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
 
계율의 의미 1/4부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아나-1989년12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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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진정한 가르침)에는 수많은 계율이 있는데 일반인들은 『너무 어려워』서 지킬 수 없다고들 믿고 있는 것들이죠  난 오래 전에 출가하기 전에요  세상을 버리고 머리를 밀기 전에 집에서 수행했어요  채식을 지키는 것은 말할 거리도 못됩니다  너무 쉬우니까요

쉽나요? 어려워요?괜찮아요,좋습니다
나에겐 평생 동안 채식하는 건 쉽습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좀 힘들어 합니다  여러분이 먹고 싶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상황이 여러분에게 억지로 강요하면서 채식하도록 허락하지 않아서죠

입이 억지로 채식을 하게 해주질 않거나 종종 남편은 채식을 하고 싶은데 부인은 채식요리를 하기
싫어하거나 부인이 요리를 하려고 해도 방법을 모르기도 하죠

그래서 복잡한 시나리오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복잡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예컨대,여러분에게 고백하려고 합니다  내가 집에서 영적으로 수행할 때 겪었던 나의 어려움들을요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바로 출가승이 된 것이 아니란 걸 알도록요 난 아직도 인내하면서 나약함과 인간적인 특성과 습관 등을 극복하고 싸워야만 합니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서 어머니의 젖만먹었을 때는 다른 걸 마시거나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요

그런 다음 부모님은 고기,생선,쌀 등을 먹이기 시작하고 우린 다 자라서 익숙해져 버린 거죠
그런데 우리가 친구네 집에 가고 초대를 받아서 뭔가 마시게 되고 마시는데 익숙해지자 담배가
보이는 겁니다

『너가 한모금 빨아』『난 한모금 빨거야』 등등,그러다 우린 담배에 익숙해지죠
일단 습관이 되면끊기 어려운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술과 담배를 한 게 아니죠 그래서 우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뭔가를 한다면 그것은 단지 환경 때문일 뿐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쁜 습관이 생긴 이유는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거나 우리가 그렇게 태어나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추리나 판단을 하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느껴지죠,순수하고 청정한 진아를 다시
찾을 거라는 희망이요

지금 내가 나를 『꼬』(여승의 칭호)나 『또이(나) 』라고불러야 하나요? 『꼬(여승의 칭호)』요
그럼 난 여승이니 『꼬』가 되네요 네 신분이 그러니 그 임무를 다할게요 난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또이(나) 란 말을 거의 안썼죠

또이 (나)란 말을 쓰는 건 아주 어려운 것 같아요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아주 먼 것 같아요
어떤 정감도 전혀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난 어렸을 때 날 부르는데 내 이름을 썼지요

『꼰 (딸) 』 『엠(여동생)』『짜우(조카딸/손녀) 』『찌 (언니) 』와같은 사람들과 말할 때에 말이에요
이제 난 여승이니 내 일을 다할게요  날 『꼬』로 부르는 건 『비구니』를 뜻하는 거지 내가 고모나 큰 고모라는 건 아녜요

여러분이 우리 부모나 형제,자매인데 우리들을 우리부모와 함께 『또이(나)』로 부르면 더 어색하며
우리 자신을 형제자매들에게 『또이』라 한다면 너무 소원합니다

그러니 내 신분을 써서 적절히 활용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나를『꼬(고모/ 선생)』이라고 부르고 싶어하진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님 날 『칭하이』 라고 부를까요?그것도 좀 이상합니다  내가 영적 교사란 이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던 시절엔 집에서 수행했죠

채식인이 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대개는 소위  재가 불자로 수행할 때 일상적으로 수행합니다
맞죠? 우린 절에 가서 부처를 숭배하고 보시를 합니다  꽃이나 과일이나 뭐든 승려에게 부처에게
보시하고 채식을 먹고 나서 집에 갑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첫 스승인 여승은 나에게 오계를 받으라고 강요했지요  난 물었어요 『왜죠?
난 이미 채식을 하고 영적 수행을 하며 이미 괜찮은데요 왜 수계를 받아야 하나요?』

그녀가 답했어요 『그걸론 아직 멀었어요 계를 받아야만 좋답니다』

계를 받는 순간은 두려울 때지요  보통은  괜찮지만요  매일 채식하고 진정한 불자가 되어 절에 가서
부처를 숭배하고 승려에게 보시하며 이런 저런 자선을 베푸는데 왜 계를 받아야 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계를 받으라고 강요했어요  계를 받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불자로 있는 건 공식적인 게
아니라고 말했지요 맞죠?

