걸 원하지 않을수도 있죠 우리 마음대로 못해요 강제로 절에 머물게 해서 재를 쫓게 할 수 없어요 혼은 돌아 다닙니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돌아 다닙니다 죄를 지었다면 지옥에 가겠지요 공덕이 있다면 천국에 갈 겁니다 그 중간이라면 다시 환생하겠지요 그래서 어디에 모시든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이 죽은 후, 모든 혼들이 재를 따르진 않지요 그들의 업에 달렸어요 무엇을 원하든 좋습니다

저는 천주교인 입니다 매주 미사를 가서 축성된 성주를 마십니다 입문후에도 계속 성주를 마실 수 있는지요?

네,물론이죠!맛이 좋지요?

조금만 마시지요,

네?

진짜 알코올인가요?

포도로 만든 알코올이요?

전에 예수는 알코올을 마시라고 하지 않았어요 물 즉 포도 쥬스를 주었지요

네,포도 쥬스입니다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지요 아직 술이 되지 않았어요 쥬스와 같았지요 네?

정말 술이 아니지요? 전에는 포도주가 그랬지요 쥬스일 뿐이었지요 오래 두면,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어요 후에 포도주라고 불렀지요 그래서 혼동하게 됐지요 나를 따른다면,술은 한방울도 마실수 없어요 아직도 포도주에 집착하고 있다면 입문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 소량의 포도주를 포기한다면 입문할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주를 믿지 않지만 부처의 감로수와 천상에서 내려온 신의 성수는 믿습니다 하지만 성수와 감로수는 여기서 마시는게 아니죠 마시고 싶다면 물이 있는 곳에 가야합니다 그곳은 우리의 물처럼 찾을수 있는곳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보통 물만 마실 수 있지요 이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죠 감로수나 성수를 마시고 싶다면 우리의 영혼을 높이 끌어 올려야 해요 오직 천상에서만 감로수를 마실수 있지요 진짜 성수를 마십니다 안됐다면 미안합니다 그외 질문 있나요?

스승님 전 나이가 많아서 채식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입문할 수 있나요 진심으로 입문하기를 바라니까요

채식을 해 왔나요?

(아닙니다)

채식을 하지 않았나요?

(네)

하지만 나이가 몇살이죠?

여기 기록이 없어요, 스승님 밖에 나가서 안내처에 문의 하세요 좋아요 입문은 내일이죠? 내일 다시 오도록 해보세요

스승님, 지난 30년간 두달 반 동안 채식을 하겠다고 약속했지요 너무 아파서 그랬지요 지금까지, 채식을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조언을 주세요,제 빚을 갚고 짐을 벗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스승님!

채식을 한 후에는 병이 났나요?

아닙니다

스승님, 지난 30년간 두달 반 동안 채식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하지 않았나요?

(아직도요)

그리고 지금 아파요? 지금껏 채식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채식을 두달 반동안 하겠다고 맹세했어요 왜냐하면 제 남동생이 아픈걸 봐서요 당신 동생이 아픈데 채식을 하지 않았군요 30년이 됐는데 빚을 갚지 못했군요 이자가 많겠네요 아마도 2년 반동안 채식을 해야 될것 같군요 와! 당장 채식을 해야해요 아니면 20년이 될겁니다! 이자가 매일 붙거든요 두 달 반으로는 갚을 수 없지요 네!알겠어요! 영적 수행이 쉽지 않지요 당신은 채식도 못합니다 하지만 배가 고프면 뭘 먹든 맛이 좋지요 그러니 걱정마세요 단지 습관입니다 예를 들어,미국 사람들은 검을 씹거나 코카 콜라를 마시는 버릇이 있지요? 어울락인은(베트남인) 그런 버릇이 없었지요 그래서 어울락인은 검이나 콜라를 아쉬워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곳에 온 후로 습관이 됐어요,검을 씹고 그런 음료를 마십니다 그런 것들이 없을 때는 아쉬워 하지요 우리가 태어날 때는 술 담배를 안했지만, 나중에 배워서 하게 됩니다 술,담배가 떨어지면 생각나죠! 모두 버릇입니다 바꿀 수 있어요

