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혜의 말씀은 어울락어 강연이며 보실 자막은 아랍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페르시아어 한국어입니다

미합중국 “자유의 나라, 용감한 자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자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계층에서 온 사람들이 미국을 그들의 집으로 부릅니다 미국은 그들을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물론,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은 이 꿈을 이루는 화현입니다 뉴욕의 대중교육제도만 봐도, 전 학생들이 세계 145개 국가를 대표합니다 미국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여 유래 없는 기회를 줌으로써 모든 영역에 있어서 모든 국가로부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포용해 왔습니다 성공에의 장벽이 거의 없는 진정한 “용광로”가 된 이 젊은 나라는 모든 나라가 따를 모델이 되었습니다 미국엔 수십 개의 주요 도시들이 미국 내의 문화, 유산, 경제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04년, 251의 병합지역이 최소한 십만의 인구를 가졌고 9개 도시는 인구가 백만 이상이며, 여기엔 5개의 중요한 글로벌 도시인 뉴욕,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휴스턴 필라델피아가 포함됩니다 게다가 인구 백만이 넘는 50개의 대도시 지역으로는 롱비치 달라스 보스턴 피닉스 시에틀 산디에고가 포함되죠 공식적인 언어인 영어는 사실상 미국의 언어입니다 약 82%의 인구가 집에서 영어를 말합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영어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원어민이나 비원어민들 간의 일상 상호작용에 있어서 가장 일상적인 언어입니다

미국에서 기회란 여러분의 상상과 능력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입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도 미국 출신이며 둘 다 바닥에서부터 그들의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초강국으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또한 아주 영적인 나라이며 시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합니다 물론 종교는 미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많은 유럽 이주민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종교는 여전히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주된 영향을 줍니다

시민의 숭배할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국가로서의 미국은 칭하이 무상사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그녀는 1990년대 초반 신실한 영적 구도자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부터 칭하이 무상사는 전국에서 수 많은 초청을 받아들여 영성에 대한 그녀의 지혜와 앎을 나누었습니다 수년동안,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가진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그 나라의 많은 지역에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1993년, 많은 미국 중서부 지역이 큰 비로 홍수의 피해를 입자 칭하이 무상사의 마음이 이 피해자들에게 전해져 즉시 이 지역에 구호팀을 파견하여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1994년 이들 주에 대한 그녀의 자비와 공헌을 치하하여 중서부 여섯 개 주, 일리노이, 미네소타, 미조리, 아이오와, 위스콘신, 캔사스 주지사들은 칭하이 무상사에게 세계지도자상을 수여했으며 또한 2월 22일을 “칭하이 무상사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또한 2001년 9월 11일 미국 땅에서 최악의 인간의 비극이 일어났을 때 칭하이 무상사는 즉시 미국전역 및 전 세계에서 구호팀을 소집하여 뉴욕에 있는 폭파지점으로 보냈습니다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에 칭하이 무상사께서 기부한 금액은 미화 삼십만 달러에 달합니다 기부금은 미국 적십자 버지니아 지사, 워싱턴에 있는 국제 적십자사, 국제 구세군, 펜타곤 희생자 가족을 돕는 크라이시스 링크, 그리고 많은 펜타곤 부상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버지니아 의료원에 주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칭하이 무상사의 기부금이 구세군, 미국 적십자, 소방관 기념 재단에 보내어졌습니다 칭하이 무상사의 추가 지원은 구호품 보급에 쓰여졌습니다 폭파지점에서 우리 협회 회원들은 물품, 의약 및 매일 맛있는 채식과 뜨거운 커피로 구조 대원들을 먹였습니다 너무 위험하여 그 지역을 떠날 수 없었던 구조 대원들을 위해 그 당시 유일한 이동 식단이었던 칭하이 무상사 이동 식품이 대원들에게 배달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화신인 칭하이 무상사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그녀의 사랑과 자비를 미국 전역- 버지니아 오하이오 켄터키 알라바마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텍사스 하와이 등지에 전합니다 노인과 노숙자들, 고아와 빈민들, 재난 피해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칭하이 무상사의 사랑의 수혜자들입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가는 곳마다 그녀를 만나거나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깁니다 많은 이들에게, 칭하이 무상사의 지혜의 말씀은 그들이 신의 품으로 돌아가길 갈망할 때에 아픈 영혼을 달래는 향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제 칭하이 무상사께서 1989년 12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써니베일에서 하신 “진리는 오직 하나다” 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세상이 평화로워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나무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지난 밤에 책을 읽었는데 아주 흥미있는 책이었어요 그래서 여러분과 나누려고 여기 가져왔습니다 이 책이 누구 건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다양한 종교경전을 읽었어요 이 미국 남자는 모든 주된 종교 경전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모아서 모든 주된 종교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했지요 사소한 사상이나 해석에 대해서 때로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게 해석해서 내용이 달라지게 되었지요 “언급”이라고 불리는 그 해석은 때로 특정 종교의 스승이 한 참된 말씀이 아니라 다음세대의 제자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때로 제자들은 스승만큼 좋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해석은 정확하지 않지요 그래서 경전은 길지만 주된 구절이 있는데 순수하게 부처나 다른 종교의 스승이 말한 것들입니다 예를들어 이 책에서 그는 여섯개의 종교를 비교했는데 주된 종교로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예를들어 기독교, 유교, 불교… 일본의 신토교 그리고 다른 하나는 힌두교에요 또 하나는 시크교인데 시크사람들 종교지요 어울락(베트남) 인들도 그걸 ‘시크’로 불러요 감사합니다

먼저 기독교에요 그건 “니르바나”라는 장에서 나온 것으로 “신의 왕국”입니다 기독교에선 그걸 “신의 왕국”이라 하며 우린 “니르바나”라고 하죠 다른 종교에선 그걸 천국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신의 왕국을 찾는 데 있어 우린 동쪽이나 서쪽이나 하늘이나 땅을 봐서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신의 왕국은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반면 유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등의 지혜를 가진 자들은 하늘을… 유교에서는 하늘, “천당”이라고 부르며 천당을 밖에서 찾습니다 낮은 지혜를 가진 이들은 천당을 밖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높은 지혜를 가진 이들은 내면에서 찾지요 그것이 유교입니다

자, 우리 불교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외부에 있는 어떤 법을 얻으면 불완전한 법을 얻을 것이다” 알겠어요? 부처는 완전한 도를 찾기를 원하면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지요 밖에서 찾는 건 불충분하지요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신토교에서 말합니다 “먼 곳을 보지마라 신을 찾기 위해 지평선 저 멀리 보지 마라 자신의 가슴에서 신을 찾아야 한다” 가슴을 보라는 것은 육체의 심장이 아니라 영혼을 말한 걸 겁니다 가슴은 다른 말로 생각 지혜를 뜻하지요

이제 힌두교 차례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지요 “신은 모든 중생의 내면에 거한다” 비슷하게 들립니다

사람들이 의심하는 또 다른 최근의 종교도 있는데 시크교입니다 왜 시크교를 의심할까요? 인도에서 최근에 많은 시크교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종교에서든 반항적인 사람들이 있죠 시크교만이 아니에요 “광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늘 있습니다 그들은 잘못 행동하며 그들 종교의 신뢰성을 퇴색시키죠 어떤 종교에서든 그런 무지한 사람들이 있지요? 자, 시크교에서 뭐라고 했지요? “왜 너희는 불성,신을 찾으러 숲이나 산으로 가야만 하느냐? 거기선 아무것도 못찾을 것이다 꽃의 향기는 꽃 봉우리에서 나오는 걸 알아야 하듯이 신도 네 안에 거하신다 신은 또한 가슴에서 나오니 너희는 모든 신실함으로 거기서 신을 찾아야 한다” 정말 아름답지요? 네!

더 있어요! 더 듣고 싶으세요? 와 그런데 오늘이 일요일이니 설교를 해야지요 교회나 절에서처럼요 일요일에 우린 아름다운 옷이나 정장을 입고 단상에 올라가… 더 있어요 자 그는 다른 경전과 비교하여 주된 종교 경전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요 그는 불교만 빼먹었어요 내가 나중에 추가하죠 그는 불교에 대해 거의 읽어보지 않았나 봅니다 기독교에선 어떻게 말하죠? 그것도 내가 영어로 읽어줄까요? 아니면 어울락(베트남)어로 번역해줘도 되나요? 그냥 어울락(베트남)어로 할게요 시간절약 되게요 그 책의 사본을 사고 싶으면 쉬워요 제프리 모제스를 찾으세요 출판사가 어디죠? 포세트 콜럼바인 볼란틴 출판사, 뉴욕이네요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해요 “글은 죽이지만 영혼은 살린다” 다른 말로, 그건 글,말은 죽인다는 겁니다 뭘죽이죠? 아마 생각을 죽이겠죠 아! 그건 믿음을 죽입니다 반면 그 말속에 들어있는 그 말의 정신, 진리, 경이는 소생시키고 생명을 줍니다

유대교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이제 우린 새종교가 있네요 진리를 찾는데 씌어진 말을 버리면 가장 좋아요 모든 책을 버리고 진리를 구하는게 더 낫습니다 만일 경전을 읽고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버리는게 낫다는 뜻입니다 경전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찾을 겁니다

이슬람교에서 이렇게 말하죠 코란은 여섯 개의 언어로 씌어졌고… 일곱개의 방언이 있어요 각각의 방언에는 매 사본마다 일곱 개의 절로 되어있어요 각 절마다 이중의 함축이 들어있어요 하나는 외적인 함축 하나는 내적인 함축이죠 위의 것들과 비슷하지요? 유사성이 보이나요? 비슷하면 계속 읽읍시다

이제 무슨 종교지요? 힌두교요 브라만교요 브라만교는 물론 힌두교예요 감사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경전을 참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속의 심오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건 그런 말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의미도 보여줍니다 말 뒤에 숨은 심오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말속에 심오한 뜻을 찾고 나면 씌어진 말은 버리세요 그건 마치… 우리가 쌀의 알갱이를 꺼내고 나면 왕겨라고 불리는 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먹지 않지요 그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아주 아름답지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무슨 종교지요?

네, 이제 수피교 차례에요 수피교는 종파에요 이슬람교의 주된 종파지요 보통 이슬람교는 경전을 외우는데 주력하지요 오직 신에게 엎드리고 하루에 다섯번 기도하고 성지를 향해 기도합니다 수피교는 이슬람교에서 유래했지만 내면에서 신을 찾도록 옹호합니다 매일 명상해야 하는데 그것은 선불과와 비슷하죠 선불교는 불교에 근간을 두지만 앉아서 부처의 이름만 외는게 아니라 명상을 옹호합니다 좋아요! 아무튼 이슬람 수피교라고 하죠 이런 식으로 말해요 “너희는 학자들에게, 씌어진 말의 의미를 분석하게 하거나 지적으로 분석하면 안된다 한편으로 그건 기계적이며 철저하지만 그들에게 맡기면 안된다… 당신이 학자라면 말을 철저히 분석하기 위해 자신의 두뇌나 그들의 정의에 의존해선 안된다 진정한 학자나 지혜가 있는 자라면 누구나 그 말들의 정의보다는 그 말들의 의미에 대해 묵상할 것이다” 알겠어요 대략 이런 식이에요

우리가 잊기 전에 불교도들 또한 “교외별전”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내가 했던 말과 비슷합니다 문자자체는 죽이지만 그것의 영은 생명을 주며 글의 영혼을 재생한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남자는 아마 어느 정도 깨달았지요 그래서 그가 많은 경전들을 어떤 차별이나 편견, 증오나 광신 없이 연구했던 거예요 광신적인 것은 그의 종교가 다른 것보다 낫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그는 심오한 구를 찾았어요 여러분이 영어로 된 책을 읽으면 더 정확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핵심을 아는 겁니다 와! 아주 밝은 빛이 점점 따뜻해집니다 세상의 빛은 정말 밝아요 부처의 빛을 찾을 필요없죠 이제 우리가 그 구절을 다 읽었어요 거기서 우리가 뭘 배울까요 모든 종교는 본래 같은 이상을 말하며 하나의 진리만을 내포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종교가 최고의 가르침을 찾기를 우리에게 권한다는 겁니다 경전의 기록에 집착하고 공통어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고요

법화경에서 말하죠 “불법을 찾으려면 수천 년이 걸릴지 모른다” 왜 “불법을 찾으려면 수천 년이 걸릴 것이다” 라고 말할까요? 현존하는 불경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불법을 찾는 데 수천 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할까요 이제 우리가 읽기 원하면 모든 경전이 가능해요 우린 국제 불교 협회에서 출판한 이런 경전들을 갖고 있습니다 어울락(베트남)어로요 통합 불교 협회에서 나온 우리 말로 된 경전을 가졌죠 예컨대 만일 우리가 어울락 (베트남)어 경전 수가 한정됐다고 생각한다면 경전을 읽기 위해 중국어나 힌두어나 발리어를 배울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왜 “불법을 찾는데 수천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할까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수천 년이란, 수 만년이 걸려도 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경전이 정말 많은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왜냐하면 경전의 깊은 뜻은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자 자체가 찾기 어려운 건 아니에요 석가모니불이 태어나기 전 경전들은 이미 있었어요 없었던 게 아니죠 예를 들어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요 가끔 어울락(베트남) 사람 한 두명이 힌두교가 그들의 경전을 만들려고 불경에서 일부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사실 그 반대죠 왜냐하면 바가바드 기타가 불경 전에 존재했거든요 또 부처는 힌두 스승을 따르기 전에 이미 그걸 공부해서 보리를 얻었지요 아니면 그가 어디서 왔겠어요

그는 스승을 찾았을 겁니다 깨달은 스승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어요 육신의 스승과 내면의 스승이요 육신의 스승이 뭘까요 우리가 만나서 많은 존경심이 드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그들이 큰 지혜를 가졌고 “최고의 달변가”란 걸 압니다 그들은 적어도 어느 정도 깨달음의 등급을 가집니다 그렇게 말을 잘하고 명확한 이해와 해석으로 말하려면 말이에요 우린 그를 존경하고 그를 따라 함께 연구합니다 우린 그가 어떤 방법으로 우릴 가르치길 원해요 적어도 그처럼 될 수 있게요 나중에 우리의 지혜가 발달하면, 그 육신 스승의 가르침을 고마워하며 자신의 스승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더 중요한 스승이죠 그것이 불성이나 신의 왕국, 신 그 자체로 불리는 겁니다 신은 다름아닌 세세생생 변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완전한 지혜입니다 있지도 없지도 않고, 순수하거나 부패하지도 않는, 그것이 신이죠 그래서 신이 여러분 안에 마음에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불성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하죠 만일 신이 육신을 갖거나 특정 장소에 산다면 어떻게 그가 우리 안에 살 수 있겠어요?

