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사이
 
사랑과 이해는 모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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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는 스페인어 통역이 있는 영어 강연이며 자막은 독어 불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어울락어(베트남어) 중국어 헝가리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불가리아어 태국어 일어입니다

코스타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군대를 철폐한 나라로서 강한 헌법이 있는 민주국가며 중미에서 가장 안정된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아메리카의 스위스”로 종종 불립니다

오늘날 코스타리카는 낮은 문맹률과 높은 평균수명 그리고 중미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 대통령 오스카 라파엘 드 지저스 아리아스 산체스는 코스타리카 최초의 노벨 수상자입니다 그는 1986-1990까지 대통령으로 봉사했고 최근 2006년에 재선되었습니다 그는 1987년 중앙 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시민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또한 인도주의로 슈바이처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요한 이 땅의 사람들은 호의적이고 친절하며 평화를 사랑하므로 신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 협회 회원들의 신실한 갈망에 부응하여 칭하이 무상사는 여러 번 코스타리카를 방문하셨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아름다운 코스타리카에서 멋진 그림 “조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제 1990년12월 코스타리카에서 있었던 칭하이 무상사와 협회 회원들간의 담화 “사랑과 이해는 모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사랑과 이해는 모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2부를 시청해주세요 이제 “사랑하는 삶의 터전 지구”의 “친환경 자동차”가 이어집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주세요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사랑과 이해는 모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3부를 시청해주세요 다음은 “선한 사람 선한 일들” 의 “자유의 목소리” 입니다 축복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사랑과 이해는 모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4부를 시청해주세요 다음은 “동물의 세계 더불어 사는 세상”의 “상냥한 염소: 동서의 코카시안 터르” 입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주세요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칭하이 무상사와 함께 하는 간단하고 영양 많은 요리” 챠파티 만드는 법 특별 방송을 시청해주세요 다음은 “동물의 세계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인도네시아의 영장류” 입니다 수프림 마스터 TV 를 계속 시청해주세요

사랑과 이해는 모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코스타리카 1990년12월25일

저녁에 여러분과 함께 마실 와인을 준비할 겁니다 맛이 와인과 약간 비슷해 와인이라 부른답니다 사실 와인이 아니고 알코올이 전혀 없죠 와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과일주스도 아니고 수프도 차도 아니니 다른 이름으로는 부를 수 없어서죠 와인이라 하지만 와인은 아니죠 이해 못하는 이들은 “저런, 칭하이 스승이 와인을 마시네!” 하죠 심지어 그녀는 용의 눈도 먹죠 중국에 용안이라는 과일이 있거든요 그런걸 잘 먹지만 난 완전 채식하며 술을 안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왕의 요리사 이야기가 있죠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요리사는 신선한 포도로 즙을 내어 왕에게 와인으로 바쳤습니다 그러니 와인이란 그저 포도주스죠 예수를 비난하고 먹칠하지 마세요 그는 어릴 적부터 와인과 생선, 다른 불순한 건 입에 안 댔어요 예수는 에세네파로 에세네 사람들은 항상 채식하고 중독적인 건 전혀 안 마셨어요

예수는 부모의 에세네파 계보를 이어받아 에세네 파로서 교육되었나요?

예, 여러분이 그런 가정 출신이면 피할 수 없죠 하지만 그걸 물려 받기만 한건 아니죠 그들은 충분한 깨달음을 예수에게 줄 수가 없었죠 아니면 예수가 아닌 부모가 유명했겠죠 여러 해를 방랑한 후에 예수는 많은 스승을 만나 공부하며 열심히 수행하고 열심히 명상했죠 단순히 채식하고 술 마시지 않아서 또는 에세네 파라서 깨달은 건 아닙니다 마치 내가 깨달은 것이 불교나 카톨릭 가문에서 태어나거나 채식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 분투하며 명상하고 세계 각지에서 진정한 정수를 수집했던 것과 같죠 무엇보다 열심히 명상하고 진정으로 신을 갈망해야 해요 그게 중요합니다 예수는 여러 학교에서 스승들과 공부를 한 뒤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했고 거기서 얻은 정수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채식했습니다 아니면 왜 성경에 “술 마시는 자와 고기 먹는 자를 멀리 하라 그들을 멀리하고 섞이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그의 말과 행동은 다르지 않았어요 알겠죠?

어머니는 제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화나셨어요

성탄절 말이군요

네, 하지만 아버진 조용하셨어요 전 잠옷을 입고 잠자러 갔고 성탄절 아침에 선물을 풀어봤죠 어머니는 조용하셨고 아버지는 제게 앞에 앉으라 하시며 스승님에 대해 물었죠 “네 스승이 누구지? 그녀는 어떻지?” 전 아주 부드럽게 원하는 대로 부르라고 했죠 “신의 아들” 이든 “구원자” 혹은 “신의 사자”등요 처음 집에 도착해서 작은 선물을 드리며 “스승님의 선물” 이라고 했거든요 어제 도착했을 때 전 말했죠“예, 이것들은 스승님이 보내신 선물로 그녀의 모든 축복이 담겨 있어요” 아버지는 아기 같은 분이신데 “내 것이구나!” 하며 좋아하셨죠

그는 사랑을 사랑해요 사랑을 좋아해요 그걸 좋아하는 거죠

제가 선물에 행운과 축복이 가득하다 말했기에 “오, 행운! 행운이 필요해” 라며 아주 기뻐하셨죠

그는 행복하고, 계속 행복할 겁니다 그는 위안과 사랑을 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 뿐이죠 세상에는 사랑이 아주 부족합니다

사탕상자를 드리자 아버지는 그걸 트리 아래 두셨어요 보통 25일에 선물을 여니까요

24일이 아니고요? 그날 푸는군요

그리고 우린 성탄절 잠옷을 입고 있었지요 우린 아침에 트리 옆에 둘러앉아 사탕포장을 열고 어머니께 이 사탕은 스승님께서 보내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열어 모두에게 나눠주었죠 그가 말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요? ) 예, 전 설명했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가 먼저 물었죠 왜 이걸 배우며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요 전 설명하려 노력했죠 스승님의 가르침과 모든 것을 물어봤죠 그리고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에 봉착했죠 그는 첫째, 예수를 존경하니까요 그는 예수를 아주 존경하고 부처와 모하멧, 모두를 존경합니다 우리 대화가 거기 이르자 저를 몰아붙였어요 계속 몰아붙이며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거지? 불행한 거냐? 무슨 일이 있냐?” 전 말했죠“아버지가 스승님을 뭐라 부르든 이건 절 위한 거예요 아버지가 스승님을 메시아라 부르면 제게도 메시아입니다 그녀를 신의 아들로 부르면 제게도 신의 아들입니다 전 아주 영광스럽고 매우 편안하고 두렵지 않아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전 아주 행복하게 모든 일을 하고 신께 맡기려 합니다 지금 아주 행복해요” 그러자 아버지는 말씀하셨죠“난 57세로 늙었기에 여생 동안 뭘 할 지 모르겠다 그리고 입문이 무엇이고 뭘 하는거지? 명상이 뭐지?” 등을 물으셨죠

하지만 좋은 부모입니다

전 스승님께서 “부모님이 아주 훌륭하셔서 저를 잘 키우셨다고 했죠 스승님은 기뻐하며 축하하셨죠”라 했죠

진실을 말한거죠 좋은 부모 없이는 당신도 훌륭할 수 없으니까요 이처럼 훌륭한 딸을 가질 수 없죠 어려서부터 그녀가 채식한 건 어머니 때문이죠 최초의 스승은 부모님이셨죠 내 말은 진심이에요 좋은 아이를 보면 부모가 좋은 걸 알죠 대부분 그래요

다 말하자 어머니는 약간 화나셨지만 스승님께서 훌륭한 부모님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자 어머니는..