전에 난민들을 위해 일할때 우스운 얘기들을 했지요 난민들이 배에 있었을 때 어떻게 관음 보살에게 기도했는지 아세요? “제발 제 삼국에 가게 해 주세요,그러면 일년동안 채식을 하겠습니다!” 반쯤오면, 이렇게 말하죠 “그렇게 못 하겠어요 제발 반년만 채식을 하게 해 주십시오” 목적지에 거의 다가오자 반년으로 줄어 버렸어요 그후 목적지에 도착하자 ”자!이렇게 할게요 일주일에 이삼일이나 한달에 이삼일씩 채식해서 날짜를 더하겠어요” 알겠어요? 분할해서 갚듯이요 언제 갚게 될지도 모릅니다 참 성가십니다! 그럴 바엔 채식해서 갚아버리세요 오랫동안 끌면 이자가 쌓입니다 무척 많아질 겁니다 할 수 없을 줄 알면서 왜 약속을 합니까? 신사는 약속을 지켜야 해요,맞지요? 뭔가 약속을 했다면 지켜야 합니다

스승님,채식을 하고 입문을 받은 후 심하게 아플때 의사가 치료하게 하는지 아니면 자연히 낫는 건지요? 감사합니다,스승님!

저런,맙소사! 모두 자연히 낫는다면 의사가 무슨 소용이지요? 병은 몸에 생기는 겁니다 차와 같아요 때로 여기 저기 부서지지요 바퀴가 터지기도 하고요 운전자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수행을 잘 하고 채식을 한다면 엉뚱한 병이 줄겠지요,알겠어요? 줄어 들겠지만 완전히 없어지거나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않지요 부처도 아팠는데 우리가 왜 아니겠어요? 아프면 의사한테 가라고 할 말 밖에 없어요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해요 그게 정상입니다! 예컨대,바퀴가 터졌다면 어떻게 하지요?바퀴를 바꾸거나 고쳐야 겠지요 기름이 떨어졌다면 기름을 넣어야 합니다 그냥 앉아서 관음 법문을 하면서 기름을 채울 수는 없지요 예컨대 그럴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사람과 섞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지요

스승님,관음 법문을 수행하면 정신적으로 이상해 집니까?

(아니요!) 아무도 이상해지지 않아요 지금까지 강연을 시작한 이래로 이상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미 이상했던 사람들만 그렇지요,알겠어요? 그들도 입문을 받으며 증상이 가벼우면 좋아집니다 너무 심하면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관음 법문을 받은 정상인들은 아무도 이상해 지지 않습니다

스승님,저는 살생하지 않지만 직업상 위생 문제로 바퀴벌레를 죽이라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간접 살생이 되는지요?

위생 문제는 돌봐야 합니다 죄가 없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지요 안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업을 짓지요 수행을 하면 줄어듭니다 업이 줄거나 바퀴가 조금 해탈하게 됩니다 우리 수행 덕분에 그들의 업이 줄지요 해탈해서 나은 곳에 갑니다 그것도 괜찮아요 그렇다고 죄를 안짓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지요 우리가 잔인해서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거지요 언제나 사람이 동물보다 더 중요해요,알겠어요? 사람의 가치가 동물의 가치보다 높아요 동물을 죽일수 있지만 갚아야 합니다 갚기 싫으면 죽이지 마세요 동물이 크면 클수록, 업은 더커요, 그 영혼이 더작은 동물의 영혼보다 더 지적이죠 하지만 다 그런건 아니에요 여러분은 개미를 알지요? 그들은 아주 작지만 아주 똑똑해요 나라처럼 조직할 수 있지만 결코 잘못되지 않아요 그들은 우유를 얻기 위해 동물을 키우는 법을 알죠! 그들에 대해 과학잡지에서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때로 우리가 인간이니까 우리의 영혼이나 지성,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하지만 세속적인 이해에 따르면 그렇지요 우리는 약자를 억압하려고 우리 힘을 사용하지만 다소 대가를 지불해야 하죠 그들의 무게에 따라서요

스승님, 모든 종교는 좋다고 해요 모두 좋은 걸 가르치죠 질문은, 불교가 아닌 타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해탈할 수 있나요?