불성은 또한 우리의 가장 빛나고 완전한 지혜입니다 그걸 불성이라 하죠 그 완전하고 빛나는 영원한 지혜인 불성을 찾을 때 우린 보리를 얻습니다 우린 우리의 불성을 찾습니다 우린 그 완전한 지혜를 찾아요 “마하반야바라밀다”요 “위대한 지혜”를 말합니다 때로는 불성을 위대한 지혜라고 하고 때로는 그걸 불성, 때로는 그걸 “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같은 불교에서도 어떤 걸 말할 때 여러가지 말을 씁니다 여러 국가의 여러 종교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처럼 말이죠 시대가 다르면 사람들이 다른 말을 씁니다 이제 이건 논쟁하지 맙시다 하지만 우리의 최고 지혜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린 내면에 집중해야 하죠 하지만 어떻게 그걸 할까요 육조대사인 혜능이 말했죠 “바깥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는 그것이 명상이고 평온하게 하나에 집중된 마음을 갖는 것이 삼매다” 왜 삼매를 얻으려면 자신을 바깥 세상과 분리시켜야 할까요? 왜냐하면 우린 우선 평안을 얻어야만 하니까요 우린 마음이 평온하면 지혜를 깨닫기 위해 명상할 기회를 가질 겁니다 우리의 지혜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단지 잊은 거니까요 매일 우린 바깥만 봅니다 이 예쁜 소녀를 흘끗 보고 저기 잘생긴 남자를, 다이아 반지를 낀 부자 여자를 봅니다 밝은 빛이 빛나고 반짝이니 우리 눈이 부시지요 계속 이런 것들을 보면 다른 고귀한 것들을, 최상의 것들을 보는 걸 잊습니다 그게 다예요 그래서 바깥세상에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해요, 그럼 자연히 우리가 누구고,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걸 알게될 겁니다 그리고 최상의 지혜가 있는 곳을요

예를 들어, 말하기 쉽죠 좋아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통증에 대해 말하죠 예를 들어, 때로는 우리에게 두통이나 위경련 같은 게 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못 본 친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우릴 방문하면, 행복해서 서로 껴안고 종일 얘기하며 어느새 위 문제는 무시하게 됩니다 얼마후, 끝없는 이야기를 그만두자마자 그게 돌아와요 “아야, 배가 너무 아파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나요 때로는 우리가 TV를 볼 때 아주 중요한 다른 것들을 걱정하느라 TV를 본다고 해도 실제로 그걸 보진 않습니다 그때가 우리가 내면으로 보다 집중하는 때입니다 TV를 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소리를 듣지만 아무것도 안 듣죠 그렇죠? 이것과 똑같아요 예를 들어, 매일 우리는 바깥만 봅니다, 세속을 계속 쳐다보죠 육체적인 행위를 판단하는 데 우리의 지혜를 씁니다 그런 판단을 하는 이가 실제로 누군지 모르는 채로요 그 날 잠시 동안 우리 마음을 가라앉히자마자 우린 깨달을 겁니다 “아, 우리 안에 그가 있구나” 하지만 우린 아직 그를 알지 못합니다 죽을 때, 그는 이 육신을 뒤로 하고 떠납니다 우린 “나”에 대해 말하지 않죠 이것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나의 이 손” 그렇죠? “나의 이 귀”, “나의 이 코” 이는 내가 다른 사람이란 걸 뜻해요 이건 내 코일 뿐이죠 어울락(베트남) 사람은 정말 영리합니다 나의 이 코, 맞죠 “내 부인”이라고 말할 때처럼요 내 부인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다른 사람이에요 그러니 “내 부인”은 두사람을 포함합니다 “나의 이 코”와 같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은 바로 이해할 수 있죠 그러니 우리의 진아는 세속의 존재나 이 육신을 가진 일반인이 아니에요 그건 매일 우리가 갖는 욕망도 아니며 우리 부모나 사회의 가르침에서 수집한 오해나 잘못된 개념도 아니죠 그것은 다른 존재예요 우리의 모든 관습, 습관 성적 욕망, 이전에 가졌던 필요와 완전히 다른 존재에요 만일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정글에 살았다면 아마 예쁜 소녀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이해하겠어요 따라서 모든 성적 욕망 모든 죄, 세속적인 욕구들은 우리가 아니고 그저 우리가 남들에게 배운 습관이에요 예를 들어, 새로 태어난 아기는 흡연에 대해 전혀 모를 거예요 태어나면서 담배 피는 아기를 본 적 있습니까? 어쨌든 그렇게 죄가 있는 사람은 없어요 누구도 죄가 전혀 없어요

아, 유교는 이렇게 말하죠 “원래, 인간은 선하다” 부처도 말했지요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 또 무슨 말을 했나요? “업장은 본래 없는 것이다” 맞습니까? “업장은 본래 없는 것이다” 중국어로도“업장은 본래 없다”라고 하지요 업장이 원래 없는 것이라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지요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언젠가 알게 될 겁니다 “업장이 본래 없다”는 걸요 그러면 우린 순수한 본성으로 돌아가겠죠 그래서 명상해야 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가 크게 염불하거나 불상에 절을 하는 건 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죠 이해됩니까? 우리는 매일 일을 가서 공장일과 기계,맡은 일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저녁에 집에 오면 나무 불상에 집중해야 하고 염불까지 해야 하지요 게다가 경전까지 읽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 모두가 외적인 거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우린 너무 바빠요! 하루종일 바쁩니다 절에선 더 바빠지지요 하루종일 말하고 절에 가면 시끄럽게 염불을 큰소리로 외기 시작하지요 교회에서도 시끄럽게 노래를 하며 이런 저런 몸짓을 하지요 또는 부처에게 절을 하는데 이것도 우릴 바쁘게 합니다 평화로운 순간이 단 하나도 없어요 부처는 “행주좌와가 모두 보리다”라고 했지요 하지만 ‘행,주,와’만 했지 아직 ‘좌’는 안했죠,맞죠? 그러니 하나가 빠진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계속 묻는 겁니다 “왜 명상해야 합니까?” 어쨌든 그건 행주좌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게 명상입니다 우리 영혼은 평온해지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되죠 평온한 마음이 없으면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며 절대 이해하지 못합니다 최상의 지혜는 평온함 속에서만 개발됩니다

예컨대, 뭔가 중요한 걸 하고 싶을 때는 조용히 앉아서 집중해야겠지요?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생각할수도 없고 집중을 하는데 너무 방해를 받지요,맞지요?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을 겁니다 그래서 담배 피고 술마시는 사람이 많은 겁니다 그들을 비난하거나 책망해선 안됩니다, 왜일까요? 때론 그들이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자동으로 그들의 영혼을 좀 평온하게 하기 때문이죠, 안그래요? 갑자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담배 피고 커피 마시는 걸 알 수 있지요 또한 담배나 술이 주는 힘에 의존해 외부로부터 오는 혼란을 잠시 잊고 마음을 가라 앉혀 내면의 평화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마음이 가라앉게 되면 좀 편하게 느낄겁니다 코카인이나 마약 중독자도 마찬가지로 그들도 똑같은 상황입니다 비판하고 심판하는 대신 연민을 느껴야죠,왜일까요? 그들도 우리처럼 고통을 받고,그런 평온을 찾기 때문입니다 짧지만,평화롭고 행복한 그 순간을 너무 좋아합니다 잘못된 길을 찾고 나쁜 것에 의지하며 틀린 요법을 택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떤 명상법이든지 명상을 할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효과가 있을겁니다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면 자동적으로 그런 마약도 외면하게 될 겁니다 엄마의 젖을 먹는 아기가 고무 젖꼭지를 바로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때 아기가 아직 먹지를 못해서 너무 배고플 때도 고무 젖꼭지를 뱉겠지요? 계속 고무젖꼭지를 빨아도 나오는게 전혀 없으니까요 결국 배가 고파집니다 배가 고픈 한에는 그에게 주어진 것은 뭐든 거절하겠지요?

마찬가지로, 잘못된 길을 걷고,무지하거나 담배와 술을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깨어나게 됩니다 술을 계속 마실수록 더 피곤해지고 몸도 약해지고 정신상태는 나날이 쇠약해 집니다, 그때 깨어나서 신과 부처에게 기도하게 되고, 신과 부처는 그들을 도울 겁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아무도 죄가 없습니다 가장 큰 죄는 무지로 어느 길을 갈지, 어디서 진리를 찾을지 모르는 겁니다 우리는 싸구려 대용품을 찾습니다 모두 다 종교와 상관없이 진리를 향하고 명상을 한다면,우리 사회는 자연히 더욱 아름다워지고 사람들은 축복을 느끼며 세상은 정토가 될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정토나 우리 마음과 외적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요 우린 위대한 신통이 있죠 우리 모두 어떤 더러운 곳이든 괴어있는 물과 연못들을 멋진 곳으로 바꿀수 있는 신통이 있지요 우리의 손과 발,마음을 쓰고 건물 지을 계획을 세워서 흙을 돋우고, 나무를 심어서 아름답게 만듭니다 맞지요?

어제,제자들과 내가 그런 일을 했지요,새로 산 장소가 수리가 안되어 몹시 지저분했거든요 좀 더 괜찮은 곳으로 바꾸는데 몇시간 뿐이 안걸렸어요 며칠 더 있었다면 훨씬 아름다워졌을 겁니다 이같은 이치로 외적인 신통력을 사용해서 어두운 곳을 아름답게 바꿀수 있습니다 우리 내면의 지혜는 그보다 백배,천배,수만 배나 더 큰 힘을 갖고 있지요 그 힘에 집중하고 사용법을 알게되면 아마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아미타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아미타불이 성불하기 전에 이렇게 서원했다고 합니다 “내가 성불하면 내가 사는 곳은 고통도 없고 생사 윤회도 없는 정토가 될 것이다. 모두 축복속에 살수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는 성불한 후 지혜를 사용해 지복한 세계를 만든 겁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졸업해서 기술자나 건축가가 된다면 멋진 건물을 많이 짓겠죠 부처의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불하게 되면 우리들과,아이들,친척들 형제 자매들, 부모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살수 있는 소위 천국이나 열반 불국토 등을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질 필요가 없지요

가끔 사람들이 묻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데 영적수행 후 그들을 버리면 어쩌지요?” 아무도 버림받지 않아요 영적 수행을 할 때 그들을 가장 사랑하게 되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진정한 법문이나 진리를 수행해야만 미래에 아름다운 곳에 살게될때 가족을 데려갈수있죠 대양을 건너가듯 언젠가 우리 가족을 그곳에 데려 가게 됩니다 아무도 막지 못하지요? 그래서 영적수행은 반드시 삶에 싫증나거나 회의적이 되거나 부모와 배우자 아이들과 형제자매를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영원히 살수 있는 아름답고 영속하는 지복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영적 수행을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영적수행을 하면 가정과 부인,아이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나중엔 영원히 헤어 지게 된다고 믿고 있지요 이건 틀린 겁니다 “한사람이 깨닫게 되면 9대가 천도됩니다” 천도될 뿐만 아니라 함께 있게 되고 멀리 떨어지지 않아요 9대가 천도되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말할것도 없지요 모두 올라 갑니다,네? 그래서 친척,부모,형제와 자매,배우자,아이들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내가 수행을 강요해서 친척들과 갈로 놓을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건 부처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은 우리 일상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요 이곳에 부모와 형제의 사랑이 있듯이 올라가도 똑같은 사랑이 있지요 영적 수행을 하면 나무나 돌,물,불등이 되는 게 아니지요 안 그래요? 하지만 사랑은 다릅니다 어떤 성욕이나 질투,증오 복수,소유욕이 없습니다 복수,소유욕이 없는 거죠 위에서도 좋고 이상적인 친구들과 조화롭게 삽니다 더 깊고,더 고귀하고, 더 편안한 사랑을 합니다 그에 반해 이곳의 사랑은 그렇지 않지요 때로는 사랑하게 될수록 더욱 고통 받죠,맞죠? 이 남자는 이 여자를 질투하고 이여자는 저여자를 질투하지요 그냥 사랑을 연습하는 거죠 그건 아이들, 갓 태어난 애기들이 말을 배울 때 하는 것과 비슷하죠 몇 단어밖에 말하지 못해요 처음엔 “아빠,엄마”만 말합니다 나중엔 서너 단어를 더하는 법을 배워서 이 케이크와 저 케이크를 먹겠다고 합니다 그는 막 배우기 시작했죠 우리가 하는 말의 일부분만 할 수 있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 더 많은 단어로 적절히 말할 겁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우리에겐 부모,형제자매,친척,배우자, 자식이 있어서 우리가 사랑을 배우기 시작하지요 거기서 배워야 합니다 점차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 하기 위해서요 이해합니까? 100퍼센트의 사랑이요 나중에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게 될 겁니다 그 배움을 완성할 때에 소위 성불하게 됩니다 이해합니까?