기분이 나아졌군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당신이 좋은 아이니까요 그건 부모의 담당이니 잘 키워낸 거죠

아버지는 제가 왜 채식하는지 물었고 전 신의 계율과 모든 것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에게 말하세요 나뭇가지를 자르면 다시 자라나지만 동물은 어디든 잘리면 죽는다고요

그런 뒤 아버지는 이해하기 시작했고 좀 더 알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남은 생 동안 무엇을 할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죠 더 이상 자식들은 어린애가 아니죠 이제 어른이 되어 우리는 자신의 삶과 만사를 책임져요

보통 부모들은 나이가 들면 무시된다고 느껴요 자녀들이 잘 돌보지 못하거나,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화도 나고 염려되고 여러 생각이 들죠

아버지는 제가 1월에 모스크바에 가야해서 매우 걱정하셨어요 (왜요?) 발레 학교를 열고 다른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야해요 아버진 물어보셨죠 “모스크바에서도 스승이 보호해주니? 난 네가 아주 걱정된단다” 전 그렇다고 했죠 스승님이 늘 매사에 함께 하신다고요

그는 당신을 아주 사랑합니다 그가 당신을 꾸짖는 것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예요 그게 모든 이유죠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게 유일한 이유죠 그에게 알았다고 말하길 요구했다면 아버지를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거죠 늘 아버지가 왜 당신을 이렇게 대하는지 원망하고 사소한 것까지 걱정하는지 탓하죠 그건 사랑해서예요 물어보면 아버지는 마침내 여러분이 이해했다며 행복하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리 상관치 않아요

지금 아버지가 조만간 오실 것 같습니다

확실해요 환영합니다 당신이 올 때 밤에 데려오세요 환영해요 친척도 올 수 있다고 하세요 그들이 오길 원하고 내 담화를 듣기 원하면 와서 앉는 걸 환영합니다 만약 안 오면 당신과 이야기하죠 여러분이 올 때 데려올 수 있어요 그게 가장 좋죠 부모는 항상 자녀를 사랑해요 단지 걱정하는 거죠 그런 겁니다 성탄절에 일어난 인생 이야기군요

그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성탄절이었죠 매우 행복합니다

그럴 겁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게 아녜요 지난번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울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절대 잘 지내지 못할 거라며 서로 수년간 말 안했다고 했죠 서로 전혀 말할 수 없었죠 아버지는 그녀에게 매우 엄격했고 그들 모두 아주 괴로웠어요

스승님은 제게 좀더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매우 걱정하는 것을 이해하라고 말씀하셨고 선입관 때문에 아버지가 엄격한 거라고 말씀하셨죠

그는 일과 생계로 바쁘고 그도 문제가 있었죠

아버지 뿐 아니라 제가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요 그리고 스승님이 주신 꽃을 그날 밤 아버지께 드렸고, 그건 마술꽃 같았죠

아뇨 마술꽃이 아닌 당신 태도예요 만일 그 꽃을 휙 던졌다면 안 좋았겠죠 난 말했죠 집에 가서 무릎 꿇고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라고요 미안했다고 말하고 그를 이해하며 그를 아주 사랑한다고요 비록 당신이 유치하고 너무 어려서 사랑과 감사를 어떻게 표현할 지를 모르지만 항상 당신이 그를 사랑하고 생각함을 오늘밤 알아주길 바란다고요, 그저 표현할 줄 몰랐다고요

전 그렇게 했죠 예, 맞습니다 그렇게 했어요 둘 다 밤새도록 울었죠

예, 잘됐어요 그 뒤 서로를 포옹하고 울었죠

제일 좋은 일이죠 그리고 밤새 함께 잠들었어요

정말 잘됐어요 잘됐어요

대부분 애들은 너무 태평해요 부모의 근심을 모르죠 때로는 부모가 병들었거나 형편이 어려워도 부모는 애들이 모르게 하죠 그냥 애들이 원하는 걸 해주죠 그러면 애들은 늘 이런 사랑과 보호를 즐겨요 부모는 모든 걸 다 돌보죠 자녀들은 거기 늘 익숙해져서 늘 요구합니다 때로는 부모의 형편이 어렵거나 건강이 안좋을 때 뭘 요구할 때가 아니어서 부모는 자녀를 결코 만족시킬 수가 없죠 그러면 부모를 비난하고 심통이 납니다 대개는 만족 못하며 옆집 애와 같은 거나 더 좋은 걸 원하면서 부모의 노고나 내면의 문제는 몰라요

그 후 부모는 점점 늙어 육체적 경제적 문제,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아지죠 애들이 크면 요구도 많아지고 많은 것들과 사회적 압박, 부모는 이 모든 걸 다 돌봐야 해요 이 세상에 혼자 생존하기도 아주 아주 힘든데 전 가족을 돌보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아주 복잡하고 힘이 들어요

그래서 어떤 애가 다 큰 애가 내게 와서 부모에 대해 불평하면 난 즉시 문제가 뭔지를 압니다 난 절대 애들 편에 서서 부모를 나무라지 않아요 부모를 가장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죠 특별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 자매가 되어야 해요 언제나 항상요 그래서 난 모든 상황을 이해해요 부모의 문제나 애들의 문제 모두 말이죠 부모 노릇은 어렵죠 항상 주고 주고 또 주며 무엇도 가질 수 없죠

애들은 가지는 것에 익숙해요 태어난 후부터 아기 때부터요 단지 습관이지 나빠서가 아니죠 그냥 그렇게 자랍니다 그들은 음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에 익숙하죠 또 슈퍼에서 옷이 집으로 날아오는 데 익숙하죠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뭐든지 어디선가 날아오고요

부모가 아주 가난해도 힘들게 살아도 그들은 늘 자녀를 돌보고 자녀가 모든 걸 갖게 해요 가능한 말이죠 부모의 사랑은 아주 크니까요 그들 생각에는 늘 애들에게 부족하죠 실제로 애들이 옆집 애보다 약간 부족해 보이거나 애들이 뭐가 부족하다 불평하면 부모 심정은 아주 비참하고 상처입죠 부모는 늘 자녀가 최고를 갖기 바라며 모든 것을 갖고 최고의 것을 갖길 바랍니다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요구도 때론 희생해요 대부분의 부모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애들은 성장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모든 걸 잊고는 자신이 부모가 될 때까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땐 이미 늦어 부모는 너무 늙어버렸고 자신의 애들로 너무 바빠 부모를 위해 시간이 내지 못하지요, 혹은 부모가 이미 죽거나 아주 멀리 있거나 혼자서 자녀와 떨어져 살죠 자녀들은 먹고 사는데 바빠 연락도 방문도 않고 공경하지도 않죠 그런 경우는 드물죠 그래서 젊은이들은 이걸 알아야 해요 부모가 우리 마음에 안들게 대하거나 오해한다면, 자신을 점검하고 절대 부모를 탓하지 마세요

자, 그녀 이야기는 여러분에게 예로 말하게 한 겁니다 알겠어요? 나는 그녀 가족과 집안의 속사정을 아니까요 그녀 뿐 아니라 비슷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의 실례죠 알겠죠?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죠 항상 사랑과 겸손으로요 여러분이 스승의 가르침이나 좋은 점을 나누려면 겸손하고 사랑이 많아져야만 하며 다른 방법은 없어요 왜냐면 여러분은 부모에게 무례할 권리가 없어요 어떤 상황에도요 부모가 어떻게 하든 불평할 권리는 없어요 왜냐면 그들의 사랑을 조금도 갚지 못했으니까요 모든 은인들에게 절대 불평하거나 공격하거나 적대하면 안됩니다 특히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면요 부모님이 그저 오해나 염려로 때로 우리를 잘 대하지 못한다면요 알겠습니까?