이미 말했어요 해탈하느냐 못하느냐는 그 종교나 종파의 지도자에게 달렸어요 그 종파가 깨달은 스승을 가지면 해탈할 겁니다 아니면, 스스로 답할수 있죠 세상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세상에는 전쟁이 더 많고 더 곤란한 시기이고 더 많은 사람이 태어나죠 아주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을 죽이지 않았죠 그들이 해탈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스스로 답할 수 있죠

두번째 질문은, 이 세상의 모든 걸 창조한 창조자 혹은 신이 있나요? 있다면, 불교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나요?

아니요, 그건 불교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죠 우리가 불경을 모두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불교에 반한다고 생각해요 부처가 때로는 이렇게 말하고 때로는 저렇게 말했으니까요 청중에 따라서 청중의 이해에 따라서요 때로 부처는 말했죠 “아! 신이 없다 그리스도가 없다, 신이 없다” 왜 신이 없다고 했을까요? 그는 질문자의 그릇된 개념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지 신을 거부한 게 아닙니다 신이 없다면 부처는 어디서 왔나요? 다른 곳에서 그는 말했죠 “난 신이 있다 없다 하지 않고 오직 모든 생명이 나오고 모든 중생이 돌아가야 하는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이해하지요? 그게 신입니다! 왜 그가 때로는 신이 없다고 말했지요? 이들 세속사람들은 신에 대해 그릇된 개념을 갖고 있으니까 그에게 계속 논쟁하러 오죠 그들은 계속 말합니다 신은 이렇고 저렇고 어떻다 그래서, 부처는 말했죠 신은 없다 그가 뜻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의 신은 없다 정말 신이 없다는 게 아니죠 여러분은 세상에 혹은 우주의 행성에 아주 많은 변화와 변이가 있는 걸 압니다 아주 많은 기적이 있지만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아요 이것을 변화시키고, 다스리고 이것을 돌보는 뭔가가 어떤 힘이 있지요 그 힘은 신이라고 불리지만 신은 어떤 사람, 어떤 형태나 어떤 개념이 아니지만 전 우주를 감싸는 어떤 힘이지요 그걸 이해할수 없지만 느낄수는 있어요 우린 그걸 볼수 있지만 육안으로 보는게 아닙니다 우린 그걸 느낄수 있지만 피상적인 마음으로가 아니죠 하지만 명상중에 우리의 지고한 지혜는 지고한 신을 깨달을수 있어요 그래서 신을 찾고 이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명상하고 영적으로 수행하는 겁니다

스승님은 전에 카톨릭인데 불교를 수행하셨지요 아닙니다! 난 동시에 두 종교를 수행했어요 난 전에 말하지 않았어요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요?

아니요! 당신이 오해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카톨릭인이었고 할머니는 불교도였어요 난 어느 종교가 어느 건지 몰랐어요 모든 종교를 따랐고, 둘다 좋아서 두 종교를 가졌어요 무종교 보다 낫지요 종교가 없는 사람만이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두 기술을 가진 걸로 불리죠 저는 카톨릭이며, 부모님은 진실한 카톨릭 신자입니다

전 스승님께서 제시하시는 이런 깨달음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만일 신을 보고싶으면 이 법문을 사용하여 신과 통할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 채식을 하고싶지만 제 가족은 육식을 합니다 제가 그들을 설득하여 채식하고 깨달음을 얻는 길이 있을까요

먼저 자신을 설득하세요 먼저 채식을 하세요 그리고 가족이 따라오고 당신의 선함과 고귀함과 믿을을 확신한다면 좋은 일이죠 그렇지 않다면 그들 자신의 길을 가도록 두세요 각자의 선택이 있으며 우리 믿음으로 설득하거나 강요할수 없으니까요 먼저 당신의 선택을 믿고 나중에 사람들이 당신의 빛나는 모범을 보겠지요 따를수도, 안따를수도 있죠 예수도 모두 따른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일상은 어떠세요?