부처는 무한한 사랑이 있죠 “무한”은 헤아릴 수 없어서 어떤 이든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은 모두에게 똑같죠 백 명을 사랑하면 백 명모두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 스승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셔”라고요 그렇죠? 백 명중 누구라도 모두가 자신이 가장 사랑 받는다고 느낄 겁니다 모두가 똑같이 느끼지요 그것이 부처의 사랑의 특별하고 멋진 면이에요 그래서 때로 수행을 잘하는 어떤 승려를 보면 그들은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불교신도들이 그를 구름 떼처럼 쫓아다닙니다 반대로 수행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엄숙한 모습이고, 큰 사원도 있지만 아무도 오고 싶어하지 않죠 와도 즉시 떠납니다 그렇죠? 그들이 오면 불교 신자로서 의무를 다하려고 보시를 좀 할 뿐 그리고는 거리낌 없이 가버립니다 아무도 그 승려가 어디 가는지 신경 쓰지 않죠 그에 대해 큰 갈망이 없어요 그렇죠? 사랑이 너무 좁아 일반인에 가깝고, 부처의 사랑이 아닌 거죠 그래서 일반인처럼 사랑하면 한 두 사람만 사랑합니다 그렇죠? 그 사람 혹은 그 무리는 우릴 사랑하겠지만 다른 무리들은 그렇지 않죠 때로 그들이 우릴 견딜수 없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 사랑이 너무 제한되어서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 밖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편하게 느끼고 사랑할 수 없는 거죠 합쳐질 수 없어요

그러나 부처의 사랑은 매일 커집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아내, 남편,자식이 있다면 나쁜 게 아니죠 그저 우리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상황인 겁니다 우린 그것이 교훈임을 이해해야지 그 사랑으로 끌려 가거나 그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되죠 대신 그를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으로 보아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점차 모두를 사랑하도록 성장합니다 매일 그 사람을 사랑하듯이 모든 이를 사랑합니다 하나의 본보기일 뿐입니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함을 알게 하는 모형일 뿐입니다 우리가 따를 모형이지요 병원이나 맨션을 지으려면 건축가는 우선 모형을 지어야 하죠 그렇죠? 아름다운 작은 모형엔 방들, 사무실, 층층이 많은 것들이있죠 꽃, 공원 등등요 실제 건물과 아주 똑같이 만들어집니다 그렇죠? 작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소형 모델인 겁니다 이 소형의 방들을 보고 건축가, 시공자들은 실제 크기의 방을 만들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 그건 아주 장엄하고 웅장한 궁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배우고 받은 모든 사랑은 부처의 무한한 사랑으로 우릴 진보하게 하는 하나의 모형입니다 그러니 우린 거기 빠지지 말고 그것이 교훈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부처와 공부하기에 자신을 묶는 아내와 자식을 소홀히 하고 부모나 친척을 싫어하는 게 아니지요 미움은 옳지 않습니다 미워한다면 잘못된 거죠 미움이나 사랑이 있다면 틀린 겁니다 우린 모든 것이 교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와 공부한 후에 아무도 그들의 부모나 친척을 져버리지 않아요 영적 수행을 하면 성적 관계는 많이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달렸죠 이미 결혼했다면 결혼을 지속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혼자 지내세요 복잡하게 말할 게 없습니다 거북하거나 내면에서 갈등할 것이 없죠 어떤 상황도 괜찮습니다 머리를 삭발하거나, 출가하지 않았다면 그럴 필요 없어요 반복하건데 그럴 필요 없죠 곁에 있는 이들도 다름 아닌 부처기 때문이죠 그들은 우릴 가르치러 여기 온 거죠 그러나 우릴 가르치느라 아직 높은 경지를 얻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초급을 가르치지요 그들은 작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더 크게 사랑하고 싶으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이 있는 부처가 된, 불성을 얻은 높은 경지의 선생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를 따라 공부하는 거죠 공부를 마치고도 사랑하는 이들을 돌볼 겁니다 이해합니까? 공부를 마치면 가족이나 자식을 버리고 다른 이들만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 가족과 자식도 사랑의 범주 안에 있는 중생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버린다면 잘못된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린 출가가 고귀하다고 말할까요? 왜 그렇죠? 아마 그들은 이미 전생에서 무한한 사랑에 대해 알고 우리보다 많이 배웠기에 이 생에서 자신의 유일한 혈육은 없다고 믿는 거죠 아무도 특별한 혈육이 아니며 모두가 가족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가족을 사회의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하고 집착하거나 소유하지 않는 겁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보다 더 큰 사랑의 교훈을 배웠죠 그래서 출가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죠 우린 가족이 있습니다 이제 배우기 시작한 거죠 그래도 배움을 마치면 모든 걸 알 겁니다 배움을 마치면 출가자와 똑같이 될 것입니다 과업을 배우고 깨달은 후에 우리의 도덕성은 출가자와 똑같지요 단지 머리가 길고 집에 머물지요 이해합니까? 그러나 배우지 못했다면 출가자와 같을 수 없지요 이해합니까? 배우게 되면 친척, 부모, 형제자매가 다른 중생과 똑같습니다 이젠 우리 사랑이 달라졌죠 그래서 저 신사분이 자신의 성욕이 10에서1, 2로 줄었다고 하는 겁니다 이는 사랑이 더 확장되었기 때문이죠 성욕은 소유의 한 형태죠 이해합니까? 사랑은 좀더 고양되고 상호 존중을 가진 더 포괄적인 것입니다 더 이상 소유욕이 없지요 자신의 욕구를 위해 더 이상 착취하려는 욕망이 없죠 그건 다르지요 사랑이 여전히 있고 함께 살지만 더 많은 존중이 있습니다 갑자기 충만해서 자신을 위해 그 사람을 소유할 필요가 없어졌지요 성욕이란 뭘까요? 성욕은 원래 두려움과 그를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와서 다른 사람들이 이를 알도록 말이죠 “넌 내 거야” “나한테 속했으니 다른 사람과 놀면 안돼” 그러나 사랑은 더 큽니다 이해합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더 커져 모든 인류를 사랑할 수 있지요

좋아요 난 여기서 마치죠 질문을 하면, 여러분 상황에 더 적합할 겁니다 내 강연은 일반적 주제를 말한 거니 망설이지 말고 묻되 영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도록 해주세요

어떻게 제 업장을 풀까요?

유일한 길은 깨닫는 겁니다 깨닫는 순간 우린 빛, 불광, 자신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오면 언제든 어둠은 사라져야 하죠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업장은 무겁고 어두운 것으로 무지,슬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불명확한 어떤 것이지요 지혜의 빛이 비추게 되면 그것들은 사라집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신통력을 배우기 위해 입문을 받으려는 사람이 있지요 설명해 보세요

: 성경에 병자의 회복을 위한 안수기도 얘기가 있지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입문자가 병자에게 안수기도를 했나요? 신통을 배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병자를 치료 한다면 그게 가능한가요?

병 치료를 위해 신통을 배울 필요가 없어요 예수 당시에는 달랐어요 병자를 위한 약이 부족했고 가난한 자는 약이 없어서 예수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신통력을 썼을 겁니다 지금은 과학이 진보된 시대로,의사들이 하도록 놔두어야 합니다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아주 많아요 많은 의사들이 실업자란 걸 모르세요? 참고로, 독일에는 많은 의사들이 택시 운전을 해요 의사가 헐 값이에요! 그들이 일하게 해 주세요 신통력을 배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의사들이 실업자가 되요 자비심이 어디로 갔지요? 이렇습니다,내가 왜 신통력을 쓰면 안된다고 할까요? 입문 조건의 하나가 병을 치료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홀리기 위해 신통력을 쓰지 않는다는 거지요 아시겠어요? 사람들이 “와! 이 사람이 이런 위대한 신통력이 있구나!”할겁니다 그 신통력 때문에 당신에게 오는 겁니다 맹목적으로 신통력에 달려들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요 따라서, 자신의 빛나는 불성을 잊어 버리지요 신통력을 써서 그들을 잊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 업을 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해합니까? 고통을 좀 참게 두세요 많은 업이 지워질 겁니다 거기 누워서, 고통을 겪는 동안 그들은 쉬어야 합니다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아서 누워 생각할 시간이 있지요 “난 왜 아플까, 왜 병이 났지?” 조용히 반성한 시간을 갖은 결과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불성과 자신의 지혜에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래서,병은 반드시 업장이 아닙니다 종종,그건 공덕입니다 우리는 병을 고치려고 즉시 신통력을 쓰지 않아요 그럼 휴식하면서,자신의 본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어 집니다 신통을 쓰면 그들을 해치죠 종종 그들을 돕는다고 생각 하지만 사실은 그들을 해치는 겁니다 때로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정 반대지요 많은 경우 그들을 해친다고 하지만, 사실 돕는 겁니다 이해합니까? 그래서, 부처가 아직 살아있을 때, 병을 치유하거나 구조하려고 신통력을 쓰지 않았어요 제자들에게도 금했지요 우리가 쓸 수 없어서 금지된 건 아닙니다 일단 부처가 되면 뭐든지 쓸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지은 인과의 법칙을 알기 때문이지요 구해야 하는지 아닌지 알지요; 며칠 동안 구해야 하는지, 얼마나 혼자 두어야 하는지를 압니다 병의 재발이라는 “반복”을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도 압니다 때로는, 병을 치료하면서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고 다음 날로 미루지요 나중에,다시 아플 겁니다 병에 안 걸려본 사람 있어요? 오직 부처가 될 때만 생로병사를 영원히 피할 수 있는 빛나는 지혜를 가질 수 있지요 때로 우리 몸이 아프긴 하지만, 너무 신경써서는 안됩니다 몸을 생각하면 할수록 지혜를 더 잊게 됩니다 끊임없이 육체를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깊이 빠졌다는 뜻이지요 이 물질적 존재에요 이해하지요? 물질계, “물질적인 차원” 소위 물질세계에 깊이 빠져서 영혼은 생각하지 않아요

두 번째 질문이요 스승님 법문의 계율을 지키는 것은 기독교인이 맹세한 성경의 십계명과 아주 흡사합니다 우연히 계율을 어기고 회개한다면 계속 수행할 수 있나요? 중생들은 아주 약한데 용서받고 회복될수 있나요?

예,용서받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약속해 다시 시작 하길 원한다면 용서 받습니다 용서 못받는 사람은 없어요 회개하지 않고 부처가 어찌 하는가 보려고 계속 고집할 때만요 그런 경우라면, 그들을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자신이 부적절하게 행동한 것을 알고, 자신이 약한 걸 알고 용서를 구하고,더 잘 하려고 노력하니까요

신과 부처는 그들 자녀의 뜻을 거스르지 않지요? 천주교에 의하면 성경에서 말하길 주님은 그사람의 공덕이나 갈망 노력이 아닌, 신의 자비에 따라 선택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신의 은총으로 선택 받지요; 이건 공덕수행과 상충하나요? 설명해주세요

아니요, 차이가 없어요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고, 부처가 될 능력이 있다는 뜻이지만, 모두 이생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알겠어요? 그래서, 부처가 내려왔어요 불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처는 인연 있는 자들만 구한다”라고요 혹은 성경에서 말하는 부름 받은 자, 성령의 은총으로 축복 받은 자와 유사합니다 선택 받는다는 것은 절대로 맞습니다 모두 이생에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길 갈망하는 건 아니죠 모두 엄격한 계율을 지키는 건 아닙니다 또, 내 강연에 오는 사람들 모두 채식하고 부처 명호를 외우고, 명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맞지요? 선택 받는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질문이 하나 있는데, 기독교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온 하나님의 믿음에 기초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단지 신을 찾으려는 인간의 철학이죠

알겠어요, 이해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한말과 다른 종교를 오해했을 수도 있어요 살아있는 스승이 없는 어느 종교나 철학에 불과해요 심오하고 신비한 영혼을 가진 스승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지요 모든 글, 모든 종교 경전들은 단지 기록일 뿐으로 그냥 읽는 거지요 이런 거죠 예수 그리스도가 왜 “ 나를 통하지 않으면 신을 볼 수 없다”고 했을까요? “스승의 인도가 없으면 열반을 찾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알겠어요? 부처가 말한 것과 유사해요 “부처를 만나기가 어렵다 부처를 만나면, 생사에서 해탈할 수 있다 부처를 만나지 않으면 무지 속에 살 것이다” 부처도 똑 같은 걸 말했죠 정확히 같아요, 안 그래요? 깨달아서 감사합니다 좋아요! 단지 문체가 약간 다른 것입니다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진리는 오직 하나다” 2부를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 “영화속으로”가 수프림 마스터 TV에서 방송되니 기대해 주십시오

오늘 지혜의 말씀과 함께 해 주셔서 기쁩니다 내일“진리는 오직 하나다” 3부를 기대해 주십시오 이어서“우리 주변의 세상”이 수프림 마스터 TV에서 방영됩니다

지금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써니베일에서 하신 “진리는 오직 하나다”를 보셨습니다 지혜의 말씀과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기쁩니다 이어서 예술과 영성에서 “영화 속으로”가 방영됩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 주십시오

스승님 왜 카톨릭교는 동물들을 죽이는 걸 금하지 않지요? 심지어 그들은 신에게 바친다며 그렇게 합니다 그게 계율을 어기는 건가요

그건 여러분 잘못이 아니지만 여러분을 잘못 가르친 사람들의 잘못입니다 다시 성경을 참고해 보면 시편 78장에서 “누가 너희에게 수소와 암염소를 죽여 내게 바치라 했느냐” 신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 했느냐 즉시 너희 죄를 회개하라 안 그러면 난 너희 기도를 듣지않고, 너희가 기도할때 고개를 돌리겠노라 너희 손이 무고한 동물의 피로 가득하다” 성경은 그걸 분명히 말하지만 신도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신은 포기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불교신자가 고기 없이 바치진 않죠 그들도 합니다 그들이 신과 부처에게 바치려고 닭을 도살하는 걸 보지 않았나요? 도교와 유교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행히 절에서 불교도들은 이런 공양을 하지 않아요 난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단지 소문인지 알기 위해서 어떤 종교든 따랐어요 그래서 난 뭘 가르치고 어떤 장점과 약점이 있는지 알기 위해 공부해야 했죠 확실히 다섯가지 고기가 든 커다란 접시 하나가 내게 왔고 그걸 먹어보라고 했죠 그 스승을 따랐던 제자들은 모두 그걸 먹어야 했어요 그건 “돌리기”로 불렸는데 이 고기 접시가 돌아 가면 모두들 한 점씩 먹었어요 난 그때 그걸 먹지 않았어요 내 손을 이렇게 움직였죠 그냥 상징적으로 보이게요 그땐 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을 때였어요 그래서 난 항의하지 않았죠 또 그걸 따르지도 않았고요 정말 잔인하다고 생각했죠 정말 이상한 부처였어요 어떤 부처가 중생의 살을 먹지요? 그런 부처에겐 절을 안 할 거예요 신도 마찬가지예요 신은 전우주의 창조자죠 어떤 신이 우리의 고기와 생선이 필요하죠 그런 신이면 그는 굶주린 신일 거예요 만일 신이 굶주린다면 어떻게 우리 배를 채워주죠? 가난한 사람이 남을 도울 수단을 가진걸 본적 있나요 부자만 도울 수 있죠 부자는 필요한 게 없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고 우릴 도울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도울 수 없죠 우리에게 돈을 구걸합니다 누가 구걸하면서 이렇게 말하나요, “일달러를 주면 십달러를 당신에게 주겠소” 가능해요? 말도 안됩니다 그러니 중생에게 여전히 그런 물질적인 공양을 요구하는 신은 작은 신, 굶주린 신이에요 그러니 그에게 엎드리면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이건 세속인들이 만든거죠 그들은 신과 부처의 얼굴에 진흙과 오물을 던지죠 안 그럼 어떤 신이나 부처도 그런걸 요구하지 않아요 어떤 이들은 석가모니불이 “족발”을 먹고 죽었다고 해요 그건 “돼지발 버섯”이라는 일종의 버섯이었어요 마치 어떤 음식을 “용뼈”라고 다른 음식을 “돈피 과자” “비프 케익”으로 부르듯이요 그런게 많아요,그렇죠?(예) 미래에 5000년, 2000년 후에 사람들은“비프 케이크”란 말 대신 다른 말을 쓸 거예요 그럼 그들은 칭하이 스승이 “비프 케이크”를 먹고 죽었다고 말할 겁니다 아니면 “돈피 과자”를 먹고 죽었다고 하겠죠 아마 이렇게 와전되어 내 입에 고기를 넣을 겁니다 그들은 이렇게 신과 부처의 입안에 고기를 집어넣지요 정말 안됐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려서부터 채식을 했어요 그의 ‘잃어버린 세월’이라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삶에 대한 기사를 보면 그가 살아있는 동안 10년 이상 사라졌던 세월이 확실히 고대 기록에 나와있어요 사람들이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냈는데 그가 에세네파였다고 해요 이는 그가 어려서부터 채식을 했다는 걸 뜻하죠 그 한 가족만이 아니라 그는 또 다른 채식인들과 함께 학교에 갔어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나랑 관음법문을 행한다고 해요 나중에 자녀들도 날 따르죠 그들은 어머니 자궁에서부터 이미 채식을 했으며 커서도 역시 날 따를 겁니다 그러니 그들은 어려서부터 채식인이죠 이해하세요?