출가승이 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부모에게 불효한 게 아녜요 그들은 모든 사람을 부모로서 시봉하려는 다른 이상이 있죠 그 이상이 아주 위대하므로 이상의 한 구석을 건너뛰는 것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들이 부모를 존경하지 않거나 반항하는 게 아니고 그저 다른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죠 마치 병사들이 전쟁이 났을 때 나가서 온 나라를 방어해야 해서 집에 머물 수 없고 가족을 돌볼 수 없는 것과 같죠

하지만 부모와 함께한다면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부모님을 항상 존경하고 사랑해야 해요 부모님은 매일 늙어가고 있어 나날이 문제들이 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러니 자식들이 사랑하지 않고 뜻에 따르지 않고 무시하면 더 외롭고 더 상처받고 더 근심되고 더 아파져요알겠죠? 그래서 부모들이 가끔 불평하거나 분노를 터뜨리는 것처럼 보이죠 이런 폭발의 원인을 이해해야 해요 그들의 행동을 비판하지 말고 문제의 원인을 살펴 처리해야죠 꽃이 제대로 피어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잎이 누렇다면 꽃과 잎을 비난하지 말고 뿌리에 물과 비료를 줘야 해요 알겠어요?

예를 들어 그녀는 부모님, 아버지를 최소한 몇년간 오해했죠 늘 서로 말을 하지 않았어요 언젠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서로 말을 안했죠 말도 대화도 못하면서 자신이 옳다며 상대를 탓했어요 그래서 둘 다 불행했죠 내게 얘기하자 난 단숨에 해결했죠 별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게 말을 안하니 내가 돕지 못해요 이 얘기로 충분해요 여러분은 이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죠 그러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런걸 이해합니다

유일한 문제는 다들 이기적이란 거죠 우린 오직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고 타인의 입장을 고려치 않죠 생각을 멈추고 입장을 바꿔보면 더 잘 이해할 겁니다 결혼생활도 그래요 대부분 결혼이 불행한 이유는 서로가 상대의 생각이나 행동방식을 고려치 않아서죠 우린 남들도 우리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길 기대해서 교류가 어려워져요 왜냐하면 이해하고 사랑하는 대신 언제나 비난하고 탓하니까요 용서하는 대신 요구하고 타협하는 대신 그저 우리의 권리와 동기, 생각을 위해 다투죠 그래서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죠 항상 우리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리곤 때론 며칠 뒤 우리가 틀렸다는 걸 알죠 이것조차 아주 드물어요 우리 잘못임을 알게 되어도 인정 안하죠 화해는 쉽지 않죠 우린 기다립니다 “그는 꼭 돌아와 항상 그랬잖아 아무도 요리해 주지 않고 빨래해주지 않으면 가족과 애들이 그리워져서 돌아올 테니까 기다리자” 남편 생각도 똑같아서 그들은 서로를 기다리지요 상대의 사과를 기다리지만 서로 사과하진 않죠 둘 중 한 명이 양보해야만 해요

물소 두 마리가 싸우면 반드시 하나가 다칩니다 둘다 뿔이 있어서죠 어느날 서로 구멍을 내거나 둘 다 다칠 거예요 어려운 일이에요! 가족문제 결혼문제는 풀기가 어려운 걸 압니다 하지만 이미 그 속에 있고 필요로 하며 사랑하잖아요 그들 없이는 삶이 외로울 테니 투쟁해볼 만 하죠 타협해야만 해요 매일 서로 보면서 끔찍하고 버겁게 느끼면 어떻게 계속 살아가겠어요?

그날 밤 내가 준 꽃을 당신이 아버지에게 주며 그를 포옹하고 함께 울었을 때 생애 최고의 날이란 느낌이었죠?

예,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았어요

이제 사랑이 무언지 알죠? 체면을 잃거나 했다는 느낌이 전혀 없죠 당신 아버지에게 체면을 구겼나요? 천만에요! 둘 중 하나가 양보해야 하고 먼저 시작해야죠 특히나 당신이 소위 제자라고 한다면요 만일 그렇게 해내지 못하면 불구가 됩니다 영어로 제자는 학생, 불구는 못함인거죠 망가져 못 움직이죠 주저 앉은 채요 알겠어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긴 매우 어렵죠 특히 생존을 위해 투쟁하거나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는 온갖 재난들과 싸우고 몸과 마음의 병과 싸워야 할때는요

한쪽이 문을 열고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시군요

예, 특히 스스로를 수행자라 하고 인내를 수행하고 “채식주의자”며 “명상”한다면요 스승을 사랑한다 해도 남에게 과시할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을 거예요 자연스러워야 해요 알겠어요? 유연해야 하며 타인의 관점을 이해해야 해요 그러나 이건 어려워요, 대부분 지혜가 부족하니까요 아니면 세상엔 문제가 없겠죠 막 입문했다고 세상만사와 사람들을 다루는 법을 아는 것은 아니며 쉽지 않아요, 이해합니다 그러니 뭐든 그저 참아야 해요 그러나 진정에서 우러난 사랑과 이해가 모든 마음을 녹이는 걸 아주 명확히 볼 수 있어요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실패하죠

미국의 한 어울락(베트남) 아이가 아버지와 문제가 있었죠 그녀의 아버지는 명상과 채식을 못하게 하고 늘 이런 저런 걸 생각하게 강요했죠 그녀에게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며 그가 사랑을 느끼게 하고 무시하는 대신 서서히 설명하라고 했죠 하지만 자녀들은 늘 (알다시피) 어떻게 할지 늘 알진 못하고 또 하려 들지 않죠 가끔 자식들은 고집도 세고 버릇도 없고 부모를 그리 존경하지도 않죠 특히, 존경스러운 부모가 아니면요 존경스러워도 그래요 하지만 우리 자녀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난 항상 말하죠 부모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더 공손하게 늘 존경하라고요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은 부모나 자식의 정신이 정상이 아니기도 해요 그래서 가끔은 정상적이지 않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는 서로 대화하기가 또한 어렵죠 당신이 아무리 착해도 대화를 하기 어렵죠 그 경우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죠

항상 예외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예수를 매달았겠어요 그가 뭘 했길래요? 그가 한 선행 때문에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부처를 매번 죽이려 하고 누명을 씌우려고 할 수 있겠어요 부처에게 여러 번 누명을 씌웠죠 아무 이유도 없이요 사람들은 심지어 모든 사람 앞에서 여자를 세워서 베개를 배에 넣어 크게 부풀리곤 부처의 아이를 뱄다고 했죠! 경전에 따르면 베개가 떨어졌죠 그건 대체로 호법들이 한 일로 누구도 스승을 모욕하게 두지 않는 겁니다 말도 안되니까요 그런 일들이 벌어졌었죠 그러니 모든 나쁜 일들은 업 때문이라지만 어떻게 부처나 예수가 업장이 있었겠어요? 성경에 의하면 예수는 신의 아들로 천국에서 내려왔고 부처는 보살로서 도솔천에서 왔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업장이 있겠어요? 그들은 우릴 구하고 도우려 왔죠, 보통 사람처럼 인과의 힘에 이끌려 온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우리처럼 살았지만 우리와 같지 않아요 대부분의 스승이 그렇습니다 준비된 영혼을 천국과 불국토로 데려가려는 유일한 목적으로 왔지요 그들이 무얼 하든 환상일 뿐이며 우리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아요 알겠죠? 그들은 어떤 것도 떠밀려 하지 않죠 그저 꿈 속처럼 행합니다 그들은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아요 우리의 이원적 세상에서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것에 상관하지 않죠 우린 사물의 중요성에 집착해서 그런 식으로 보는 거죠 부처나 성인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죠!