내 일과를 말하나요? 네! 어디있냐에 따라서 달라요 명상 센터에 있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출가승들과 같이 명상하거나 혼자서 명상합니다 그리고 편지나 급한 사무를 봅니다 누가 해달라고 하거나 풀어야 할 문제들 말예요 혹은 출가승들이 바라는 게 있거나 물어볼게 있는지 봅니다 그리고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을 보러 갑니다 혹은 다른 센터로 가서 명상하거나 문제를 풀어주죠 때로 함께 차도 마십니다 그 일과중에 시간이 많으면 나중에 강가로 가서 캠프를 치고 더 많이 명상하거나 함께 즐깁니다 자연스럽게 함께 배우고 그림을 그릴 겁니다 강의를 하면, 알다시피 여기서 저기로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새로온 사람들과 오래된 사람들을 돌봅니다 그게 내 삶이에요

기억나는 대로 통역할게요 첫 번째 사람, 그녀는 미국인, 카톨릭교인이죠 지금 입문하고 싶어해요 신과 대화하고 싶어하며 이 법문을 배우고 싶지만 가족모두 육식해서 걱정이죠 이제 가족들이 채식하도록 어떻게 그녀가 설득할까요?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는데 먼저 자신을 설득하라했죠 우리가 먼저 채식해야 하죠 우리가 수행하면 그들은 우리 행동을 지켜봅니다 우리를 보고 따라합니다 누구도 강요할 순 없어요 우리를 따르면 좋고 안 그러면, 그것도 좋아요 예수조차 많은 이들이 따르진 않았다고 했어요 가족이 우릴 안 믿기도 해요 그게 다에요

그리고 다음 질문은 내가 매일 뭘하는가에요 센터에 머물 때면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명상 후 편지와 서류업무를 봅니다 출가승들이나 제자들이 갖다 준 해결할 과제들을 훑어 봅니다 아니면 다른 센터의 단체명상에 갑니다 일정 사이에 시간이 좀 나면 출가승들과 함께 강가에 가서 동굴을 찾아 함께 잠시 명상하며 긴 일과를 보충합니다 또는 그림을 그려서 강연여행비나 제자들 식비, 난민들을 돕기 위해 그것들을 팔기도 합니다 좀 더 시간이 있다면, 제자들과 차를 마시고 과자를 먹으며, 그들이 모르는 걸 가르쳐주거나 경전을 설명해주죠 대개 그렇습니다 그리고 순회강연 중에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듯이, 비행기를 갈아타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바삐 다녀야 합니다 일정이 약간 불규칙하죠 밤새 앉아 있다가 아침에 약간 잠을 자야 하기도 하고 아침에 앉아있다가 밤에… 세, 네시까지 말할 때도 있죠 예를들어 코스타리카에선 제자들이 아침 세,네시까지 나와 얘기하느라 나를 보내주지 않았어요 그들은 온갖 질문을 했어요

때로 제자들과 차를 마시며 세,네시까지 이야기하곤 해요 이를 테면 말입니다 자지 않고요, 이해해요? 일정들도 다릅니다 혹은 여러 나라를 가면 시간대가 바뀌어서 때로 일정이 분명하지 않아요

스승님, 이미 두번 째 질문에 답변해주신 것 같습니다 매일 어떤 활동을 하시죠?

이미 설명했습니다 예, 그게 나의 일과에요 그걸 말하자면 지루하지만 사는 건 지루하지 않습니다 알기를 원하면 합류하세요 텐트 들고 어디든 따르세요 그럼 내가 뭘하는지 알겠죠 됐어요? 왜냐하면 나의 많은 일들은 미리 알수가 없으니까요 예를들어 난 난민촌을 찾아가거나 유엔을 찾아가거나 때로 베트남 난민들 때문에 이런저런 중요한 인사들을 만나러 가거나 하지요 이런 건 늘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내 일정이 늘 순탄한 건 아니에요 또한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가끔 바쁘죠

저희에게 특별히 추천할 건 뭔가요?