스승님, 부모가 평생 채식을 하지만, 아이가 안 할 경우 어머니로서 자녀를 위해 고기를 요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죄를 짓고 그녀가 업장을 받나요?

아뇨, 죄는 아니지만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녀는 뉘우쳐야 해요 그녀가 영적 수행을 하는데 나이 들도록 기다렸으니까요 그래서 그녀의 자녀들이 고기 먹는 습관이 든 겁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자궁에 있을 때부터 수행했다면 혹은 어려서부터 수행했다면 그녀의 자녀들은 바로 그걸 따를 수 있었을 거예요 육식에 대한 의문 없이 태어나서부터 채식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녀는 뉘우쳐야 하고 서서히 자녀들을 가르쳐 좋은 모범이 되어야 해요 그들은 세뇌되어선 안 되요 그녀는 자비의 좋은 모범이 되어야 하며, 그들이 채식을 함으로써 더 고귀해지고 생명을 죽이지 않으며 자비심이 자란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그럼 점점 이해될 겁니다

당신의 강연에 따르면 시타르타 왕자는 바가바드 기타를 수행한 덕분에 부처가 됐습니다, 아닌가요

아뇨 아무도 어떤 경전을 수행해서 부처가 되지 못해요 “바가바드 기타”를 수행하든 말든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경전을 수행해야 하죠 내 말은 그 전에 부처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경전이 있었다는 거죠 그 경전들을 읽은 뒤에 그는 완전히 그걸 이해했고 출가자가 되길 원했어요 알겠어요? 그는 신, 부처, 진리가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죠 나중에 그는 브라마나였던 다른 스승들과 공부했어요 그땐 불경이 없었죠 우린 불경이 아직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부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죠 여러분 모두가 부처가 불교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어요 석가모니 전에 5, 6, 7 명의 부처가 이미 다녀갔지요 그래서 불경이 없었어요 부처가 태어나기 전에 불경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가바드 기타를 공부했고 영적 수행을 위해 브라마나를 따랐거든요 바가바드 기타를 듣거나 그걸 연구한다고 누군가 부처가 될 수 없어요 그는 명상을 했습니다 그는 도를, 그의 진아를 명상해서 깨달았어요 만일 스승의 안내가 있다면 이 과정이 더 빠를수 있어요 만일 우리가 스승 없이 스스로 수행해서 깨달으면 대단한 겁니다 대단하죠 축하하겠어요 하지만 보통 스승 없이 수행하는 건 더 힘들어요 그래서 이미 깨달은 누군가를 찾아야 합니다 길과 함정을 아는 사람 더 빨리 우릴 안내할 사람을요 덧없는 삶에서 자꾸 시도해서 실수하면 성공하기 전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어요 알겠어요?

당신이 방금 설명했던 “누군가 깨달으면, 그의 9세대가 해탈한다”는 말씀이 현실적입니까

그건 좋지 않아요, 속담에 “먹어야 배부르고 수행해야 성과를 얻는다”라고 하죠 왜냐하면 해탈하고자 하면 공덕이 있어야 하고, 공덕을 가지려면 수행해야 합니다 영적 수행 없이9세대가 해탈하는 건 비현실적입니다 해탈하는 것과 깨닫는 건 달라요, 알겠어요 “한사람이 깨달으면, 그의9세대가 해탈한다”라고 했지 “한 사람이 깨달으면, 그의9세대가 깨닫는다” 라고 하지 않았어요 “해탈”은 “고양”을 뜻해요 거기 가서 함께 사는건 좋지만 함께 사는 게 항상 그가 집의 우두머리임을 뜻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백악관에 사는 사람 모두가 대통령은 아니에요 오직 한 명의 대통령이 있죠 하지만 그의 친척이 거기서 살 수 있어요 알겠어요? 백악관에서 사는 건 이미 대단해요, 왜 누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나요 얼마나 귀한 기회예요 기회를 잡는 거죠 옮기기 전에 대통령이 되길 기다리는 건 시간이 걸려요

부처는 완전히 깨달았는데 왜 실수로 “돼지 발” 버섯을 먹고 죽었는지 설명해주세요 나무 칭하이 무상사

실수로 먹은 게 아닙니다 부처는 먹기 전에 결과를 알고있었기 때문에 다른 비구들은 먹지 못하게 하고 혼자서 먹었던 겁니다 소화가 어려운 거니까요 하지만 부처는 자신의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3개월전에 말했었죠 “지금부터 3개월 후에 영원히 떠날 것이다” 이건 열반에 든다는 뜻이죠 그러니 “돼지발 버섯”을 먹고 안먹고는 중요치 않죠 먹든 안먹든 상관없이 죽었을테니까요 그걸 몰랐던 게 아닙니다 알고있으면서도 그대로 강행했던 거에요 그의 때가 다 됐으니 그 행위를 하든 안하든 그 일은 일어났겠죠 그건 구실에 불과했어요 이 세속적인 삶에서 아무것도 안해도 됩니다 한다면 “논리적”이어서 중생들이 미신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는 죽기위한 구실로 버섯을 먹은거죠 정상인처럼 보이려고요 그래야 중생이 신통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의 가르침과 지혜에 집중하고 자기 지혜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올바로 수행하는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신통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신통에 현혹되면 참된 영적 가치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승에게 배운 지혜나 자신의 지혜로 신통을 계속 쫓아가게 됩니다 신통력은 아주 덧없습니다 영적 공덕과 지혜는 영원히 있어서 우릴 해탈하게 돕고 성불하게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신통은 사라지게 되요 때론 죽기 전에도 사라지죠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신통은 사라지게 됩니다 또는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신통을 배우면 자기 신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고대에 백여년을 수행한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공중을 날 수도 있어서 무척 만족했었어요 어느날, 정원 위를 나는데 거기있는 아주 예쁜 소녀를 보았는데 어깨를 드러내고 일광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흘끗 본게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자 쿵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는 날지 못했어요 신통력이 있으면 정말로 성가십니다 나와 수행을 해보세요 비록 신통은 없지만 안정되어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기 더 쉬워지죠

전 관음법문을 오래 수행했는데 우주적으로 인식되는 지혜의 단체엔 어떻게 들어가나요?

오랫동안 수행했으니 그냥 계속하세요 누구는 깨달음을 얻는데 더 오래 걸리고 누군 잠깐 걸리니까요 우린 자신의 업장과 세속적 삶에서의 사명과 업보를 봐야 합니다 누구나 수행하자마자 즉시 부처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해요!

서방정토가 원래 마음의 환상이라면 어떻게 미불이 서방정토에 간 사람들과 세상의 중생을 구할 수가 있습니까? 미불이 뭔가요? 아미타불인가요?(그래요)

아미타불이지 미불이 아니죠? 이런 거죠,아미타불이 아직 살아있을때 48서원을 세워 말했죠 “성불하면 누구든 내 세상에 오게 하겠다 날 기억하고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거기로 갈것이다” 이해되죠? 그게 그의 서원의 힘이었죠 영적으로 수행하면 서원의 힘은 아주 위대해서 뭘 바라든 얻게 됩니다 이해됩니까?

그게 환상에서 오는지 어떻게 압니까?

모든 불국토가 환상에서 왔다면 그것도 역시 맞는 말이죠! 어쨌든 환상에서 오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존재하니까 비-존재로 갈순 없습니다 우리가 살 곳은 있어야 하니까요! 우린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존재하는게 낫겠죠 좋습니까? 하지만 지금 하는 식으로 묶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평온하게 살 겁니다 존재의 계층은 많으니까요 그래서 영적으로 수행하면 물질적 존재나 우리의 마음과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이미 개체로 태어났습니다 우린 자신의 열망과 자유가 있으며 이젠 이미 태어났죠 육체나 세속적 차원을 단념하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특정 차원에서 살길 원하는데 그런게 있더라도 아직 없는것 같죠,그렇죠? 예컨대 얇은 셔츠 입는걸 좋아하는데 너무 가벼우면 안 입은 것 같겠죠 여름엔 너무 더우니까요 아무옷도 입고 싶지 않다고 다 벗고 밖을 돌아다니면 경찰이 우릴 체포하겠죠! 하지만 우린 단순히 얇고 가볍고 몸을 가려주면서 불편하거나 몸을 너무 덥게 만들지도 않는 옷을 입고 싶죠 영적으로 수행한다고 불국토와 세속을 모두 다 포기한다면 난 여러분을 아주 우러러보겠어요 어디서 살 건가요? 우리가 살 곳은 분명 있어요, 맞죠? 그런 장소들은 있지만 없어요 이해됩니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죠 존재하기 싫다고 해도 좋습니다,아주 쉽지요!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존재가 될 겁니다 우리 거주지로가면 자신이 지닌 것을 모르지만 또한 지니지 않는것도 모릅니다 아직 비-존재를 본다면 여전히 존재하는 것과 비교한다는 거죠,이해되죠? 고로,위에는 존재가 있지만 비-존재와 대조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호흡이 자연스러운 만큼 더 이상 관심이 없지요 존재하지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복합 명상수행과 정토종 또 관음법문 사이의 차이와 유사점이 무엇입니까?

복합 명상수행과 정토종은 나중에 창조된 걸로 부처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토법이 유래된 곳을 알아야만 합니다 원래는 명상이었어요,왜죠? 여왕 바이데히는 아들에게 체포되어 차가운 감옥에 갇혀서도 그녀는 부처를 생각하며 명상했죠 그녀는 부처의 제자였어요 부처가 아직 살아있을 때죠 명상하면서 그녀는 부처를 무척 열망했으며 세상은 무례하고 비참한 곳이라 아이들은 부모를 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자비심,정의,사랑이 있는 세상으로 가길 원했죠 여기처럼 고통이 가득한 세상이 아니고요 그녀는 명상중에 그걸 깊이 생각하면서 부처에게 구하러 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훨씬 평온한 세상에 데려가 달라고 부처에게 청했지요 그러자 부처가 화신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해됩니까? 물질적 육체로 온게 아니죠 부처의 화신은 그녀를 정토로 데려가 보여줬어요 그녀는 방문한뒤 기뻐하면 말했죠,오! 너무 좋습니다 죽은뒤에 어떻게 가나요? 부처는 매일 명상하면서 이 세상만을 반복해서 기억하라고 말했죠 “오늘 당신이 이미 봤다 당신은 아미타불과 관음보살과 팔공덕수를 봤으니까 집에가서 기억하려고 하면 미래에 분명히 이세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요 그 체험은 명상에서 왔죠! 여러분이 관음법문을 명상하면 언젠가,또는 내일 즉시 부처,아미타국,또는 다른 차원을 볼수도 있습니다 거기 관심이 있다면 “주문”하면 되죠,이해되죠? 나중에 여기로 올라와 살수 있는지 그에게 묻겠죠? 부처는 좋다고 할겁니다 삼매에 들려면 명상해야 하는데 그게 정토법입니다 불명을 암송하는걸 마냥 계속하는게 아닙니다 나무 아미타불하며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에요 많은 내 제자들이 정토를 계속 방문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좋아할 겁니다 난 여러분에게 뭔가 다른걸 가르치는게 아니죠! 비행기표를 얻게 도와주면 여러분은 어디든 갈수있죠 비행기가 있으면 여러분이 원하는 어디든 데려갈게요! 정토에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죠 그럼 예수가 보고 싶은 기독교인은 어쩌겠어요 우린 강요할 수 없습니다 이 법문은 그저 비행기 같은 역할을 합니다 다른 비행기로 예수를 보고 싶어한다면 그것도 괜찮죠 많은 내 제자들은 예수를 가서 봅니다 보고자 하는 것을 볼 겁니다 그것이 자유의 방식이지요 그렇지요? 왜 우리가 항상 사람들에게 서방정토로 가라고 강요하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동방 정토를 보고 싶어하면 어쩝니까? 그러니 보고싶어 하는 것을 볼 겁니다 그건 소원을 이뤄주는 보물 이죠 이 법문을 수행하면 원하는 뭐든 얻을 겁니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은 서방 정토를 듣고 이렇게 반응할 필요 없어요 “아니요! 그 사람은 싫어요! 그는 뚱뚱하고 빨간 옷을 입었잖아요 난 예수가 더 좋아요!” 그것도 괜찮죠! 그러나 때로 불교도는 예수를 보고, 기독교인은 부처를 봅니다 때로 아주 익살스럽지요! 그러면 그들은 모든 종교가 ‘하나’임을 깨달을 겁니다 모든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다른 시간 대에서 서로 함께 일합니다 종교간의 다른 점은 없지요 모든 종교가 같음을 깨달은 후에야 서로 싸우지 않고 남을 포용할 수 있지요 우린 더 이상 극단적이거나 광신도 같지 않을 겁니다 괜찮아요! 미안하군요!

관음법문은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하나요?

관음법문은 부처의 선율을 명상하는 법문입니다 그건 마치 내가 일반적인 가르침을 설명하려 어울락 (베트남)어로 말하지만 부처는 높은 지혜를 설명하려 부처의 언어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매일 내 말을 듣고 마음이 자연스레 열릴 겁니다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건 그냥 말로 하는 강연일 뿐이죠 그러나 부처는 부처의 언어로 우리가 부처가 되도록 돕는 더 고상한 걸 설법합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 우린 부처와 공부해야 합니다 세속의 사람과 공부하면 세속적인 사람만 되지요 내가 하는 말은 그저 세속적인 것이죠 불음을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가 소위 ‘부처에게 배우는 때’입니다 이해합니까?