예를 들면 한 여성을 사랑하면 그에겐 그녀가 아주 중요해도 딴 남자는 안 그렇죠 강아지에겐 뼈가 중요해도 인간에겐 아무것도 아니죠? 풀이 소중한 소처럼 풀 때문에 싸울 겁니까? 생각의 차이를 알겠어요? 그러니 성인을 뜻하는 보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건 뭐든 그들에겐 쓰레기죠 아무것도 아녜요! 아마도 우리처럼 행동하는 건 그저 친근해져서 말을 듣게 하여 같이 가려는 거죠

예컨대 애들은 플라스틱 장난감과 싼 차와 인형을 사랑하죠 가끔 그걸 가지고 마루를 기어다니죠 그런 차로 놀거나 그런 기차로 놀며 나무 집도 짓고 인형에게 노래도 하고 인형의 유모차도 밀죠 당신에겐 이런 장난감과 놀이는 집착할 게 없지만 애들은 당신도 그들과 똑같을 거라고 여기죠! 인형도 차도 안 좋아한다고 애들에게 말하면 믿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이 예쁜 걸 안 좋아하지? 당신이 장난감을 빼앗아 놀까봐 애들은 두려워하죠

개가 뼈를 갉아먹고 있을 때 당신이 근처에 있다면 개의 행동은 어떻죠? 매우 사납게 당신을 쫓아낼 겁니다 그는 당신이 뼈를 가지고 밖에서 혼자 갉을까봐 겁내죠 심지어 그에게 뼈를 1분 전에 준 게 당신이라도요 그는 차이를 모릅니다 이제 알겠어요?

때로 우린 스승을 판단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등급이 다르고 시각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스승을 이해하고 칭송할 때는 진정한 스승을 이해하고 칭송하고 따르고 믿음을 가질 때 그 사람은 스승의 수준에 아주 가까운 거죠 그들은 보살이고 거의 부처예요 그들이 거의 보살이라 한 건 그게 그들의 등급과 고귀한 사고 방식 청정함과 지혜를 반영하기 때문이죠 알겠어요?

그래서 성경에서도 “열매를 보면 안다”고 했죠 바로 그거예요 당신의 행동과 당신의 말, 생활방식을 보면 여러분의 등급을 압니다 그러니 스승을 칭송하거나 비난할 필요 없이 그 제자들의 행동과 스승의 방식과 생활을 보세요 스승의 말과 행동, 사람들이 거기에서 얻는 이로움을 보면 그 스승이 어떤지 알아요

안 그러면, 다들 자신이 훌륭하다며 남에게 선행을 하라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 뭘 하죠? 사람들에겐 물질에 집착 말라면서 자신은 늘 돈을 모으고 쌓아두거나 개인적으로 쓰거나 큰 저택을 사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과시에 쓴다면 진짜가 아니죠 심지어 제자들을 끌어들이려고 영광스러운 외면을 이용하기도 해요 멋진 사원이나 웅장한 교회로요 사원이 보기 좋지 않거나 교회가 별로 안멋져 사람들이 안올걸 겁내면 역시 진짜가 아니죠 진실한 사람들은 그런 것에 끌리지 않아요 그렇지 않나요? 좋은 핑계가 아니죠

모두 알다시피 예수는 신발도 없었고 부처는 사원도 없이 49년 동안 바루와 옷 몇 벌만 갖고 돌아다녔어요 노자 역시 사원이나 단체도 없었죠 공자도 생전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들은 나라를 떠돌며 강연을 했어요

그러니 소위 스승의 행동 뒤의 미묘한 집착을 봐야 해요 신중하게 생각하고 따져봐야 해요

난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아요 그래야 안전하죠 사실 누구에게나 우리가 배울 점이 있으니까요 배울 점이 있으면 나쁠 게 없죠 단점이 있다면 서서히 그걸 깨닫거나 다른 누군가가 가르쳐줄 거예요 아니면 스승이 처리하거나 신이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놀라서 충격받죠 “아 그래! 나도 저랬지! 늘 그러면서도 나쁜 일인 줄 전혀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 나도 딱 저랬어”

인도의 어떤 스승들은 말했죠 “진리는 좋지만 진실한 삶은 더좋다” 타인에게 설교하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타인은 이롭겠지만 자신은 이롭지 않죠 우리가 진리나 덕스러운 삶의 방식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우리에게 좋죠 하지만 더 좋은 건 설교자 자신이 살아 있는 모범이 되는 거죠 그럼 더 안전하고 더 확신되고 더 편안하고 용기를 얻죠

왜일까요? 우린 아니까요 “진리에 따라 사는 사람은 저토록 멋지게 변해서 남들이 따르는 본보기가 되는군 그러니 말을 따르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아주 희망적이야! 멀지 않아 도달할 수 있어 나도 가능해” 그렇지 않다면 우린 그 사람이 일깨워 준 것을 존경하고 고마움을 느낄지라도 의심을 가집니다 의심을 품고 이렇게 생각하겠죠 “이 사람이 말하는 게 진리인지 어떤지 모르겠어 진리의 가르침을 그렇게 잘 알면서도 자신은 왜 그렇지? 진리로 변화되지 않았군 진리의 가르침을 오래 펼쳤으면서도 얻은 게 없구나 그토록 유창하게 진리를 말하고 나보다 더 오래 진리를 알았는데 성취가 없으니 난 어떻겠어? 난 문장 하나도 잘 이해 못하는데” 그리곤 상심하고 실의에 빠지죠 그렇게 돼요

그래서 늘 스승들이 타인을 깨닫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깨달으라고 강조했죠 그래서 부처도 완전히 깨닫기 전 설법하지 않았고 예수도 완전히 깨닫기 전엔 설교하지 않았죠 알겠어요? 심지어 19년, 혹은 10년 이상 돌아다니며 많은 걸 배우고 오랫동안 명상했죠 그리고 사막에 와서 혼자서 40일간 최후 점검을 했죠 내면 깊이 들어가 그가 얻은 진리가 절대적인 건지 아닌지를요 그러므로 아는 건 뭐든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뭐든 모른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이렇게 시작해요 “이와 같이 들었다” 즉 자신이 아닌 부처의 말이란 거죠 나요? 난 몰라요 아직 잘 모르고 완전히 모르니 날 숭배하지 말고 이건 내 말도 아니죠 이건 부처의 말이에요 난 부처의 말을 들었고 이제 되풀이하는 겁니다 완전하게 부처가 한 말을 깨닫지 않았다면 반드시 이래야죠 “이와 같이 들었다” 이해하겠어요? 사람들을 잘못 이끌거나 오만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서죠 이제 알겠어요? 그래서 부처는 늘 제자들에게 이렇게 시작하게 했죠 “이와 같이 들었다”

이제 여러분도 나가서 말하겠죠 “칭하이 스승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또 일부는 한 두 문장만 말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해석을 달 겁니다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들은 눈을 크게 뜨고 말하겠죠 아는 사람들은 전부 압니다 당신이 잘못된 찬사와 몰이해, 자신의 견해와 해석으로 스승을 모욕한다는 걸요 어떤 이들은 불경이나 성경에 자신의 그릇된 해석을 더하는 비행을 저지르죠 심지어 스승이 살아 있어도 여전히 오해가 많았죠 스승이 떠난 후엔 얼마나 오해가 더 많겠어요?

