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
『마리아 퍼르트너:
프라스도르프의
수식가』는
독일어로 진행되고
자막은 아랍어
어울락(베트남)어
불가리아어 중국어
체코슬로바키아어
영어 불어 독일어
힌디어 헝가리아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말레이어 몽골어
페르시아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펀자브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태국어입니다
경전에서
인간의 몸은 종종
신의 사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이 거하는
이런 신성한
거처가 되는 건
어떤 영혼에겐
아주 진귀한 특권이며
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건
참으로 축복입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선
몇 차례나 이런 상황은
아주 드문 기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세계로의
환생은 힘들지요
인간의 품성이
충분해야 하고
부모와 사회
여러분이
태어난 곳의
주위 사람들과
인연이 있어야 하니
아주 힘들지요
인간이 되기 위해선
공덕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뭔가
선행을
했던 것이지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신의 사원으로서
인간의 몸은 모든
생명의 조물주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진,영적으로
의식있는 이들 안에서
깨어날 수 있는
기적적인 경이들을
완전히 갖추고 있죠
이네디아는
단식에 대한 라틴어로
음식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말하죠
태곳적부터
프라나나
생명력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이네디에이트
즉,음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양분을 얻기 위해
자연에서 에너지를
끌어 올 수 있었죠
그들은 땅이나 숲
태양과 대기 중의
기로 살아갑니다
그런 온갖 것들을
활용하지요
사랑이나 믿음만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은
호흡식가(프라나리언
이네디에이트)
태양식가,수식가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
전역의 다양한 문화를
가진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비로운 조물주께서
만드신
이 생명에 있는
가능성과 기적들은
실로 무한합니다
우린 신의 자녀로서
풍부한 유산을
깨닫기 위해 내면으로
접촉하기만 하면됩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
인자하게
수프림 마스터 TV의
주말 시리즈에
지상에서 음식없이
살았던
과거나 현재의
인물들을
소개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얘기들이
여러분을 매료시켜
마음이 더욱 열리고
넓어지길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을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마리아 퍼르트너,
프라스도르프의
수식가』
에
초대합니다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함께 해 주셔서
기쁩니다
수프림 마스터 TV에
채널을 고정하세요
주목할 뉴스에 이어
선한 사람 선한 일들이
방송됩니다
여러분의 삶에 천국의
은총이 내리길 빕니다
선량한 여러분
선량한 여러분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이어 수프림
마스터 TV에서는
주목할 뉴스에 이어
선한 사람 선한 일이
방송됩니다
많이 시청해 주세요
매일 지혜와 조화,
만족으로 충만한
나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마리아는 52년 간
음식 없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오직 물에서만
자양분을 얻었지요
어떻게 이런 생활이
19세기 독일에서
가능했을까요?
마리아는 1821년
독일 남부
바바리아의
로젠하임 지구인
프라스도르프 근교
바이젠라이트의
신앙심 깊은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의 가족은
1년 중 특정 명절과
5일만 육식을 했기에
마리아는 대부분
채식을 했지요
어린 시절의
마리아는 건강했으며
1835년에
그녀와 자매들 모두
천연두를 앓기까진
다른 이들처럼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른 자매들은
모두 병에서
회복됐지만
마리아는
목숨이 위태로운
다른 질병으로
전이되었습니다
비록 마리아는
이 질병들에서
완쾌되었으나,
병치례를 할 때마다
배고픔에 대한 감각은
줄어들었습니다
먼저 따뜻한 음식에
역겨움을 느꼈고
나중엔 찬 음식도
먹을 수 없었죠
그 때부터 계속
11세의 마리아는
물로만 살았습니다
부모는 크게
염려하며, 그녀가
음식을 다시 먹도록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허사였죠
비록
마리아는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질병에서 회복한
후로는 아주
건강했습니다
그녀의 체격은
마른 편이었으나
즐겁게 뛰어 놀았으며
사과를 따고
주방 일을 돕는 등의
집안일을 할 수 있었죠
마리아의 조카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마리아가 갑자기
음식을 끊자,
가족들은 여러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왜
그녀가 안 먹으려
하는 지 몰랐죠
여러 종류의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녀는 식욕을
잃었던 거죠
마침내
가족들은 그녀의
치료를 그만뒀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먹지 않는
소녀에게 익숙해져서
이렇게 말했지요
『바이젠라이트의
소녀는 먹지 않는다』
그 이후 5년 간
마리아의 가족과
친구들은 서서히
그녀는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에 대해 말하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그 뒤 1841년,
그 지역의 의사
칼 라미스는
로젠하임의 조세프
제틀에게 마리아에
대해 보고했으며
조세프는 궁중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먼저 프라스도르프의
성직자인 야콥
나이데레데르에게