계율을 지키세요 신은 “나를 사랑하면 내 계율을 지켜라”라고 했죠 계율은 많은 걸 의미해요 십계만이 아니라 신에 대한 명상도 포함합니다 성경에서 말했으니까요 “먼저 신의 왕국을 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자 신의 왕국을 찾으려면 신을 명상해야 하며 신을 알고자 모든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십계만 지켜서는 안됩니다 첫 계명은 ‘네 마음과 영혼과 몸과 말을 다해 신을 사랑하라’지요 신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먼저 신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랑하겠어요? 자신의 아내나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전에 몰랐다면 어떻게 사랑에 빠졌겠어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사랑하기도 어렵죠 비록 그녀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녀를 모르면 사랑에 빠질 수 없습니다 신을 사랑하려면 신을 알아야죠 그러므로 먼저 신의 왕국을 구하면 다른 모든 것들, 즉 덕이나 계율이 따라올 겁니다 자, 어떻게 신을 알지요? 신은 뭘까요? 간단히 하자면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하죠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이 신과 함께 했고 말씀이 신이었다 따라서 모든 것은 말씀으로 만들어졌으며 말씀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린 그 말씀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난 관음법문을 주죠 그 “말씀”과 접촉한다면 신을 접촉하는 겁니다 말씀이 신과 함께했기 때문에 말씀은 진동을 뜻하며 내면의 보이지 않는 소리,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지요 신은 또한 물질적이며 물질적인 신은 이미 압니다 예를들어 신은 우리가 경험한 바람과 비와 태양 등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만듭니다 그것이 신의 한 측면입니다 진정한 성령은 말씀입니다 더 높은 측면은 말씀이므로 신의 물질적인 측면과 더높은 측면을 알려면 말씀과 접촉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완전한 신을 압니다 물질적 비물질적인 신을요 그것이 관음법문의 동기이며 우리가 신과 접촉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특별히 어떤 충고를 하고싶냐고 물었어요 그들에게 제안할 내 생각말이에요 신의 계율을 지키라고 했죠 성경에서 신이 말했으니까요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율을 지켜라” 계율은 많을 걸 의미하죠 단지 십계명 뿐 아니라 신을 알기 위해서 명상도 포함됩니다 성경에서 말했으니까요 “네 마음과 영혼과 육신과 말을 다하여 신을 사랑하라” 기독교 분들, 맞습니까? 우린 즉시 이해합니다 난 물었죠, 누군가를 모르면 어떻게 당신의 모든 마음과 모든 영혼과 육신과 언어로 그를 사랑할 수 있나요? 가령, 지금 당신은 아내를 아니까 사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전에, 그녀를 모를땐 사랑하지 않았어요 예컨대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아름다운 여자이지만 우린 사랑할 수 없어요 그녀를 몰라서입니다 우린 신을 알아야 해요 신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말해보죠 우리가 성경을 보면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그 말씀”,이 진동이 그 소리였으며 그 진동은 신과 함께였고 그 진동, 소리는 신이었죠 이제 신이 누구인지 알겠죠 그럼 신을 찾아서 만나야죠 신은 그 진동이며 그 힘이 온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알겠어요? 또한 성경에서 이르길 “이 소리로 창조되지 아니한 것이 없다 이소리가 신이기 때문이다” 신을 알기위해 이 소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럼 그를 사랑할 수 있죠 관음법문은 우리가 소리를 찾도록 도와줍니다 그소리는 귀로 들을수 없죠 더 나은 말이 없어서 그냥 소리라고 부릅니다 그걸 외부의 소리에 견주기 때문에 소리나 진동으로 부릅니다 진동이라고 하면 되죠 그리고 성경이 말했죠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마음과 영혼과 몸과 말을 다해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먼저 내면의 신의 왕국을 찾아라, 그리하면 모든 게 네게 더해지리라” 맞지요? “먼저 신의 왕국을 찾으면 나머지는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너희가 먼저 내면의 신의 왕국을 찾으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모든 것에는 계율과 미덕 지혜가 포함됩니다 “이 모든 게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말했듯이 그게 내 조언이죠 우린 내면의 신을 찾아야죠 우리 내면의 신의 왕국과 내면의 열반, 내면의 불성을 찾아야만 합니다 모두 같은 것이죠

스승님, 전 결핵이 심각한데 입문하고 싶습니다 입문하고 나면 채식을 해야만 하는데 제 병이 좋아질까요? 아니면 병이 완쾌되길 기다렸다 입문해야 할까요? 의사가 건강을 위해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라고 했는데 육식하란 뜻이죠

의사 말은 영양 많은 음식을 먹으란거지 고기는 아니죠 고기 말고도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많습니다 현대과학의 진보로 채식에 관한 책이 많이 있습니다 책은 육식보다 채식이 훨씬 영양이 많다고 소개합니다 당신 말은 비과학적이죠 하나만 예를 들어 말할게요 콩은 단백질이 36%인데 쇠고기는 24%, 돼지고기는 16%, 닭고기는 25%뿐이니 뭐가 영양이 많은지 알겠죠 고기를 먹고 싶기 때문이지 영양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입에서만 맛있는 거지 몸에는 아닙니다

예언은 어떻게 보세요?