그러니 이런 상황을 피하는 최선의 길은 늘 오만함이나 흥분이나 열망 없이 하게 노력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스승의 축복과 지혜가 우리를 통해 흐르게 하는 거죠 아주 자연스럽고 겸손하고 신중하세요 시작하기 전 눈을 감고 스승께 기도하세요 “당신이 말하소서” 뭔가 이해하지 못하면 스승에게 물어봐서 답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실수를 피합니다 모두의 내면에 스승이 있고 그게 진아죠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세상과 어울려서 생긴 사고습관으로 인해 교만함이 거기 끼어든다면 스승은 나타나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내가 마이크로 말하면 마이크는 조용하고 저항하지 않죠 그럼 좋아요 둘다 일을 잘 할 수 있죠 이제 마이크가 힘과 장엄함을 뽐내려고 이렇게 저렇게 비틀려 한다고 해봐요 어떨 것 같아요? 스승이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말하겠어요? 혹 누군가의 생각에 “오, 마이크가 까매서 안좋아 보여!” 그래서 그가 흰 비닐로 마이크를 감싸고 물감으로 예쁜 꽃과 온갖 것을 그렸다 치면 의도는 좋지만 그걸 어떻게 쓰겠어요? 이제 이해돼요?

가슴에서 우러난 말을 하세요 계산하거나 과장하거나 속이거나 색채나 양념을 더하지 말아요 그게 최선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리를 말하기란 어려워요 내부와 외부에 많은 장애가 있어요 이런 걸 마야나 환상의 힘이라 해요 그러니 늘 최선을 다해야만 하고 오직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엔 할 게 없죠

몇가지 측면을 일깨워 주세요 성경에서 예수의 설교를 읽을 때 때론 아주 딱 들어맞죠 정말 딱 맞아요 그럼 전 스승님께 이에 대해 더욱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제게 어떻게 이렇게 잘 들어맞는지 알고 싶었죠 이렇게 전부 잘 들어맞는 것이 제 배움의 시작인 건가요?

음 그는 일종의 직관이 있군요 그건 좋아요 아주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그저 작은 일이죠 좋더라도 지나치게 좋지 않고, 나빠도 지나치진 않죠 나빠도 지나치게 나쁘진 않죠 좋아도 지나치게 “환상적”이진 않죠 하지만 격려가되지요? 고무되지요, 좋아요

오늘 아침엔 여러분에게 말해 줄 것들이 많이 있었죠 그런데 명상에서 깨어난 후 더이상 말로 옮길 수 없었어요 너무 어려워요 약간 실망감을 느꼈어요 그렇게 좋은 것들을 여러분과 나눌 수 없어서요 내가 이해했다 해도요 하지만 여러분 중에도 같은 경험이 있겠죠 여러분의 등급에서 때로 어떤 것을 이해하는데 다른 등급의 입문자에겐 설명할수 없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설법하며 진리를 알리는데 문제가 있는거죠 언어의 장벽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많은 단체와 많은 종교들 분파들, 종파들이 있는 겁니다

어떤 스승들은 같은 경지지만 이해한 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제자들은 다르다고 또는 절반만 이해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가서 그 절반이나 그들의 다른 방식을 전하죠 자, 그래서 많은 스승들은 침묵으로 가르치길 선호한거죠

나도 그러고 싶어요 그러나 누가 그걸 이해할까? 생각했죠 여러분이 어린이와 있거나 아이와 도처에 장난감뿐일 때 우리는 그들과역시 함께 놀고 함께 시끄럽게 굴겠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도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앉아 아이들이 노는걸 보기만 하면 매우 피곤하겠죠 그래서 영국인들은 말하죠 “때릴 수 없으면 함께해라!” 전세계는 의사소통과 친구를 사귀는데 언어를 사용하니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알죠

그래서 깨달은 성인들은 찾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중 대부분이 뒤따르기만 할 수 있죠 왜냐면 습관적 생각, 습관적으로 형성되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고 패턴과 우리의 습관과 외부의 유인력을 너무 많이 따릅니다 자신의 위대함을 기억하지 못하죠 우리와 스승이 어떤 차이가 있는게 아니죠 한가지 유일한 차이는 스승은 늘 내면을 향해 있고, 우리는 늘 외면을 향해 있는 거죠 아기는 늘 장난감을 갖고 놀죠 부모들은 안그래요 그것이 차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물을 적어도 다르게 이해합니다 여러분이 더 좋다 느끼고 이롭고 행복하다면, 그게 전부입니다 그것이 중요한거죠 그게 내가 여러분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고 이야기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꾸짖는 요점이죠 모든 것이 오로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이제 집으로 가는 표는 이미 예약되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여행을 위한 여분의 편의입니다 운전기사는 여러분의 운명으로 데려갈 거고 가는 도중에 물이 공급된다면 여러분도 그것을 가져가야 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은 여러분을 기쁘게 하고 함께 웃고 행복하게 하기에 여러분은 긴 여행을 잘 참게 되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원하건 원치 않건 이미 승차했으니 거기 도착할 겁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건 불행하건 거기에 도착할 겁니다 차에서 잠을 자건 가는 동안 내내 이야기하건, 여러분은 거기 도착할 겁니다 운전기사와 안내원은 온갖 주변 풍경으로 기쁘게 하거나 잠거거나 안내원이 자도 여러분은 역시 거기 도착할 겁니다 운전기사가 당신에게 웃음짓건 얹잖은 얼굴을 하건 거기에 도착할 겁니다 길이 아주 무난하건 조금 거칠건 여러분은 거기 도착할 겁니다 그러니 우연히 좋은 운전 기사를 만나면 그는 운전하면서 가끔 노래허거나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온갖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거나 종종 좋은 이야기로 즐겁게 하주고 아름다운 풍경을 말해주고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주겠죠 그것은 여러분의 운입니다 그렇지 않고 운전 기사가 이런 얼굴을 하고 운전을 해도 거기에 도착하겠지요 이건 운전 기사의 은총일 뿐입니다 또한 때로는 우리의 신체상태와 기분이 편하거나 불편하기도 하죠

내가 히말라야로 가는 길엔 많은 사람들도 순례여행을 위해 갔습니다 난 늘 조용하고 명상적이고 다른 이들은 늘 떠들썩하고 늘 마시고 먹고,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고 코를 골았죠

지난번 인도에 가서는 혼자 택시를 탔어요 충분히 겪었어요! 이제 어려운 시절, 학생 시절의 고난은 이쯤이면 끝난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스승이잖아요? 가끔씩 휴식하러 다녀오거나 약간의 편안을 즐길 수도 있잖아요 난 이미 정신적으로 아주 지치고 피곤해서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했죠 하지만 혼자서 택시를 타는 것도 문제였어요 택시를 타면 편도만을 간다고 해도 왕복 비용을 내야 해요 게다가 돈을 다 내도 다른 인도인들이 합승하기도 해요 길 한가운데서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죠

갑자기 여러분이나 운전사와 친구가 되어 뛰어와 올라타죠 아니면 제복을 입고 있어서 거절 못해요 그들은 운전사의 친구거나 운전사의 부인의 남편의 친구라거나 재혼한 남편 혹은 전 남편 등이라고 말을 해요 엉터리 영어를 조금 말하고서는 끝이에요 올라타는 거죠 뭐라고 할 수도 없어요 어차피 이해 못하니까요 그들이 담배를 안 피고 조용히 있으면 좋지만 그렇게 한다면 와! 그들 나름의 방식에선 대단한 거예요 그들 대부분은 종교나 여신과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예요 온갖 놀라운 것에 대해서요 어머니 여신과 아버지 신을 매일같이 섬긴다고 할 겁니다 여신이나 신의 사원을 지날 때면 절을 하고요