편지해 마리아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했죠
그 성직자는 마리아가
유일한 영양원인
물만 먹고 음식을
먹지 않는 상태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잠시 후
스승과 제자에서
마리아가
조사를 위해
뮌헨에서 5주간
체류한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 주세요
다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은 19세기 독일
바바리아에 살았던
수식가 마리아
퍼르트너에 관해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1843년 로젠하임의
조세프 제틀 박사는
마리아와
가족들에게 연락해
시립종합병원에서
5주간 의사들의
조사를 받으러
마리아가
뮌헨으로 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마리아와 그녀의
가족들은 동의했죠
프라스도르프로
마차를 보내
그녀가 머물
독방이 있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자비로운 수녀들
수도회의 수녀들이
그녀를 돌봤습니다
고향에서
뮌헨까지의 여행은
마리아가
평생 동안 해 본
가장 긴 거리의
여행이었죠
뮌헨에 도착하자
마리아는 얼굴에
조그만 급성
부종이 생겨
얼굴이 부었고
추운 날씨로 인해
열도 났습니다
병원에서
마리아는
요한 네포무크
링세이즈와 프란츠
세이버 본 지에틀 등의
명성 있는 의사들의
관찰하에 놓여졌습니다
그 당시23세였던
그녀는
소박하고 수수한
천주교 소녀였고
단 한번도
이성과 가까이
접촉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자신을 검사하려는
의사들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검사기록
담당관이었던
칼 에밀 본
샤퍼틀 교수는
겁에 질리고
부끄러워하는 마리아를
체중계에 올라서게
하기 위해
그의 모든 화술과
애원과 설득력을
총동원해야만
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외모를 묘사합니다
소녀는
흰 살결에
여린 체구였는데
중간 키보다 약간 적은
140cm에 체중은
43.68kg였다
마리아는 병원에서
힘든 때를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의 방에서
격리된 채 지냈으며
뮌헨에서 가장
좋은 식수를
제공받긴 했지만
신선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뮌헨에서 머무는 동안
마리아에 관한 소문은
널리 퍼졌습니다
엘리자벳
퍼르트너에 의하면
병원에 있을 때 그녀는
매우 중요한
국가 인사의 방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식가(마리아)가
검사를 받기 위해
뮌헨의
병원에 있을 때
한번은 루드비히
1세가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왕에게 이렇게
자신을 가둔다고
불평했습니다
창문은 잠겼고
방을 한번도
환기시키지 않는다고요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며 다시
신선한 공기를 마시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왕은 그녀가
수녀들의 감시하에
매일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마리아와 음식 없이
사는 그녀의 삶은
바바리아의 왕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는
그 이후에도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사실, 왕족 중에서
마리아를 방문한 건
왕뿐이
아니었지요
나중에
수식가(마리아)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도
왕은 바이젠라이트에서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모데나의 공작부인
역시 그녀의 형제인
막시밀리안 2세 왕과
함께 바이젠라이트에서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5주가 지나고
검사가 끝나자
마리아는 체중이
1kg 줄었습니다
참석한
의사들은 그녀가
감시 아래 있던 내내
물을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변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마리아가
생존하기 위해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의
사실성을 입증했습니다
조사기간 동안
마리아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축성된
성체를 먹었습니다
마리아는 직감적으로
축성받지 않은 성체는
먹지 못했습니다
희석된 물조차도
먹지 못했죠
그녀의 조카인
엘리자벳 퍼르트너는
회상합니다
『뮌헨에서
한번은 의사들이
축성받지 않은 성체를
물에 희석해서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수식가(마리아)는
그걸 몰랐지요
그녀는 즉시 물을
토해냈습니다
52년 동안
바바리아의 마리아
퍼르트너는
음식 없이 물만
먹고 살았습니다
중병에서
회복된 후에
11세의 마리아는
식욕을 잃었고
나중에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음식을
먹을 수 없었죠
프라스도르프 주민
엘리자베스 소이어는
마리아가 남을
기쁘게 하려고 억지로
먹었을 때의
일을 말합니다
마리아의 대모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녀는 마리아에게
견진성사 날에
음식을 먹는다면
대모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지요
마리아는 먹었지만
아주 고통스러웠어요
그녀는
먹은 걸 모두
토해 냈지요
그녀의
몸 상태가 악화되어
우린 그녀가
죽는 줄 알았어요
대모는 마리아에게
억지로 먹게 한 걸
평생 참회한다고
늘 말했죠
물만 먹고 사는
그녀의 능력에 놀란
로젠하임의 조세프
제틀 박사는
마리아와 그녀의
부모에게 뮌헨에서
5주간 그녀를
관찰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녀의 동의로
23세의
“프라스도르프의
수식가”는 요한
네포무크 링자이스와
프란츠 자베르
폰 기에틀 같은
존경 받는 의사의
관찰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시립종합병원의
고립된 병실에서
자비로운 수녀회의
수녀들의
간호를 받았습니다
5주간의 관찰 끝에
주치의는 마리아가
사는데 음식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지요
그들은 마리아가
물 이외에 아무것도
안 먹은 것과
감시 하에 있었던
기간 동안
장 운동도
없었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5주간의 관찰 끝에