그래서 난 『좋아요 계를 받을게요  전 좋아요』 라고 했죠 그렇게 해서 계를 받았습니다
수계식하는 동안 스님이 『지금 당신은 수계를 받을 수 있겠소? 하면서 탁자를 치자 난 떨렸으며
수계를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오계가 있지요 난 이미 오랫동안 채식을 해왔기 때문에 계속 채식만 했죠
첫 번째 계율은 『살생하지 말라』죠 이건 쉽죠 그렇죠? 『우리가 사람과 동물을 죽이지 않으면
괜찮겠지 다른 사람이 우리가  먹기 위해 죽인다면  잘못된 게 없겠지』이렇게 생각하죠?

『우린 더러운 일을 하지 않아 남이 그걸 대신하게  했으니 문제 없어』 따라서 첫 번째 계율은
아주 쉽습니다  곧 바로 『좋아』라 하죠

두 번째 계율이 뭐죠?  훔치지 말라 입니다 훔치지 말라 훔치지 않는 것- 아주 쉽죠 아주 쉽죠!
정말 쉬워요 정말 쉽다고 생각하죠 세 번째 계율인 강간하지 말라는 매우 쉽죠

문제 없죠 이건 쉽죠?약간요 약간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죠 걱정 말아요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그냥 눈 감고 무시하세요 네

네 번째 계율이 뭐죠? (거짓말 하지 말라)
다섯 번째 계율은 『술 마시지 말라』 맞죠? (네) 좋아요

난 이 두 계율이 맘에 걸렸어요  어디서 막혔는지 아시나요? 내가 재가자였을 땐 곱슬머리였죠
원래는 직모였는데요 어울락(베트남) 여자의 머리는 보통 직모인데 파마를 했으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죠 

남을 속이고 있었죠 원래는 직모였는데 예쁘게 보이려고 가서 파마를 했으니 거짓말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다시 한번 마음에 걸렸죠 화장때문에요 내 얼굴은 매우 창백해서 화장했죠 맞죠?

약간은 검게 약간은 푸르고 붉게요 난 거짓말이라 여겼죠 그래서 그 스님이 세 번이나 물었을 때
난 잠자코 있었죠 스님은 세 번 물어 보았죠 처음엔 『할 수 있겠소?』 라고 한 뒤 『탁!』하고
 쳤어요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그는 다시 『탁!』하고 쳤죠 모두가 이렇게  세 번을 대답했죠 이해되나요?
그럼 이건 계를 공식적으로 받는 걸로 여겨지며 그걸 하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죠

그 스님이 처음 물었을 때 난 거기 앉아서 생각하고 있었죠  알겠어요? 두 번째도 역시 생각하고
있었죠  세 번째엔 잠자코 있었죠 난 모든 요구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감히 계를
받지 못했죠

큰스님이 나에게 말씀했다는 건 행운이었죠  떠나기 전에 난 물었죠 『계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죠?수계 중 많은 걸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죠?』 그 여스님은  『당신이 받을 수 있는  계율에는 ‘네’라고 말하고 받을 수 없으면 그냥 잠자코 있어요』 라고 대답했죠

그래서 난 이게 쉽다고 여겼고 들어가 침묵을 지키니 문제 없었죠 그 결과 그것 중 두 개는 침묵을
지켰죠 오계를 받는 불자는 오계 중에서 두 개의 계율엔 침묵을 지켰으니 몇 개가 남았나요?
또한 오계 모두 침묵을 지켜도 되나요?왜 애써서 어려움을 겪나요?하지만 왜죠?