그리고는 여러분이 뭔가를 안다는 냄새를 맡고 온갖 질문들을 퍼부을 거에요 그리고는 갑자기 여러분이 그들의 스승임을 깨닫죠 나는 인도에 이런 제자들이 많아요 어디를 가든지 그저 몇 마디 하고 나면 그들은 이미 머리를 숙입니다 온갖 칭찬과 요청을 합니다 “오, 당신은 제 스승이십니다 가르침을 주세요” “저 홀로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겠어요 당신이 좋든 싫든 그렇게 하겠어요! 당신은 오늘 부로 제 스승입니다!” 그들은 귀여워요 나름대로 귀엽죠

대개 자신의 지식과 종교적 심오함을 드러내려고 하죠 대부분의 외국인이 인도를 영성의 모국이라고 떠받들고 자랑스러워하죠 하지만 한 두 문장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으면 그들은 절을 할 정도로 정직하죠 당신이 어느 면에서 정말 지혜롭다는 걸 어떻게든 알면 그들은 인정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가장 자부심 있고 완고한 사람도 그것을 인정하고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설명해 달라고 신실하게 요청할 거예요 때로는 자신들의 일정을 포기하고 밤낮으로 당신의 얘기를 듣기 위해 따라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죠 그들은 당신에게 온갖 사랑과 헌신과 집착을 동시에 퍼부을 겁니다

오래 전 미야오리 선에서 포모사인들에게 어떤 스승에 대한 몇몇 이야기를 읽어 준 적이 있어요 ‘님 카롤리 바바’ 라는 스승이죠 이 스승은 유명하진 않지만 약간의 힘이 있었죠 아마 깨달았을 거에요 이야기를 보면 제자들이 그를 여러 번 그들 집에 가두어 놓고 도망 못 가게 합니다 여러 번 그랬어요 정말로 갇혔죠! 모든 문과 창문이 닫히고 잠겼지만 그는 늘 탈출했어요 집에 돌아오면 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죠 모든 창문이 여전히 잠겨 있고 문도 잠겼는데 스승은 어디에도 없었거든요 이것이 인도인들의 헌신입니다

중국인들도 이런 식입니다 한번 보세요, 그렇죠? 바로 여기 여러분 눈 앞에 예가 있어요 난 아주 엄격한 스승입니다 내 생각에는 그래요 겉으로도 강하죠 외적으로 강해요 그들이 사랑스럽고 다정한데 거기다 나까지 더 다정하게 한다면 그래서 서로가 더 많은 사랑과 다정으로 대한다면 어떻게 살겠어요?

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서로에게 집착하죠 사랑과 다정함과 친절로요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집착합니다 상냥하고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사려 깊고 항상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을 떠나기는 어려워요 바라는 모든 걸 들어주니까요 그럼 당신도 상냥하고 더 친절하게 그의 바람을 이뤄 주려고 해서 함께 묶이는 거죠 집착이 점점 심해집니다 그래서 불안정한 결혼이 많지만 함께 지내는 겁니다 때로 달콤하기도 하니까요 이해하나요?

내 임무는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거지 내가 내려가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미 진흙 속에 빠졌는데 동정심을 갖거나 날 더 사랑해주길 바란다면 난 그들과 함께 뛰고 거기 머물며 함께 즐기고 달콤한 온갖 것과 사탕을 주고 온종일 거기, 진창에서 보내겠죠 이해해요? 문제는 진창에 있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가능한 빨리 끌어내는 거예요 비록 거칠게 끌어내야 해도요 사람들의 칭찬은 필요 없어요 내가 공손할 수도 무례할 수도 있고 부드럽거나 거칠 수도 있죠

때로 부드럽게 그들을 끌어내면 절대 나오지 않죠 당신이 끌려갑니다 당신이 거기 머물며 위로해 주고 사탕을 주고 마시면 그들은 더 가라 앉습니다 서로 대화하면서 그들의 시간도 잃고 당신의 시간도 잃는 거죠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오, 당신의 옷은 아직도 절반은 아름다워요!” 이게 무슨 소용이죠? 함께 서서 손을 잡고 위로하죠 “진흙 속이라도 괜찮아요 하지만 주변이 온통 진흙인데 어떻게 하죠?” 이런 거예요 혹은 “무슨 일을 하세요? 교수인가요? 의사인가요? 고귀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어디에서 오셨죠?” 예, 대화에 빠지거나 먹고 마시는 것에 빠져서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지연시킵니다

많은 사람이 진흙 속에 있어요 상황이 매우 긴급하죠 인간의 허튼 일에 낭비할 시간이 없죠 긴급한 상황임을 알지 못하므로 바깥 일에 집중하는 거죠 자신을 구조하는 사람이 상냥한지, 거친지, 아름다운지, 못생겼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무슨 언어를 말하고 뭘 먹는지 등을요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안다면 시간낭비는 하지 않겠죠 우리는 진정 위험한 상황에 있고 언제든 죽을 수 있죠 어제는 지진이 났고 내일은 태풍이나 사고 심장발작 등이 일어 나겠죠 인간의 수명이 고작 백 년이지만 백 년을 다 살 수 있을지 누가 알죠?

매일 뉴스를 보면 어느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진, 화산 태풍, 전쟁 재난, 전염병 비행기 사고 등으로 죽는지 보게 되죠 이루 말할 수 없죠 태풍 홍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린 “내겐 안 일어나!” “절대 안 일어나!” 라고 생각합니다 왜 아니라는 거죠? 아버지 할아버지에게 일어났다면 당신도 예외는 아니죠 자녀들에게 일어났다면 왜 당신은 아닌가요? 주변에 항상 누군가 곤경이나 죽음, 병, 재난에 처했다면 당신도 예외는 없죠 아닌가요?

사람들은 그래요 그러니 비록 어제나 혹은 그 전날 지진으로 수많은 집이 파괴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 나가 관광을 합니다 그러니 신도 우리를 가르칠 수 없어요 우린 기도하죠 “하느님 도와주세요 가르쳐주세요!” 하지만 신은 가르칠 수 없죠 신도 어쩔 수 없어요

어제 예수의 죽음에 대해 얘기했어요 심지어 그는 탄생도 충분히 충격적이죠 충격적이에요 그의 죽음은 말할 필요도 없죠 보세요 그는 신의 아들이죠 인간과 천사, 여타 존재 중에서 가장 높아요 그는 태어나기 전 이미 위험에 처했죠 그의 부모는 예수를 배에 숨겨 피난가야 했어요 그를 구하려고요 그는 추운 겨울 밤 동굴, 말구유에서 태어났죠 그러니 우리가 안전하다고 상상 마세요 그래도 우린 두렵지 않죠 그게 신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식이죠 예수의 가르침이에요 탄생에서 죽음까지 계속 가르쳤어요 10년 넘게 19년이나 30년 동안 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깨달은 스승을 찾아 다녔어요 그것 또한 그의 가르침이에요 깨달은 스승을 찾는 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친거죠

그가 신의 아들로서 그래야 했다면 우린 더더욱 그렇게 해야겠죠? 또한 그는 외부의 영광은 전혀 상관 말고 내면의 영광이 중하다고 가르쳤죠 그래서 그는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처럼 매우 비참한 상황에서 겸손을 가르쳤지만 우리가 배우나요? 아주 드물죠 극소수만이 이걸 압니다 배우는 건 고사하고 아주 적은 사람만이 이 교훈을 생각하죠 전엔 듣지도 못했죠

전에는 어떤 교사도 내게 이런걸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선가 들었을지 모르지만 난 깨달음을 찾아 다니는 동안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내게도 새로웠어요 여러분에게 말하면서 나도 알게 됐어요 때론 말하기 전에 알아요 그것도 사실이죠 때로 청중들이 알 필요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와요 예수는 일생 동안 뭔가를 가르쳤습니다 그에 대해 생각하면 여러분은 예수로부터 좀 더 위대한 가르침들을 발견할 거예요 어제 난 일부를 말했고 오늘도 말했지요 여러분도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예수도 평생 위험에 처했었는데 우리라고 안전할까요 그러나 우린 생각하죠 그건 예수를 포함해 남들에게는 일어나지만 나는 아니라고요 우리 몸이 위험에 처하지 않으면 우린 무지의 위험에 빠지게 되고 무지 속에서 죽겠죠 우리가 덕이 있고 매우 좋은 방법으로 수행하고 총명하고 소중하다 해도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할 겁니다 이해합니까? 예수나 부처처럼요

그러니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운전을 잘 하고 술을 안 마시고 능숙하다 해도 앞 뒤의 차를 조심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차에 문제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자력으로 불가한 것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문제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우리 마음을 조절 못하거나 문제를 조절 못하는 겁니다 문제엔 마음이 없죠 이해합니까?