스승님 작은 집에 살며 세상살이에 바쁜 재가자를 위한 간단한 명상법을 알려주세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문제 없지요! 부부가 모두 수행할수 있죠 집이 작을 지라도 마음은 그렇지 않지요 공간이 좁아도 명상할 때 이런 큰 탁자 전부를 쓰는 건 아닙니다 앉는 건 눕는 것보다 공간을 덜 차지합니다 잘 자리가 있다면 명상할 자리도 있을 겁니다 바쁜지 안 바쁜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지요 낮에는 바쁘지만 저녁이나 새벽에 모든 가족들과 온 세계가 잠들었을 때 우린 일어나 명상합니다 때로 낮에 일하면 저녁에 명상할 수 있습니다 밤에 일하면 낮에 명상할 수 있지요 그냥 작은 구석을 찾으세요 다른 사람이 보게 하고 싶지 않으면 앉아서 천으로 가리면 됩니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한다면 이를 처리하는 방법도 있죠 그러나 관음법문을 배우려 하면 여러분에게 명확하고 완벽히 가르쳐 주기 위해 서너 시간은 걸릴 겁니다 깨달음 자체는 아주 빨리, 즉시 옵니다 그러나 영적 여정은 깁니다 많은 의식 수준이 있지요 난 완전히 설명해줘야 해요 내가 죽으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완전한 설명 때문에 4,5,6시간이 걸리죠

즉시 깨닫는 건 좋지만 나중에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완전한 지침을 주는 건 스승의 임무입니다 배우고 싶다면 제대로 배워야 하지요 대강 배우지 말고요 그러면 어디로 갈지 모르고 반쯤 간 후에 그냥 거기 정체됩니다 이제 당신이 채식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부처의 이름을 외울 수 없다면 집으로 돌아 가야 하죠 채식을 할 수 없으면 나를 따라 관음법문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에요 다른 법문을 수행해도 괜찮습니다 부처의 이름을 외우는 법문도 있고 호흡이 들어오고 나감을 주시하는 호흡 명상법도 있지요 혹은 앉아서 묻죠 “부처의 이름을 외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부처의 이름을 외는가? 나는 누구인가? 공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온갖 법문이 있지요 다양한 법문이 있어요 나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죠 그러나 난 가장 효과적인 법문이 있다고 믿습니다 앉아서 눈을 감고 이 지혜안에 우리의 생각을 모으는 거죠 그리고 지혜안으로 정면을 바라봅니다 부처가 오든 풍경이 오든 보세요 어떤 경지의 체험을 하는 동안 그저 부처의 이름이나 어떤 만트라를 욉니다 부처의 이름을 외고 싶지 않으면 “옴마니반메훔”을 외세요 준제 만트라, 알지요? “삽타남 삼막삼보리-고티남” “삽타남 삼막삼보리-고티남” 나무 삽타남-삼막삼보리- 코티남 등등을 외면 됩니다 혹은 약사불 주문을요 어떤 경지든 가고자 하는 경지의 부처의 이름을 외우세요! 특별한 부처가 보호해 주길 원하면 그의 이름을 외세요 준제관음 만트라, 약사불 만트라, 아미타불 만트라, 아주 많지요 가장 좋아하는 만트라를 하나 골라 매일 아침마다 입을 헹구고 이를 닦고 샤워한 후 부처의 동상 앞, 집 안의 조용한 구석을 찾아 앉으세요 눈을 감고 지혜안으로 앞을 바라 보세요 부처를 기다립니다 그가 오면 그를 보고 안 오면 못 보겠지요 어둠이 오면 어둠을 보고 흰빛이 오면 흰빛을 봅니다 때로 빛이 나타나죠 부처의 이름을 외워도 반응이 없으면 내 이름을 외워볼 수 있어요 그냥 시도해 보세요 그것도 효과가 없으면 안 해도 됩니다 때로 부처의 이름을 욀 때 여러분은 멀리 낯설게 느낄 겁니다 그러니 그냥 여러분이 가깝게 느끼는 이름을 외우세요 마음이 따뜻하고 영혼은 자연스럽게 안정되고 그에 대한 존경과 찬양의 마음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축복의 힘이 올겁니다 그래서 두 개의 동일한 법문이 있지만 축복의 힘이 다른 겁니다 예를들어 내가 지금 법문을 가르쳐 주는데 어떤 이는 너무 바빠서 집에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물었지요 내가 가르치는 건 단순해 보이지만 결과는 명상 중에 확실히 나옵니다 다른 이가 같은 법문을 가르치지만 결과가 없죠 이해합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수표를 써주는데 큰 은행에 예치금이 있다면 우린 돈을 인출할 수 있죠 반면, 예치금이 없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수표를 다섯 장,열 장을 써 줘도 쓸모 없습니다 그러니 무형의 축복의 힘은 수행한 이에게서 옵니다 이해합니까? 예를 들어 오랜 시간을 들여 돈을 번 사람은 은행에 저축한 돈이 더 많을 겁니다 오랫동안 옳은 법문으로 수행한 사람은 가피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기도하면 우린 엄청난 성과로 이득을 얻습니다 아미타불이 살아있을 때 그가 불성을 얻었기에 중생들은 그에게 기도를 한 번만 해도 즉시 서방정토로 간 것처럼요 세속적인 사람에게 그 기도를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차이점은 법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점에 있죠 법문은 동일하나 스승의 수준이 다릅니다 그래서 결과가 아주 다른 겁니다 이해하기 아주 쉽게 예를 들면 우리가 두 선생님께 배우는데 둘 다 영어 선생님입니다 한 사람은 우선 우리에게 ABC카드를 보여줍니다 26글자가 적힌 것을요 그런 다음 몇 문장을 가르칩니다 이런 것들을요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군요 이름이 뭐죠? 내가 손든다 당신이 손든다 우리가 손든다 그런 것들을요 그러나 둘은 수준이 다릅니다 발음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죠? ABC를 읽어도 발음이 올바른건 아니지요 그래서 공부하는데 최선의 선생님을 찾아야 합니다 학위를 받은 학교가 어딘지 발음이 어떤지 보세요 ABC를 가르치는 사람은 다 같은게 아닙니다 그냥 눈감고 하나 고르면 큰 차이가 있어요 왜 부처를 믿어야 하지요? 부처를 믿는게 평온한 마음 만큼 중요한가요? 아니오! 부처를 믿으라해도 마음이 불안하다면 평화로운게 아니니 부처를 버리는게 낫지요 알겠어요? 평온한 마음이 부처의 목적입니다 부처의 탄생목적은 평온한 마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처를 믿지 않고 부처를 따르지 않는다면 마음은 평온하지 못할겁니다 이미 마음이 평온하다면 그건 좋습니다 축하드려요!

입문하고 싶은데 남편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남편이 반대한다고요?(네) 남편이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나 봅니다 괜찮아요 이 테이프를 가져가 오늘 보여주세요 이런 거죠, 이 세상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가장 사랑하며 그 다음이 부부간의 사랑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아내나 남편이 수행을 한다면 하면 채식을 시작한 후에 출가하여 머리 깎고 절에 갈까 두려워하지요 이것이 첫번째 입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삭발하고 출가하는게 아니란 걸 설명해야 합니다 단지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채식하고 싶다고 말하세요 두번째로 남편은 채식이 아내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것을 걱정합니다 음식이 임신과 출산하는데 영양이 부족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아닙니다 최근 과학은 채식은 매우 영양이 풍부한걸 증명합니다 채식을 더 해야합니다 나의 제자들이 출산한 아기들은 병원의 다른 아기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혈색이 좋습니다 거기 간적이 있어요 보러 갔었지요 때로는 그들이 초대했어요 때로는 자궁에서부터 채식한 아기가 더 건강하고 더 크게 우는 걸 보았습니다 그는 누가 때려야지만 웁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누워서 잡니다 너무 행복해서 안 울지요 이미 채식인으로 태어났고 부모도 수행자였어요 그러니 왜 울겠습니까? 그도 곧 스승을 만날 것을 아는데 왜 울겠습니까? 그래서 울지 않습니다 믿지 못할것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렝이란 곳에 사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녀는 제자였죠 어느날 그녀는 일하다가 아기가 나오려 했어요 아무튼 그녀는 스승으로부터3일 후에 낳을 거라는 걸 듣고 낳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3일 뒤에 하기로 결정했죠 그런데 일어나버렸어요 산통이 심하게 왔고 양수는 이미 나오고 있었죠 양수는 나왔지만 어디서 나왔는지 몰라요 양수가 터져서 의사는 곧 아이를 낳을 거라했어요 갑자기 그녀는 떠올랐어요 스승이 3일 후에 거기 올 것이고, 그녀가 3일후에 분만할 것이라는 것을요 출산이후 병원에 있어야 하니까 스승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죠 오랜시간 동안 그녀는 스승님을 그리워했어요 그러자 양수가 나오는 것이 멈추었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멈추었어요 의사는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집에 가라고 했죠 네, 집에 갔어요 그녀가 집에간 후 3일뒤 내가 거기 갔어요 세상에! 나한테 일이 생겼지요! 나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 갔어요 그렇죠! 내가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산통이 왔어요 도착하자마자 나는 쉬지도 못해서 피곤했어요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야했죠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때 아무도 집에 없었고 그녀의 분만을 도울 사람은 이 영적 스승밖에 없었죠 택시를 부를 시간도 없었고요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자 의사는 오후가 되어야지 출산할 것이라고 했어요 오후가 되어야 한다고요 난 혼자 말을 했어요 세상에,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다른 약속이 있었어요 지금 빨리 낳지 않으면 늦을 테니까요 그러자 바로 출산했어요 아직 다 끝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분만을 하자 아래층에서 달려왔던 의사도 어쩔 수 없었어요 오후에 나올 거라 생각해서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의사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뛰어야 했어요 난 내 눈으로 그가 아래 층에서 뛰어오는 걸 봤어요 그가 달려왔을 때 그녀는 아기를 낳았어요 분만후… 아직 안 끝났어요 분만 후에 아기가 울지 않았어요 아주 컸지만 울지 않았어요 아주 잠잠했어요 의사는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나 의아해 했어요 급속분만이 뇌에 영향을 줬나 하고요 그는 아이를 때렸지만 아기는 안 울었어요 아기는 완고하게 안울었죠 의사는 아이가 무슨 병이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쪽으로 데려가서 뇌 검사를 위해 주사를 줬죠 그리고는 거기 가둬놓고 내보내지 않았어요 부부는 너무나 걱정했어요 그들은 이상하다고 말했어요 왜 아기가 아프죠, 스승님? 스승님 애긴데 왜 아프죠? 그들은 나한테 불평했어요 왜 스승님이 오시길 기다렸는데 아기가 아프죠? 난 아픈게 아니라고 했어요 울지 않을 뿐이었죠 아기는 전혀 안 아팠는데 거기에 며칠을 뒀어요 아무 진단도 내리지 않고요 난 말했어요 더 이상 거기에 두지 마세요 아기는 괜찮아요 죽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하지만 그들 친구가 괜찮지 않다고 했어요 이 경우는 아주 심각해서 퇴원하면 즉시 죽을 거라고 말했어요 두뇌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죠? 난 “괜찮으니 퇴원해라 아이는 안 아프다, 의사는 이런 건 모른다”라고 했죠 아기는 집에 온후 안죽었죠 정말 컸어요 의사는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채식을 했고 급속 분만을 했고 울지도 않았다면 무슨 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질병은 없었어요 지금 쑥쑥 크고 있고 통통해요 그러니 채식하는 엄마가 아이를 낳아도 문제없어요 아이에게도 해롭지 않아요 여러분에게 좋은 정보에요 종종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채식이 영양가가 없어서 아기를 낳을 힘이 없다고 생각하죠 때로 사람들은 많은 걸 걱정합니다 그래서 다 설명해야 합니다 당신의 선생이 채식이 괜찮다 하더라고 하세요 내가 가르쳐 준 것을 집에 가서 보여주세요 당신이 삭발하거나 출가하지 않을 거라고 그에게 말해주세요 남편을 더 사랑해야 해요 더 많이 돌봐주면 그는 안심할 겁니다 아내가 떠날까봐 걱정하지 않고 채식하게 놔둘 거에요 당신이 채식하든 육식하든 그에겐 차이가 없어요 그가 당신을 가로막을 이유가 없어요 우린 그걸 이해해야 해요

스승님, 왜 명상중에 호흡을 관하면 안 되는지 설명해 주세요

우린 한번에 한가지만 수행해야 하니까요 호흡을 관하는 건 다른 법문이에요 명상은 또다른 법문이죠 만일 여러 법문을 수행하면 신경계에 부작용이 있어요 따라서 많은 법문을 수행하는 이들이 정신 문제가 있지요 “마장에 걸린다”라고 하죠 한번에 한가지 법문만 수행해야 합니다 난 이미 관음법문이 가장 좋다고 말했어요 반면 호흡을 관하는 건, 부처에 따르면 “일시적인” 것입니다 능엄경에서 부처는 명백해 말했죠 “관음법문이 최고의 법문이며 다른 것들은 방편법이다” 그건 내 말이 아니니까 속인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경전을 철저히 읽어야 해요

왜 호흡법이 좋은 결과를 주지 않지요?

호흡 자체가 덧없는 거죠 호흡이 없는 무의식에 들면 어떻게 수행하죠? 우리가 자거나 호흡을 관할 수 없을 때 어떻게 수행하지요? 그러므로 관음법문은 우리의 불성을 깨웁니다 불성은 늘 존재합니다 이해합니까? 우리가 잠잘 때도 늘 존재하며 우릴 돌보죠 우리가 깨어났을 때도 우릴 돌봅니다 우리가 사고를 당할 때도 우릴 돌봐주며 무의식적으로 될 때도 우릴 돌봐줍니다 안전하려면 우린 그 지혜에 의지해야 하죠, 죽을 때뿐만 아니라, 살아있을 때나 사고가 났을 때나 약하거나 잠잘 때도요 호흡을 관하는 수행은 아주 덧없는 거에요 이해해요?

열개의 지옥문을 설명해 주세요 실재로 있나요? 어떤 영역인가요?

열개의 문이 아니라 십만 개의 문입니다 이렇게 설명될 수 있어요 두 종류의 지옥이 있어요 하나는 존재하는 지옥이고 다른 건 무형의 지옥이죠 존재하는 지옥은 예를 들면, 비탄, 고문, 잔인함, 강탈 감금과 같은 거죠 아주 잔인하고 끔찍하며 비참하죠 그게 존재하는 지옥이에요 아마, 우린 이생이나 전생에 어떤 악행을 했어요 아마 이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렸고, 지금 … 전에 우리가 그들을 처벌해서 반대로 그들이 우리를 벌하죠 그것이 존재하는 지옥이죠 우린 육체로 그걸 견딥니다 반면에, 무형의 지옥은 우리가 이 물질계를 떠난후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형의 세계라고 하는 세상으로 가지만 우리 육안에만 안보이고 요정과 부처의 눈에는 전부 안 보이는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보이죠 열반의 영역은 달라요 이 물질계와 무형의 세계는 달라요 물질계가 아니고 무형의 세계도 아닙니다 그건 다른 세계이고 더 아름답고, 더 고귀하죠 예를 들면 이래요, 죽으면 생각과 우리가 저지른 범죄를 함께 가져갑니다 그럼 스스로 지옥을 만들죠 다른 누가 하는게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부처가 된 사람은, 열반을 만들고 정토를 만들어서 그들의 친척과 제자가 거기 가서 살수 있어요 범죄자는 그들 마음에 지옥을 만들죠,이해해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죠 알지요? 우리 마음이 생각하는 것은 그 세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요하면 거기 머문다” 라고 하죠 그와 같아요 마음이 평온하지 않고 잔인하면 거기 머물죠 지옥은 신이 만든게 아니라 우리의 죄책감이 만든 거죠 그것도 단지 환영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빚을 다 지불하자마자 죄책감은 사라지고 우린 저절로 해탈하고 지옥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지옥에서 도망가는게 아니죠 왜 악마, 유령, 짐승들이 지옥에 보내지나요? 동물이라 불리는 피조물요 인간일 때 우리의 품성이 인간이 될만큼 높지 않으면 어느날 우리는 인체를 잃고 동물이 될 겁니다 우리의 점수와 등급이 그와 같으니까요 그래서 우린 인간으로서 최소한 오계를 지켜야 해요 죽이지 말라 채식을 할 수 없으면 최소한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강간을 하지 말며 다른 살아있는 피조물에게 어떤 해를 가하지 말며 절도, 거짓말, 음주, 도박, 담배, 마약 등을 삼가 하세요 그럼 미래에, 우리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겁니다 우리가 시험을 봐서 떨어지면, 같은 반에 남는 것과 같죠 2, 3년 있으면 우리를 쫓아낼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거기 있을 가치가 없으니까요 인간이 되는 것도 같아요 인간으로 되돌아오려면 제 가치를 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똑같아요 아, 악마에 대해서, 그건.. 아귀라 하는데 맞지요?