그 스승은 나에게 계를 받도록 한 것은 내가 이미 채식을 했고  스님들의 법(참 가르침) 작업을
엄청나게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내가 계를 받지 않는다면 자기 체면이 깎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그녀는 체면을 잃을 거라고 했죠 아세요? 보통 우리 어울락 (베트남)인들은 이렇게 차별하기를 좋아하죠?모두가 그래요 어울락(베트남)인들만 그런 게 아녜요 뭐든 격식 갖추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물었죠  『당신은 계를 받았나요?』부처님께 귀의했나요?그렇죠? 우린 어딜
가나 늘 묻습니다 『귀의했나요? 어떤 스승에게  귀의했죠?』 우리가,우린 귀의한 적도 없고
우리에겐 어떤 스승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마치 우리를 불교도가 아닌 반만 믿는 불교 신자인 듯
우릴 쳐다봅니다

그러면서 가서 계율을 지키라고 하죠 난 내가 많은 계율을 지킬 순 없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난 훌륭하지만 그렇게 말할수밖에 없다고했죠  내가 많이 지킬 순 없으리란 걸 알았었죠

당시 아직도 난 술을 마셨어요 그 당시에 난 채식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채식하고 와인을 마시는 건 살생과 관련 없으니까요  맞죠? 난 술을 마셔도  중독 수준은 아니었죠

그 때 난 여전히 결혼한 상태였으니까요 내 남편은 의사여서 친구가 많았고 우린 이따금 저녁식사에
그들을 초대하거나 그들이 우릴 자기들 집으로 초대했었죠  우리가 맥주 같은 걸 좀 마시지 않았다면,난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손님이 조금 부어줄 때가 있는데 우리가 마시지 않으면 손님은 아마… 손님들은 그렇잖아요
이해하지요?서양인들이나 영적 수행자가아닌 이들에게 약간의 음주는 괜찮다 생각하는 건 정상이죠

난 취한적은 없어요 난 조금 마셨어요 난 못 마신다고 말했다면 내가 집에 살 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남편이 내게 간혹 술을 주지 않을까 걱정됐죠 건배 분위기를 맞추지 맞추지 못할까 또는 내가 마시길 멈추지 못할까 염려되기도했죠

그래서 이 두 계율에 대해선 침묵을 지켰죠 당시 난 『계율』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알겠어요?채식하는 것으로 훌륭하다 생각했죠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에 한해 그건 맞는 거라 생각했죠

또한 화장을 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생각했죠 『난 여전히 화장을
하니까 난 아직 진정 수행자가 아냐』 하지만 지금은 약간 다르게 생각합니다

약간 다르게 생각해요 부처의 첫 번째 계율이 어떤 거였죠? 살생 하지 말라 맞지요? 그런데  산스크리트어로 정확히 번역하면 그건 『비폭력』입니다 『비폭력』은 폭력,물리적 힘을 사용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린 비폭력은 누군가 우릴 때렸을 때 그냥 맞기만 함으로써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얼굴은
얻어맞더라도 거기서 가만히 있는 걸 뜻한다 생각하죠 그건 여전히 법칙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법칙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사람이 법을 보호해야 하는 건 아니죠 예로,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여 누군가가 우리 아이들을 때리거나 우리 물건을 훔치거나 우리 아내와 아이들을 억압할 때
침묵을 지킬 순 없는 겁니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도 그를 쳐서 의식을
잃도록 해야 하죠? 이걸 알고 있나요? 쳐서 의식을 잃게 하지 않으면 그가 우릴 질식시켜 죽일 겁니다  왜냐면 물에 빠진 사람은 정말  살고 싶어하고 누군가 다가오는 걸 보면 붙잡으려 안달하니까요

그에게 붙잡히면 옭아매서 둘 다 수영을 할 수 없게 되거든요 수영할 수 없으면 둘 다 익사하죠
그러므로 뒤에서 여길 쳐야 하는 거죠 일격으로 의식을 잃게되죠 그 경우엔 폭력을 쓴게 아니죠

첫 번째 계율은 우리가 미움이나 복수의 마음을 품어선 안 됨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보호할 수
없다는 게 아닙니다 이젠 내가 좀 더 이해하고 있어요 예전에 난 내가 싸우지 않으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거라 생각했죠 즉 누가 때리면 거기서 그대로 죽도록 맞는 거라고요

물론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천상의 존재들과 성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맞더라도 기꺼이 죽겠다며 그대로 있죠  석가모니 부처처럼요 관음보살도 지구상에 여러 번 나타났을 때 많은 불공평으로
고통 받았지만 저항하지 않았죠 예수 그리스도 또한 저항하지 않았죠

우리가 저항하든 하지 않든 우리에겐 여전히 업장(응보)이 있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하느님과 부처를 언제나 존경하더라도 우린 여전히 고통 받고 환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환생을 피하고 싶다면 우린 좀 더 고양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즉 이른바 우린 부처와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부처와 하나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를 테면 우리가 부처와 하느님과 소통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예를 들어 불경에 보면 나와있죠 『숭배하는 자와 숭배 받는 자는 본래 비어있고 고요하다