예언은 미래의 일이죠 오늘은 모릅니다 내가 어떻게 미래를 알죠? 다음 순간도 모르는데 어떻게 미래를 알겠어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왜 신경써야 하지요 내가 현재를 돌봐야 하고 그럼 미래는 돌봐질 겁니다 예수는 말했죠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오늘로도 족하다” 난 그를 따라요

어떤 사람이 예언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습니다 난 다음 순간도 모르며 이순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말했어요 미래를 어찌 알겠습니까? 내가 아는 거라곤 현재를 완벽하게 돌보는 것 뿐입니다 그럼 미래도 완벽해지겠죠? 미래에 관해 왜 걱정하죠? 현재로선 돌봐야 할 일이 충분하죠 예수도 그렇게 말했었죠 예수는 “내일 일을 걱정말라 오늘로도 족하다"라고 했죠 맞지요? 그게 예수가 말했던 거죠 한두 마디 틀렸겠지만 쉼표나 마침표일 뿐이지 일반적으로 그런 뜻입니다

참 예언은 어떻게 증명하죠?

증명하든 안하든 그 일이 일어나면 알겁니다 하지만 일은 바뀝니다 예언은 물질적인 것이며 신은 물질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이니까요 신은 신이 원하는걸 하며 그의 뜻대로 됩니다 난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건 말할수 없지만 압니다, 신은 신의 뜻이 있고 우린 신의 뜻을 간섭할수 없으며 항상 신의 뜻을 예측할수 있는건 아니에요 나의 모든 경험과 고행과 신실함과 명상수행은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지점에 이르게 했어요 신만이 그가 원하는 모든것과 모든 시간을 결정합니다 예컨대 난 이걸 하고싶어도 신이 바꿔버립니다 내가 이렇게 되고 싶은데 신이 나를 저렇게 바꿉니다 내 에고를 부수고 내 자만심을 부수고 아무것도 되지않고 아무도 되지 않도록요

이 사람은 내게 예언을 어떻게 증명하는지 물었죠 예언이 일어나길 기다리면 맞는지 알거라고 말했어요 또한 아주 정확하진 않다고 했죠 예언은 물질세계의 물질적인 것만 예측할 뿐이니까요 하지만 신은 물질과 비물질 둘 다입니다 신은 원하는대로 할 테니 신의 뜻을 예측할순 없죠 하지만 우린 아니까 신의 정의와 의지를 따릅니다 예컨대, 내 경험은 이렇다고 말했어요 신과 진리를 찾기 위해 내가 온갖 수행과 탐구와 소위 금욕을 다한후 이제야 정확히 알게 된 건 내가 아는게 없다는 겁니다 내가 모른다는 뜻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에서는요 여러분 이해됩니까? 예컨대 오늘 이걸 하고싶은데 나중에 신은 저걸 하게합니다 그가 거기 서서 명령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다른 걸로 바꿔버립니다 또는 난 이렇게 되고 싶은데 그는 저렇게 만들죠, 왜죠? 내 에고와 선입견을 부수기 위한 것이며 내가 자만하고 오만하게 집착하는 모든 생각을 부수려는 겁니다 “이건 내가 해낸 거야 내 공덕 덕택에 저렇게 바뀌지”같은 거죠 그래서 이제 신은 나를 국수가락이나 마음대로 주무르는 밀가루 반죽처럼 되도록 만들었어요 이젠 뭘 말할지도 모릅니다 난 오직 신이 지고한 존재라는 것만 압니다 신이 뭘 원하든 이뤄집니다 아무도 거기 대항하거나 예견하거나 계획을 세울 수 없어요 그게 내가 아는 전부에요