명상시간을 저녁에 가져야 하나요? 전 고요한 명상을 위해 이미 채식을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떠돕니다 입문 동안에 제가 고요함을 얻을까요?

입문 동안에 즉시 고요함을 얻을 것이지만 항상 저녁에 명상할 필요는 없이 아무 때나 해도 됩니다 왜 우리가 저녁을 말할까요 조용하고, 덜 소란스럽고 뭘 청하는 사람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거의 시간을 빼앗지 않고 전화는 이미 끊겼고 아이들은 잠들었고 모든 잡일은 처리되었죠 하지만, 저녁에 일한다면 낮에 명상합니다 그건 같아요 낮에 약간 더 시끄럽죠 초심자에겐 약간 명상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사실, 이와 같아요

떠도는 생각이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외부활동의 기록에서 옵니다, 안 그래요? 예를들어 기록하지 않으면 우린 아무 생각이 없어요 예를들면 우리가 뭔가 보고 있고 정신적으로 대단하게 느끼면 누군가 와서 우리에게 문제를 만들죠 5, 10분이나 몇 시간 후에도 나쁜 인상은 아직 남아있죠 우리는 그 생각을 즉시 멈추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맞지요? 그 사람이 오지 않았고 그 각본이 없으면 거기에 방해받지 않아요 거기 앉아 계속 생각하며 떠도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때로 방금 수행을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고요함을 좀 가지려고 산에서 장소를 찾아요 혹은 때때로, 우리 재가 수행자들은 조용한 명상시간을 가지려고 절을 찾아 갑니다 모두 단체명상을 함께 하러 오는 곳으로요 혹은 산이나, 정원에서 개최할 수 있는데, 이따금 영혼을 이완하러 갑니다 그럼 떠도는 생각도 아마 많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매일 계속 기록하면 어떻게 재생이 안되겠어요? 예를 들면, 녹음기는 우리가 기록하면 할수록 더 많이 재생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으면 테이프는 비어있죠, 맞지요?

저는 많은 병을 앓았어요 스승님, 제게 조언해주세요 전 평생 채식을 할수 없어요 많은 의사를 만났지만 제 병을 진단하지 못했어요

채식만 먹으면, 병이 치료될수도 있는데 왜 평생 채식할수 없다고 말하죠? 진단할 수 없는 병은 업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업의 병이고 육체적인 병이 아니죠 2, 3종류의 병이 있어요 어떤 것은 육체적이고 감염이나 소모적인 생활의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이죠 몸에 충분한 영양이 없어서 우리는 아파요 이것들은 피할 수 있고 영양분이나 주사가 즉시 병을 멈추게 하거나 멈추게 도울 수 있어요 업의 병인 경우에, 그것은 전생의 빚에서 옵니다 우리의 전생에, 남에게 불친절하게 대했거나 타인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했어요 그래서, 반대로 정확히 같은 병을 갖지요, 우리가 그 고통을 이해해서 나중에 감히 다시 그러지 않도록요 혹은 남의 고통을 보고 병에 접촉하는데 더 많은 연민을 가지겠지요 다름아닌 배울 수업이죠 모든 처벌은 단지 배우는 수업입니다 그래서,업병은 업의 수단인 공덕으로 치료해야 해요 보통, 병은 너무 많이 육식을 하고, 너무 많이 죽이는 것에서 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업장과 모든 살생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자신의 병을 없애려면 채식을 해야 합니다 병 때문에 채식을 할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도 평생 채식에 관심이 있어요 살생에서 오는 무거운 업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에요

1989년 9월, 1페이지에서 “무량광”이란 주제의 기사를 읽었는데, 거기서 제자의 요청에 따라서, 스승님은 “태상노군’의 천국의 알약을 돌렸어요 첫 번째 질문 … 스승님은 이런 천국의 알약의 진정한 가치나 효과를 아시나요? 두 번째 질문, 불교는 … “태상노군”은 아마 여담일 겁니다, 맞지요?

때로 난 농담을 해요 이해하지요? 난 요즘 것엔 흥미가 없죠 호리병을 갖는 게 재미있죠 스텐레스 보온병에 집착하는 건 옳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서, 호리병을 음료수 병으로 가지고 다니는데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재미로 그걸 마시죠 제자가 들고 다닐 것 없이요 그걸 물을 담는데 사용해서 식수로 쓰겠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안에 악취가 나서 더 이상 쓸 수 없었고 부서졌어요 때로, 그걸 운반하면서 여기저기 부딪쳐서, 물이 새나와서, 더 이상 음료수 병으로 쓸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 안에 내 약을 보관하곤 했어요, 일하느라 지치면 그 차를 마셨죠 중국의 약초로 만든 거에요 가벼운 음료이고, 이따금 그걸 마시면 정신력이 약간 증가할 겁니다 그러니까 난 호리병에 약을 담아서, 어딜가든 가져갈 수 있었지요 내가 그걸 마시는 걸보면 제자들도 원하게 되지요 스승이 가진건 다 원하죠 어떤 사람은 모든걸 원해서 그들을 위해 쿠키와 사탕을 갖고 다녀야 하죠 모두가 영적수행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니까요 어디서나 그들은 항상 집에 가져가서 먹고 병을 치료할 과자를 요구하니 늘 그들을 야단칠수 없죠 안에는 가피력도 있어요 없지 않습니다 이해하죠? 여러분이 어떤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같은 음식이라도 이 식당이 다른 식당보다 요리를 더 잘합니다 그건 모두 요리사가 요리 중에 마음이 편하고 만족하느냐에 달렸지요 때로는 수행을 하고, 부처의 이름을 외우면 음식이 당연히 맛있지요 여러분은 종종 묻죠 “왜 사원 음식은 그리 맛있죠?” 왜죠? 사원에선 꼭 채식만 만들지만 맛이 있어요 그 기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들은 부처께 올리는 음식 요리에 매우 신실하고 부처에게 올렸기 때문에 불보살이 축복을 줍니다 따라서 음식이 맛있지요 수행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우리에게 뭘 주든 그 안엔 사랑이 있고 그건 우릴 건강하게 해요 이해해요?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서 축복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뿐이죠! 심리학적인 작용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예컨대 때로 밖에서 사먹는 사탕도 좋지만, 종종 우릴 사랑하는 사람이 작은 조각을 주면 훨씬 맛있죠 때로 사랑이 있는 사람이 음식을 나눠주기만 해도 맛이 매우 좋아요! 왜 그렇죠? 그 사람이 우릴 사랑하는 걸 아니까 그나 그녀가 준 음식이 기분 좋고 맛있지요! 네 그건 영적 수행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해요 그들이 영적 수행자로서 큰사랑이 있으며 우리와의 소통한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뭔가 먹으면 기분이 행복합니다 그 안에 사랑이 있어서죠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 있죠 그 안에 있습니다 이해하지요? “불법은 세상 법을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세속적 예를 안 들면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해요 난 이해하기 쉽게 낭만적인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여러분은 바로 알아듣습니다! 내가 2,3일동안 아미타경을 얘기한다면 여러분은 잠들 거예요! 모두 잠들어버릴 까봐 난 그 두꺼운 경전에 감히 손대지 않아요 따라서 난 경전과 세속적 주제를 접합하는 식으로 모두 다루어야 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요

불교는 선약을 만드는 수행을 받아들입니까? 감사합니다

선약은 “소원 성취 보석” 지혜를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선약이죠 예를 들어 내가 주는 사탕이나 과자 또는 먹는 약이 있는데, 제자들이 내가 먹는 것을 보고 달라고 하면, 재미로 알약을 줍니다 각자 스승으로부터 뭔가를 받지요 뭔가 얻으려고 오랫동안 나를 기다립니다 때로는 내가 외국에서 돌아올때까지 몇달씩 기다리지요 그렇게 갈망할때는 선약이 아니어도 스승이 준거라 기쁜거죠 하지만 내가 약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농담으로 태상노군에서 왔다고 하지요 내가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유머 감각이 있는 걸 알고 있지요 더 많이 웃을수록,더 젊어지고 느긋해지지요? 그래서 선약이라고 하는 겁니다,알겠어요?

자비로운 스승님 저는 출가하고 싶은데 세속적인 집착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19살 적에, 어울락(베트남) 에서 대 무상도를 수행했었습니다 채식을 하고 일년동안 수행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 교파를 믿지 못하고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그 교파에 지원할 때 엄중한 서원을 요구했어요 계율을 어기면 먼지가 된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어요 저는 신과 부처는 자비롭고 저를 벌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영적 수행 준비가 안돼 있지만,앞으로 돌아 올겁니다 도와 주십시오

신실하다면,언젠가는 가능하게 됩니다 수행이란 우리의 내적 자아를 닦고, 채식을 하며 불성을 찾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어떤 종파에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어요 때로는 더욱 평온하고 더욱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절에 가서 덕망있고 깨달은 스승을 따르지요 그를 따르기 위해 삭발도 합니다 어떤 종교를 따를때는 그 종교의 계율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출가할 필요는 없죠 사람들은 집에서도 수행할 수 있어요 불성을 찾게 되면 출가승과 같게 된다고 이미 얘기했습니다 출가란 삼계를 떠난다는 뜻입니다,알겠어요 그저 삭발을 하고 절에 가 명상하는 게 아닙니다 더럽고,좁고,골치아픈 집을 떠나,웅장한 절에 가는 것이 진정한 출가가 아닙니다 절에서 사는 것이 한층 더 편하긴 해요 사람들이 절을 하고,스님 선생님하며 부르지요 반면에 집에서는 “소년” “소녀”또는 “여자”라 부르죠 스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지요? 천주교로 출가하는 것은 한결 더 좋지요, “신부님” “수녀님”하고 부르니까요 왜 모두들 출가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출가하는 게 훨씬 좋지요 집은 비좁지만 절은 넓고 근사하고, 사람들이 떠받들고, 공양을 하고 돈을 쓸 필요도 없고, 어디에나 항상 좋은 음식이 있지요 하지만 이게 출가가 아니지요 출가한다는 것은 우리의 내적인 자질을 일반 사람에서 보살과 부처로 변화시키는 겁니다 이것만이 출가입니다 불성을 찾는 것이 영적 수행의 시작이지요 자신의 불성을 깨닫고 삼계를 뛰어넘은 수행자를 출가승이라고 합니다 작은 “집”을 떠나서 더 큰 “집”으로 가는 그런 수행은 성과가 좋지 못합니다

칭하이 무상사를 따르기 위해 입문을 받고 나중에 마음을 바꿔도 되는지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안전한 길을 택해야 합니다 나를 영원히 따르라고 안해요 하지만 한번 택하면 되돌리지 못해요,왜일까요?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나를 영원히 따르라고 강요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이길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깨닫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떤 길을 택했다면 우선 알아야 해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나를 따르겠다면,적어도, 지금,알아야 합니다 “아!칭하이 스승이 매우 유창한 걸 보니,이 법문이 뛰어난 것임에 틀림없어, 그녀의 말은 정말 진리야” 적어도 선택을 하기전에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아니면,마치 신부에게 “자기야,당신을 정말 사랑하는데,훗날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도 될까?” 하는 것과 같지요 이런 걸 물어보지는 않겠지요? 그러면,신부가 결혼하려고 하지 않을거에요,그렇죠? 그녀가 생각하기를, “아직 결혼도 않했는데 벌써 그런 말을 하다니”하겠죠 그녀를 정말 믿지 못한다면 기다려야 해요,맞지요? 모든걸 완전히 검토하기 위해 얼마간 기다리거나 스승이 정말 좋은지 아닌지 보기 위해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볼수 있지요 자문해 보세요 ‘그녀의 말이 정말 설득력이 있나? 옳바르게 수행하고 있나?’ 내 책을 더 읽어 보거나 비디오를 더 보고,녹음 테이프를 더 들어보세요 확신이 서게 되면 이 길을 걸을수 있습니다 지금 결혼을 하고, 후에 버리지 마세요,알겠어요

불교 신자이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결혼이요? 전혀 잘못이 없어요 모든 종교는 선행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기독교의 “십계명”에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살생하지 말고,훔치지 말고,간음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고 하지요? 험담이나 거짓말도 안되죠? 술 마시지 말고.. 불교와 똑 같아요 기독교는 잘못된 것을 가르치지 않아요 틀린 점은 성경의 몇몇 단어들이 잘못 해석이 되어 있지요 때로는 여분의 말을 덧붙였어요 “신은 소를 먹기 원한다”라고요 성직자가 틀린 겁니다 신이 그런걸 먹기 원한게 아니라 그들이 먹기 원한 겁니다,알겠어요? 고대에는 모든 나라들이 좀 미개했어요 알겠어요? 제물과 이득을 얻으려고 특정 종파에서 수행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종교든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신에게 공양을 안하면 너를 죽일거다! 집에 가 소를 잡아 신에게 바쳐야 한다”라고 하지요 공양한 뒤에 누가 먹지요? 아십니까? 물론 그 종파 사람들이 먹겠지요 어떤 신이 먹겠어요? 지금은 말법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이 옳고,자신의 길이 우세하고, 빨리 열반에 들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어떻게 알수 있지요? 어렵지만 또 쉽기도 해요 첫째,외부인으로서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도덕적인지 보는 겁니다 성서에 쓰인대로 실행을 하는지? 내면의 영적 수준을 잴 수 없으니 알기 어렵죠 천상의 눈을 열어 그들의 찬란한 빛을 볼 수 있다면 좋은 수행자란 걸 알 수 있지요 지혜의 눈이 열려 있지 않다면, 그들의 수준을 알수 없어요 그래서 스승이 어떻게 제자들을 가르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보지요 그가 어떻게 사는지 돈이나,처자식에 대한 욕망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철저히 검토해야 합니다 큰 건물을 짓고 호화롭게 살면서 명성을 떨치고 싶어하는지, 여러분에게 뭘 바라는지, 조건없는 헌신하는지 보세요 이것이 그가 정도에 있는지 보는 첫째 전제조건입니다 어떤 종교가 더 높고 낮은지에 대해 말 할 필요가 없어요 만일 채식을 못 한다면 제자들에게 살생의 업을 덜기 위해 채식하라고 가르칠수 없지요 “중생에게 살생이 없다면 세상에 전쟁이 없을 거다” 전쟁은 아침 식탁에서 시작됩니다,그렇죠? 채식을 하지 않고 불성을 찾기 위해 마음을 관하는 바른 명상법을 가르치지 않는 선생은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럼 정도가 아니란 걸 알지요 왜 일까요? 보리는 마음에 있으니까요 극락은 내면에 있어요 우리 자신의 불성과 극락을 찾는 법을 가르치고, 자신의 스승이 되는 법을 보여 줄 수 있는 스승이라면 옳은 길입니다 어떤 종교인지 알 필요가 없어요,알겠어요?