그녀의 몸무게가
1kg 줄었지만
마리아는 건강했고
게다가 걸어서
2-3일 걸리는
77km의 도보
귀가 여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
그녀의 생활방식은
널리 알려졌고
추밀고문관이자
바바리아 왕의
개인 의사인
폰 발터 박사는
바바리안 과학
아카데미의 회보에
연구 결과를
실었습니다
바바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칼 에밀 폰
샤포틀 교수는
1885년,
마리아에 관한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그 소녀는
이런 식으로
수 년 동안 살았고
주민의 절반은 그녀가
안 먹는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마리아의
지인들은
그녀의 온전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지요
프라스도르프의 사제
요세프 로크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 퍼르트너가
인생의 대부분을
오직 물로 살았고
음식은 먹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합니다”
잠시 후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그녀가 죽은 후에
일어난 몇 가지
놀라운 사건에 대한
기사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알았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주세요
스승과 제자 사이에
다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은19세기
독일의 수식가로
52년 간을
음식 없이 산
마리아 퍼르트너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독실한
신앙심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채 교회와
집을 오가며
조용히 묵상에
잠겨 시간을
보냈습니다
탐독가였던
그녀는 또한
뜨개질과 자수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마리아가
리넨으로 만든
탁자보 등의
수공품이 남아있지요
마리아는 쾌활했고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는 걸
즐겼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동갑인 모데나의
아델군드 공작 부인과
친했습니다
여름에
그 공작 부인은
빌덴바르트 성 가까이
머물곤 했지요
소박한 마을인
프라스도르프는
마리아를 방문하러 온
공작 부인과
루드비히 1세 및
막스밀리안 2세와
리겐트 루이트폴드
왕자들이 머무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진 않았지만
마리아는 남을 위해
요리하는 걸 좋아했죠
그녀의 조카였던
안드레아스 퍼르트너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회상합니다
이모는 자주
요리를 하셨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서 그대로
똑 같이 따라 하곤
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요리를 꽤 잘하셨어요
맛을 보진 않았지만요
그렇게 요리한
음식을 사람들이
먹으러 오면 이모는
조용히 방으로 가
묵상에 잠기곤 했어요
마리아가 사망한지
50년이 지난
1933년, 비카
안톤 후버란 청년은
마리아의 지인들을
인터뷰 했습니다
그는 또한 마리아가
사망할 당시 각각
12세와11세였던
조카 안드레아스와
엘리자벳 퍼르트너를
인터뷰했지요
안드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그녀를 회상했습니다
이모는 전혀 먹지
않았고 물만
매일 마셨어요
이모는 직접
세 군데의 샘에서
샘물을 길어 오셨는데
어떨 땐 한 곳에서
어떨 땐 다른 데서
길어 오셨죠
하루에 세 번
물을 드셨어요
지나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마시는
만큼만 드셨지요
여름엔 평소보다
좀 더 많이 드시고
겨울엔 좀 덜 드셨죠
마을 주민
엘리자벳 소이어는
물과 관련된
마리아의 재능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마리아는
순례로 키르크발드에
가는 걸 좋아해서
오는 길에
그라인바크와
키르크발드의 샘물을
길어왔는데, 그 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어디서 최상의
물을 찾는지를
그녀는 알고
있었어요
마리아는 1884년
11월4일63세의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살아 생전
52년간을 먹지
않았습니다
평생 심하게
아팠던 건
단 세 번 뿐이었지요
어릴 적
천연두를 앓은 후
음식을
포기하게 됐고
20살 때 뮌헨에
가는 길에
추위로 인해
단독에 감염됐으며
마지막으로
임종 직전에
앓았던 게
전부였습니다
마리아가 사망한지
14년 후
요한 퍼르트너가
죽었을 때 그녀의
사체가 발굴되어
가족묘에 안장되었지요
퍼르트너가와
가장 가까웠던
요한 울쉬라거와
카스퍼 아이크러가
묘를 팠을 때,
마리아 퍼르트너의
시신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살은 전혀
부패하지 않았어요
외관은 다른 무덤과
똑같았지만
전에 본 적 없는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됐죠
두골에 머리카락이
온전히 남아 있었고
머리 꼭대기엔
화환 역시
그대로 온전한
상태로 있었지요
우리는 삽으로
조심스레
화환을 빼 냈어요
줄은 왁스를 발라
녹색 종이 잎으로
땋아져 있었고
그 앞 부분은
흰 꽃과 봉우리가
있었죠
그 화환은 마치
바로 전날 배달된 것
처럼 생생했어요
화환이 무덤 속에
1시간 전에
놓여졌어도
그보다 더 예쁘거나
생생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시 그 곳에
참석했던 다른 이들도
화환의 그런 모습을
목격하고, 예전에
결코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마리아의 묘비에는
52년간 그녀가
물 외에 다른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지 백 년이 지난
1985년 비스카 안톤
후버가50년 전에
시작했던 일을
바바리언 음악가이자
포크송 수집가이며
프라스도르프 출신인
바스틀 판데를이
계속했는데, 그는
마리아의 생애에 관한
이용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모아
“프라스도르프의
수식가”란 책을
집필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노력 덕분에
마리아 퍼르트너의
비범한 생애가
후세에 남겨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