높은 세계에서는 구름, 나무, 꽃들 모든 것이 우리를 이해합니다 말이 필요 없죠 모든 동물도 우리를 이해합니다 여기선 어느 것도 우리를 이해 못하죠 인간조차요 그래서 우리는 자녀 남편 아내 부모와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때로 서로간에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나면 소리칩니다 마음이 서로 화합하지 않고 친밀감이 없습니다 사랑과 조화 속에 있으면 부드럽게 말합니다 신혼 때에는 속삭이거나 말할 필요도 없이 단지 서로 손 잡고 눈을 마주치고 몇 시간 있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 때뿐이죠 그러나 신혼이 지나면 소리치죠 그런 상황입니다

경전이나 불경을 읽어보면 천국이나 불국토에서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그들이 어찌할 방법 없는 상황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소리쳐도 상대가 듣지 않으니 우리는 말을 멈추고 좌절하지요 그곳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합니다 한 쪽이 내면으로 무얼 생각하거나 원하면 상대방은 즉각 알고 자연히 이해합니다 늘 사랑과 조화 속에 살기 때문이죠 네, 신혼 때 부부는 사랑으로 가득 차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죠 모든 욕구가 충만하니까요 그러나 그건 세속의 사랑과 기쁨이죠, 천국의 환희는 십억 배 이상 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말이 필요 없는지 이해가 되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 이제 왜 말을 줄이고 수행을 해야 하는지 알겠죠 난 많은 언어 혹은 어떤 언어도 쓸모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성경에 다양한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후에 노아의 가족은 대가족으로 불어나서 여러 큰 나라를 만들었지만 같은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조화롭게 살았습니다 신이 다시는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 노아의 가족을 축복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죠 가장 사랑 받고 성실한 제자인 노아에 대한 신의 사랑 때문이었죠

이제 왜 한 사람이 깨닫고 신에게 사랑 받으면 5, 6, 7대 조상이 해탈하는지 이해되죠 성경에 쓰여 있어요 나만 말하는 게 아녜요 난 지금 그걸 깨달았어요 노아 가족은 많은 세대가 번영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무엇을 하든 문제 없었죠 이제 그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축복을 즐긴 후 아마 신과 그들의 축복과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잊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들 일부처럼요 우리 세대에는 과학적으로 번영하며 삶은 안락하죠 그러나 많은 사람이 퇴보했고 신을 잊었죠 그들의 성공에 자만심을 느끼고 그들의 인생과 영리함과 성공과 번영에 자만했습니다 에고가 나온 거죠 그들의 성공한 건 자신이 총명해서 라고 생각했고 이제 그들은 모여서 집회를 갖거나 아니면 모든 걸 소유하고 천국에서처럼 살며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들이 생각하고 물질이 줄 수 있는 모든 걸 즐깁니다

약간 지루해져서 “다음은 뭐지?” 하면서 매우 열심히 함께 생각하고 의논하여 합의에 이른 것이 매우 매우 높고 매우 크고 매우 거대하고 매우 영광스러운 탑을 짓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탑이 오랫동안 남아있으면 그들은 매우 유명해지겠죠 그들은 이미 충분히 유명하고 행복했지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길 원했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이름을 남겨야 했죠 사람들이 숭배하고 경이로워 하도록요 그렇게 하기로 했죠 그들은 벽돌을 굽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매우 영리해서 벽돌 굽는 법을 알았고 벽돌을 붙이는데 타르를 사용했죠 그들은 많은 영리한 생각들을 갖고 탑을 짓기 시작했죠 탑은 점점 커지고 그들의 생각도 커져서 더 많은 것을 붙이고 더욱 커지고 매일 더 거대해졌죠 그들의 에고도 매일 커졌고요

줄곧 그들을 지켜보던 신은 그들이 매일 점점 더 자만하게 되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그들에게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했죠 그러면 더 이상 함께 어울리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됐죠 그러니 탑은 절대로 완성되지 못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신은 사람들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 두려웠죠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항상 엄청난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다른 언어들을 쓰면서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렵게 된 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야기하죠 그러니 그것도 괜찮죠

좋아요 이제 집에 가는게 좋겠네요 여러분의 플라스틱 집으로요 플라스틱 집은 보기 좋고 텐트보다 나은 것 같아요 아닌가요? 라 카사 블랑코, 라카사 블로 라카사 인디고 라카사 로사라고 불러도 되요 텐트 색깔에 따라서 흰집, 푸른집 빨간집, 노란집이나 노란 절, 노란 교회나 푸른 암자, 흰 동굴이라고 불러도 되요 그리고 동굴 속에 은거하며 내면으로 들어가 깨달을 수 있죠 행복은 가슴속에 있지 방에 있지 않아요 난 텐트에서 살 때 언제나 만족했어요 여기서도 역시요 그럼 잘 자요

단체명상에 오면 많은 이익을 얻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방식으로요 명상하러 와서 저기에 앉아 이완하면 할 일이 많지 않아요 그저 휴식을 취하면 다시 좋아지죠

두려워해서는 안돼요 받는 자도 두려워 하지 말고 주는 자 역시 두려워하지 말아야죠 왜냐하면 주는 자는 신으로부터 주는 것이고 받는 자는 신으로부터 받기 때문이죠 우리의 도구가 피곤하더라도 우리의 몸을 걱정해서는 안 되요 매일같이 돌보아서 달릴 수 있죠 우리는 달려야 해요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야 해요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어요 쉴 수 없죠 우리는 경쟁하고 있는 중이에요 큰 경쟁이죠 삶과 죽음간의 경쟁 진실과 환상간의 경쟁이죠

승려가 되려고 훈련하는 사람과 속세사람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나요?

나는 차이가 있다고 봐요 첫째, 승려가 되려면 “희생하려는” 정신이 있어야 되요 우리는 피곤도 죽음도 위험도 아무것도 두려워하면 안돼요 다른 사람 모두가 천국에 가고 우리만 지옥에 간다 해도 괜찮아요 내 말은 남을 위해 봉사하느라 우리자신을 위하여 수행할 시간이 없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오늘 오후에 그렇게 빨리 업장을 씻어낼 시간이 없다고 말한 이유죠 마치 너무 바빠서 옷을 갈아 입고 일주일간 구석에 놓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시간이 있을 땐 매일 세탁할 수 있죠

그래서 희생을 결심할 때엔 희생한다고 느끼지 못해요 그저 주고 또 주기로 결심하는 거예요 그뿐이죠! 출가자는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해요 훈련 과정에서 아직 이 이상을 완수할 수 없거나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했거나 소위 개성이 우리를 그런 완벽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해도요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바람, 이상, 영혼입니다 출가자들은 이미 그런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요 그런 이상을 따를 준비가 됐죠 그래서 그들이 가장 존경 받는 거예요 이해해요? 그건 적어도 그들이 보통 사람들의 사고를 초월하는 거지요 그들이 그걸 할 수 있는지 없는 지는 다른 문제예요 그건 그들의 오랜 인내와 능력에 달렸지요