우리가 부처가 된 뒤에 전생의 빚을 갚아야만 합니까? 아니면 부처에게 카르마가 있다고 해도, 중생에 비하면 그렇게 무겁지 않은 건가요

누구도 업의 법칙을 면치 못해요, 부처라 해도요 부처라도 빚이 있다면 빚을 갚아야 합니다 현생의 삶에 한에서요 과거 생의 빚을 갚을 필요는 없어요, 알겠어요 왜냐하면 일단 부처가 우릴 입문시키면 그가 세세생생 쌓인 우리의 모든 빚을 태울 겁니다 그래서 미래에는 뿌리내리지 않을 거예요 그의 제자들은 원하지 않는 한 이 세상에 돌아와 더 이상 비참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오는 건 쉽지만 올라가는 건 어렵죠 그래서 부처 역시 그의 빚을 모든 태웠거나, 수행하면서 아직 뿌리내리지 않은 모든 업을 태웠어요 신선하고 살수있는 씨앗만이 뿌리내릴 겁니다 우리가 그걸 땅에 심으면요 타버린 씨들은 더 이상 싹틀 수가 없을 거예요 업은 사실 존재하지 않죠 본래 존재하지 않는 업을 지우는 비결을 아는 한 남은 업이 없지요 모든 것엔 열쇠가 있어요 열쇠가 없는 건 없어요 예를 들어, 많은 테이프를 여러분이 녹음해놨어요 어린 아이들만이 어떻게 테이프를 지우는지 모르죠 어른이면, 이미 방법을 알고 매일 테이프를 갖고 놉니다 언제든 우리가 원할 때 그걸 녹음할 수 있고 지울 수 있죠 정말 쉬워요 그냥 버튼을 누르면 모두 지워집니다 본래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불성은 본래 순수하고, 본래 공이니까요 바깥의 먼지는 즉시 씻길 수 있어요 매우 빨리요 그러니 이 세상에서 우린 부처가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할수 있지만, 이생의 빚이죠 예를 들어, 한 부처가 이 세상에 내려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를 예로 들어보죠 그가 내려온 순간 그는 이미 황궁에 있었어요 매일 그는 먹고 마시며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삶을 즐겼어요 때때로 그는 살생 계율이나 다른 계율을 어겼습니다 부처가 된 후에 그는 이런 것들을 갚아야 했죠 그가 축적해온 업장을 갚아야만 했어요 과거 생의 업장은 이미 다 끝났어요, 알겠어요 그래서 부처는 아프지 않았죠 때때로 그는 두통을 앓았을 겁니다 중생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갖 고통이 있습니다 단순히 두통만이 아니라 머리 속 고통을요, 알겠어요 정신적 고통과 고민을요 그런데 부처는 때때로 몸에 약간의 고통만 느꼈어요 때때로 부처는 그의 제자들 예컨대 라훌라 등을 꾸짖었어요 하지만 그건 허공에 바람이 지나가듯 일어났죠 형체없이, 아무것도 없이요 그건 마치 물 위에 뭔가를 쓰는 것과 같아요 그게 단어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니죠 따라서 부처는 우리 같이 두통을 앓지 않았어요

칭하이 무상사님 저는 종종 경전을 욉니다 경전에서 불자가 관음보살의 이름을 기도할 때마다 그가 보호하러 올 거라고 합니다 왜 그는 제가 힘들어서 그 이름을 부를때 오지않나요

왜냐하면 당신이 관음보살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전화선이 아마 고장 났겠죠 언젠가 그에게 성공적으로 기도하고 싶다면, 내게 선을 다시 연결해달라고 해야 되요 입문은 선을 재연결하는 거죠 신과 부처에게 선을 연결해서 여러분이 들을 수 있지요 부처가 온다고 해도 여러분은 그를 들을 수 없죠 예를 들어, 지금 여기 앉아서 기도합니다 “부처님, 오늘 어떤 사람을 찾고 싶어요 또 5000달러를 만들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하고요 그럼 관음보살이 여러분에게 오지만, 어떻게 그를 듣지요 관음보살이 와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가면 그가 있어 그럼 그가 돈을 주거나 그 돈을 벌도록 일을 줄 거야” 하지만 부처는 다른 말로 이야기합니다 부처는 정화된 곳에서 오고 우린 거친 곳에 있습니다 우린 부처가 올 때 그를 보거나 들을 수 없어요 소통이 안되죠, 알겠어요 우리가 “라디오”와 “TV”를 설치한 후에, 우린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양쪽 모두 서로 소통할 수 있지요 기계가 고장 나면, 내게 와요 그럼 그걸 무료로 고쳐줄게요

어떤 이들은 당신이 라마교의 티벳 밀교에서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게 사실인지요 또 밀교가 뭔가요 저를 일깨워주세요

난 라마교의 밀교에서 오지 않았어요 밀교가 뭘까요 그건 내면의 비밀 전수에요 누구도 우리의 부처를 보거나 우리의 왕국을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비밀”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여러분은 날 알고 나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들어서, 내가 영적 수행자란 걸 이미 압니다 하지만 만약 내일 내가 청바지를 입고 가발을 쓰면 옆을 지나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비밀”이라고 부르죠 우리가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않고 수행하니까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간 정도 수행한 사람과 초보자들은, 어딜 가든 그들을 알아보기가 쉽습니다 수행의 냄새가 사방에서 납니다 전에 내가 오랫동안 절에 머물렀을 때,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랐어요 내가 서너 번 발견되고 계속해서 끌려나온 후에야 난 강연을 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하지 않았어요 절에 머무르는 동안에 난 낙엽을 쓸었어요 난 작은 승려였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선배 스님들을 위해 요리했죠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랐어요 나중에 냄새를 간파한 후 참견 잘하는 관음보살에게 비밀을 들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날 끌고 나갔어요 난 여전히 나가지 않았죠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허나 여전히 난 도망갔어요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사람들이 와서 날 끌어냈어요 어떤 부처가 그들을 보냈죠 하지만 그 사람은 전에 날 한번도 안 봤어요 또 그녀는 내가 있던 절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국인이었어요 그 절은 유명한 중국 스승의 절이었어요 그는 아주 유명했어요 미국인 제자들이 많았죠 매일 미국인 제자들이 왔을 거예요 매일 그들을 위해 요리하고 설거지에, 화장실 청소를 했지만 내가 누군지 몰랐죠 그녀는 내 이름이나 얼굴도 모른 채 멀리서 왔어요 하지만 내게 와서 입문을 시켜달라고 요청했지요 그게 3번째로 발견된 거예요 첫 번째 발견은 인도에서였죠 난 역시나 도망갔어요 두 번째는 포모사에서 세 번째는 미국이었어요 네 번째 발견은 다시 포모사에서였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나와있죠 계속 숨어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영구히 나왔죠 하지만 난 라마교의 밀교 출신이 아니었어요 난 히말라야에서 한 스승과 수행했어요 그는 그가 무슨 종교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보고 난 그가 부처란 걸 알았어요 뭘 말할 필요도 없었죠 그의 빛이 정말 밝아서 정말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그건 지혜안으로만 볼 수 있지요 그를 누구나 그렇게 볼 수는 없었어요 난 라마교의 밀교 출신이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아주 오래 전에 밀교가 이 법문이었어요 이 관음법문이요 하지만 나중에 없어졌어요 모든 다른 종파와 종교들도 관음법문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원래 법문을 잃은 뒤, 사람들이 경전과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외부의 것들에 엎드리며 내면의 영혼을 잊었어요 그들은 주된 수행을 잊었죠

경전 구절에 대해 일깨워주시겠어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전 경전에 대해 잘 모르니 가르쳐주세요

그 구절은 불교의 반야심경에 있습니다 어느 절이든 이 경전이 있죠 승려에게 물어보면 알 겁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관자제보살이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의 체험입니다 그녀는 또한 관음보살이죠 깊은 명상 중에 존재하지 않는 듯 몸을 봤죠 “…오감이 공한 성질을 봤어요” 경전 전체는 아주 길어요 이와 같지요 “관음보살이 반야바라밀을 깊이 수행할 때 오감이 모두 공이란 걸 인식하고 고난과 재난에서 구해졌다” 그리고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며 즉 형상은 공과 같고 공은 형상이며 느낌, 인식, 충동, 인식도 이것과 같다” 이와 같아요 관음보살은 깊은 명상 중에 그녀 몸이 비었다고 느꼈죠 “모든 오감이 공이다”라는 뜻은 눈, 코, 혀, 몸,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녀는 즉시 그것이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걸 깨달았죠 형상은 공과 같고 공은 형상과 같지요 누군가 전에 내게 물었어요 서방정토가 환영이라면 어떻게 중생이 아미타불의 나라에 갈 수 있는가? 그 곳은 있지만, 없어요 “색즉시공입니다” 유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를 설하려고 태어났죠 어울락(베트남)에서는 미륵불이 미래에 황금시대 주군으로 태어날 거라고 합니다 그 사이에 어떤 상호이해가 있나요? 우리는 거기 앉아 그들이 오기만 기다릴까요? 그가 오려면 얼마나 걸리죠? 때로, 부처는 이미 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죠 때로는, 우린 경전에서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요 석가모니부처는 5천 년, 혹은 5십만 년 후에 미륵불이 태어날 거라고 했지만, 부처의 원래 말은 잃어버린 걸 우린 알아야죠 그는 5년, 혹은 5백 년이라 했지만, 그건 변경되었죠 0이 하나 더 추가되었고 별로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요 미륵불은 여러 번 거듭해서 태어났어요 우리가 그를 만날 수 없어서 그를 백년, 천년, 혹은 만년 동안 볼 수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이미 그를 만나면 우리 바로 앞에서 그를 알 수 있어요 “인연이 있으면, 천 마일 떨어져 있어도 만날 것이고 인연이 없으면, 대면해도 서로 알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미륵불을 기다리면 안되고 우리도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게 좋아요 그가 출현하든 말든 우린 먼저 즐기러 불국토에 가거나, 그를 기다리며 아주 오래 지옥에 있을 것입니다 죄와, 무지로 그런 삶을 살면 우린 아마 그를 기다릴 만큼 오래 견디지 못할 겁니다 차라리 먼저 수행하고 채식하고, 선행을 하고 악행을 피하고, 나를 따라 관음법문을 수행하세요 난 미륵불은 아니지만 미륵불이 누군지 상관없고 출가자의 명예를 걸고 당신을 불국토로 데려가고 당신은 생사의 굴레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약속합니다 그럼 충분하지요?

신수는 다음 구절을 썼어요 “몸은 보리수다” 육조는 되받아 썼어요 “보리는 나무가 아니다” 나무가 없다는 뜻이죠 그럼 보리는 뭔가요?

이 두 사람은 불교를 수행했죠 보리는 우리 지혜를 상징해요 보리는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음”을 뜻해요 빛나는 지혜, 빛나는 깨달음이죠 우리 부처의 마음은 불성이라 불리고, 보리지요 그걸 성취한 자는 누구나 “보리”라고 불리고 “보리”는 “부처”를 뜻하죠 자, 이와 같아요 신수의 수행은 그 수준이었죠 신수와 혜능 두 사람의 스승은 어느 학생이 최고인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의 가사와 발우를 후계자가 될 사람에게 첫째 계승자에게 넘겨줄 수 있었어요 신수의 수행은 아직 평범했죠 그의 “보리”는 아직 나무와 잎이 있죠 아직 거울이 있고 그걸 닦아야 합니다 “서있는 거울”이요 혜능의 수준은 약간 더 높았죠 그는 업이 원래 텅빈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알았어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래서, 뭔가 닦을 필요가 없죠 깨닫자마자, 모든 슬픔 모든 세세생생의 업이 즉시 사라질 겁니다 청소할 필요가 없지요 떨어지는 잎이 없어요 계속 청소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신수는 아직 형식에 집착했고, 점진적 각성을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죠 매일 그걸 청소해야 하고 이것저것을 하면, 언젠가 깨닫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혜능은 즉시 깨닫는 법을 알았어요 즉 즉각 깨닫는 법이죠 일단 깨달으면, 세세생생의 모든 슬픔과 고통은 당장 멈출 것입니다 그는 해답을 알았어요 입문은 같은 식으로 작용해요 입문하자마자, 세세생생의 윤회, 우리의 모든 업은 완전히 소멸될 것입니다 태워졌지만, 태워지지 않죠 업은 원래 공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없애는 비법을 모르면, 존재하죠 유사하게, 원래 공 테이프에 녹음을 하면, 뭔가가 있지요 지우기 단추를 누르면 텅 비게 됩니다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죠 이처럼 모든건 열쇠가 있죠

왜 법화경, 지장경 등의 경전이 있지요? 불교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외에 얼마나 많은 법문이 있나요?

팔만 사천 법문이 있다고 하지만 또한 관음법문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법화경도 관음법문을 언급합니다 산타아나에서 개최된 강연에서, 보문품을 약간 말했죠, 오늘 법화경이 관음법문에 대해 말하는 걸 증명하기 위해 더 말해주겠어요 예를 들면 법화경에서 부처는 말했어요 깨달음을 얻은 진정한 법사는 육신의 귀를 사용해서 청각기관을 열수 있다 육신의 귀를 사용한다는 것은 귀를 막을 필요가 없고 어떤 도구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북소리, 트럼펫, 목어소리와 천국, 지구, 지옥의 소리와 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부처는 내면의 소리뿐 아니라 외부소리도 들을 수 있다 했죠 외부의 소리 만이 아니죠 부처는 트럼펫소리 북소리, 종소리 목어소리를 말할 때, 우리가 오해해서 이것들이 외부의 소리, 외부의 종소리, 목어소리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지요 그래서 부처는 내면과 외면의 소리를 모두 들을수 있다고 분명히 말해야 했어요 그것은 두 가지 소리가 있다는 것을 뜻하죠 외부음악 같은 물질적 소리와 음악 없이, 악기 없이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들은 부처의 소리를 말합니다 부처의 소리는 조화롭고 음악처럼 선율이 있지만 외부의 음악은 오직 우리가 정신적으로 이완하게 돕지요 우리 몸은 이완되고 행복해요 불음, 부처의 말씀은 아주 조화롭고 우리 지혜를 엽니다 우리 마음이 이완되고, 몸이 건강해지는 걸 도울 뿐 아니라 우리의 부처 지혜도 열어서 매일 더 지적이고 더 현명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우리를 묶고 있는 구속 걱정, 무지, 오해에서 해탈할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묶지 않죠 오직 오해만이 우릴 묶지요 그건 업이라고 불리며 업은 우리를 구속합니다 우리가 세세생생 잘못된 정보를 기록했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오해와 그릇된 개념을 지울 불법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자연히 자신을 해탈시킬 진리를 압니다 여러분이 나와 함께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이 모든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가 법화경에서 관음법문임을 언급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습니다

전 스승님을 따르고 싶은데 자주 뵙지 않고 어떻게 따르지요?