법문(진정한 가르침)과 그 응답은 생각하기 힘든 방식으로 서로 엮여져 있다
나의 것인 이 금강좌는 제석천의 구슬과같도다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이 그 안에 나타나셨네
내 몸을 모든 부처님들 앞에 세우니 그 발에 대고 절하여 나는 다시 내 삶을 숭배로 돌린다』

우리가 『내 몸이 모든 부처님들 앞에 세운다』란 경지에 이를 수 있을 때 부처와 하늘과 함께
있으므로 『그 발에 대고 절하여 나는 다시 삶을 숭배로 돌린다』 라고 말할 수 있죠

즉 우리가 부처를 분명히 보는 걸 뜻해요 그리고 그 때에야 우린 부처님들을 존중하게 되죠 하지만
 대부분 우린 아직도 부처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나무나 청동으로 만든 부처에 대고 숭배하는 겁니다  부처와 하느님의 덕을 기억하며 부처가 수행했던  시절을,그가 수행했던 여러 가르침들과 법문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럼 부처가  될 수 있다고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은 건 아녜요 내가 간혹 나의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는데 나무 불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이죠 내가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절에 가 불상을 숭배하는 걸 내가 반대하는 게 아녜요 아니,아니죠 불상을 숭배하고 절에 자주 가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불상’에 너무 집착해 있어요

알겠어요?그래서 난 『이런 불상들을 숭배하는 건 이롭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이런 특별한 집단 사람들에게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들의  선입관을 극복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해하겠어요?

그들은 부처가 나무나 청동으로 된 동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잘못된 개념이죠 그렇죠?
정상적이고 지적인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러나 따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건 부처님이야 하며 꺼내어 가져다 놓고 바라볼 뿐이죠 우린 부처상에 절하며 부처의 공덕을
기리고 스스로에게 영적 수행을 상기합니다

그건 거기 앉아 있는 목불에게 집착하는 것과 다르죠 그렇다면 절마다 있는 부처 때문에  세상은 부처로 가득할 거에요 그러면 우린 서방 극락세계로 가서 부처를 찾을 필요 없죠

가서 나무상을 사는 걸로 충분하죠 우리가 누군가 보살이나 부처 천상의 존재가 되었단 얘기를 들을 때 우린 오로지 그들만 도달할 수 있다 여기죠 또는 단 한명의 석가모니 부처가 있고 단 한명의 관음
보살이 있다고 여겨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화경을 떠올려보면 『어떤 시대에도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많은 보살과 부처가
나타난다』고 했지요  소위 『땅에서 솟은 보살들』이 진리를 수호하고 널리 전파하여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땅에서 솟아나온 이러한 보살들이 누구죠? 우리죠 그 말곤 없죠 우리의 육신은 지구에서 났죠
지구에서 태어났고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죠 네 그건 이 지상에서 사는 것이 그와 같다는 걸 뜻해요
바로 그런 뜻이에요

결국 우린 자신이 지구에서 난 보살이란 걸 알게 해줄 방법을 찾아야만 해요 또는 적어도 지구에서
나온 어떤 보살이 있는지 그들과 함께  공부 할 수 있도록  찾아 봐야해요

부처는 명확히 얘기했어요 어떻게 목불을 숭상하느라 우리 시간을 낭비할 수 있지요?
그렇죠? 왜 우리는 부처가  어떤 시대에도 존재할 것이라 약속한 살아있는 보살을 찾지 않나요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보살들요

『항하소』란 갠지스강의 모래와 같이 무수한 수를 의미해요 인도에 갔을 때 갠지스강이 매우 크고
 길다는  걸 알게 됐죠  그 모래알들을 다 세어본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죠

그러므로 부처가 이미 명확히 말했듯 찾지 않는다면 큰 손해인 거죠 그러나 우리가 한번 찾게 되면
부처의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거에요 부처의 말 뜻은 어떤 시대에도 보살이 되는 중생들이 존재한다는 거죠

어느 시대든 불성이 있고 불성은 절대 끝이 없다는 거죠 단 찰나의 순간에 밀법이 열리면
즉각 우리는 참된 자아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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