이는 또한 대학에 지원한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통과해야 하는 것과 같죠 그들이 대학에서 잘하거나 1등이나 2등으로 졸업하거나 졸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학생들과 비교할 수는 없어요 특히 그들에게 깨달은 자비로운 살아있는 스승이 있을 때는요 그리고 그들에게 보다 높은 이상을 심어준 그 스승 때문에 그들은 평범한 출가자가 아닙니다 대학생들과 마찬가지죠 대학생들이 공부를 못해도 “넌 형편없는 고등학생이야!”라고 꾸짖을 수는 없죠 단지 형편없는 대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죠 그가 형편없는 대학생이라도 고등학교 졸업생보다는 나아요 그러므로 고대에 고대뿐 아니라 고대 이래로 사람들은 출가자를 매우 존경했죠 그들의 옷 색깔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 때문이죠

때로 사람들이 출가자가 되어 얼마간 수행했더라도 감정, 분노, 습관을 다스릴 힘이 아직 없어요 그렇다고 높은 이상, 고귀한 목표를 영원히 잃는다는 말이 아녜요 또한 때로 조건이나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키지요

서커스에서 사람들은 사자나 호랑이를 훈련해 노예로 만들어요 깊은 정글과 높은 산 같은 광활한 장소에선 그들은 왕이에요 그러나 일단 인간의 손에 갇히면 꼭두각시가 되지요 난 어릴 때 호랑이나 사자, 코끼리가 이런 하찮은 일들을 하도록 조정되는 걸 보면 늘 그들이 딱하게 느껴졌죠 이유는 말할 수 없군요 알긴 하지만 이 느낌에 대해 다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인도사람들은 감히 힌두교 출가자인 사두를 비난하지 못해요 대부분 언제나 그들을 돌보지요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어 돌보지요 또한 인도 사두는 수행하고 스승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면서 동시에 뭔가를 수행하기 때문에 적어도 확실히 약간의 영적 능력이 있어요 고대에는 심지어 왕과 장관들도 스님들에게 절을 했지요 출가자가 되는 건 어려워요 여러분이 보듯 출가자는 많지 않죠 또한 그들은 훈련을 받아야 하죠 인도 사두는 약간 달라요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채식을 하고 신을 공경하는 법과 만트라 암송법, 때론 명상하는 법을 배우죠 다른 나라의 사람들 대부분은 꼭 그럴 필요는 없죠 내 생각에, 우린 인도 수도승들보다 더 훈련할 필요가 있죠 인도 사람들이나 수도승들도 이런 매우 이상적이지 못한 생활환경엔 익숙하지 못해요 그러나 다른 나라에선 유복한 집안출신의 사람들이 수도승이 되어야 한다면 훈련기간 동안 그들은 모든 게 정상적이지 못한 어떤 다른 곳으로 보내어지고 얼마간 살아갈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들은 적응할수 없죠 그래서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얀 스 츄 까오 타” 이건 엄격한 스승이 최고의 제자들을 길러낸다는 뜻이죠

우리가 아주 아주 힘겨운 상황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려도 아무 장애도 느끼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서요 그리고 인생은 대체로 힘들죠 그런데 우리가 더 낳은 좋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는 더 감사할 수 있죠 그런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조심하게 되죠 그걸 얻기 힘들다는 걸 우린 아니까요 또한 우린 주의를 기울이게 되어 그런 상황에 휘둘리지 않게 되죠 또한 우리가 힘든 상황에 있든 좋은 상황에 있든 그리 요란법석을 떨진 않게 되죠 이처럼 되려면 얼마간 훈련이 필요해요 이미 삶을 통해 훈련이 되었다면 다행이죠 지금까지의 삶이 우릴 망쳐놓았다면 많이 닦아내어야겠죠 우린 적당한 상황이나 환경에 처하기 전까진 자신의 실수와 단점들을 깨달을 수 없어요

옛날에, 인도의 까비르 스승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요 그는 약 500년 전에 살았었죠 그와 공부하려고 온 한 왕자가 있었어요 그는 스승에게 와서 수년간 수발을 들었죠 그는 꼭 그 스승에게서 배우길 원했어요 하지만 그 스승은 그를 가르치지 않았고 입문도 해주지 않았죠 스승의 부인은 그 왕자를 매우 안쓰러워 했어요 그녀는 그 왕자가 왕좌를 버리고 여기에 와 스승을 시중들 정도면 충분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며 스승이 왜 그를 그렇게 냉정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지 알수 없었죠 그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어떤 특별한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죠 그녀는 그 스승에게 왕자의 사정을 봐달라고 간청했죠

그러자 스승이 말했죠 “좋소,그러면 내일 아침, 우린 그에게 준비가 되었는지 시험해야 하오 그럼 아침에 당신은 모은 쓰레기를 갖고 이층에 서 있다가 그가 지나가면 그의 머리에 그걸 쏟아버리시오 그가 어떻게 행동하지를 보고 결정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아침에 그 둘은 거기에 서서 그 왕자가 거길 지나가길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그에게 쓰레기를 전부 쏟아 부었죠 그러고 나서 그 둘은 숨어버려, 누가 그랬는지 그가 볼 수 없게 했죠 물론 그 왕자는 눈을 부라리며 목청 높여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당신, 당신 내가 누군지 몰라! 알면서 그랬다면 두고 보겠어! 당신이 누군지 알게 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감히! 네가…” 전부 이런 식의 말들을 아낌없이 퍼부었어요 스승과 그 부인은 둘다 위층에서 웃고 있었죠 그 스승은 그의 아내에게 말했죠 “봤소, 당신 봤소 당신은 그가 매우 겸손하다고 했는데! 저 것 봤소?”

많은 세월이 더 흘렀어요 그리고 어느 날 스승의 아내는 왕자가 다시 부지런하고 겸손히 일하면서 그 스승을 수발 드는 걸 보며 때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 스승에게 다시 사정했어요 그 스승이 말했죠 “좋소, 하지만 다시 시험해야만 하오” 고대 스승들은 너무 무섭네요, 정말 너무해요! 시험은 매번 전보다 더 어렵죠! 그건 또한 세월에 비례합니다

그 스승은 아내에게 요강을 가져오라 했죠 여러분 요강 알지요? 옛날에는 집안에 편리한 화장실이 없어서 밤엔 밖으로 나가 볼일을 봤죠 밖으로 안 나가고 편하게 볼일을 보려면 침대 밑에 요강을 두었었죠 스승은 아내에게 요강을 가져오라 해서 왕자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그걸 쏟아 부었죠 대변이건 소변이건 가릴 것 없이 전부 그에게 쏟아 부었죠! 그러자 그 왕자는 단지 머리를 흔들고 무릎을 꿇고 나서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이보다 훨씬 더 더럽다는 걸 어찌 아셨나이까? 절 일깨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걸어 나갔죠 그리고 그 스승은 아내에게 ”좋소, 과실이 익었구려” 라고 말했지요 그 스승은 왕자를 입문시켜 주었어요

내가 말했듯, 우린 자신의 결점과 숨겨진 습관이나 나쁜 점을 적당한 상황에 맞닥뜨리기 전까진 깨닫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수도승들도 어떻든 간에 시험을 당하지 않으면 자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밀라레빠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알 거예요 그는 자신이 온전하며 매우 신실한 구도자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는 7년의 세월이 가는 동안 매번 시험에 패했어요

그러니 자신의 결점을 아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죠 우리가 기꺼이 자신의 약점을 관찰하려 하지 않으면 알기란 힘들어요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명상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귀 기울여 듣는다면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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