난 이 육체가 아닙니다 거기에 집착할 필요 없지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수많은 화신이 있습니다 우린 서로 소통하기 위해 지혜를 사용하죠 몸이 아닙니다 그러니 집착할 필요 없어요 우린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부처의 지혜를 배우지요 스승에게 집착할 필요 없죠 세속적인 것을 배울 때만이 물질적 도구를 사용합니다 불성을 배우려면 영적 도구를 사용해야 하죠 난 어디있든 여기있으며 여기 있지만 어디나 있죠 걱정 말아요 아직도 걱정스럽다면 편지를 쓰세요 편지 쓰거나, 전화하거나 포모사로 나를 찾아 오세요 요즘은 아주 쉬워요 옛날처럼 산을 넘고 물을 건널 필요가 없습니다 비행기에 올라타면 되죠 그럼 되요 그렇지 않나요? 날 매일 보지 못하면 수행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지 마세요 마음으로 수행하지 스승과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에게 힘이 있다면 그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 있든 우릴 보호하고, 가르칠 수 있죠 그것이 참 스승이지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스승’이란 직함은 잊는 게 나아요 무형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무소부재하지 못하면서 중생을 속여 자신을 스승, 선생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아직 진정한 스승이 아닙니다

스승님, 전 난민을 위해 돈을 좀 기부하고 싶어요

좋습니다 난민을 위해 돈을 기부하고 싶다면 좋습니다 다만 돈을 받는 것이 문제가 될까 두렵습니다 이해합니까? 때로 여러분은 그 돈이 난민에게 가는지 다른 사람 주머니로 가는지 의심하죠 난 돈 문제를 아주 싫어해요 아주 성가시죠 그래서 받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기부하고 싶으면 좋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주면 내가 어울락(베트남) 난민을 만나러 갈 때 과자와 사탕을 살 겁니다 내가 돈을 바르게 쓴다고 믿는다면 기부하세요 그저 나중에 의심할까 두려운 겁니다 스스로 업장을 지으니까요 그래서 난 항상 돈 문제를 멀리 합니다 어울락인들은 우리 동포에요 많은이가 입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두 동포죠 그렇죠? 돕고 싶으면 전달사항을 명확히 기입하여 내 제자에게 주세요 이건 홍콩의 어울락(베트남) 사람들 거라고요 여기 누구에게 주든 난 곧바로 서류과정 없이 그곳에 줍니다 다만 누가 그의 5달러가 기부됐는지 확인하고자 하면 증명할수 없을 겁니다 이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내 뉴스레터는 누가 5달러를 주고 10달러를 줬는지 기록하지 않지요 여러분이 5달러를 줬는데 왜 이름이 찍혀 나오지 않는지 오해할까 두려워요 내가 일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죠 돈을 주고 이름이 기록되길 원하면 그건 너무 복잡해집니다 주고 난 후엔 곧바로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린 공에서 왔죠 벌거벗은 채 태어나서 돈을 벌기 위해 사회에 의지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주지 않아요 그러니 떠벌릴 필요가 없죠 내가 5달러를 줬고 아무개 씨는 10달러를 준 등등을 기록해야 하고 이를 계속해서 확인하죠 난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 또한 난 행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난 돈을 잘못 세기도 해요 50만을 5만이라 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누군가 내 땅이 5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50만 달러라고 생각했어요 “와! 50만 달러가 된다고” 그리고서 난 어울락(베트남) 사람에게 누군가 여기 있는 이의 보증을 서주면 그들이 정착하도록 내 땅을 기부하겠다고 했죠 난 내가 땅을 주면 그들이 즉시 정착할 수 있거나 사람들을 후원할 돈이 필요하면 땅을 팔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서 말했죠 “아차! 미안해요 실수했어요 5만 밖에 안되네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50만이라고 바로 잡아 주더군요 내 것을 기부한 것이었지만 아직도 그게 50만이었는지 5만이었는지 모르죠

누군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고기를 준 동물이 해탈하도록 돕기 위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까? 완전히 깨달은 사람에게 이것이 이치에 맞을까요?

글쎄요, 당신이 깨달을 때를 기다려 질문에 답하세요 깨달음 후에 당신은 즉 시 알 겁니다 물어 볼 필요가 없지요 중요한 것은 깨닫는 겁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고요 고기를 먹는건 안 중요해요 우선 깨달으세요 그러면 알 겁니다 왜 그 사람이 그 질문을 했는지 압니까? 그는 먹는데 집중하고 있죠 석가모니는 부처가 된 후에 육식을 안한걸로 압니다 예수도 부처가 된 후 고기를 먹지 않았죠 그의 삶에 대해 자세히 읽었지만 그건 보지 못했죠 티벳의 밀라레빠도 채식인이었죠 그는 심지어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면서 때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죠 그저 풀과 채소만 먹었지만 부처가 되었습니다 정글엔 많은 호랑이, 곰, 표범이 있었는데 왜 그는 그 호랑이들을 해탈시키지 않았을까요? 왜 채소를 해탈시키는 대신 그들을 해탈시키지 않았을까요? 우린 안전하게 고대 스승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편이 좋지요 돼지, 소는 고사하고 인간도 다 해탈시킬 수 없습니다 너무 무지하여 해탈할 수 없죠 우린 더 똑똑한 사람도 해탈시킬 수 없습니다 동물의 살을 먹어서 해탈시키는 게 맞다면 사람을 해탈시키기 위해 인육을 먹는게 낫겠죠 영적 수행을 할 필요가 없을 거에요 우선 부처가 되고 그런 후에 걱정하세요 ‘부자가 아니면 도둑을 걱정하지 말라’고하죠 이런 어울락(베트남) 속담이 있어요 ‘과거에 급제도 안하고 주지사를 위협한다’ 그런 말이 있지요

스승님, 입문 후에 결혼식, 파티나 춤추러 가도 될까요?

네, 네 그러나 거기 가선 채식 음식을 먹어야 하죠 술을 먹지 않는 한 춤추러 가는 건 괜찮아요 그저 얼마간 수행하면 그런 곳에 가는 것이 지루할 겁니다 헛된걸 보니까요 분위기가 어둡고 자욱한 담배연기, 독한 냄새 때문이지요 사람들의 땀 냄새가 향수와 섞여 냄새가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죠 그런 곳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과 서너 시간 있는 건 영적 수행자의 삶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린 거기에 관심이 없죠 누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강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관심이 없지요 때로 난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는 곳에 가는데, 그들이 나와 인연이 있어 그들과 좀 이야기 하고 깨닫도록 돕기 위해 갑니다 그런 곳이 흥미 있어서가 아니죠 그러나 괜찮습니다 어딜 가든 좋습니다 모든 곳이 불국토니까요 마음에 부처가 있다면 어딜가도 좋을 겁니다

눈을 감고 명상하면 귀신이 두렵지 않을까요?

나와 공부하는 사람들도 귀신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면 눈을 감을 때 호법으로 내 사진을 주위에 둡니다 내가 호법으로서 그들의 경찰이 되지요 제자들은 내 사진으로 둘러 치안장벽같이 만들어요 그래서 내가 사진을 많이 찍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집에 가져가서 그렇게 하려고 사진을 많이 사고 싶어합니다 제자들이 매일 명상할 때 난 치안경찰이 되야 해요 그럼 제자들이 귀신을 덜 무서워하죠 작은 등을 켜도 귀신이 좀 덜 두려울 겁니다 부처나 보살의 그림을 사용해도 되겠죠 뭔가에 기대서 앉아도 좋죠 벽에 기대지 않아도 벽에 가까우면 옆방에서 사람이 자고 있을테니 안전하게 느끼겠죠 아내와 아이들이 근처에 자고있는 침실안에 앉으면 그냥 구석에 앉아도 편하게 느낄 겁니다 불을 키거나 명상전에 경전을 좀 외워도 되겠죠 맞죠?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스승님,마리아가 동정녀라면 예수의 육체는 누가 창조했습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신격화된게 사실인가요?

불가능한건 아니죠 가능하지만 내가 이 경우를 확신할 순 없습니다 예수의 경우는 특별했는데 내 말은 가능하다는 겁니다

스승님,유사시에 부처에게 구해달라고 신실하게 누군가 기도하면 부처가 어떻게 도울수 있죠?

그냥 부처에게 묻거나 성불하면 알게 될겁니다 불법은 무한하니 무엇이든 가능해서 사람 하나 구하는건 별게 아니에요 하지만 살아있는 부처인 스승은 우리 생각대로 구할 필요가 없겠죠 우릴 구하는 부처의 방식이 최고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린 치유되길 부처에게 빌지만 병은 여전히 그대로죠 부처는 병을 그냥 무시해요 잠시 병을 그대로 두면 우리 업장이 많이 사라질거라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기도하면서 결과를 불보살에게 완전히 맡겨야만 합니다 우리 요구에 반드시 따르진 않는거죠, 그러면 결과가 나쁠수도 있으니까요 그런이유로 병을 치료할 때 신통을 쓰지말라고 한거죠 병이 치료되면 부처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고 느끼고 우리가 구한 환자는 신과 부처를 잊어버릴수도 있죠 환자는 신통력을 조금 지닌 우리 같은 세속적인 사람에게만 계속 감사하죠 우리에게 뭘 기부하거나 마음이 계속 쏠려있겠지요 우린 진정한 해탈은 도울 무한한 신통이 없는데도 환자들은 우리가 같은 등급에 있다는걸 모르면서 계속 우릴 생각할 겁니다 환자가 자신의 스승에게 생각을 집중하면 등급이 스승만큼이나 더욱더 높아질 겁니다 신통력만 좀 가지고 있는 세속적 사람에 집중하면 환자들에겐 좋지 않겠죠 이해됩니까?

사랑하는 스승님 스승님 강연을 듣거나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비디오를 볼때면 전 매우 졸리다가 오분후엔 더 이상 졸리지 않습니다 부디 충고해주세요,스승님

괜찮아요,진짜 잠은 아니죠 약간 의식이 사라지는것 뿐이에요 때로 신의 힘은 너무나 위대해서 우리가 다루기 힘들며 우리 의식이 잠시 고양되면 마음의 지적인 지식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졸리게 느껴지지만 정말 자는 건 아닙니다

지식과 지혜, 두단어의 차이점이 뭔지 불교교리에 따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차이가 없습니다 지식이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불교경전을 암송하거나 설하는걸 들을 때 의식이 사라지는걸 어떻게 피하죠?

불교 경전을 듣거나 암송할때 의식이 사라집니까? 지루한가 보군요,맞지요? 때론 경전을 암송하면서 경전을 이해하지 못하면 잠들 수 있습니다 오래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암송한다면요 가끔 경전은 너무 복잡하고 현실과는 아무상관도 없죠 그러니 뜻도 이해 못합니다 그래서 잠드는 겁니다 그들을 비난하면 안됩니다 때론 암송하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잠들기도 하죠 세수를 해보세요 그럼 바로 깨어날 겁니다

명상할때 스승님과 소통을 하려면 입문해야만 합니까?

문장전체를 읽어야 해요 나무 베듯이 읽지 말고요! 그건 이렇습니다 입문하면 보다 확실합니다 그럼 본래의 지혜가 열리니까요 우리가 자신의 스승을 일깨워 그가 일어나게 되자마자 우리 이해력은 훨씬 명확해집니다 나와 의사소통하게 되면 여러분은 곧바로 이해하죠 예를 들어 그렇습니다 의사소통은 도움을 구할 때 더 좋습니다 입문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어떨 땐 기도도 효과가 있지만 그들의 신실함이나 지혜의 등급이 높고 낮음에 따라 기도의 효과가 다릅니다 하지만 내게 기도하지 말고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 해요 입문해서 부처가 되어야지 내게 기도할 필요 없어요 입문해서 우리 지혜를 열어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부처를 깨우면 그가 일하고, 보호하고,가르치며 자기 책임을 다할수 있지요 내게 계속 기도만 하면 여전히 낮은 등급입니다 난 여러분을 높은차원으로 해탈시켜줄 뿐이지 여러분은 부처의 지혜를 성취하진 못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스승이 된 건 아니니까요,알겠죠? 그건 여전히 아주 낮은 등급으로 여겨지며 대장부에 걸맞지 않지요 그래서 내가 입문하라고 청하죠,아니면 난 말하겠죠 “좋아요,내게 기도만 하세요 난 매일 더 위대해질거에요” 내게 기도를 많이 할수록 기분이 좋죠 그건 안좋아요 스스로 스승이 되어야 해요 입문하는 것은 자신의 스승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마음에서 입문을 원합니다 전 평생채식은 할수있을것 같은데 살생에 관련된 일을 해야 합니다 입문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원한다면 입문시켜 주겠지만 장래에는 점차 직업을 바꾸려고 하는게 좋을겁니다 다른 직업을 찾아 바꾸세요 먼저 직업을 바꿔야하는데 어울락(베트남)인이 여기서 직업을 찾기 힘들것 같군요 삶이 역경이고 언어도 역시 난관일 테니 우선 입문해도 괜찮습니다 진정 신심이 있고 채식을 하고자 한다면요 하지만 최대한 빨리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해요,알죠? 일단 새 일을 찾으면 직업을 바꿔야만 합니다 먼저 직업을 바꾸라 강요는 안하겠지만 찾아 보십시오 살생업을 완화시켜주겠죠 살생하는 채식주의자는 말이 안됩니다

부처는 내면에 있으니 누구나 부처가 될수 있지요 부처 신, 누가중생을 벌주며 상을 줍니까? 아니면 우리 마음이 불심이 아니라서 해탈의 느낌이 없나요, 설명해주십시오

이미 말했듯이 부처는 신,법신,또는 법의 형태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부처와 신은 중생을 벌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벌하는 겁니다 우리 죄와 죄책감이 우리를 벌하는 거라고 이미 말했죠 양심의 가책이라고 하죠 여러분이 평화롭고 빨리 성불해서 중생을 구원하길 바랍니다!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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