스승님,제 가족은 불교도며 전 결혼했습니다 아내의 가족은 카톨릭이죠 저도 카톨릭이 되었어요 아내의 종교를 따른다는 뜻입니다 저희는 자녀가 셋인데 모두 아주 행복합니다 근데 스승님 말씀을 듣고 강연을 많이 봤습니다 테이프에서 설명하신 것은 제겐 주옥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채식을 맹세했으며 입문하길 고대했습니다 제가 채식을 하자 아내는 무척 슬퍼했고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차이 때문에 아내는 남들에게 말하길 제가 수행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날거랍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해서 아내가 화나서 떠나지않게 설득하는 방법을 부디 알려주십시오 왜냐하면 아내 생각엔 제가 관음법문을 따르고 스승님 강연을 듣는게 불교로 돌아가는거니까요 전 여전히 일하면서 가족과 아이들을 돌봅니다

그런 오해를 받는다니 나 역시 무척 슬프군요 그럼 아내를 더 사랑하세요 전에는 100% 사랑했다면 이젠 180%를 사랑해야 해요 그건 아내가 뭘 원하든지 따라야 한다는 뜻이지만 아내의 허락을 구해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를 얻도록 해보세요 그건 사상의 자유죠 법조차도 이걸 허락합니다 종교와 사상의 자유지요 아내의 허락을 구하고 말하세요 “내가 가족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 외에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달라 이 세상의 모든 시민이 누리는 거잖소”라고요 너무 억압하지 말라고 하세요 채식과 육식의 차이는 단지 식단일 뿐입니다 사랑은 변함없지요 내 가르침은 불교가 아니죠 당신이 오해한 거에요 내 가르침은 ‘도’일 뿐이죠 진정한 ‘도’일 뿐 불교나 기독교가 아니에요 채식은 기독교 신앙을 버린다는 게 아니라 진정한 기독교도가 된다는 뜻이죠 성경은 육식하고, 술 마시는 자를 가까이 말라고 합니다 근처에 머무는 것도 금했죠 자신이 술마시고 육식하는 건 고사하고요 그들은 모르니까요 우린 알려줘야 합니다 사랑과 부드러움, 친근함과 친절함을 담아 말해줘야죠 논쟁하지 마세요 하지만 아내가 모른다면 그녀에게 보여줘야 해요 아내가 모른다고 그녀를 따르면 안됩니다 삶을 낭비하게 될거에요 올바른 것만 들어야지 잘못된 것을 들어선 안됩니다 자신의 길을 정했으면 반드시 따라야 해요 가족의 행복에 관한한 유연히 대처해야죠, 아내를 만족시키고 더 사랑하세요 좋아요 만일 날 개인적으로 만나고자 하면, 잠시후 사적으로 이야기할 장소를 마련하겠어요 개인적으로 날 보고자 하면 여기 어떤 방에서 볼거에요 아니면 어딘가에서요 강연후에, 공개 질문이 끝난 후에 얘길할 거에요 항상 나와 얘기할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때로 직접 답하지 못하거나 답변이 마음에 안들어도 내게 화내지 마세요 우선 인간의 언어는 한정적이니까요 둘째, 난 관음법문에 대해 말해주려고 왔으며 그건 아주 효과적입니다 다른 경전이나 문제들이 내 책임은 아닙니다 난 책임이 없어요 석가모니불도 뭘 말했고 예수도 뭘 말했지만 그건 나와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때로 어떤게 잘못되어도 그건 경전을 쓴 사람들의 잘못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지요 둘재로 난 말로써 논쟁을 주고받지 않아요 난 논쟁을 싫어해요 그냥 실용적인걸 하고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수행하면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앉아서 논쟁을 주고받는건 아주 피곤한 일입니다 모두 관점이 다르니까요 내 관점은… 예컨대 거북이와 물고기는 관점이 다른데 논쟁을 계속하는거죠, 왜 그러죠? 거북이는 자기가 보는 걸 알지만 물고기는 알수없죠 거북이는 늘 거기 앉아서 말할순 없으니 침묵해야죠 따르고 싶으면 따르십시오 난 인연있는 사람을 위해 여기 왔어요, 이해되지요? 인연있는 사람만 따릅니다 난 그들만 도울수 있어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여기 앉아서 2년동안 절을 하더라도 그들은 말은 고사하고 듣지도 않을 겁니다 여러분 이해합니까? 그러니 내말을 들으면 좋고 듣지 못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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